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검찰총장 자리에 앉고 나서 검찰의 수사는 철저히 민주당에 편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민의힘과 관련한 혐의는 제대로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기소도 되지 않고 무혐의로 결론나는 것들이 많았다. 반면 민주당은 별 되도 않는 것까지 죄다 수사해서 기소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런 윤석열 검찰에 대한 자칭 진보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민주당을 그래도 같은 길을 가는 동지라 여겼다면 이상함을 느꼈어야 하지 않았는가.

 

사실 나도 역시 유시민의 영향으로 작년 총선까지 정의당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리지 못한 채였다. 더욱 재작년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정의당이 민주당과 보조를 맞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아직 기대할만한 부분이 남아 있지 않은가 멋대로 착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이 본격적으로 민주당과 청와대를 겨냥하기 시작하자 문재인 정부도 민주당도 끝이라 생각한 것인지 너무 쉽게 일찍 그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당에는 표를 주지 말자.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으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동지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함께 해 온 사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서로 지금 있는 위치는 달라도 결국에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써 때로 표를 나누고 때로 의석도 나누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참여정부를 지나면서 많은 민주개혁진영 인사들은 그런 당연한 인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과연 자칭 진보는 민주개혁진영의 동지였었는가? 아니 과연 동지일 수 있는 것인가? 군사독재의 후신이자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저해하는 한나라당과 손잡고 참여정부를 적대하던 당시 민노당이나 자칭 진보언론들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미련이 자칭 진보를 동지로 여기고 함께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 최선두에 유시민이 있었다. 그리고 확인했다. 저들은 동지가 아닌 적이다.

 

윤석열이 이룬 또 하나 의미있는 업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워낙 윤석열의 의지가 강해 보였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검찰의 위세도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을 총선에서 폭망케 하고 대통령도 탄핵해서 노무현처럼 만들 수 있을 지 모른다. 만일 민주개혁진영의 지지자들이 오랜동안 가져 온 착각처럼 자칭진보 역시 민주당과 민주정부를 동지로 여겼다면 그런 일은 절대 막아야 한다 여겼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가 겪어야 했던 여러 반동들을 떠올려보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그것만은 절대 막아야 한다 여겼어야 하는 것이다. 또다시 이명박근혜 시절을 겪을 수는 없다. 그런데 오히려 이명박이 유죄판결받는 그 날 한겨레는 이명박에 대한 안타까움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조국 전장관 이후 윤석열 검찰이 정부와 여당을 수사할 때마다 박근혜를 소환하며 그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나았다. 한겨레 기자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했던 말이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이 진정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당장 보라.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 정의당은 국민의힘과 협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에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는 타이틀까지 만들어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과는 법안과 관련해서 어떤 협상도 하려 하지 않았었다. 국민의힘은 사소한 양보에도 감격하며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며 민주당은 자기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오만 비난을 쏟아낸다. 누구를 파트너로 여기는가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 자칭 진보지지자들마저 국민의힘을 비판하기보다 민주당에 대한 비난에 더 힘을 쏟는다. 아니 심지어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해 온 탈원전이나 김학의에 대한 출국금지마저 검찰이 수사하니 정권차원의 비리라며 공격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다. 옵티머스와 라임과 관련해서 검찰이나 국민의힘 관련자가 나오면 입다물고 있다가 검찰이 수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와 여당만 공격하고 있을 정도였다. 동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상관없는 제 3자였어도 이렇게까지 편향적일 수 있을까.

 

아마 지금 민주개혁진영 지지자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100이면 100 정의당을 더이상 동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김규항이나 홍세화 같은 진보논객들이 정부를 비판하면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며 받아들였을 테지만 이제는 그냥 코웃음치고 넘어가고 만다. 조갑제가 현정부 비판한다고 굳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동안 그들이, 아니 지난 정부에서도 이명박근혜 정권의 반진보 반개혁 반민주적인 행태에 대해 그만큼 날선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얼마나 보기나 했었는가. 그 명분을 제공한 것이 윤석열이고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것이 윤석열이라는 점에서 공이 작지 않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로 인해 피아가 분명해졌다. 철저히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던 윤석열 검찰을 추종하던 자칭진보는 더이상 동지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저놈들은 적이다. 하긴 선언은 저쪽에서 먼저 했었다. 민주당에 표를 주지 말고 당시 미래통합당에 표를 주어 대통령을 탄핵케 하자는 주장을 먼저 했던 것이 자칭 진보언론이었었고,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낸 것도 자칭 진보정당의 대표였으며, 심지어 자칭 진보정당의 비례대표는 민주화세대와의 단절을 천명하고 있었다. 덕분인지 이후 국민의힘과 조선일보가 정의당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물론 그 보답으로 정의당과 자칭진보 역시 전광훈 무리들을 지지하며 광화문집회를 허락할 것을 적극 요구하고 있었다. 아직도 한겨레는 목수정의 주장을 사실과 상관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놈들이 속내를 끝까지 감추려 했다면 얼마나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헷갈려 했겠는가.

 

윤석열 덕분에 더이상 착각할 일도 오해할 일도 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윤석열의 철저한 정치적 편향성이 적과 아군을 가르는 시금석이 되어 주었다. 윤석열을 철저히 추종하는 저들은 그냥 저쪽에 속한 놈들이다. 검찰이 그동안 저질러 온 범죄도,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행위들도 모두 공범이 되는 것이다. 수구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이명박근혜를 더 그리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동지는 없다. 현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과 총리까지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였지만 그러나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군복부터 벗어야 했었다. 전두환 역시 12.12로 권력을 장악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스스로에게 대장 계급장을 달아주고 바로 전역식을 하는 것이었다. 문민통제와 권력의 분립이 제도화된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군인신분을 유지하며 대통령까지 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요식은 지켜가며 권력을 장악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당시의 정권을 군사독재정권이라 부르는가?

 

군복은 벗었지만 군에 대한 영향력까지 놓아 버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적 인맥을 통해 군에 대한 장악과 통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단지 군인이란 신분만 내려 놓았을 뿐이었다. 군을 사병화하여 그를 수단으로 삼고 단지 법적 신분만 민간인인 채 권력을 장악하고 휘둘렀다. 단지 군복을 벗고 예편하여 법적으로 민간인 신분이 되었으니 군사독재가 아니라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단지 검사라는 신분만 내려 놓았을 뿐 여전히 검찰이란 조직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혹은 그러려고 한다면 그는 단지 그냥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민주화세대와 진보의 동거가 끝났다는 이유인 것이다. 하긴 작년이었던가 정의당이 앞장서서 민주화세대를 부정해야 한다며 외치고 자칭 진보언론들이 바로 받아쓴 바 있었다. 검찰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수장이 남은 검사들에게 안에서 같이 싸워 줄 것을 부탁하며 검찰총장직을 내려놓고 정치를 하겠다 선언한 상황이다. 여전히 검찰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단지 정치를 통해 정치권력도 손에 넣겠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독점한 막강한 권력집단을 여전히 영향력 아래 두고서 무소불위의 대통령이라는 정치권력까지 가지겠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대통령이 검찰까지 손 아래 두고 마음대로 움직인다. 검찰총장이 대통령까지 되어 행정과 군통수권까지 손에 쥐게 된다. 

 

비판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애석해하며 찬양일색이다.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본때를 보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후만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윤석열이 버티지 못하고 검찰총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증오의 감정마저 내비친다.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박정희도 군인신분 그대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어야 했다. 전두환도 여전히 군복을 입은 채로 선출직인 대통령의 위에서 명령과 지시를 내릴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의 쿠데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정의당이나 한겨레는 미얀마 군부의 입장을 실제로는 동정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런 수준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의 정치선언에 대한 자칭 진보의 태도란.

 

과연 그동안 검찰이 정의로운 집단이었는가. 당장 윤석열 검찰만 하더라도 라임과 옵티머스 관련해서 수많은 의혹이 아닌 사실들이 폭로된 바 있었다. 윤석열은 옵티머스의 피해를 막을 기회를 자기가 놓아 버렸고, 측근들은 라임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는 절묘한 계산법으로 빠져나간 바 있었다. 그 가족의 범죄는 어떨까? 그런데도 검찰권력이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는 것은 괜찮다. 오히려 그런 상황을 만든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문제였다. 윤석열이 대통령 되면 어디 두고보자. 기사나 발언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솔직한 속내인 것이다.

 

어이없는 것이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며 쟁취한 민주주의일 것인데. 그런데 문민통제의 원칙도 아랑곳없이 현직 검찰총장이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을 모두 가지겠다고, 아니 사법부까지 이미 장악한 상태에서 정치선언을 하는 와중이다. 사법부를 직접 사찰까지 했음에도 한 마디 비판조차 못하는 것은 사법부가 이미 검찰의 똥개로 전락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기까지 한다. 비판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양승태의 사법농단에도 사법부에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게 지금의 자칭진보다.

 

말한 바 있었다. 원래 여성주의는 친일, 친군부, 친재벌, 친기득권이었다. 여성주의란 원래 남성기득권에 기대어 같은 여성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명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주의가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적대적이면 적대적이었지. 한국 여성주의는 개신교와 연관이 깊다. 그 여성주의가 진보의 주류가 되었다. 박근혜를 지지하고 마지막까지 동정하던 그 여성주의가 진보의 핵심이 되었다. 역사는 다시 돌아간다. 지금 자칭 진보는 여성권력을 위한 둥지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자칭진보가 진보일 것인가?

 

윤석열의 사퇴와 정치선언을 보면서 더욱 확신을 갖는다. 원래 수구란 군사독재마저도 옹호하던 놈들이란 것이다. 군의 쿠데타모의마저 긍정하던 놈들인 것이다. 그러면 진보란 무엇인가? 세대를 거듭하며 진보가 민주화를 가리키던 시절도 어느덧 오래전에 지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검찰민국도 상관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여전히 독점하고 사법부마저 사찰하여 장악한 검찰이 지배하는 대한민국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가짜 진보인 민주정부와 민주당, 그리고 40%의 국민들에게 응징을 가할 수 있을 테니 더 반길 일이다. 자칭 진보의 현주소다. 지지자까지 모두 버러지들인 이유다.

언론이 제 역할만 한다면 얼마든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이 다수 민주개혁진영 지지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누구보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래서 언론사들이 불의한 권력과 맞서거나 할 때마다 발벗고 나서서 돕고는 했었다. 그러면 그런 이들에 대해 그동안 KBS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문빠새끼들 아니었는가.

 

KBS가 그동안 주장해 온 공정과 중립에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현정부와 여당 빼고, 그 지자들을 뺀 나머지 가운데서 공정과 중립을 찾고는 했었다. 일단 현정부와 여당은 틀렸고, 그 지지자들도 틀렸으니 나머지에서 답을 찾겠다. 그러면 과연 언론의 자유에도, 다양성에도 별 관심이 없는 자칭 보수, 자칭 중도, 자칭 진보지지자들은 KBS 수신료에 대해, 아니 언론에 지불하는 비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그래서 수신료인상에 거의 대부분 국민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다. 원래 관심이 없던 이들부터 이제는 적대적인 관계가 된 이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KBS 사장은 나아질 것이라며 낙관하고 있다. KBS가 얼마나 정신나간 집단인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도대체 KBS에 내 피같은 돈을 더 지불해야 할 이유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KBS의 공정과 객관과 중립은 민주정부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배제한 나머지들만의 공정과 객관과 중립이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언론정상화를 외치던 놈들의 머릿속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해야만 파업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들은 KBS를 정상화해야 했다. 그쪽 가서 알아보란 것이다. KBS의 주고객들이니. 주호영의 성추행은 왜 보도하지 않는 것인데?

 

망하라고는 못하겠고 KBS라면 이제 드라마도 보지 않을 생각이다. 수신료 어쩌고 떠드는 소리에 더 기분이 나빠졌다. 요즘 드라마 보는 편수가 줄어든 게 비단 볼 시간이 줄어서만은 아닌 것이다. JTBC도 무조건 드라마든 예능이든 건너뛴다. 수신료? 그 돈 기부하면 차라리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나 든다. 벌레들.

김학의 출국금지 수사는 한국 자칭 진보와 자칭 여성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란 것이다. 그럼 김학의와 같은 범죄자가 그대로 출국해서 수사도 받지 않게 두고 봐야 하느냐는 말은 바로 그들 자칭 진보와 자칭 여성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왔어야 했었다.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차라리 모른 채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아닌 오히려 문제삼으며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누가? 자칭 진보가. 자칭 여성주의가. 한겨레가. 정의당이. 국민의힘이.

 

앞으로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자들 뭐라 떠들면 김학의 출국금지 하나 앞에 들이밀면 되는 것이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정권차원의 범죄라는 늬들이 뭔 진보고 여성주의인가? 물론 이해한다. 진보고 여성주의면 그럴 수 없겠지만 그래서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 아니던가.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썩어있는가. 여성주의 어쩌고 떠들던 기자년놈들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김학의의 피해자는 여성도 아니다. 이전에 인간도 아니다. 그래서 자칭 진보고 자칭 여성주의다. 자칭 정의고 자칭 윤리고 자칭 가치고 자칭 신념이다. 벌레들이다.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었다. 어차피 하는 짓거리는 다른 게 없는데 어째서 한겨레의 젊은 기자들은 늙은 기자들 죽이겠다고 이를 악물고 덤비는 것일까? 하긴 하는 짓거리가 다르지 않으니 늙은 기자것들이 그때마다 물러서곤 했던 것이다. 젊은 기자들 하자는대로 내버려둔다고 크게 달라지거나 하는 것은 없다.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윤석열의 사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불쾌감을 토로했다는 한겨레발 기사였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것도 아니고, 혹은 청와대 관계자나 주위 측근들을 취재한 것도 아니다. 그냥 뇌피셜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기사를 쓴 것이다. 어째서 그런 확신이 가능했을까? 취재도 필요없을 정도로 의심없이 믿고 만 것일까? 윤석열이 검찰총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는 상황에 감정이입을 해 버린 때문이다. 어딜 감히 대통령따위가 검찰총장님을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가. 윤석열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해 버린 나머지 문재인 대통령을 당연하게 악마화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해가 가는가?

 

한겨레 늙다리들은 이념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증오하고 혐오한다. 자기들이 민주진보진영의 주류라 생각하는 늙다리들에게 문재인은 서울출신도 아니고, 서울대는 커녕 하다못해 연고대도 나온 적 없는, 학생운동에도 재야에도 몸담아 본 적 없는 듣보잡 중에 듣보잡인 것이다. 노무현을 치우는데도 그 고생을 했는데 또 문재인인가? 반면 한겨레 젊은 놈들에게는 문재인에 대한 혐오나 증오보다 윤석열, 정확히 검찰이라는 출세한 집단에 대한 동경과 애착이 더 크게 자리한 것이다. 어딜 감히 검찰총장님을. 어딜 감히 판사님을. 어딜 감하 의사님을. 어딜 감히 조중동 기자님을. 자기들도 조중동 가고 싶었는데 실력이 안돼서 한겨레나 다니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저들과 같아지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한겨레에게서 느꼈던 - 정확히 자칭 진보들에게서 느꼈던 어떤 모순된 의식의 정체인지 모르겠다. 한 때 자기들은 민주진보진영의 주류였었다. 좋은 대학 나왔고 서울에서 모두의 우러름을 받으며 정의로운 투쟁에 앞장서 왔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저 주변에서도 한참 주변에 머무는 처지다. 주류가 되고 싶다. 기득권처럼 되고 싶다. 세대간의 갈등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내적인 갈등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자칭 진보에게 국민의힘은 청렴하고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노동존중과 여성존중과 인간존중의 정당이었던 것이었구나.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성추행으로 고발해도 받아주는 이 하나 없는 것은 그만한 신뢰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게 자칭 진보의 현주소였는가.

 

한겨레를 새삼 기사 하나로 비판하기에는 원래 한겨레란 그런 놈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 온 짓거리가 있는데 기사 하나 어찌 쓴다고 새삼스러울 일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쓰레기는 어딘가 쓸모가 있었기에 다 쓰이고서 쓰레기가 되었을 텐데. 쓸모도 없이 스스로 쓰레기가 되는 것은 사람 뿐인 듯하다. 버러지는 버러지다. 겨울이라 다행이다.

윤석열이 대단한 것은 윤석열 개인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검찰이란 조직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행정부에 소속된 외청임에도 행정부와 별개로 여겨진다. 사법부와 경쟁관계에 있음에도 사법부의 윗줄에서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믿어진다. 그런 검찰조직의 수장이기에 윤석열이 대단하게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그 검찰조직을 벗어나면?

 

지금 검찰총장 직을 내려놓으면 이점은 딱 하나다. 그동안 윤석열 자신이 가족과 더불어 피의자로서 수사를 회피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수사권을 가진 검찰조직의 수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이제 7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임기가 끝나고 나면 바로 자신이 그동안 적대해 온 인물이 새로운 수장으로 앉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자신이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윤석열에 대한 수사는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정치탄압으로 비칠 수 있다. 검찰의 수사를 비껴나갈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일 년 뭉개고 나면 더이상 수사할 동력도 떨어지고 말겠지.

 

뭔 말이냐면 검찰총장인데 검찰이란 조직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 생각도 없이 자기 입장만 챙기는 중이란 것이다. 자기 살 길 만 찾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검사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차기 검찰총장은 절대 윤석열이 원하는 사람으로 임명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진중권, 김경율만 신났다. 한겨레, 경향, 정의당도 신났다. 이미 진보의 대권후보다. 보수정당에 입당해도 진보의 영원한 대선후보인 것이다. 검찰의 정의가 곧 진보의 정의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자연스레 정의당도 국민의당과 합당할 명분이 생긴다. 여성존중 노동존중의 국민의힘인데 뭘. 재미있어질 것 같다.

똥파리들도 인정했듯 나는 이낙연에 대한 기대가 그리 없는 편이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이재명이든 이낙연이든 아니면 다른 누구든 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일단 무조건 지지하고 볼 것이다. 다만 이명박근혜의 사면발언 이후 이낙연에 대한 차기 대선후보로서의 신뢰가 바닥을 친 것은 사실이다. 이후 민주당 당대표로서 행보가 마땅치 않은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

 

혹시 묻고 싶다. 내가 지금이라도 주민센터 찾아가서 노점상했었다고 말하면 공무원들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인가? 실제 내가 어디 시장에서 20년 넘게 노점으로 사과장사를 했었다 하더라도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면 노점상이라고 재난지원금을 기꺼이 내주겠다 할 것인가. 그러면 내가 일단 사업자등록을 하고서 장사를 한다면 노점상이라고 내가 세금 안내는 것을 공무원들은 손놓고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구청에 이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는데 내가 소득이 없다고 세금 안내겠다 하면 그러라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국 공무원들을 너무 우습게 본다.

 

관청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이미 그는 노점상이 아닌 것이다. 노점상이라도 공적인 구제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공무원이 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관청에 이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세금을 긁어가려 할 것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 좋은 날 잡아서 그날 매출을 확인하고 그를 다른 날에도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잘못하다 오히려 된통 독박을 쓰는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차라리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 꼬박꼬박 모아서 성실신고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노점상에 재난지원금을 주겠다 했을 때 바로 떠올린 그림이었다. 노점상이 자기가 노점상임을 증명해야 한다. 어떻게? 책임지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공무원의 특성상 문서화된 근거가 있어야 비로소 노점상으로 인정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실적 때문에라도 공무원들은 이미 등록된 노점상을 그냥 내버려 두고만 있지 않는다. 그러니까 뭐다? 다 지원받을만한 사람들이 지원받게 될 것이란 뜻이다.

 

지자체에서 관리하지 않는, 즉 등록되지 않은 노점상에 대해 저소득층에 대한 별개의 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인 것이다. 어차피 일도 없는 무직자나, 일용직이나 전전하는 처지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근거가 없으니 그냥 소득 없는 걸 전제로 복지정책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다? 증오가 눈을 가리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세금내지 않는 노점상이라. 그런 노점상에게 과연 한국 공무원들이 재난지원금을 허락할 것인가.

 

그냥 증오와 혐오란 감정이 눈을 가린 결과인 것이다. 이낙연을 보지 말고 한국 공무원들을 보면 된다. 공무원들이 일하는 방식만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그렇게 기레기라 욕하면서도 기레기에 낚여서 파닥거리는 것을 무어라 말해야 옳은가. 한국 공무원들을 무시하지 말라. 책임지는 건 죽어라 싫어하는 이들이다. 나와 매우 비슷한 인종들이다. 그래서 이해한다. 이낙연이 아닌 공무원과 행정을 믿으면 되는 것이다. 여지가 없다.

20세기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코미디언 김병조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팔짱끼고 지켜보는 사람을 웃기기란 불가능하다. 아예 작심하고 어디 한 번 웃겨보라며 팔짱부터 끼면 어떻게 해도 웃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발적 동의라 한다. 코미디언이 하는 농담이나 액션에 기꺼이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 의도에 맞춰 웃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TV에 나오는 인물들이 배우 신혜선이나 김정현이 아닌 중전이고 철종이라는 가정에 동의할 수 있어야 이후 드라마의 내용에도 공감하며 온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배우 송중기가 아니고 빈센조이며, 배우 전여빈이 아닌 홍차영이다. 그런데 아예 그런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너희는 어차피 배우 송중기고 김태리이며 김태호도 장선장도 아니다. 2090년대에 궤도엘리베이터나 스페이스콜로니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나노머신이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래서 스타워즈도 일단 포스가 말이 안되므로 황당하기만 하다.

 

코미디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타인과 대화할 때 일단 팔짱부터 끼면 더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찌되었거나 상관없으니 한 번 네 생각을 말해봐라. 내가 평가하겠다. 진정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먼저 상대와 자신과의 사이에 중간지대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할 지 대충 알고 있으니 서로 편하게 대화가 통할 중간지점에서 일단 시작해 봅시다. 그런 때 사람들은 대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상체를 바짝 상대에게 붙이거나, 혹은 의자를 상대 쪽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당신의 입장에서 한 번 들어보겠다. 그게 바로 존중이고 소통이란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이야기를 전혀 들을 생각이 없을 때는 가만 먼 극단에서 그냥 듣기만 하게 된다. 아마 언젠가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상대를 아예 부정하고 거부하려 할 때 나타나는 원리와 이상에 근거한 비판이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상대든 자신이든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현실적인 어떤 굴레 안에서 이루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아예 가장 극단의 가장 이상적인 무언가를 전제로 그를 평가하려 한다. 이를테면 가수 오디션을 하는데 프레디 머큐리나 로버트 플랜트 세바스찬 바하만을 기준으로 그를 평가하려 한다. 혹은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 샐린 디옹 등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려 한다. 과연 호평을 들을 수 있는 참가자가 누가 있을까? 그냥 떨구겠다는 소리다. 아인슈타인 정도가 아니면 물리학과는 꿈도 꾸지 마라. 스티븐 호킹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물리학자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대학교수인데 과학자 취급도 못 받는다. 세상에 그렇게 완전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물론 보수정부나 정당에 대해서는 항상 그런 현실적인 교집합은 전제되고 있었을 것이다. 보수 정부에서 이 정도면 적당하다. 보수적인 정당에서 이런 정도면 훌륭하다. 그래서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여성존중의 정권이지 않았는가. 어차피 그런 국민의힘이니까. 국민의힘이 그런 성향이란 것은 자신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반면 민주정부나 민주당은 예외없이 항상 이상적이고 원리적인 기준을 강요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민주정부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고 그러는 자체가 변절이고 후퇴이고 타락이다. 최근 일베와 자칭 진보의 논리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일베가 정의당을 응원한다. 장혜원과 류호정을 지지한다. 그래서 원래 수구가 자칭 진보를 용인하고 오히려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진보의 관점에서 민주당의 정책을 비판한다. 그래서 민주정부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서는 안되었던 것이었다. 근로시간을 줄여서도 안되었던 것이었다. 권력기관을 개혁해도 안되었던 것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기준을 전제로 그들이 얼마나 원리와 이상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그러므로 틀렸다. 그러므로 잘못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원리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이 그 비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 자칭진보이며 그러라는 것이 곧 자칭진보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에서 절대 현실을 이유로 대상을 용인하는 법 없이 타협없이 비판할 수 있는 존재로써 자칭 진보는 수구에 유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4대강에 빗대는 자칭진보나 그를 그대로 받아서 민주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논리로 활용하는 일베의 관계는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김해공항은 이미 포화상태다. 동남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신공항은 필수다. 하지만 그런 현실의 논리를 환경이라는 원리로써 희석하며 훼손시킨다. 그래도 진보정권이라 불리는 민주정부인데 더 진보적인 정의당이 진보의 입장에서 환경을 앞세워 저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4대강과 같다. 그 정도 수준의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잘못된 정책이다. 

 

자신들이 생각한 도덕적 이상에서 벗어나 있기에 민주정부와 민주당은 심지어 이명박근혜만도 못하다. 그래서 자칭 진보들의 이명박의 유죄판결에 애석해하며 박근혜에게 동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못하니 이명박도 박근혜도 그저 억울하기만 할 뿐이다. 완전무결하지 못한 것은 서로 같은데 법적인 처벌까지 받게 되었느이 애처롭고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 과연 자칭 진보가 앞세우는 도덕적 기준이란 사람이 따를 수 있는 기준인가. 자식을 명문고나 명문대학에 입학시켜서도 안되고, 입학시키려 법이 허용한 시도나 노력들을 기울여서도 안된다. 돈을 벌어서도 안되고, 집을 가져서도 안되고, 부나 명예를 추구해서도 안된다. 사돈에 팔촌까지 한 점 부끄럼없이 청정해야만 한다. 그러지 못했으니 민주정부는 이명박근혜와 같다. 그러면 국민의힘은? 이명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수많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인사들은? 어째서 저들과는 기준이 다른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진보가 아닌 자칭 진보라 말하는 것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원리와 이상이란 오로지 수구를 위한 것이다. 수구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럴 수 있고, 민주당과 민주정부의 입장이 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다. 아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주장하는 안철수나 홍준표에게는 관대하고, 오히려 결과적인 약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인 문재인에 대해서는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다. 어째서? 인정과 존중과 공존의 대상과 그렇지 못한 타자와의 차이인 것이다. 혐오이고 증오이며 차별이다. 민주정부와 민주당 인사에게는 인권이란 없다. 개인과 인권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칭 진보가 민주정부와 민주당만 예외로 여긴다. 그렇다면 그들을 과연 진짜 진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수구와는 소통과 인정을, 민주정부와는 혐오와 증오와 차별만을 드러내는 그들일 텐데.

 

자칭 진보 지지자들 보라고 쓰는 글이다. 민주당 지지자 안에서도 혹시라도 정의당에 미련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읽으라 쓰는 글이다. 한 번 곰곰히 돌아보기 바란다. 과연 자칭 진보가 누구를 대할 때 원리와 이상을 앞세우고 있었는지. 원리와 이상만을 앞세우며 비판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현실적인 이유로 타협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는지. 노무현은 죽어 마땅한데 이명박은 잘한 것도 있는데 너무 아쉽다. 한겨레의 논평이었다. 노무현더러 죽으라 등떠민 인간들이 이명박에게는 동정과 연민을 아끼지 않는다. 차라리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김학의를 무고한 시민으로 만드는 이유와 같다. 조국을 대하는 것이 최순실을 대하는 것보다 더 악랄하다.

 

한겨레와 경향은 이미 방향을 정했다. 정의당도 일찌감치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은 국민의힘에 더 가깝다. 조중동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더 옳다.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런 자칭 진보들에게 아직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디 사는 누구인 것인가. 어째서 지난 총선 직전 자칭 진보는 수구의 공격에 다시 태도를 정해야 했을까? 모르면 병신이고 알면 개새끼다. 합치면 개병신새끼다. 자칭 진보에 어울리는 호칭이다.

 

정말 오랜만에 김규항이라는 이름을 듣는 바람에 다시 열받아 버렸다. 저 놈들과는 역시 함께 어울릴 수 없다. 내가 노동자인 동안에는. 내가 무산계급에 속한 동안에는.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진보를 자처하는 수구의 수족만 있을 뿐.

내가 누구의 편에서 뭔 글을 쓰든 항상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나 자신이 노동자다. 고작 25만원짜리 반지하 월세에 사는, 얼마전에 무기계약직 되었다 그저 좋아할 뿐인 이 사회의 바닥을 이루는 수많은 노동자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나 자신의 말과 글은 증명되는 것이다. 더이상 추가적인 증명 따위 필요 없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주장도 하는 것을 나의 신분이 증명해 주는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노동자로서 사회적 약자로서 이런 주장들을 한다. 그래서 그 잘난 자칭 진보들이 나보다 더 나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생각했다. 자칭 진보들은 어째서 저토록 도덕적 결벽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일까. 어째서 단 한 점의 오류도, 의혹도 모두 거부하고 부정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그로써 자기를 증명하려는 강박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이만큼 도덕적으로도 엄격하기에 사회의 정의와 진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상관없는데? 몇 번이나 썼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비루함에 대해서. 힘없는 이들의 비굴함과 비겁함에 대해서도. 얼마나 그들은 쉽게 자신의 양심을 도덕을 윤리를 약간의 이익과 바꾸고 마는 것인가. 약자가 선량하다는 것은 강자가 만든 올가미와 같은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 선량에서 벗어난 순간 약자는 약자로서 자격을 잃게 된다.

 

아마 성소수자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말과 행동에 있어서도 사회적 규범에 충실할 때만 존중과 인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일반적인 상식에서 불쾌하고 혐오스런 행동을 하더라도 성소수자라는 이유 자체로 그들을 거부하거나 배척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항상 올바른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성소수자 역시 온전히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해야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아니라면 마땅히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항상 모든 개인이 보편적으로 제시된 기준을 오로지 충족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그래야지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가.

 

차별의 이유다. 미국의 백인들이 그냥 아무 이유없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백인이라도 이탈리아인이나 아일랜드인을 차별할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 이유란 것들은 엄격한 사회의 도덕률이다. 같은 백인들도, 혹은 잉글랜드계나 독일계의 백인들이라도 흔히 범하는 잘못들인데 오로지 그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그래서 차별이라 부르는 것이다. 차별이란 어쩌면 상대를 부당하게 비하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제시하고 강요하는 것인지 모른다. 여성에게만 혼전순결을 강요하던 전근대사회의 윤리처럼. 여성에게만 이성에 대한 절개를 강요하던 전통사회의 도덕처럼. 오로지 여성에게만 딸로써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자격을 강제한다. 그래서 여성은 차별받아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사회에서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가 강요한 도덕적 기준을 철저히 지켜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자칭 진보의 도덕적 결벽증에 대해 최근 느끼는 지점들이다.

 

자칭 진보가 민주진영과 수구진영을 비판하는 도덕적 기준이 전혀 다른 이유인 것이다. 말 그대로 강박이다. 수구진영에 대해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던 도덕적 잣대가 민주진영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들이밀어진다. 그래야지만 자신이 진보일 수 있다. 진보로서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누구의 기준인가? 누가 그렇게 강제하는가? 정확히 자신이 진보라는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진보적 가치를 주장해도 좋은 것인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사회의 보편적인 믿음과 때로 상반되는 주장을 서슴없이 펼쳐도 좋은 것인가. 그래서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저들이 제시한 기준을 지키려 한다. 결론은 스스로 노동자도 소수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그들의 편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 자칭 진보들과 어울리며 내린 결론이었다. 저 놈들은 자신들을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과 다른 존재로 여기고 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노동자 농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스승이거나 선도자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저들과 자신은 다르다. 정의당 한 번 제대로 털면 재미있을 것이라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원래 노동자도 약자도 소수자도 아니면서 그들의 편에서 사회의 주류와 맞서 주장을 펴야만 한다. 그러니 저들이 인정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을 갖춰야만 한다. 그를 위해서는 마땅히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를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제물은 당연히 진보에서도 주류가 못되는 민주당이다.

 

내가 자유롭게 민주당의 편을 들 수 있는 것과 달리 홍세화나 김규항 등이 민주당에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말을 하는 것을 스스로 꺼리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노동자다. 노동자로서 노동자라는 자신의 계급과 신분을 위해 주장하는데 다른 증명이란 것이 필요하기는 한 것인가. 스스로 주체라 동지라 공동체라 여기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욕하면 욕하는대로 듣는다. 비난하면 비난하는대로 듣는다. 그런 허튼 주장들에 구애되기에는 그 모든 주장들이란 절박한 자신의 사정인 것이다. 대학교수라도, 기업경영자라도, 전업정치인이라도 그런 주장들이 모두 자기의 일인 양 절박한 현실로 여겨지는 것이다.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전혀 아프지 않다. 그래서 우상호가 박원순을 계승하겠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절박한 일들을 실제 행동에 옮기려 한다.

 

타자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억지로 노동자를 위하고, 인위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하려다 보니 그 괴리를 어떻게든 메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자기가 진보적인 주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항상 확인받으려 한다. 정의당 털어보면 진짜 재미있을 거라니까. 녹색당도 내부사정 들여다 보면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저들은 나와 다르다. 내가 잠시 자칭 진보들과 어울리고 내린 결론이다. 차라리 태극기가 나와 계급적으로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적 김규항인지. 발전도 변화도 거의 없다. 자칭 진보의 현실이다.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 등 이른바 자칭 진보언론에서 집요하게 악마화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 보도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보자. 그래도 개인의 존엄을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자칭진보가 예외로 여기며 중대한 침해행위조차 당연하게 여기는 대상인 것이다. 이명박일까? 박근혜일까? 가족이라면 혹은 우병우의 가족이었을까? 김학의는 어떨까?

 

김학의와 윤중천에게 글로 다 쓰지 못할 끔찍한 일들을 당한 피해자들을 위한 분노보다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정권에 대한 분노부터 드러낸다. 최소한 김학의는 출국여부조차 관계공무원들이 살펴봐서는 안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존엄한 인격이었다. 그러면 조국 전장관은 어떨까? 대통령의 일가족은 어떨까? 여당 정치인의 주변은 어떨까? 그러니까 자칭 진보언론이 한 번이라도 과거의 부패한 정권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집요함을 발휘한 적이 있는가.

 

정의당 역시 마찬가지다. 진중권이니 홍세화니 서민이니 하는 자칭 진보지식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정부에만 현미경을 들이대고 더 과격한 비판들을 쏟아낸다. 그것이 마치 자기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칭 진보의 본질은 반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이야 말로 이명박 박근혜보다 더 큰 악이며 이 사회 악의 근원이다.

 

그같은 자칭 진보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직 수사중이던 노무현 전대통령과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이명박에 대한 한겨레의 전혀 상반된 평가였을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더러는 죽으라 했었고 이명박에 대해서는 아쉽다 했었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조국이 최순실보다 더 큰 악이다. 아니 조국도 아닌 그 가족조차도 이명박보다 더한 악인들이다. 물론 나경원이나 장제원, 혹은 동아일보 사장 딸 등은 그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대상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오래전부터 자칭진보라 불러왔던 것이다. 이제는 지지자들도 똑같다 생각한다. 한두번은 어찌되었든 속아넘어갈 수 있어도 그동안 도대체 몇 번이었는가. 라임과 옵티머스에 심지어 실제 검찰과 야당 관련 인사가 연루된 사실을 알면서도 청와대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자칭 진보들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수구의 아류다. 결론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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