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코미디언 김병조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팔짱끼고 지켜보는 사람을 웃기기란 불가능하다. 아예 작심하고 어디 한 번 웃겨보라며 팔짱부터 끼면 어떻게 해도 웃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발적 동의라 한다. 코미디언이 하는 농담이나 액션에 기꺼이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 의도에 맞춰 웃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TV에 나오는 인물들이 배우 신혜선이나 김정현이 아닌 중전이고 철종이라는 가정에 동의할 수 있어야 이후 드라마의 내용에도 공감하며 온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배우 송중기가 아니고 빈센조이며, 배우 전여빈이 아닌 홍차영이다. 그런데 아예 그런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너희는 어차피 배우 송중기고 김태리이며 김태호도 장선장도 아니다. 2090년대에 궤도엘리베이터나 스페이스콜로니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나노머신이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래서 스타워즈도 일단 포스가 말이 안되므로 황당하기만 하다.

 

코미디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타인과 대화할 때 일단 팔짱부터 끼면 더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찌되었거나 상관없으니 한 번 네 생각을 말해봐라. 내가 평가하겠다. 진정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먼저 상대와 자신과의 사이에 중간지대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할 지 대충 알고 있으니 서로 편하게 대화가 통할 중간지점에서 일단 시작해 봅시다. 그런 때 사람들은 대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상체를 바짝 상대에게 붙이거나, 혹은 의자를 상대 쪽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당신의 입장에서 한 번 들어보겠다. 그게 바로 존중이고 소통이란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이야기를 전혀 들을 생각이 없을 때는 가만 먼 극단에서 그냥 듣기만 하게 된다. 아마 언젠가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상대를 아예 부정하고 거부하려 할 때 나타나는 원리와 이상에 근거한 비판이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상대든 자신이든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현실적인 어떤 굴레 안에서 이루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아예 가장 극단의 가장 이상적인 무언가를 전제로 그를 평가하려 한다. 이를테면 가수 오디션을 하는데 프레디 머큐리나 로버트 플랜트 세바스찬 바하만을 기준으로 그를 평가하려 한다. 혹은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 샐린 디옹 등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려 한다. 과연 호평을 들을 수 있는 참가자가 누가 있을까? 그냥 떨구겠다는 소리다. 아인슈타인 정도가 아니면 물리학과는 꿈도 꾸지 마라. 스티븐 호킹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물리학자라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대학교수인데 과학자 취급도 못 받는다. 세상에 그렇게 완전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물론 보수정부나 정당에 대해서는 항상 그런 현실적인 교집합은 전제되고 있었을 것이다. 보수 정부에서 이 정도면 적당하다. 보수적인 정당에서 이런 정도면 훌륭하다. 그래서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여성존중의 정권이지 않았는가. 어차피 그런 국민의힘이니까. 국민의힘이 그런 성향이란 것은 자신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반면 민주정부나 민주당은 예외없이 항상 이상적이고 원리적인 기준을 강요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민주정부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고 그러는 자체가 변절이고 후퇴이고 타락이다. 최근 일베와 자칭 진보의 논리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일베가 정의당을 응원한다. 장혜원과 류호정을 지지한다. 그래서 원래 수구가 자칭 진보를 용인하고 오히려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진보의 관점에서 민주당의 정책을 비판한다. 그래서 민주정부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서는 안되었던 것이었다. 근로시간을 줄여서도 안되었던 것이었다. 권력기관을 개혁해도 안되었던 것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기준을 전제로 그들이 얼마나 원리와 이상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그러므로 틀렸다. 그러므로 잘못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원리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이 그 비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 자칭진보이며 그러라는 것이 곧 자칭진보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에서 절대 현실을 이유로 대상을 용인하는 법 없이 타협없이 비판할 수 있는 존재로써 자칭 진보는 수구에 유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4대강에 빗대는 자칭진보나 그를 그대로 받아서 민주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논리로 활용하는 일베의 관계는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김해공항은 이미 포화상태다. 동남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신공항은 필수다. 하지만 그런 현실의 논리를 환경이라는 원리로써 희석하며 훼손시킨다. 그래도 진보정권이라 불리는 민주정부인데 더 진보적인 정의당이 진보의 입장에서 환경을 앞세워 저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4대강과 같다. 그 정도 수준의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잘못된 정책이다. 

 

자신들이 생각한 도덕적 이상에서 벗어나 있기에 민주정부와 민주당은 심지어 이명박근혜만도 못하다. 그래서 자칭 진보들의 이명박의 유죄판결에 애석해하며 박근혜에게 동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못하니 이명박도 박근혜도 그저 억울하기만 할 뿐이다. 완전무결하지 못한 것은 서로 같은데 법적인 처벌까지 받게 되었느이 애처롭고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 과연 자칭 진보가 앞세우는 도덕적 기준이란 사람이 따를 수 있는 기준인가. 자식을 명문고나 명문대학에 입학시켜서도 안되고, 입학시키려 법이 허용한 시도나 노력들을 기울여서도 안된다. 돈을 벌어서도 안되고, 집을 가져서도 안되고, 부나 명예를 추구해서도 안된다. 사돈에 팔촌까지 한 점 부끄럼없이 청정해야만 한다. 그러지 못했으니 민주정부는 이명박근혜와 같다. 그러면 국민의힘은? 이명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수많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인사들은? 어째서 저들과는 기준이 다른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진보가 아닌 자칭 진보라 말하는 것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원리와 이상이란 오로지 수구를 위한 것이다. 수구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럴 수 있고, 민주당과 민주정부의 입장이 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다. 아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주장하는 안철수나 홍준표에게는 관대하고, 오히려 결과적인 약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인 문재인에 대해서는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다. 어째서? 인정과 존중과 공존의 대상과 그렇지 못한 타자와의 차이인 것이다. 혐오이고 증오이며 차별이다. 민주정부와 민주당 인사에게는 인권이란 없다. 개인과 인권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칭 진보가 민주정부와 민주당만 예외로 여긴다. 그렇다면 그들을 과연 진짜 진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수구와는 소통과 인정을, 민주정부와는 혐오와 증오와 차별만을 드러내는 그들일 텐데.

 

자칭 진보 지지자들 보라고 쓰는 글이다. 민주당 지지자 안에서도 혹시라도 정의당에 미련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읽으라 쓰는 글이다. 한 번 곰곰히 돌아보기 바란다. 과연 자칭 진보가 누구를 대할 때 원리와 이상을 앞세우고 있었는지. 원리와 이상만을 앞세우며 비판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현실적인 이유로 타협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는지. 노무현은 죽어 마땅한데 이명박은 잘한 것도 있는데 너무 아쉽다. 한겨레의 논평이었다. 노무현더러 죽으라 등떠민 인간들이 이명박에게는 동정과 연민을 아끼지 않는다. 차라리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김학의를 무고한 시민으로 만드는 이유와 같다. 조국을 대하는 것이 최순실을 대하는 것보다 더 악랄하다.

 

한겨레와 경향은 이미 방향을 정했다. 정의당도 일찌감치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은 국민의힘에 더 가깝다. 조중동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더 옳다.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런 자칭 진보들에게 아직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디 사는 누구인 것인가. 어째서 지난 총선 직전 자칭 진보는 수구의 공격에 다시 태도를 정해야 했을까? 모르면 병신이고 알면 개새끼다. 합치면 개병신새끼다. 자칭 진보에 어울리는 호칭이다.

 

정말 오랜만에 김규항이라는 이름을 듣는 바람에 다시 열받아 버렸다. 저 놈들과는 역시 함께 어울릴 수 없다. 내가 노동자인 동안에는. 내가 무산계급에 속한 동안에는.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진보를 자처하는 수구의 수족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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