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가까이 된 모양이다. 성매매특별법을 두고 당시 진보주의자들과 꽤 크게 오래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얼마전에 이영훈의 발언이 빌미가 되어 일본군성노예를 두고도 한 번 붙었었기에 서로 감정적인 앙금도 있고 해서 상당히 격한 논쟁이 이어졌었고 그래서 나름 무척 솔직한 이야기가 오기고 있었다. 내가 그놈들을 진보가 아닌 자칭진보라 부르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아무튼 그때 깨달은 사실 하나가 한국 진보는 서울대 출신들이 많다. 여성주의자는 이화여대 출신들이 많다. 더불어 집안들도 다들 꽤나 잘살더라. 자기 어렵게 혼자 자취한다고 하는데 보고 있으면 저 새끼들 지금 나 놀리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 가운데 얼마간은 진짜 나 놀리려 쓴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 가난한 거야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더불어 또 하나 확인한 것이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자 가운데는 개신교 신자가 그리 많더라.
이를테면 유럽의 여성주의자들 가운데는 자기의 자기소유라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원칙 그대로 여성이 자신의 성을 수단으로 삼아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자체에 대해 당연한 개인의 권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이다.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 성노동자라고 하는 개념일 것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성이라고 하는 행위를 하는 주체가 오롯이 자신을 위해 그것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며 따라서 성을 소유한 개인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써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나라들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여 수입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대신 다른 외부의 부당안 위협으로부터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는 정책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성을 수단으로 삼아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개인이 있는 경우 거기까지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여성주의자들은 어떤가?
성노동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은 성이란 것을 인간의 육체에 종속된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여긴다. 인간이 생명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당연하 가지게 되는 본능이자 충동인 것이고 그를 위한 기능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떠한 선악이나 도덕적 판단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가치중립적인 실재하는 사실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손과 발을, 내 머리를, 내 눈이나 내 입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성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긍정될 수 있다. 그것은 유럽의 근대가 발견한 개인에 의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론이며 따라서 근대의 자유주의 이념과도 상당부분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에 여기에 반대하는 또다른 여성주의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성의 성은 매우 특별한 것이며, 따라서 오롯이 순결하게 순수하게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쪽이 더 일반적으로 더 수월하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일 터다. 원래 전통사회에서 한결같이 추구하고 지켜온 가치인 때문이다. 여성의 성은 다른 무엇보다 특별하게 지켜져야 한다.
즉 여성주의라는 게 첫째 반드시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적인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의 이념을 함께 동반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더불어 여성주의가 가리키는 여성이란 따라서 독립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실제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가리키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에 의미가 붙는다. 여성에 가치가 부여된다. 여성이란 원래 이런 존재다. 이런 존재일 것이다. 이런 존재여야 한다. 아마 90년대 내 주위의 젊은 여성주의자들에게 이 말을 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이란 자기의 자기소유이며, 여성으로서 자신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자신이 해야 할 텐데,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정의하려 하는 것부터 부당한 강제이고 개입이며 억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늬들이 뭐라 하기 전에 나는 나로써 나 자신이 사고하고 판단해서 결정한다. 그런데 그것을 여성주의자라 부른다. 그래서 앞서 한국 진보, 한국 여성주의자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많다 말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 개신교는 어디서 들어와서 어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겠는가?
역시나 오래전 채플수업을 강제로 받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 유교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여 일방적으로 사회적인 의미와 책임을 정의하고 강제하려 한다. 여성이란 이런 존재다. 이러한 존재여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모습을 갖춰야 하고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서 보다 고도화된 논리로 마치 여성을 존중하는 듯 높이는 표현을 동원하여 그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모성같은 것이다. 여성이 가치없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동들을 통해 여성은 더 높은 가치를 스스로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그러한 가치를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오래전 여성주의자들이라면 아주 끔찍하게 싫어했던 유럽문화권에서의 레이디 퍼스트다. 주체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종속된 배려와 양보와 존중이 필요한 대상이라 그러한 것이었다. 여기에 기독고 특유의 엄숙하고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가 더해진다.
아마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 한국 교회에서는 순결서약이라는 것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림이 아니다. 개신교회다. 여성의 성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그러니까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자신의 순결과 정조를 지키기 위한 권리라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성의 성적인 정숙함에 실제 가치를 부여하고 그를 소구하는 것은 과연 여성 자신일 것인가? 바로 그 순결에서 출발하면 지금 한국 여성주의가 가지는 끔찍할 정도로 기묘한 모순들이 바로 낱낱이 드러나 보이게 될 것이다. 여성이란 특별한 존재인가? 순결하고 순수하며 따라서 남성의 보호와 배려와 양보와 존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개인에 지나지 않는가? 진정 여성주의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래서 한국 여성주의를 친일과 군사독재의 잔재라 단언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신교쪽 여성주의를 쭈욱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화여대 학장인 김활란이 나온다.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냈던 그 친일파 김활란이다. 김활란에 대해 한 마디 했다고 여성주의자들 난리치는 것을 보라. 김활란 다음에 나오는 이름이 이기붕의 마누라였던 박마리아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치면서 YWCA같은 개신교 쪽 여성단체들이 꽤나 활개치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들로부터 배운 것이 각 여대출신 여성주의자들이고, 그들과 함께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이 지금 여성단체와 여성운동가들이다. 한국 여성주의자들의 보수편향성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정의연의 활동을 가장 싫어하고 그래서 강하게 견제하던 곳이 그래서 한국 여성단체들이었었고, 그래서 정의연 논란 당시 한국 여성주의자들은 그를 공격하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기도 했었다. 어째서 그런가?
한국 여성주의에서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써 전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단지 남성과 대등한 존재로써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배타적 개인으로서 간주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한결같이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90년대까지 주위 누님들 무거운 것 든다고 괜히 먼저 도와주겠다 하면 야단맞았다니까? 어째서 한국 여성주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가? 그 뿌리를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 진보도 다르지 않다. 개신교의 엄숙주의와 원리주의가 진보에서도 자유와 개인을 배제한다. 한국 진보주의자들, 이른바 2찍 진보들이 민주당보다 보수정당을 더 좋아하는 또 하나 이유일 터다.
여성은 단지 존재할 뿐인 인간인가? 자연적으로 실체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뿐인 하나의 객체일 뿐인가? 객체이면서 주체다. 거기에는 어떤 존중도 배려도 양보도 용인도 없다. 그냥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용납하면서 대등하게 공존하면 그 뿐이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어째서?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진짜 개신교 신자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냥 개신교를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걸 개신교의 시각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것을 진보라 여긴다. 학벌들도 좋다. 집안도 잘산다. 전문직이기도 하다. 이른바 끔찍한 혼종들이라는 것이다. 그게 한국 진보고 한국 여성주의다. 경험에 따른 결론이다.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