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장비를 비판하는 게시물이나 영상에 반드시 따라오는 댓글이 있다. 사실 역사도 유구하다. 저 비슷한 내용의 글을 무려 20세기에 하이텔에서도 보았으니.
"그때 소달구지나 끌던 조선..."
사실 정치권에도, 그리고 정부 요직에도, 나아가 그들을 지지하는 지지층에도 일뽕들이 넘쳐나는 이유일 것이다. 일제강점기까지, 아니 불과 80년대까지 똥오줌도 못가리던 미개하고 가난한 조선반도 엽전들과 달리 일본분들께서는 이때부터도 벌써 대단하셨다. 그러니까 일본분들은 매우 대단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과연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남들 비행기 만들 때 소달구지나 끌고 다닐 정도로 미개하고 열등하기만 했는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엔진과 부품들을 뚝딱 조립해서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한국전쟁 끝나고 10년도 되기 전이었다. 대충 주위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들 뚝딱거려 원리를 알아내고 구할 수 있는 부품 가지고 조립해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일제강점기에는 그런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 대학이라고는 경성제국대학 오로지 하나 뿐이었었다. 그것도 사실 조선반도에 이주해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었지 조선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인들은 대신 대학도 아닌 전문학교를 통해 고등교육을 받았었다. 이때 전문학교들이 이후 서울대를 제외한 사립대학들의 전신이 되고 있었다. 연희전문이라든지 세브란스 의전이라든지 이화여전들이 그것이다. 더구나 이들 전문학교들까지 모두 통틀어 조선반도에서 이루어진 이공계교육이라는 것은 기술의 습득 이상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전문적으로 체계적인 이론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야 했는데 이마저 일본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다. 괜히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한 자리 하는 새끼들이 죄다 친일파였던 게 아닌 것이다. 친일파 아니면 제대로 된 고등교육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다. 오죽하면 서울대에서 부전공이든 교양이든 역사 배운 놈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쪽발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까?
대학도 그런데 사기업들의 사정은 더 처차무인지경이었다. 경술강제병탄이 있고 나서 조선총독부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이 회사령을 통해 전국에 난립하던 민족자본들을 대거 정리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소수의 협력적인 인사들에게만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렇다고 일정 이상의 자본을 획득하는 것 역시 허락하지 않았었다. 식민지조선에서 그나마 규모가 있는 회사나 공장들은 거의가 일본인들의 소유였고, 그래서 한국 기업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게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진 회사와 공장들이 해방 이후 한국인 기업가들에 불하되는 과정이 오래된 기업일수록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대가리가 빡대가리들이라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으로 경쟁해서 이길 수 없었으니 식민지 조선에 조선인에 의한 자본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이라 주장할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시발택시만 하더라도 일본이 서구의 선진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일단 악착같지 자국 국민들의 등골을 빨고 나중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피를 쥐어짜셔 선진국들에게 발주를 준다. 이러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달라. 혹은 서구의 열강들로부터 직접 기술을 배우거나 설계도를 가져와서 사들인 공구와 기계등으로 공장을 세워 직접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때 서구의 열강들로부터 들여온 기술이라는 것은 대개 시대에 뒤떨어진 도태된 것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거기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자랑하던 군함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영국에 발주를 주어 생산한 것을 사왔었고, 나중에는 영국으로부터 받아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개량해가며 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뻘짓도 어마무지하게 했었다. 도대체 이런 게 굴러가기는 하는가 싶은 것들도 그때 꽤 많이 만들었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써먹어야 하기도 했었다. 일뽕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제로센 또한 그렇게 이미 미국에서 생산중이던 전투기의 디자인과 설계를 응용해서 자기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성과라면 성과겠지만 그래서 시발자동차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서 한국인들 역시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봐야 이미 있는 부품들을 조립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미 있는 중고엔진과 부품들을 조립해서 굴러가게만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 물건이다. 거기서 시작하는 거라니까. 그리고 지금도 많은 자동차들이 해외의 검증된 부품들을 사들여 와서 자기네 공장에서 조립한 뒤 완제품을 만들어낸다. 일본이 처음 자체적으로 엔진을 설계까지 해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 언제라 생각하는가. 그런데 바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주체가 일제강점기 식민지조선에는 없었다. 대학도 없었고, 당연히 이공대생들도 없었고, 그를 현실에서 시도하고 이루어낼 수 있을 만한 자본도 기업도 없었다. 누구에 의해서? 그러니 식민지근대화론따위에 솔깃해하는 2030 남성이니 2찍 진보니 하는 것들에 혐오와 환멸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2030 남성들은 일관되기라도 하지 2찍 진보 새끼들은 미제국주의에 의해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자원약탈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그리 비분강개하면서 대일본제국님들께서 식민지조선에 베풀어준 경제발전의 은혜에 대해서는 찬양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긴 2찍 진보도 따지고 보면 그 주류가 경성제국대학일 테니까. 그런데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들은 소달구지나 끌고 다녔다면 이를 어찌 이해해주어야 하는가?
제국주의열강의 식민지지배가 가져온 최대 폐해일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제국주의 열강의 후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지배는 해당 당사국과 민족들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 그들 스스로가 노력과 도전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을 지 모르는 수많은 선택지들을 지워 버렸다. 식민지조선에서도 일본제국주의는 가장 먼저 수많은 기존의 학교들부터 통폐합하고 있었다. 아직 존재하던 서당들 역시 거의 대부분 문닫게 만들고 말았다. 그나마 서구 열강들도 인정하는 가장 관대한 형태의 지배를 했던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나마 일본이 다른 서구의 열강들에 비해서는 식민지에 대해 관대한 편이기는 했었다. 괜히 아직까지도 대만에서 일본이 지배하던 시절을 향수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일본을 찬양하면서 그 지배를 받아야 했던 조선인들을 모욕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래서 더 신기한 것이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가장 극심했던 것은 1970년대, 그러니까 1990년대까지도 일본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아직 동경의 대상이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양국의 격차가 이렇게 좁혀진 지금에 일빠들이 저리 늘어나고 있는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부정하는 정부를 오히려 지지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일뽕들이야 예전부터도 있어 왔었다. 레파토리도 사실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요즘 일뽕들은 앞에 반드시 스윗을 붙인다. 이전의 일뽕들조차도 우습게 여기는 그들의 자신감이기도 할 터다. 역시나 야동이 그들을 그리 만든 것인지. 저들의 주된 주장 중 하나가 포르노의 허용이고 보면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닌 듯하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연구할 가치가 있겠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