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침체된 경기를 살리려 할 때 정부의 대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법인에 지원을 하거나, 다른 하나는 대출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기업에 혜택이 주어지면 그만큼 시장에도 돈이 흘러가게 될 것이다. 대출을 쉽게 하면 그만큼 국민들이 쉽게 돈을 구해서 소비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기업은 더이상 돈을 풀지 않고, 가계는 막대한 빚으로 오늘내일하는 상황에 와 있다. 그러면 대책은 무엇인가?


가계소득을 늘려야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후자인 가계부채이기도 하다. 당장 나만 해도 매달 갚아야 할 아파트 대출금은 그대로인데 급여만 10% 오르면 대출에 대한 부담 역시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대선 전부터, 아니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연당대표로 출마하며 소득주도성장을 외칠 때부터 한결같이 주장해 온 바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한다. 화폐가치를 떨어뜨려야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가? 여기서 과거에는 기업에 돈을 풀어 화폐가치를 떨어뜨렸다면 이번에는 국민 개인에게 돈을 풀어 그것을 이루려 한다.


결국은 거의가 세금이다. 최저임금은 올랐는데 오른 만큼 추가로 지급할 여력이 안되는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들에 대해서 막대한 재정 및 정책지원을 준비한다. 지원은 기업에게 가지만 결국 더 많은 개인을 고용하고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가계소득이 늘면 역시 가장 큰 문제인 가계부채는 경감되고 소비의 여력이 늘어난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다. 당장 지원도 늘고 시장의 구매력도 늘어난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바로 그런 개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그냥 개인의 주머니만 채워주려는 정책이 아니다. 지금 한국경제가 그렇게 한가한 상황도 아니다. 언제 어느때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지금 거의 한계에 이른 가계부채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는다면 만에 하나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지나친 가계부채가 가계의 소비까지 위축시키며 시장이 침체되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시장에 먼저 돈이 돌아야 뭐든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토목을 일으켜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은 지난 4대강으로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만 확인한 뒤다. 어떻게든 개인이, 가계가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고작 1년새 최저임금이 7500원이라니.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이어진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을 위한 지원대책이다. 갑작스럽게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한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이미 다양한 정책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원래 이런 것이 정부의 정책이었을 텐데. 결국은 그 지원들도 개인들에게로 돌아간다. 이념에 따라 이해가 다를수는 있지만 원칙에 충실한 정책이다. 지지한다.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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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진들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는다. 오로지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재량으로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을 임명해 쓸 뿐이다. 비서실장은 물론 그 아래 수석비서관들이나, 다시 그 아래 비서관들까지. 하물며 행정관들이야. 비서관조차 아니다.


벌써 몇 주 째 청와대 행정관 탁현민의 거취를 두고 야당이며 언론이며 온통 지랄들이다. 지랄이 맞다. 대통령이 가장 적합하다 여기고 필요하다 여겨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임명해 쓰는 사람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일개 행정관의 거취에 대해서까지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관심이나 가졌었는가. 역대 정권에서 행정관을 거쳤던 이들 가운데 지금 당장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던가. 


아니 백 번 양보해서 청와대 행정관이 그렇게 중요한 자리이고 따라서 여성관도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아예 청와대 행정관들의 여성관을 전수검사라도 하던가. 누구는 책을 썼으니 여성관을 알아서 사퇴해야 하고, 누구는 책을 쓰지 않았으니 여성관을 몰라서 그냥 두어야 하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여성관에 문제가 있으면 청와대 행정관에서 사퇴해야 한다. 그러니까 모든 행정관들에게 여성관에 대해 따져묻고 문제 있으면 모두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행정관이 탁현민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공세를 가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욕을 들어쳐먹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여성주의자들 욕하기 싫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일개 행정관의 여성관, 그나마도 단지 개인의 섹스판타지가 그렇게 문제라면 차라리 청와대 행정관 이상 모두의 여성관을 검증하자 나섰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여성주의적인 관점에 전혀 한 점 다른 의도가 섞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탁현민 개인이 아닌 청와대 전체에 대한 검증과 비판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여성주의는 단지 탁현민을 쫓아내는, 그럼으로써 문재인 정부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만 쓰이고 있었다.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것이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그저 감정적으로 틀렸으니 안된다. 세상에 그런 논리가 어디 있는가.


한경오는 이제 버린다. 신경쓰기도 귀찮다. 단지 주위에서 한경오 보는 사람 있으면 절독을 최대한 권유할 뿐이다. 평가할 가치도 없는 종이낭비에 자연에 대한 큰 죄인 것이다. 보수정당들이야 언제부터 그렇게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았다고.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손을 잡는다. 참 대단한 연대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단순히 문재인 개인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저런 놈들이 진보고 언론이다.


하여튼 웃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나가서 물어보라는 것이다. 아무나 붙잡고 탁현민 말고 청와대 행정관 가운데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기자들 자신에게도 물어보자. 청와대에 행정관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아는가. 어이가 없다. 참 싸구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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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오의 노선은 진보가 아닌 오로지 반노반문이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었다. 오히려 나 자신의 편협함을 비판하며 그나마 인정하는 사람도 기회를 줘야 한다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한경오는 과연 진보언론인가?


차라리 진보언론이라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여길 수 있다. 어차피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니까. 문재인 정부도 진보정부는 아니다. 보다 엄격하고 선명한 진보적 가치에 비추어 미치지 못하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비판의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라는 언론이다. 그 정도도 못하면 뭣한다고 민주주의같은 걸 하겠는가.


하지만 진보적 가치를 전제로 비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기준은 한결같아야 한다.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에서 하는 말도 막말이 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국정에 어깃장을 놓는 것 역시 같은 기준으로 비판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떤가? 하다못해 국민의당의 원내수석부대표가 장관은 남성이 해야 한다 말했을 때 페미니즘을 주장하던 진보언론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급식조리사는 물론 요양사, 간호조무사 등을 비하하는 말을 쏟아냈을 때도 철저히 비판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추미애 대표더러 정치적미숙아라 비난했고, 국민의당은 아예 추미애 대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평의원이라 주장하지 않나 대통령더러는 한심하다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무려 탈원전을 빌미로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대통령의 탄핵소추까지 꺼내들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자르기'라는 비유가 그리 심한 막말이었다면 이들 야당들의 발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 언론은 이들 발언에 대해 한 마디 비판이라도 하고 있었는가. 탈원전은 진보언론이 주장하던 가치이기도 했다.


즉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 모두 진보니 뭐니 이념을 떠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적으로 보고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민주당의 몰락을 위해 지면을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평소 자신들이 주장하던 진보적 이념도 뒤로하고, 어제 했던 말들까지 뒤집어가며, 사실관계마저 무시한 채 오로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불리한 기사를 쓰는데만 골몰하고 있다. 오죽하면 전혀 상관없는 언론인의 해직마저 그 앞에 '문재인 정부'를 붙여 오해하기 쉽도록 제목을 붙이고 있겠는가. 국민의당이 저지른 제보조작인데 굳이 '문준용'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여 논란을 만들려 애쓰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언론이다. 그런데도 진보언론이고 대안언론이니 끝까지 인내하며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인가.


저놈들이 저리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그럼에도 저것들을 찾아읽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저런 것들에 돈을 지불하고 그 독자들을 바라보고 기업의 광고가 붙는다. 이대로 마음대로 지랄을 해도 자기들은 망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주위에 한경오 절독할만한 사람들은 다 절독케 한 뒤라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한경오를 읽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어떻게 하면 저놈들을 망하게 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야 당장 망하게 못해도 한경오라면 조금만 힘쓰면, 더구나 주독자층을 고려할 때 제대로 본때를 보일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적이다. 서로 단지 이념이 다를 뿐인 경쟁관계가 아니다. 서로 이념이 다르고 주장이 다른 다양성의 대상이 아니다. 저들이 먼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죽이려 한다면 당연히 지지자는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경오를 먼저 죽여야 한다. 차라리 박근혜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민주당과 문재인은 안된다는 저들에게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저들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망하고, 결국 안철수나 국민의당, 혹은 바른정당이나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를 바라는가. 한경오는 그러고 있다. 무엇때문에 아직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갈수록 가관이다. 더이상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도 진보언론이니까. 과거 한 때 동지였으니까. 어제는 동지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적이다. 적에게는 적에 어울리는 대우가 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화를 참지 못하겠다. 개똥도 쓸데가 있다. 버러지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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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문제가 뭐였냐면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 스스로를 위치시켜버린 것이었다.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편에 고립되어 버렸다. 야당과 직접 충돌하며 이슈의 중심에 서고 여당은 그것을 중간에서 중재하려 하고 있었다. 참여정부라 하면 말만 많고 시끄럽다는 인상이 박힌 이유가 그것이다. 여당이 나서지 않으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득도 해야 하고 반박도 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논란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까지 모두 대통령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만일 그때 열린우리당이 직접 한나라당과 맞서면서 대통령에게 조율과 중재의 역할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추미애가 직접 나서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해가며 국민의당을 공격했던 것이었다. 다름아닌 대통령 문재인과 그 아들 문준용이 국민의당이 저지른 제보조작의 직접피해자였기 때문이었다. 자칫 제보조작이 국민의당과 청와대 사이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 제보조작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문준용씨에 대한 취업특혜의혹을 특검을 통해 밝혀야 한다며 역공을 펼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청와대가 진정 국민의당 자신들이 도와주기를 바란다면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피해당사자로서 국민의당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더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 청와대가 자신들을 구해주어야 한다. 아니면 더이상 청와대와는 협치가 없다. 괜한 진흙탕 싸움으로 자칫 청와대가 국민의당과의 불편한 구설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직접 나선다.


덕분에 추미애 대표의 발언 이후 제보조작의 이슈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추미애 사이의 문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당사자인 청와대는 간 곳 없이 야당과 언론의 공격 역시 추미애 대표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래서 청와대 역시 피해당사자이면서도 이슈에 휘말리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서 고유한 인사권과 추경을 분리하는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사를 두고 거래한다면 청와대가 그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인사를 제외한다면 국회의 문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원식이 욕먹는 것이다. 청와대가 선을 그었다. 인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추경은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협상을 통해 풀어갈 문제다. 추미애 대표의 발언은 물론 제보조작 이슈 역시 청와대와 무관한 것이다. 그런데 야당이 원하는대로 그 모든 것을 청와대의 문제로 바꿔 버리고 말았다. 거래를 통해 장관지명자를 낙마시키고, 청와대로 하여금 추미애 대표의 발언을 사과한 것처럼 모양새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보조작의 직접피해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당에 유감을 표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주도권을 완전히 야당에 넘겨주는 과거 열린우리당을 떠올리게 만드는 멍청한 짓을 하고 만 것이다.


바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현실인식이 유시민의 그것과 비슷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야당과 대통령이 싸우면 여당이 그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맡는다. 야당과 대통령이 양 극단이 되어 싸우면 여당이 중간자가 되어 둘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대통령과 야당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정해진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기준으로 대통령이 옳다, 틀리다. 혹은 잘한다, 잘못한다. 여당이면서 자신들의 정부, 자신들의 대통령을 위해 악역을 맡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정부와 여당을 수단삼아 자기 좋은 역할만을 맡으려 한다. 그 결과가 바로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열린우리당이었다. 야당과 대통령 사이에서 여당만 좋은 역할을 맡게 되면 그 모든 정치적 부담은 청와대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번 청와대의 조치로 언론이 우원식 원내대표를 추켜올리며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가를 한 번 살펴보라. 언론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가.


오히려 청와대가 여당인 민주당을 수단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여당의 대표마저 수단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더불어민주당보다는 청와대가 협상도 할 만 하다. 꽉막힌 더불어민주당보다는 청와대와 대화하는 쪽이 그나마 자신들을 위해서도 좋다. 그럼으로써 예민한 이슈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청와대가 뒤따라가며 야당과 대화를 통해 협력을 이끌어내고 국정을 주도해간다. 그러자면 여당이 악역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여당이 악역을 맡는 만큼 정부는 안전하게 좋은 모습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라 수 있으며 이는 정권의 성공과 재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지금 야당이 된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여당으로서 어떻게 했었는가 돌아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야당을 위해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닌 정부를 위해 야당을 압박하며 찍어누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론의 비난은 받았지만 그 결과 정부는 문제없이 국정을 주도해갈 수 있었다. 물론 그 결과가 사자방과 국정농단이라는 말하기도 끔찍한 것들이기는 했지만.


추미애가 여당의 대표가 되고 유시민은 일개 야인으로서 평론하는 입장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당의 대표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 모두에게 유리한가. 아마 원내대표인 우원식이 더 강하게 나갔다면 굳이 대표인 추미애까지 직접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자꾸만 우원식이 정부와 야당 사이를 중재하려 애쓰고 있었으니까. 좋은 사람의 포지션에서 정부를 직접 당사자로 만들어 짐을 지우려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여당의 대표로써 자신이 야당과 대결하는 중심에 서겠다. 멍청하게 사람만 좋아서 이리저리 야당 좋을대로 휘둘리고 있을 뿐인 원내대표 우원식과 결정적으로 차별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우원식이 아닌 추미애가 대표인 것이다.


워낙 오래 정치를 하지 않아 감이 떨어진 모양이다. 아니면 참여정부와 자신의 실패가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사고를 위축시키고 있거나. 국회내에서의 문제는 국회의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원내에 있는 여당과 야당이 공식 비공식적인 대화를 통해 합의해서 풀어가면 되는 것이다. 원내에서는 청와대가 아닌 여당이 협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야당과 협치하지만 야당은 여당과 협치해야 한다. 아직까지 국민의당을 자기 계파라 여기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보다 과거 비문이던 시절을 떠올린 탓일까? 우원식도 답이 없다. 현실과 환경이 달라졌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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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과에는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어찌되었어거나 자기가 잘못했으니 상대로부터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떻게든 상대가 아량과 관용을 베풀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잘못했으면 그 앞에 납죽 엎드리는 것이다. 잘못한 것도 잊고 오히려 동정심이 생길 정도로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내던지는 것이다. 사과를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기도 하다.


내가 이만큼 반성하고 있다. 내가 이만큼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반성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아팠다. 나도 힘들었다. 나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잘못했으니 사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인정하고 용서해주어야 한다. 방점은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사과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노력할테니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좋게 말해 구걸이고 나쁘게 말해서 강요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개인의 관계에서 이따위로 사과했다가는 그냥 다시 보지 말자는 뜻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사과하고 누가 그것을 용서하는 것인가?


아마 전에도 쓴 적 있을 것이다. 이 블로그였던가, 아니면 다른 커뮤니티였던가. 안철수는 대등한 인간관계에 대해 극단적으로 경험이 없다.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좌절이라는 것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대등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거의 무지하다시피하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자기에 대한 사소한 공격에 대해서조차 민감하게 반응하며 몇 년이나 지나서까지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대개는 정치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비난에 더 가까운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비난들에 대해 개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런 비난들을 현명하게 감정을 남기지 않으며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도 그 일로 문재인에 대해 개인적인 앙심까지 품고 있는 듯하다.


사과를 하면서 문재인과 문준용이라는 실명이 아닌 '당사자'라는 모호한 말로 뭉뚱그린 이유인 것이다. 차마 사과에서도 그 이름을 직접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한다. 문재인과 그 아들 문준용의 이름을 말하는 것마저 참을 수 없는 수치와 굴욕을 느끼게 만든다. 대상이 없는 사과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몸담은 정당 국민의당이 제보조작으로 가장 일차적으로 피해를 준 대상이 누구였는가. 자기까지 부화뇌동해서 적극적으로 그 사실을 미디어 등을 통해 문재인과 그 아들을 공격하는데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같은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없이 자기와 자기의 정당 국민의당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용서를 구한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반성하고 국민의당이 용서를 구하고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세계는 오로지 안철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분명 최근까지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기도 했었다.


입으로는 사과하면서 정작 국민의당은 검찰수사에 불복하며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돌리는데 급급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조작된 제보를 근거로 -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상관없이 - 정치적 공격에 이용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문준용씨의 이름으로 의혹을 밝히자며 특검까지 주장하며 나서고 있었다. 조작된 제보의 일차 대상이 피해자인 문준용씨였는데 그 책임을 회피해보자고 다시 문준용씨를 희생양삼아 걸고넘어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개인, 혹은 정당의 자세인가. 마치 선언하는 듯하다. 여기까지 왔으니 문재인도, 문준용도, 민주당도, 그리고 국민들도 이쯤에서 용서하고 끝내야 한다.


하긴 언론들부터 그렇게 떠들고 있는 중이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엄정한 사실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보다 강한 메시지였었다. 국민의당이 더이상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이상 경색된 정국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래서는 안된다. 여당인 민주당의 대표가 그런 식으로 국민의당의 상처를 헤집어서는 안된다. 누가 입힌 상처였는가? 도대체 누구로 인해 비롯된 상처인 것인가? 그래서 국민의당이 피해자인가?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돌리고 피해자에게 다시 상처가 될 수 있는 특검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어째서 일방적으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인가? 방송출연 열심히 하더니 진중권도 이제 주위의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청와대가 선언한다. 그런 식으로 부당하게 야당과 타협하느니 그냥 경색된 정국을 안고 추경도 포기하겠다. 추경이 당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야당과의 타협이 정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의 정은 바를 정이다. 먼저 잘잘못을 가리고 분명한 책임을 묻고 난 다음에 용서도 관용도 가능하다.


더 짜증나는 것이다. 분명히 잘못한 놈이 있고, 아직 자기의 잘못에 대해 전혀 인정도 반성도 않고 있는데, 정작 주위에서 용서하고 화해하라며 착한 척 난리를 치고 있다. 어째서 하필 그놈에게만 그리 관대한 것일까? 그리 정부에 날선 비판을 가하던 한겨레와 경향 등 자칭 진보언론들의 민낯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그들의 정의는 오로지 문재인과 민주당에만 적용되는 정의다. 그들의 진보는 문재인과 민주당을 비판할 때만 필요한 진보다. 잘잘못도 안가리고 책임도 묻지 않고 그러나 함께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하니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어쨌거나 이렇게까지 알맹이없는 사과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아무리 막나가는 정치권이라도 이런 식으로 자기변명에 심지어 용서를 강요하는 식의 사과문은, 아 떠올랐다. 지금은 숫자로 불리는 그분이 꼭 이런 식으로 사과를 했었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사과란 개인의 사과와 그 무게가 다른 법이다.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의 위치에서는 이정도 사과로도 정말 그 이상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새삼 깨닫는다. 일단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식인부터 되어야 한다. 세상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식과 정서에 대해 알아야 한다. 토론에서 보여준 모습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위와의 관계를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좋은 집안에 공부도 잘하고 성공의 길만 걸었던 엘리트의 모습이다. 끔찍한 괴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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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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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던 직장이 망해서 백수질 중이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두 달 잡고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중에 있다. 물론 가끔 구인사이트도 뒤져본다. 혹시라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좋은 자리를 놓치면 어쩌나. 그런데 그렇게 구인사이트 뒤지면서도 적대 얼씬도 않는 직종이 하나 있다. 바로 운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운전을 요구하면 바로 패스한다. 나는 도저히 그것만은 못하겠다.


아마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도로로 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무서웠다. 무섭기 이전에 무척 피곤했다. 도로의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아주 작은 변화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어쩌면 더 운전에 익숙해진 뒤라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 인상이 운전이란 감히 내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일하면서 학원에 다닌 터라 하필 야간에 도로주행연습을 했던 것도 한 몫 했다. 비까지 내리는데 차는 몰리고 앞은 잘 보이지 않고 그런데 도로주행연습을 해야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게임도 두 시간 넘게 집중하면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그냥저냥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집중해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여보려 애쓰는 동안 몸도 마음도 지치는 것이 바로 게임으로 나타난다. 그저 단거리를 운전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버스를 몰고 나가면 한 시간 이상, 혹은 그 몇 배의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 한다. 운전석이 편하기라도 한가. 운전을 하지 않는 동안 편히 쉬기라도 하는가.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은 종점에 도착하면 차를 세우고 직접 청소까지 마친 뒤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배차시간에 돌아와 차를 몰고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운전기사들의 손에 수많은 버스 승객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철도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도 했었다. 고작 기차기관사가 무슨 돈을 그리 많이 받는가고. 뭐 1억씩이나 맏는 것도 아니다. 단지 수천만원 정도인데 바로 그 기관사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한순간에 수백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정비사가 고장 하나를 잘못 파악하면 그것 때문에도 수백의 목숨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니까 더 우수한 인력이 기관사가 되고 정비사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에 대해 최대한 만족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무엇보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휴식과 재충전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단지 내 지갑에서 지불하는 운임이 너무 비싼 것만이 불만이다. 더 싸게, 더 적은 사람만을, 더 혹독하게 굴려서 나의 이익을 보장하라.


이번 경부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고속버스 졸음운전사고에 대해 버스운전사들이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차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바로 나온 반박이었다. 그러면 승객이 버스를 더 오래 기다려야만 한다. 어째서 그만큼 더 많은 버스운전사를 고용해서 교대배치하면 된다는 생각은 않는 것일까? 그러면 그 만큼의 인건비가 다시 자신이 지불하는 운임에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 돈과 시간은 아껴야겠고 그러자면 버스운전사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하면서도 더 철두철미하게 조금의 실수도 없이 운전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 전반에 깔린 사고다. 비용은 더 지불하기 싫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력만을 최대한 쥐어짜서 그 만큼을 대신하도록 강요한다. 그로 인해 사고가 일어나도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 책임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같은 조건에서도 사고같은 건 일으키지 않는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게 대단한 것일까, 사고가 일어난 것이 잘못인 것일까.


하루 무려 18시간을 운전했다고 한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나도 하루 12시간 몇 년 동안 일한 것만으로 아직까지도 몸도 마음도 지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다. 다른 일도 아닌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머 몇 시간씩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도로를 운전하며 달려야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하고, 그러고 하루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겪을 비용과 불편이 너무 크니 그냥 이대로 운전사들이 더 잘하도록 관리감독하면 된다. 운전사들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철두철미하게 운전에 임하면 된다. 그래서 그렇게 학교다닐 때부터 혹독하게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어른들이 바라는 완벽한 아이가 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완벽한 구성원이 되지 못할 테니까.


비단 운전사만이 아니다. 최근 학교비정규직노조가 파업중에 있다. 그가운데는 급식을 담당하는 조리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밥하는 아줌마들이라 불린 이들이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허술하게 책임감없이 하는가에 따라 어쩌면 수백에 이르는 아이들의 건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부모들도 혹시라도 급식과정에서 무슨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더이상 마음놓고 자기일에 종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학부모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일을 그만두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급식을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사회적으로 누리는 혜택 만큼 대가를 지불하기는 싫다. 그들에게 지워진 책임의 무게는 큰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지불해야 할 비용과 관련된다. 그냥 지금 이대로 열심히만 하라.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곧 자존이고 존엄이고 책임이고 권리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가가 자신의 가치와 직결되기도 한다. 단순히 그들이 받는 임금만이 아닌 전반적으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더 많은 휴식을 취하면서 최선의 컨디션으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운임은 당장 가계에 부담이 될 테니 결국은 정부차원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운전사를 고용하고, 그로써 운전대를 잡은 그들의 컨디션까지 제도적으로 배려하고 보조한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 대단한 대학을 나와서 거창한 신분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못한다. 나는 그런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것을 잘안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들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마 한참 전부터 주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저비용구조로 계속 가서는 안된다.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아니 이미 전부터 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저 개인의 문제라 치부하며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승객들이 더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더 적은 운임만으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에게는 어떤 책임이 지워져 있는가? 세상에 공짜란 없다. 값싼 것은 값싼 만큼의 가치를 한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지금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운전 아닌가? 못배우고 없는 사람들도 아무렇게나 잡는 것이 운전대 아니던가. 그래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더 엄격하게 자격을 관리한다. 더 나은 대우와 함께 스스로 관리할 책임까지 부여한다. 더 어렵고 힘들 수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승객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내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다.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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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에 격안관화라는 것이 있다. 한 마디로 강건너 불구경이다.


같은 동네고 이웃이면 당연히 불을 끄러 가야 한다. 설사 동네가 달라도 서로 원한이 없다면 인정상 달려가 불끄는 것을 돕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적이다. 경쟁하는 관계이고 호시탐탐 위해를 가할 기회만 노리는 원수이기도 하다. 어차피 불이 크게 나서 가만 있어도 알아서 망해주는 상황인데 굳이 나서서 무언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불끄는 것을 돕겠다고 나서봐야 혼란스런 와중에 빈틈만 노출할 테고, 더구나 급한 불을 끄고 정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적으로서 자신을 노리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불을 더 키우겠다 끼어들면 괜히 그 와중에 자신까지 휩쓸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큰 강까지 사이에 있어 불이 번질 염려가 없다면 적당히 강건너 불구경이나 하면서 맞춰서 추임새만 넣어주면 된다.


"이언주를 공천한 책임을 인정한다. 국민들께 사과한다."


알아서 망해주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괜히 망하는 놈 돕겠다고 같이 욕먹을 일도 없고, 망하는 놈 더 망하라고 덤비다가 모양 구길 일도 없다. 전자는 어차피 똑같아 보이고, 후자는 그래도 너무 인정머리 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건 가만히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망할 놈은 망하고 찌그러질 놈은 찌그러진다. 국민의당이 아무리 발악해도 그 하는 말을 제대로 들어줄 국민은 거의 없다. 언론이 나서도 언론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안되었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다. 조용할 때는 조용해야 한다. 참고 기다릴 때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괜히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빌미만 주고 만다. 괜한 말 한 마디에 꼬투리를 잡아 반전의 기회로 삼는다. 언론은 어차피 민주당의 편이 아니다. 당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아도 당이나 정치인 자신이나 좋은 꼴 보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통제가 안되었다. 하나같이 자기 잘난 맛에 정치하던 인간들이라 중구난방 자기 할 소리 다 하면서 당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 그런데 달라졌다.


일단 추미애 대표가 중심을 확실히 잡고 잘 끌어가고 있다. 그보다 사실상 선거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당원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유례없이 높은 지지율의 대통령으로 인해 당의 지지율도 오르고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와 차기선거에서 당선가능성까지 함께 오르고 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포고 욕망이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몇몇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 개인플레이가 시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민주당의 본성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안다.


여성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민주당내 여성의원들마저 이번 이슈에는 침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괜히 국민의당이 알아서 망하는데 끼어들어 도매급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오로지 국민의당 내부의 문제다. 국민의당 자신의 문제다. 민주당은 오로지 상관없는 타자일 뿐이다.


다 불타버리고 재만 남으면 그때 전리품이나 챙기러 가면 되는 것이다. 무기도 식량도 다 불타버리고 패잔병만 남아 있으면 그저 슬쩍 주워서 오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국민의당에서 주워올 것은 일반 평당원밖에 없다. 폐기물은 쓰레기통에.


잘하고 있다. 나 역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국민의당은 과연 어디까지 추락하게 될 것인가. 추락에는 바닥이 없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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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먼저 물었어야 했다. 국민의당 사무총장 이태규가 검찰로부터 이유미의 단독범행이라는 팁을 받았다 했을 때 기자들이 먼저 따져물었어야 했다. 도대체 언제? 누가? 수사대상이었다. 이번 제보조작사건에 있어 국민의당 관계자 다수가 용의선상에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수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검찰이 완결되지도 않은 수사의 결론까지 은밀히 전달하고 있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언론들이 추미애 대표와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이태규 사무총장의 어조를 그대로 옮겨적는데만 급급하다. 정부여당만 비판할 수 있다면 검찰의 내통도 상관없다.


국민의당이 오히려 궁지에 몰릴수록 더욱 강경한 어조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사태가 이쯤 되면 과거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천막이라도 치고 바짝 엎드려서 죽여달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어찌되었든 사실확인도 하지 않고 선거를 위해 이용했으니 국민의당에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당시 당대표와 선거관계자, 무엇보다 후보인 안철수 자신이 무한한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 아예 먼저 나서서 그렇게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모르긴 몰라도 국민의당에 대한 동정여론도 슬슬 올라오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서 그랬겠는가. 국민의당도 어쩌면 피해자일지 모른다. 그런데 자기들이 알아서 조사하고는 특정 개인의 단독범행이니 자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라며 더 사납게 정부와 여당을 쏘아대고 있다. 왜? 그래야 언론이 자기들에게 더 우호적으로 써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국민의당에 몸담고 있는 과거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 안에서 해오던 짓거리가 바로 그것이었었다. 멀리 참여정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여당이었다. 정부와 함께 국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잘보이자고 여당의 주요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었다. 정작 야당이 아닌 여당이 청와대와 대립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 대통령과 정부를 싫어하는 언론들은 자기들은 더 크게 더 좋게 기사로 써 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식으로 언론의 공격을 받고 여론으로부터 외면받게 되면 여당은 괜찮을까? 결국 그 결과 정권을 내주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뒤로도 민주당에 대해 무언가 부정적인 기사를 쓰고 싶은 언론의 의도를 읽으면 앞다투어 나서서 공격하기 좋게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누가 더 독하고 강하게 민주당을 안에서 비판해야 언론이 더 좋아할지 자기들끼리 경쟁하기도 했었다. 아무리 당시 정부와 여당이 실정을 저지르고 인심을 잃어도 정작 민주당의 인기는 여전히 바닥이었던 이유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니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이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다. 지금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언론의 지원을 받는 것 뿐이다. 언론이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쓰도록 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 어째야겠는가? 당장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마저 국민의당이 정부와 여당을 욕하기 시작하면 국민의당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내용만 충실하게 옮겨적기에 급급하다. 국민의당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고 따라서 어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보다 앞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그 내용만을 더 중요하게 살까지 붙여서 보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의당의 살 길은 정부를 욕하는 것이고 여당을 비난할 소재를 제공하는 것 뿐이다. 어차피 모든 언론이 정부와 여당을 싫어하고 있으므로 자기들이 그렇게만 하면 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실제 그러고 있었다.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당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하자 앞뒤사정은 상관없이 그저 그 말 자체만 트집잡아 여당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기사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언론기사만 보면 이제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게로 넘어간 듯 보였다. 바로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알고 있는 언론의 속성이고 그들이 노린 의도였었다.


그러니 조심성이 없다. 어쩌면 거꾸로 국민의당이 그동안 언론을 길들여 온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이 원하는 기사거리를 내준다. 언론이 바라는 기사거리를 자기들이 제공한다. 그러면 언론은 자기들을 위한 기사를 써준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눈에도 의심이 드는 허술한 녹취록마저 검증할 생각을 안했던 것이었다. 설마 지도부가 나서서 녹취록을 조작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멸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사실일 것이니. 최소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어찌되었든 그래도 언론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검증없이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실제 언론 어디도 녹취록의 내용이 과연 사실인가 직접 취재해서 보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녹취록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실제 파슨스 출신 지인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그에 대해 취재하고 확인하려는 시도조차 거의 없었다. 언론의 현실이 이런데 어차피 여론이 언론의 보도에 따라 움직인다면 국민의당이 괜히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삼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어디에서 무슨 말을 하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도 알아서 언론이 축소하고 은폐해 준다.


당장 일개 청와대 행정관인 탁현민의 여성관을 문제삼으며 청와대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던 진보언론들이 정작 국민의당의, 그것도 원내수석부대표씩이나 되는 국회의원 이언주가 당시 강경화 외교부장관 지명자가 여성인 점을 공격하며 남성이 장관을 해야 한다 말했을 때는 침묵했던 것도 그런 대표적인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추미애 대표가 대선의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제보조작이라는 중대한 범죄와 연루된 국민의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문제삼으면서 같은 국회의원 이언주가 파업중인 노동자를 비하하고 비난한, 더구나 성차별적인 언사까지 쏟아낸 것은 사소한 단신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기준이 다르다. 비판의 기준부터 정부와 여당과 국민의당이 전혀 다른 것이다. 더욱 국민의당 정치인들은 말조심할 필요도 없고 행동을 조심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국민의당의 잘못도 언론을 거치면 민주당의 잘못이 되어 있을 터였다. 검찰이 수사대상인 국민의당과 수사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초유의 상황조차 정부와 여당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에 비하면 언론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국민의당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정확히 국민의당에 얼마나 철저하게 농락당하며 이용당하고 있는가? 뻔히 알면서도 이용당하는 것이니 피해자라 말하기도 뭣하다. 악어와 악어새다. 국민의당이 언론이 원하는 똥을 싸주면, 언론은 그 똥을 받아멱고 독을 뿜어낸다. 독과 똥의 콜라보다.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자유한국당이 상식적인 집단이라 여겨질 정도다. 부패한 언론이 어디까지 정치를 타락케 만들 수 있는가. 이보다 더 강하게 언론의 비호를 받던 정치집단은 역사에 없었다. 심지어 서슬퍼렇던 박정희, 전두환조차 최소한의 감시와 비판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권력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비하면 지금 민주당은 얼마나 조용한가. 모든 언론을 꺼리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오로지 국민만 무서워하며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도 그 안에는 언론에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은 종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최소한 유권자가, 자신들의 목숨줄을 쥔 당원을 무서워 할 줄은 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공당의 사무총장씩이나 되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어차피 언론이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던 것일까? 검찰이 수사정보를 유출했다. 피의자인 국민의당에 수사의 결론까지 미리 통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언론 가운데 누구도 그 점을 비판하고 나선 곳이 없었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더니만 그래서 야당은 그 대상에 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나라의 언론이 어디까지 썩었고 망가져 있는가. 국민의당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정치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참혹할 따름이다. 분노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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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좋다. 원래 기존의 정당과 이념이나 정책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탈당도 할 수 있다. 새로 정당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서로 경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나뉘어 경쟁하다가 다시 하나로 합치려 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쟁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크고작은 피해를 주게 되었다. 정당은 괜찮을지 모른다. 정치인들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당원들까지 아무일없이 그런 것들을 납득할 수 있을까?


지난 총선에서도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민주당과 소속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를 어떻게든 떨어뜨리려 저열한 음해와 비난까지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 충분히 당선가능한 후보였음에도 국민의당의 발목잡기로 아깝게 낙선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낙선한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당의 당선을 위해 표를 주고, 그들을 지지하여 선거운동에도 동참했던 당원과 지지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민주당이 약해진다는 것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바라는 정치가 이루어질 역량과 가능성 역시 줄어든다는 뜻이다.


원래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국민의당으로 넘어가면서 조직까지 함께 가지고 가는 바람에 처음부터 맨땅에서 헤딩해가며 새롭게 조직을 만들어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더 나은 조건을 찾아 국민의당으로 가서 총선에 이어 지난 대선까지 민주당의 승리를 방해하던 그들에 비해 남았던 이들은 더 어려운 여건에서도 당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당을 뛰쳐나가 당에 피해를 끼쳤던 탈당파와 여전히 당에 남아서 당을 위해 헌신한 이들 가운데 누구를 더 우선해야 하겠는가. 만에 하나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합당하게 된다면 그들 남았던 이들은 다시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던 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만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합당인 것일까?


당원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당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에게 더 많은 배려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정략에 의해 합당이 결정되고 그래서 당을 배신하고 뛰쳐나갔던 이들이 돌아와서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앞으로 누가 있어 당을 위해 끝가지 남아 최선을 다하겠는가. 자기들은 공천도 당선도 보장된 위치에 있으니 그런 사람들의 입장까지 헤아릴 필요는 없는지 모른다. 같은 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이 중요하지 원내에도 들어오지 못한 떨거지들은 그냥 자기들 하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민주당 합당파들에 대해 당원과 지지자들의 비난이 폭주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2015년 겨울 그들이 어떤 식으로 당을 흔들고 뛰쳐나갔는지 모두가 보았었다. 당을 뛰쳐나가서 자신들이 몸담았던 정당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에 남아서 최선을 다한 이들도 함껴 눈여겨 봐 왔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의석 몇 개 더 얻겠다고 그런 당원과 지지자의 마음을 한 쪽 구석에 쓰레기처럼 밀어놓으려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통합이고 합당이라는 것일까? 아직도 자기들끼리의 정치공학을 정치라 여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상해임시정부의 요인들이 개인의 자격으로 힘들게 돌아와야 했을 때 조선총독부에 빌붙어 영화를 누리던 친일파들은 다시 미군정 아래에서 요직을 맡아 여전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은 빨갱이가 되고 민족을 팔아먹고 영화를 누리던 이들은 애국지사가 되었다. 당을 배신하면 공신이 되고, 당에 충성하면 쓰레기가 된다. 설마 그것이 민주당의 정의라는 것인가.


아직 멀었다. 국민의당이 그저 민주당내 호남파들만 뛰쳐나가 만든 정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남파들 뿐만 아니라 민평련 역시 비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쳐나가 행동을 같이 하고 있었다. 안철수가 비난한 운동권은 핵심 중의 핵심이었던 민평련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의 동지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서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욕심에 눈이 멀었다. 차라리 잔류한 호남파들은 국민의당 호남파가 원수로 여겨질 수 있다. 하여튼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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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머리자르기 하지 말라고 한 마디 했다고 세상에 못할 소리라도 한 것처럼 언론들마다 난리다. 탁현민이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개인적인 섹스판타지에 대해 적은 것 가지고 성차별 운운하며 다시없는 호로쌍놈을 만들었다. 그래서 기대한다. 그래도 노동자의 편이라 자처하는 진보언론에서 급식조리종사자들을 밥하는 아줌마로,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친 놈이라 발언했는데 그에 대해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까?


하긴 강경화 외무부장관이 아직 내정자이던 시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스스로 성차별에 반대하고 여성주의에 동의한다 자처하던 진보언론 가운데 외무부장관은 남성이 해야 된다 주장하던 이언주의 말을 강도높게 비판한 언론이 몇이나 되던가. 특히 한겨레, 경향, 오마이등은 차라리 강경화를 물어뜯으면 물어뜯었지 이언주의 발언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었다. 아예 민주당에 대해서는 현미경을 가져다 들이대고 있다 보니 국민의당 쪽은 뭔 짓을 하든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래서 한걸레라 부르는 것이다. 괜히 한걸레가 아니다. 최소한 비판을 하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정부나 여당인 민주당을 비판하는 기준 그대로 야당 역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잣대가 다르다. 대선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전에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이 분당될 때 안철수나 탈당파에 대해 문재인과 민주당에 했던 것 만큼 비판했던 언론이 어디 있었는가. 그러니 저놈들이 제보조작을 하고서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오히려 큰소리다.


민주주의의 적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했다. 감히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제보를 조작해서 유권자를 속이고 그들의 선택을 훼방놓으려 했었다. 하지만 눈감는다. 그보다 머리자르기라는 단어 하나가 더 큰 문제다. 노동자에게 미친놈들이라 욕하는 것보다 잘못을 저지른 다른 정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것이 더 죽을 죄다. 차라리 이따위 언론이라면 사라지는 게 모두를 위해 좋지 않을까.


아무튼 기대해 본다. 이번 이언주의 발언을 자칭 진보언론들이 어떻게 보도하는가. 얼마나 강하게 그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가. 너무 답이 뻔한 문제라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다. 다시 한 번 그 비천한 바닥을 보여주게 될 것인가. 저런 것들이 언론이라 불린다는 자체가 괜한 모멸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언주 같은 인간은 민주당을 나가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든 것이 분명해서 다행인 요즘이다. 날이 덥고 습하니 짜증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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