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것은 오히려 버니 샌더스였다. 다수 청년과 중하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그에 비해 힐러리는 이미 오바마와 경선을 치르면서 신선한 이미지도 사라졌고 이후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며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는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나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당시 미국 민주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힘을 결집해서 그를 주저앉혔고 그 결과 반대편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대선후보가 되었던 트럼프에 철저히 패배하고 말았었다.
당시 미국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 눈에도 정 반대편에 있는 듯한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라는 두 대선후보가 정작 특히 청년층에서 지지층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버니 샌더스에 열광하던 미국의 청년유권자들은 힐러리가 그를 이기고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바로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트럼프 지지를 선택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결국은 당시 미국 청년들 대부분이 지금까지의 민주당과 공화당으로는 안된다고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금까지의 민주당을 바꿔줄 샌더스가 경선에서 떨어진 이상 대안으로써 공화당의 기득권들을 이기고 대선후보가 된 트럼프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같은 병신짓을 작년 대선에서도 미국 민주당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이미 대통령이 있는데, 그래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새로운 후보를 내세울 것이면 경선이라도 치를 것이지 하다하다 해리스가 무엇인가?
작년 미국 대선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그래서 우리나라의 2007년 대선이었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없이 이명박만 막겠다. 이미 있는 대통령도 억지로 탈당시키고, 그동안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주었던 지지자들에게서도 등을 돌린 채, 잔류민주당과 손잡고 조직을 이용해서 민의와 상관없이 대통령후보가 되어서는 한다는 소리가 이명박은 안된다. 얼마나 지리멸렬한 선거였으면 당시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유권자 상당수가 이후 치른 총선까지 상당수가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명박이 잘해서 압도적인 차이로 이긴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정동영이 너무 병신이라서 당시까지 열린우리당에 투표했고 이후 민주당에 표를 주게 될 사람들 다수가 그냥 투표 자체를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2022년 대선에서 지금 민주당은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당권을 쥐고 있던 놈들이 당원의 선택을 받아 대선후보가 된 이재명을 인정하지 못하고 주저앉히고자 아예 대선에서 태업을 해 버린 것이다. 차이라면 그럼에도 지지자들이 결집해서 최소한의 차이로 패배할 수 있었던 덕분에 아직도 민주당은 이재명을 중심으로 그를 지지한 당원들에 의해 꾸려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2007년 민주당은 물론 2016년 이후 미국 민주당은 아니었다. 당내에서의 싸움에서는 이겼어도 결국 자신을 지지해 줄 국민들을 이기려 한 결과 트럼프라는 괴물을 두 번이나 당선시키고 말았으니.
어차피 엘리트의 위선이라고 하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도낀개낀이다. 민주당만 엘리트고 공화당은 엘리트가 아닌가? 민주당만 기득권친화적이고 공화당은 아닌 것인가? 트럼프는 그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더 기득권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민주당은 아니다. 왜? 미국에서 소외된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과 청년들을 위한 정치를 천명하며 이제까지의 미국을 바꾸고자 했던 버니 샌더스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힘으로 주저앉혔으니까. 그리고 선택한 것이 그동안 해오던대로 계속 해먹겠다는 힐러리였고,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지도 모르는 얼굴마담이자 꼭두각시 해리슨이었다. 차라리 되도 않는 선정적인 주장들로 자신들을 현혹하는 트럼프가 낫지 아예 뭐가 문제인지 관심조차 없는 민주당이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정확히 2016년과 2024년의 대선은 트럼프가 이긴 선거라기보다 민주당이 패배한 선거가 맞다. 그만큼 당시 미국 민주당은 미국의 대중들에게 더 이상 어떤 신선함도 매력도 어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트럼프가 개짓하는 것을 욕하면서도 차라리 한국의 되도 않는 지지자들을 비웃지 미국 유권자들을 비웃지는 못한다. 대선후보가 하필 윤석열과 이낙연이면 허경영을 지지하는 심리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 차이다.
대선후보 경선과 나아가 대선을 앞두고 새삼 민주당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에게 경고하고 싶은 부분이다. 어째서 미국 민주당은 미국 다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가. 트럼프라고 하는 한 눈에도 문제가 많아 보이는 괴물같은 후보를 상대해서도 어째서 두 번이나 패배하고 만 것인가? 코로나라고 하는 중대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상황에서 트럼프가 저지른 실책들이 아니었다면, 심지어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민주당 정부는 정작 미국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에서 지리멸렬한 모습만을 보이며 수권정당으로서 그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국제적인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미국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서 한국에 사는 내가 한숨을 쉬고 있었을 정도면 미국에서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되었는데 지금 하는 꼬라지 보면서도 여전히 절반 가까운 미국 국민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 왜? 어째서?
대중정당이 그 지지자인 대중을 무시하면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기 전까지 민주당이 바로 이랬었다. 그 시절 민주당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최소 분 단위로 줄어들 것이다. 세상에 이런 발암종자들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미국 정치상황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반트럼프시위를 버니 샌더스가 노구를 이끌고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 그래서 어쩐지 기시감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고. 결국은 무언가. 지지자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정치가 무엇인가, 어떤 비전을 기대하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물갈이가 제대로 이루어진 지금의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역시 국회의원 선수를 제한하는 건 옳은 방향이었다. 미국 민주당을 저 모양으로 만든 것은 자신의 권력에 취한 다선 정치인들일 것이니. 트럼프가 물러난다고 과연 지금 미국 민주당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저렇게는 되지 말자는 것이다. 트럼프라는 괴물을 만든 것은 공화당이 아닌 정작 미국 민주당이다.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