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가까이 된 모양이다. 성매매특별법을 두고 당시 진보주의자들과 꽤 크게 오래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얼마전에 이영훈의 발언이 빌미가 되어 일본군성노예를 두고도 한 번 붙었었기에 서로 감정적인 앙금도 있고 해서 상당히 격한 논쟁이 이어졌었고 그래서 나름 무척 솔직한 이야기가 오기고 있었다. 내가 그놈들을 진보가 아닌 자칭진보라 부르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아무튼 그때 깨달은 사실 하나가 한국 진보는 서울대 출신들이 많다. 여성주의자는 이화여대 출신들이 많다. 더불어 집안들도 다들 꽤나 잘살더라. 자기 어렵게 혼자 자취한다고 하는데 보고 있으면 저 새끼들 지금 나 놀리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 가운데 얼마간은 진짜 나 놀리려 쓴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 가난한 거야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더불어 또 하나 확인한 것이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자 가운데는 개신교 신자가 그리 많더라.

 

이를테면 유럽의 여성주의자들 가운데는 자기의 자기소유라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원칙 그대로 여성이 자신의 성을 수단으로 삼아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자체에 대해 당연한 개인의 권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이다.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 성노동자라고 하는 개념일 것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성이라고 하는 행위를 하는 주체가 오롯이 자신을 위해 그것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며 따라서 성을 소유한 개인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써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나라들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여 수입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대신 다른 외부의 부당안 위협으로부터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는 정책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성을 수단으로 삼아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개인이 있는 경우 거기까지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여성주의자들은 어떤가?

 

성노동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은 성이란 것을 인간의 육체에 종속된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여긴다. 인간이 생명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당연하 가지게 되는 본능이자 충동인 것이고 그를 위한 기능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떠한 선악이나 도덕적 판단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가치중립적인 실재하는 사실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손과 발을, 내 머리를, 내 눈이나 내 입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성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긍정될 수 있다. 그것은 유럽의 근대가 발견한 개인에 의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론이며 따라서 근대의 자유주의 이념과도 상당부분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에 여기에 반대하는 또다른 여성주의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성의 성은 매우 특별한 것이며, 따라서 오롯이 순결하게 순수하게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쪽이 더 일반적으로 더 수월하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일 터다. 원래 전통사회에서 한결같이 추구하고 지켜온 가치인 때문이다. 여성의 성은 다른 무엇보다 특별하게 지켜져야 한다. 

 

즉 여성주의라는 게 첫째 반드시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적인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의 이념을 함께 동반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더불어 여성주의가 가리키는 여성이란 따라서 독립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실제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가리키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에 의미가 붙는다. 여성에 가치가 부여된다. 여성이란 원래 이런 존재다. 이런 존재일 것이다. 이런 존재여야 한다. 아마 90년대 내 주위의 젊은 여성주의자들에게 이 말을 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이란 자기의 자기소유이며, 여성으로서 자신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자신이 해야 할 텐데,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정의하려 하는 것부터 부당한 강제이고 개입이며 억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늬들이 뭐라 하기 전에 나는 나로써 나 자신이 사고하고 판단해서 결정한다. 그런데 그것을 여성주의자라 부른다. 그래서 앞서 한국 진보, 한국 여성주의자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많다 말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 개신교는 어디서 들어와서 어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겠는가?

 

역시나 오래전 채플수업을 강제로 받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 유교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여 일방적으로 사회적인 의미와 책임을 정의하고 강제하려 한다. 여성이란 이런 존재다. 이러한 존재여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모습을 갖춰야 하고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서 보다 고도화된 논리로 마치 여성을 존중하는 듯 높이는 표현을 동원하여 그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모성같은 것이다. 여성이 가치없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동들을 통해 여성은 더 높은 가치를 스스로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그러한 가치를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오래전 여성주의자들이라면 아주 끔찍하게 싫어했던 유럽문화권에서의 레이디 퍼스트다. 주체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종속된 배려와 양보와 존중이 필요한 대상이라 그러한 것이었다. 여기에 기독고 특유의 엄숙하고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가 더해진다.

 

아마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 한국 교회에서는 순결서약이라는 것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림이 아니다. 개신교회다. 여성의 성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그러니까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자신의 순결과 정조를 지키기 위한 권리라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성의 성적인 정숙함에 실제 가치를 부여하고 그를 소구하는 것은 과연 여성 자신일 것인가? 바로 그 순결에서 출발하면 지금 한국 여성주의가 가지는 끔찍할 정도로 기묘한 모순들이 바로 낱낱이 드러나 보이게 될 것이다. 여성이란 특별한 존재인가? 순결하고 순수하며 따라서 남성의 보호와 배려와 양보와 존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개인에 지나지 않는가? 진정 여성주의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래서 한국 여성주의를 친일과 군사독재의 잔재라 단언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신교쪽 여성주의를 쭈욱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화여대 학장인 김활란이 나온다.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냈던 그 친일파 김활란이다. 김활란에 대해 한 마디 했다고 여성주의자들 난리치는 것을 보라. 김활란 다음에 나오는 이름이 이기붕의 마누라였던 박마리아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치면서 YWCA같은 개신교 쪽 여성단체들이 꽤나 활개치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들로부터 배운 것이 각 여대출신 여성주의자들이고, 그들과 함께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이 지금 여성단체와 여성운동가들이다. 한국 여성주의자들의 보수편향성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정의연의 활동을 가장 싫어하고 그래서 강하게 견제하던 곳이 그래서 한국 여성단체들이었었고, 그래서 정의연 논란 당시 한국 여성주의자들은 그를 공격하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기도 했었다. 어째서 그런가?

 

한국 여성주의에서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써 전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단지 남성과 대등한 존재로써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배타적 개인으로서 간주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한결같이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90년대까지 주위 누님들 무거운 것 든다고 괜히 먼저 도와주겠다 하면 야단맞았다니까? 어째서 한국 여성주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가? 그 뿌리를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 진보도 다르지 않다. 개신교의 엄숙주의와 원리주의가 진보에서도 자유와 개인을 배제한다. 한국 진보주의자들, 이른바 2찍 진보들이 민주당보다 보수정당을 더 좋아하는 또 하나 이유일 터다.

 

여성은 단지 존재할 뿐인 인간인가? 자연적으로 실체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뿐인 하나의 객체일 뿐인가? 객체이면서 주체다. 거기에는 어떤 존중도 배려도 양보도 용인도 없다. 그냥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용납하면서 대등하게 공존하면 그 뿐이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어째서?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진짜 개신교 신자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냥 개신교를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걸 개신교의 시각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것을 진보라 여긴다. 학벌들도 좋다. 집안도 잘산다. 전문직이기도 하다. 이른바 끔찍한 혼종들이라는 것이다. 그게 한국 진보고 한국 여성주의다. 경험에 따른 결론이다.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도 몇 번 언급한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어느 진보논객 하나가 그런 하소연을 해 온 적이 있었다. 어째서 보수는 저토록 쉬운데 진보는 이렇게 어렵기만 한가? 보수는 그저 말 몇 마디만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데 진보는 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하다. 원래 그래서 보수고 진보인 때문이다.

 

보수가 보수인 이유는 원래 하던대로 그대로 하자는 것이다. 원래 하던대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원래 타고난대로 대충 적당히 고쳐가며 적응해 살아온 방식을 이야기한다. 자연계에서 인류가 생존해 온 방식의 연장에서 그동안 역사를 통해 구축해 온 그 방식들, 즉 인간의 본능과 충동과 감정에 가장 충실한 방식일 것이다.

 

오래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는 외친 바 있다. 원래 강자는 약자를 짓밟는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고, 강자가 양자를 인탄한다. 이미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고, 강자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약자란 단지 일방적으로 당하는 위치인 것인데 그것을 문제라 잘못이라 말하는 자체가 오만이고 오류라는 것이다. 정확히 모든 포장을 걷어냈을 때 보수가 진정 주장하고 싶은 바일 것이다. 그러므로 약자로써 짓밟히는 것이 문제라면 강자가 되려 해야지 강자가 짓밟는 것을 문제삼아서 되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한 편으로 약자에게 지금 자신이 놓인 비참하고 비루한 현실을 납득할 수 있게 해주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약자인 게 문제지 세상이 잘못된 것은 아닌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침략자인 일본을 욕하기보다 침략을 당한 조선을 욕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찬양하고 일본을 본받기를 바라는 논리도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세상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고, 침략을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관계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강자가 약자를 침략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약자가 되어 침략을 당한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침략당한 약자인 조선을 동정하기보다 침략할 수 있었던 강자인 일본을 찬양하고 본받고 추종하는 것이 따라서 당연히 옳다. 여기까지 왔으면 어째서 2030 남성들 가운데 일빠를 넘어선 일뽕들이 그렇게 많은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곽상도 아들의 50억이나 나경원과 한동훈과 심우정의 자녀와 관련한 의혹들이나 주진우의 병역면제에 대해 어째서 그들이 전혀 어떤 분노도 드러내지 않고 있는가도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어째서 2030 젊은 남성들은 그토록 사법고시 존치에 필사적이었던 것인가? 그들의 논리는 한 가지였다. 사법고시야 말로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다. 아니 기껏해야 판검사되고 변호사 되는 시험인데 어째서 그것이 신분상승으로까지 이야기되어지는 것인가? 바로 드러난 것이다. 검사 출신은 자식이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아도 당연한 것이고, 판검사를 지냈으면 자녀의 진학이나 취업과 관련한 의혹들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주진우는 급성간염으로 면제받았는데도 추미애 아들 휴가에는 발악들을 하던 2030 남성들이 한결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판검사면 그래도 된다. 그러니까 검사 출신인 주진우의 70억 재산이나 성인도 되기 전에 아들의 통장에 있었던 7억에는 조용하면서 김민석이 부모 재산까지 포함해 신고한 2억에만 그리 민감한 반응들을 보인 것이다. 판검사면 좋은 대학 나와서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해서 자격을 증명했으니 그런 정도는 누려도 된다. 얼마나 명쾌한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업 얻었으면 그만한 대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좋은 대학 못 나왔고 좋은 직업 못 가졌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옳다. 차라리 그들의 사고가 과거 6070 노인들과 닮아 있는 것도 그래서인 것이다. 그래서 정작 같은 2030 남성으로 묶여 있음에도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가, 누가 우위에 있고 누가 열위에 있는가, 그러므로 누구에게 더 기득권이 주어지고 누구는 그것을 더 감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강약의 서열화된 사회구조는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더욱 단순화 명료화시킨다. 더 쉽게 자신이 속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그것을 거스르려는 놈들이 있다. 그러니 4050에 대한 증오심까지 폭발하는 것이다. 

 

강자가 강자로써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약자는 약자대로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롭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낭비다. 약자에게 돌아갈 자원을 강자를 위해 더 집중해서 쓸 수 있어야 사회 전체가 성장한다. 누구의 논리였을까? 2030 남성들이 이명박을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더욱 10대까지도 너무나 쉽게 보수의 논리에 설득되고 마는 것이다. 원래 세상은 이런 것이고 당연하게 그 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고 정의로운 것이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어려운 시험 합격해서 검찰총장까지 되었던 윤석열이 검정고시 출신이 대표이고 심지어 페미정당이기도 한 민주당을 모두 죽이겠다고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별 가치없는 몇 명이 죽어나갈 뿐 진짜 가치있는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일단 페미가 아니면 옳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되었는가?

 

그러한 생각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생각들을 가지는 자체가 잘못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최소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그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심지어 진보라, 혹은 리버럴로 분류되는 정치인 가운데도 적지 않은 수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오바마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려고도 설득하려고도 않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윤석열이나 주진우처럼. 다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들이 틀렸다 여기기에 그냥 같이 욕하고 싸우려는 것 뿐이다. 내가 그냥 보고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2030, 특히 20대와 나아가 10대 남성들까지도 보수화되어간다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대부분 게임들이 그렇다. 그들이 즐겨 읽는 웹소설들도 거의 그런 내용들이 강자가 있으면 강자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누가 얼마나 강해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강자가 되고 난 뒤에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에 이르면 더 심하다. 그런데 그 논리는 단순명쾌한데다 자신이 사는 복잡한 세상을 더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기까지 하다. 그런데 굳이 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그래서 과연 그들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오래전 우리 윗세대들도 우리 세대의 정신머리를 고쳐먹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4050들이 과거 6070이 바라던대로 되었는가.

 

저들이 4050을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이유도 어쩌면 너무 단순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4050은 6070에 비해 아직 기득권이라 하기에 부족하다. 여성에 대해서도 여성의 신체적인 열악함을 들추는 컨텐츠들이 여기저기서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장애인을 혐오하고 외국인을 차별하고 소수자를 배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보수인 것이고.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이 합리적인 중도라 생각하겠지만. 그게 문제다. 정작 당사자인 20대 남성들은 자기가 보수라 여기지 않는다. 그게 더 위험하다.

내가 군대 가기 전이니 1990년대 초의 일이다. 선배 하나가 입대 당일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에 철심을 받고 면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인가? 그 뒤로도 세 번인가 더 검사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방위 갔다. 다리 박살나서 철심까지 박았는데 검사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이만하면 방위는 하겠다고 판정이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내 상식에서 너무 중대해서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다리가 부러져도 나중에 치료되는 것 보고 검사 몇 번 더 해서 최종적으로 판단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간염이 만성이라서 아예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아닌 것이면 그 뒤로도 다시 검사해서 면제여부를 다시 판단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그런데 급성간염인데 면제라고? 급성이면 치료되는 것 아닌가?

 

확실히 검사가 좋기는 좋다. 이래서 어려서 부모님들이 그리 공부 열심히해서 판검사되라 말했었던 것인가. 급성간염이면 전날 술을 꽤 쳐마시고 갔다는 것인데... 급성 간염으로 면제되는 줄 알았으면 나도 징병검사 받기 전날 죽어라 소주 퍼먹고 갈 걸 그랬다. 아주 안 낫는 것도 아니고 몇 달 치료하면 완치도 될 텐데 군대에서 26개월 썩는 것보다야 당연히 더 낫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공정과 상식을 사랑한다던 2030 남성들은 또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지. 김민석 자기 재산도 아니고 부모님 재산 포함해서 2억에는 분노하면서 이런 명백한 사안에 대해서는 그저 괜찮다는 태도다. 내가 괜히 그들을 버리고 가야 한다 말하는 게 아니다. 이미 그들의 이념은 확고하게 정해진 상태다.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4찍들과는 말을 섞는 것조차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 새끼들은 오로지 상대방 열받게 하는 한 가지에만 목숨거는 새끼들인 때문이다. 단어 하나도 어떻게 하면 상대가 기분나쁠까 그것만 생각하는 듯 아주 무례하고 경우없고 상식조차 무시한 비하와 열시를 담은 것들로만 골라서 쓴다. 실제 그놈들 하는 말들도 대부분 누군가를 욕하고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게임이 하나 멋진 게 나왔다. 이 게임이 얼마나 잘 만들었고 좋은 게임인가를 이야기하면 되는데 굳이 그것을 PC랑 결부지어서 서구권 게임을 까내리는 용도로 써먹는다. 얼마전에는 몬스터헌터가 그 역할을 맡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대결로 인식하고, 그를 우열관계로 파악하며, 따라서 상대를 멸시하고 비하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하고 싶은 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그놈들이 PC에 발작하면서 뭐든 PC와 연결지어 사고하려는 이유인 것이고, 더불어 트럼프와 이준석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이스라엘을 찬앙햐고 일본을 추종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뭔 말이냐면 한 마디로 그놈들은 다른 누군가가 병신이어야지만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믿는 진짜 병신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병신이니까 나보다 더 못한 버러지들이 필요하기에 당연하게 장애인을 차별해야 하고, 여성을 차별해야 하고, 비정규직을 차별해야 하고, 나이든 여성은 또 거기서 더 차별해야 하고, 흑인과 히스패닉도 차별해야 하고, 성소수자도 차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강자와 약자 가운데 강자의 편에 서야 하며 따라서 약자는 멸시하고 조롱받아 마땅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조차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인식한 결과가 일제의 침략을 긍정하고 조선의 열등한을 비하하는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사고를 렌즈처럼 모아서 사회에 비추는 수단이 바로 이준석인 것이고.

 

괜히 외신들이 이준석을 한국의 트럼프라 부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한국 2030, 특히 20대 남성들은 자국인 한국에 불이익을 가하는데도 트럼프를 앞장서서 추앙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비판받고 있는 많은 정책이나 행위에 대해서도 유독 한국 젊은 남성 가운데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나아가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행동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같은 보수라도 2찍과 4찍이 보이는 결정적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2찍은 트럼프가 한국에 불리한 행동을 하면 분노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4찍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그다지 별 의미가 없는 때문이다. 오로지 강자와 약자 가운데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찍어누르는 것만이 그들의 보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사고가 토론을 하더라도 상대를 최대한 비하하고 멸시하고 조롱하여 열받게 하는 자체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고. 긁혔으니 네가 진 것이다. 네가 나보다 약한 것이다. 나보다 열등한 것이다. 세상을 그런 의미 하나만으로 살아간다.

 

내가 차라리 2찍과는 대화가 통해도 4찍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인 것이고, 나아가 2찍보다도 4찍이 더 위험하다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뭣도 모르는 진짜 중도들이나 혹은 자기가 중도라 착각하는 4찍들 가운데는 자기들이 그래도 2찍보다는 1찍에 가깝지 않은가 여기기도 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준석이 평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그를 지지하는 놈들이란 것이다.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지지해서 투표까지 한 놈들이라는 건데 어떻게 그게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가까울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괜히 이준석이라면 치를 떠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차라리 김문수를 지지한 2찍 41%보다 이준석을 지지한 8%에 혐오와 공포를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놈들은 진짜 위험하다. 그런 놈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대한민국도 지금 미국 꼬라지가 난다.

 

하긴 41% 가운데 전광훈따위에 휘둘리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더 절망적이기도 할 것이다. 전광훈에 휘둘리는 놈들과 이준석을 따라다니는 놈들을 더하면 그 수가 벌써 한국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수가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들이라는 것일 테고. 그래서 대책이 필요하다. 자라나는 10대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교육정책부터 다시 바로세워야 한다. 지금 20대는 괜히 뭐라고 한 마디 해봐야 더 지랄할 놈들이니 그냥 내버려두고 앞으로 자라날 세대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 그게 기성세대의 의무다. 저런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4050은 대한민국사회에 큰 죄인일 것이니. 부모와 선생들이 잘못했으니 저런 괴물들이 나오게 된 것 아닌가.

 

아무튼 하필 게임 좋아하고 장르소설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주 얽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다른 4050들에 비해 이른바 이대남들에 대해 더 구체적인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설득이 안된다. 대화가 안된다. 대화라는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상대들이다. 그냥 체념이다. 굳이 내가 그런 감정적인 소모를 감수해가면서까지 그들과 소통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런데도 그들과 같이해야 하는가. 이대남 좀 신경쓰자는 일부의 주장에 민주당 주지지층 상당수가 회의적인 이유일 것이다. 나만 겪는 것은 아닐 테니. 대구경북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시도가 쓸데없는 이유와 같다. 24%로 대충 비슷하게 나오기도 한다.

내가 진보 앞에 '자칭'을 붙이기 시작한 계기일 것이다. 지금도 꽤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 하나가 인터넷에서 논쟁하던 도중 갑자기 상대의 학력을 걸고 넘어졌었다. 지방 삼류대에 다닌다. 그리고 자기가 서울대 다닌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 논쟁하다 말고 상대방 학력 걸고 넘어지는 게 옳은 것인가.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상대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가를 알아야 그 주장의 수준이나 정합성 역시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에 자기는 그를 위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트에 모여 있던 다수, 역시나 당시부터도 꽤나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자칭 진보논객들은 그 주장에 적극 동의하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거의가 서울대였고, 여성주의자들은 거의가 또 이화여대였더라. 아마 그 무렵 이영훈의 위안부 발언이 문제가 되었을 텐데 그때도 그 서울대 출신 자칭 논객들은 서울대 출신 교수가 틀린 소리 하겠냐는 논지의 주장까지 섞어서 그 발언을 옹호하느라 꽤 싸움이 커지기도 했었다. 그때 깨달았었다. 그 전부터도 느껴왔던 자칭 진보들의 오만과 무례는 특정한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저놈들의 구조적인, 아니 정체성에 더 가까운 것이다. 

 

비유하자면 프랑스대혁명 이전 혁명을 주도한 부르주아 지식인들을 후원하고 보호하던 인사들 가운데는 봉건귀족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혁명 이전에도 귀족출신인데도 공산주의와 특히 아나키즘에 감화되어 제국의 요인들을 암살하고 다녔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이미 자기가 기득권이기에, 타고난 신분도 있고, 가진 재산도 상당하고, 사회적인 지위도 또한 대단하니 그에 걸맞는 무언가를 보이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실제 혁명 이후에도 나름대로 중요한 행보를 보인 이들이 아주 없지 않았지만 대개는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되면 다시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당연하게 더 많았다. 뭔 말이냐면 그래도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서울대까지 들어갔는데 뭐라도 말 한 마디라도 하려면 있어 보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허영심의 발로가 당시의 추세를 쫓아서 진보로 흘러가게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울대 출신 가운데 대선에 가장 가까워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니 윤석열을 가장 존경하는 동문으로 꼽았던 것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내가 서울대니까. 그것을 아예 감추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낸 것이 저때의 일화인 것이다. 그리고 저 일이 있고 난 이후 나는 그쪽 인사들 묻었으면 친민주당 유튜버조차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린다. 누구인가는 아마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꽤나 유명한 인사라. 

 

2찍 진보들이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에도 조용했고, 오히려 이재명의 당선만을 먼저 경계한 이유부터 바로 여기서 답이 나오는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도 역시 2찍 진보들은 서울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 이재명만 집중해서 공격하면서 김건희에 대한 모든 검증시도를 앞장서서 막아내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대충 답이 나올 것이다. 어째서 2찍 진보들이 검찰개혁에 대해 뜨뜻미지근하고 아예 반대하는 놈들까지 적지 않은 것인가. 검찰의 주류가 누구인가. 하긴 그래서 저놈들은 사법부의 개혁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것이다. 같은 서울대니까.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2000년대 초반에도 그런 식으로 당과 이념을 초월해서 서울대 출신들끼리 모여서 뭔가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었다. 유시민이 자기 입으로 서울대 아니라고 하는 이유도 그때 그 부류에 합류하는 것을 스스로 거절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당적만 민주당이고 한나라당이지 서울대 출신들은 자기들끼리 선배니 후배니 형님아우하면서 아주 잘 지냈다. 수박이 어떻게 자라났는가도 역시 대충 답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2찍 진보인 것이다. 그래서 원래부터 자칭 진보였던 것이었고. 어리석은 대중들이나 하는 소리다. 벌써 20세기부터 자칭 진보들과 논쟁하다가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왜 자기랑 논쟁을 하는데 어리석은 대중이나 하는 소리를 가지고 와서 떠드는가 하는 것이었다. 급이 맞지 않는다. 그런데 진보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때와 지금 진보는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내가 진중권이 변절했다는 말에 코웃음부터 치고 마는 이유다. 진보는 이미 예전부터 그래 왔었고 단지 진중권도 이제 조금 더 솔직해진 것 뿐이다.

 

당장 진보를 자처하던 한겨레가 설계수명이 지난 원전을 계속해서 운용 않는다고 문재인 사법처리 해야 한다 떠들던 것을 떠올려 보라. 김학의 재수사하는데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임기만 끝나면 문재인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아예 유튜브 영상까지 하나 따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윤석열 빨아대던 새끼들이 윤석열 끝난 것 같으니까 민주당 유튜브에 나와서 얼굴 들이미는 것 보고 어찌자 역겹던지. 내가 정치유튜브는 아예 근처도 가지 않는 이유다.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 검찰이 김민석 수사 시작하면 김완부터 시작해서 다시 아주 보기 좋은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원래 그런 새끼들이었다. 원래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겠지. 진보를 믿느니 윤석열을 믿는다. 4찍이 2찍보다 위험한 이유와 같다.

어떤 병신들은 말한다. 민주당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못하면 도덕적으로 열등한 국민의힘에 정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도덕적으로 순결하지 못하기에 도덕적으로 그보다 훨씬 못하지만 국민의힘 지지로 돌아설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중도란다. 이해가 되는가? 민주당이 도덕적이지 못해서 그보다 도덕적으로 더 타락한 정당을 지지하려 한다. 내가 76%에 이르는 '일부' 이대남들을 싸잡아 비웃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민주당의 도덕성을 욕하던 놈들이 지지하는 게 고작 국민의힘. 웃기지도 않는다.

 

아무튼 도덕성이라는 것은 원래 주관적인 것이고 따라서 상대평가면 족한 것이다. 누군가 착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착한 기준이 있어 착한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착해 보이니 착하다 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올곧고 바르니 그렇다 말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서 어디 공자님의 환생이거나 부처님의 반토막이거나 예수의 재림 같은 성인들을 두고 착하다 올곧다 바르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 100억 뇌물 받을 때 한 1억 정도 적당히 받고 그마저도 무리한 돈은 사양하는 정도면 충분히 청렴하다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충분히 비교대상이 되는 상대에 대해 우위를 주장할 근거가 된다 할 수 있다.

 

확실히 민주당이 달라졌다 여기는 부분이다. 이전에는 뭐가 그리 주눅이 들어 있었는지 누가 뭐라도 도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 방어하기에 바빴었다. 아니라고 해명하고 그를 위해 수도 없이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다시 아무거라도 의혹이라고 공격하고 나서면 다시 도돌이표였다. 자기들이 얼마나 도덕적인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무결한가를 확인시키려 한 결과 의혹과 검증이라는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민주당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보수정당과 언론들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나섰었다. 민주당 인사가 뭐라고 어떻게 해명하든 받아들이지 않고 반복해서 의혹만 제기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그래서 늬들은 뭐가 더 잘났는데?

 

물론 보도의 양만 놓고 보면 주진우에 대한 의혹제기는 김민석에 대한 그것에 비해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워낙 민주당 국희의원 다수가 반복해서 여러 차례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다 가장 대중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을 집중해서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김민석 재산 2억과 주진우 재산 70억만 나란히 놓고 보면 바로 비교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아들의 재산이 무려 7억이다. 김민석 재산이 진짜 2억이면 나보다도 적은 것인데 주진우 아들은 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로 모이겠는가? 괜히 국민의힘이 당사자인 주진우 뿐만 아니라 다른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그에 대해 방어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김민석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이 오히려 역공을 받으며 당 전체의 이미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력이 약해진다.

 

사실 의혹제기 자체부터 말도 안되는 것이긴 했었다. 국회의원 1년 연봉이 1억 5천 쯤 되는 모양이다. 4년 국회의원 했으면 6억이다. 이것저것 다 뗀다고 해도 빚 5억 갚았다고 의혹이라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자란 놈들은 그런 계산도 되지 않는 모양인지 국회의원 세비 받아서 5억 빚 갚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는데 이건 뭐 그냥 병신 인증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치자금과 관련한 법규정이 아주 개판이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이었었으니 그 시절 정치자금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그냥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통하는 이유는 기자놈들이 그대로 받아써 주니까. 과거 검사시절 하던대로 검찰이 뭐라고 흘리면 그대로 받아쓰던 습관에 더해 스스로도 기득권이라 여기는 놈들이라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으면 김치찌개 얻어먹고 계란말이 얻어먹으며 술자리에서 사진부터 찍는 놈들인 기자들이 하는 말 그대로 반복해서 대신해서 물어주며 기정사실인 양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과거 했던 그대로 또다시 반복해서 그래도 되겠거니. 그런데 안 됐다.

 

일단 민주당의 대응이 좋았고, 무엇보다 대중들도 언론이 지난 정권에서 하던 짓거리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늬들이 뭐라 그러든 김민석이 늬들보다는 낫다. 김민석에게 실제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의혹제기를 하는 늬들보다는 나으니 아가리 닥치라. 기자놈들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취재를 하든 기사를 내든 내라. 그리고 남는 게 연봉 1억 검사출신 주진우의 재산 70억과 아들 예금 7억. 민주당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못해서 국민의힘 지지하겠다는 놈들은 그냥 병신새끼들이라니까. 이를테면 76%의 '일부' 이대남 같은. 진짜 일부겠지? 전체 가운데 76%밖에 되지 않으니?

 

아무튼 그 이대남들만 6070 늙다리들과 손잡고 열심히 파고 있는 모양인데 이미 대세는 넘어갔다 할 수 있다. 2억 가지고 의혹이라고 하는 것부터 김민석이 얼마나 거지인가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김민석이 나보다 나이도 더 많은데 서울대 나오고 미국에서 로스쿨도 나와서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는 인간이 나보다 재산도 적다는 게 참 오히려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르지 않기에 그냥 자업자득이구나 싶기도 한데. 그래도 뭐 나쁘게는 살지 않았구나. 그냥. 하여튼 웃긴다. 그리고 민주당이 달라졌다. 확실하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민주당 정부만 들어서면, 아니 야당일 때조차 민주당에 대해서는 그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지랄하던 놈들이 있다. 바로 공정과 상식을 사랑하고,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단군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들이다. 이대남이라 부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바로 이 이대남들이 정작 윤석열 정부에서 국회의원 입을 막고, 대학생을 들어내고, 만화공모 수상을 취소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말 않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남의 나라인 미국의 일에 대해서는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는 이유로 대학에 보조금을 삭감하고 대학생들의 시위를 금지시키는 행위에 대해 정당하다 옹호하고 있기조차 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저들이 윤석열의 내란시도에 대해 4050세대들이, 그리고 자기들 또래의 여성들이, 혹은 수는 적지만 또래의 남성들이 절박하게 그를 막아서려 노력했고 이제는 처벌하려 애쓰고 있는가에 대해 전혀 어떤 이해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내란이나 내란을 진압하려는 시도나 그냥 똑같은 정치인 것이다. 내란으로 국회의원 잡아 죽이고, 사회저명인사들까지 죄다 잡아 죽여도 자기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지금 트럼프가 하고 있는 그것처럼. 그건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고 그 안에서 사람 좀 죽어나가는 것이야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 그러면 그놈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

 

어린애들 나오는 야동 볼 수 있는 것이다. 미성년자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성적인 묘사 가득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포르노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여성과 장애인과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계엄을 지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실제 알바하러 온 20대 남성 입에서 윤석열이 계엄 한 번 더 했어야 했다는 말까지 직접 들은 바 있었다. 중국과 북한과 페미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계엄이 필요하다. 즉 페미 정치인들을 모조리 영현백에 담아 처분할 수 있으면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게 그놈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란 것이다. 나와 다른 대상에 대한 솔직한 증오와 혐오와 경멸과 차별을 드러낼 수 있고, 그에 대한 실제적인 행동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데 민주당더러 그런 놈들 비위 맞추라는 병신새끼들이 있네?

 

바로 이게 2찍 30%와 4찍 37% 더한 다수 20대 남성들의 여론인 것이다. 다수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76%에 이르는 여론이 소수라면 도대체 뭐가 다수가 되는 것일까? 4050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여론은 소수다. 6070 가운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은 일부다. 뭐 그런? 웃기지도 않지. 물론 4찍 4050이나 여성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게 2찍과 4찍의 차이다. 이놈들이 그래서 더 문제다. 가장 혐오하는 이유다. 이놈들은 진짜 암이다.

언론의 자유는 떠들라는 자유가 아니다. 입으로, 손으로 마음대로 지껄이라는 자유가 아니라 거리낌없이 아무나, 아무곳에나 대해 취재해서 진실을 파헤치라는 자유다. 그런 점에서 그나마 지금 언론 가운데 취재하고 기사쓰는 놈들은 조선일보 정도가 유일하다. 취재한 내용일 이상하게 비틀어서 그렇지 최소한 사람들 찾아서 묻고 자료 뒤져서 찾아내는 성의는 보인다. 그런데 다른 기자놈들은 무언가?

 

김민석 재산이 2억이다? 나도 가진 거 다 털면 그보다는 더 나온다. 추징금 2억을 갚았다? 나도 얼마전 그 비슷한 부채를 다 갚고 지금 홀가분하다. 그래서 내가 김민석보다 얼마나 더 잘살았는가? 결혼 안하고 혼자 사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거 의혹 제기한 주진우는 가족 재산만 70억이란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 예금이 7억이다. 증여세는 다 냈는가 모르겠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취재 없이 의혹이라고 읊으니 따라 읊기 바쁘다. 누가 의혹 제기했으니까 내가 대신 묻는다. 그런 건 굳이 기자 아니라도 아무라도 할 수 있다. 그런 언론이 과연 왜 필요한 것인가.

 

전에도 말한 그대로다. 국민의힘이 70억 가지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아들이 퇴직금 50억 받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민주당 정치인은 2억 가지는 것도 의혹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해명해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자칭 중도라는 놈들도 여기저기 나와 비슷한 소리를 지껄이는 정도다. 나 좆도 가난하다니까? 몸써서 하는 일 해서 먹고 산다. 그런데도 가만히 가진 재산 다 뒤지니까 어떻게 그 정도는 나온다. 70억 있는 놈은 추앙의 대상이 되고 2억 있는 분은 해명을 해야 하고. 그러면 취재를 하던가. 그렇게 의혹이 있어 보이면 기자들이 직접 나서서 사실을 밝혀 보던가. 아예 취재가 불가능한 영역도 아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묻기만 한다는 자체가 당사자 망신주기 말고 무슨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인가.

 

언론의 자유가 필요없다는 또 하나 증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취재는 않고 책임지지 않을 말들만 질문이라는 형태로 쏟아낸다. 기자라는 신분을 무기삼아서 책임질 필요 없는 말들만 거리낌없이 배설해낸다. 그 기자새끼 재산도 한 번 뒤져보면 좋겠다. 앞으로 국회기자실에도 카메라 더 달아서 얼굴을 보게 했으면 좋겠다. 요즘 기자들 집안도 잘 산다더니만. 한겨레가 최저임금 올렸다고 분개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나는 좋은 기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별 재활용도 안되는 폐기물들을 보게 된다. 언론은 딱 윤석열처럼만. 더 잘해줄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들이 특정한 사안들에 대해 판단할 때 그 기준이 무엇인가는 그들의 이념석 성향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사안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들에게는 아직 어떠한 일관된 이념적 토대가 자리잡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그때마다 이런저런 주변의 목소리에 휘둘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에 의해 판단을 내리고 하기에 전혀 일관성따위 없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는 하는 것이다. 이른바 중도층, 무당층이라 불리우는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언론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게 미치고는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일들부터 국제사회의 글로벌한 이슈들까지 하나의 일관된 체계 아래에서 이해하고 판단하고 심지어 행동하고 있기까지 하다. 자기 안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를 관통하는 어떤 이론의 체계를 만든 뒤 그 위에서 모든 사안들을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그게 이념이다. 그래서 '주의'인 것이기도 하다.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는 사고의 체계와 방향, 즉 다른 말로 세계관이다. 자신들은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고, 그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구동하며, 따라서 자신은 어떻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거기까지 가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조차 자기 안의 세계를 근거로 하기에 외부의 영향은 더이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내가 자주 말하는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고 그리고 나중에 이유를 찾는다는게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무어라 말해봐야 그냥 성가신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굳이 20대 남성들을 설득하려 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을 가르치려 해서도 안되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 유인하려 해 봐야 의미가 없다 말하는 이유다. 그동안의 논쟁들을 통해서 이미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저들의 사고는 이미 저들만의 확고한 세계관 위에 만들어진 명징한 이념이자 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고와 판단은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정합성을 가지고, 그것을 스스로 다시 검증해서 판단할 수 있기에 외부에서 무어라 한다고 실제 영향을 미친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인들 아닌가. 이미 어른들인데 누가 가르친다 어쩐다 말하는 자체가 오만이다. 그냥 자본주의자가 공산주의자를 대하듯, 사회주의자가 자유의지주의자를 대하듯 마주 욕하고 비웃고 싸우면 그만인 것이다. 그 이상은 전혀 의미가 없다.흐,

 

사실 그래서 내가 20대 남성, 나아가 지금 한창 자라나고 있는 10대에 이르기까지 우려를 가지는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니다. 분명 그들만의 이념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이념이 아닌 중도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라 여긴다는 것이다. 집단의 의식이 아닌 개별화된 파편의 주장들에 지나지 않는다 말한다. 일베가 일베를 부정하고 펨코가 펨코를 부정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과 동류의 사고들조차 자기와 다른 무엇으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다수의 사고는 더욱 정당성을 가지고 확고한 것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념조차 아니니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와 혐오와 경멸의 근거로써 다시 강하게 작용한다. 이를 누군가는 정의해 주어야 하는데 누구도 않고 있으니 그런 경향만 강해진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떠드는 소리들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미국의 자유의지주의가 결합한 트럼프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괜히 이준석이 한국의 트럼프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일 테고.

 

아무튼 2030 남성들을 위해 뭘 해 주어야 한다, 어떻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노인들을 위해 노령연금 만들고 노인요양보험을 만들었다고 6070들이 유시민에게 고마워하던가? 6070들 지금 그나마 국민연금받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김대중 전대통령이었을 텐데 그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고 있던가? 코로나 때도 대구에 국무총리까지 내려가서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어도 돌아온 것은 빨갱이라 부르며 적대하는 여전한 태도였었다. 그게 이념인 것이다.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에 아무리 퍼 주어야 의미가 없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게 이념이다. 그러면 2030 남성들은 다를 것인가. 그럴 리 없으니 헛수고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비정규직 경비원 일을 하면서도 인국공 당시 무슨 경비를 정규직 시켜주느냐고 욕하던 게 바로 그들이란 것이다. 자기가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면서 최저임금 올렸다고 욕하고, 중소기업 취업해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그딴 것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며 윤석열 빨아주는 게 그들이다. 이념인 때문이다.

 

굳이 2030 남성들 전체를 끌어오고자 무언가를 하려 할 필요 없이 이미 지지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지지하는 이유를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줄 무언가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이미 민주당의 이념과 지향에 동의해서 지지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보상 없이 정반대편에 있는 놈들만 신경써서 무언가를 해 주려 한다면 과거 호남홀대론이 다시 반복되고 말 뿐이다. 동진정책이랍시고 부산경남에 열심히 퍼 준 결과 정작 부산경남의 표는 못 얻고 호남의 표만 잃었던 사례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버리고 가야 하는 대상은 버리고 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치에서 그 대상은 이념적으로 이미 확고한 이들인 것이다. 그저 사안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그런 부동의 여론이 아닌 확고한 이념적 근거에 따란 판단과 결정이다. 그를 어찌 설득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들과 같은 성인들이란 것이다. 더구나 4050이나 그 이전 세대보다도 대학진학률도 높고,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취득도 자유로운 세대들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그리 판단한 것은 그만한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으며 합당한 논리 또한 있다 보는 것이 옳다. 단지 그 기반이 되는 자기만의 세계가 서로 다르기에 서로 납득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서 그들이 틀렸는가? 물론 내가 보기에는 틀렸다. 그래서 욕한다. 그놈들이 나를 욕하는 이유와 같다. 그래서 욕하거나 말거나 그냥 마주 욕하고 만다. 나름의 존중이다. 어차피 저 놈들과 내가 서로 섞이기란 불가능하다. 그냥 그대로 두고 선거라고 하는 제도를 통해 서로가 옳다 여기는 바를 실체적으로 증명하며 겨루는 것이 옳다. 그게 정치다. 민주주의다. 그것이 아마 거의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도.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학교에서 무려 평균점수 99점을 맞은 적이 있었다. 전체 시험문제 가운데 1개만 틀린 것이었다. 그래서 신난다고 집에 가서 자랑했더니 아버지가 야단치시더라. 조금만 더 정신차리고 문제 풀었으면 100점도 맞을 수 있었을 거라고.

 

중학교 때도 첫시험에서 반에서 1등에 전교 4등을 했었는데 역시나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핀잔이나 들어야 했었다. 등수만 높으면 뭐하는가? 점수가 낮은데. 평균점수가 높지 않으니 그냥 공부 못하는 놈들 가운데 등수만 높은 거라고 대놓고 비웃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하긴 그 전 산수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말에 열심히 했다가 반친구들 보는 앞에서 먼지나게 맞았던 기억도 있었다. 반에서 1등하면 뭐하는가? 점수가 낮은데. 그래서 길거리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울며불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용서를 빌어야 했었다. 

 

나중에 부모님이 그러시더라. 왜 그렇게 공부하는 걸 싫어하는가. 하면 잘 할 놈이 어째서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자기들 속을 썩이는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뭐든 다 해 줄 텐데도 아예 않으려 드니 너무 서운하더라. 참고로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해서 심지어 고3때조차 하루 6시간 이상 자면서 시험 때만 당일치기하면서 했어도 어떻게 대학에 가기는 했었다. 공부 안한다고 대학 못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튼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교각살우라는 말이 있다.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소를 죽인다는 말이다. 소가 참 아름답게 잘 생겼는데 뿔만 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고치려 억지로 힘을 주었더니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소가 죽고 말았더라. 지나친 완벽주의가 오히려 그나마의 성과조차 해치고 마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99점 맞았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100점도 맞을 수 있겠지. 그러니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야단부터 친다. 문제 1개 틀렸으니 넌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전체에서 1개만 맞았어도 야단맞는 건 똑같을 것이란 거거든. 야단의 내용이나 정도야 차이가 있겠지만 어린 마음에는 어차피 시험 못봐서 야단맞는 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99개를 그나마 잘했는데 1개 못했다고 아예 죽일 듯 잡아 버리면 어차피 10개 못하나 1개 못하나 차이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열심히 해서 늘 100개를 잘하다가 1개 잘못했더니 아예 죽이려고까지 했으면서 늘 30개, 40 잘못하던 놈들이 10개 잘못했다고 칭찬까지 한다. 내가 잘한 1개보다 저쪽이 잘한 10개가 더 낫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런데도 앞으로도 계속 100을 잘할 동기가 생길 것인가. 무엇보다 그 10을 잘했다고 저 놈이 내 역할과 내 자리까지 대신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한 번 겪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가해진 지나칠 정도로 높은 도덕적 요구가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가를. 아니 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을 그리 비난하더니 그 결과 대신 들어선 이명박 정부에서는 어떠했었는가? 100에 미치지 못한다고 공격해서 그 정부를 무너뜨린 결과가 그보다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었었다. 거기에 가장 앞장섰던 것이 바로 자칭 진보란 것들이었고, 그리고 다시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국민의힘이 말 몇 마디 좋게 해 주면 진정한 노동존중의 정당이 되는데 민주당은 노동자를 위해 조금만 마음에 차지 않아도 반노동정당이 되어 정권퇴진이란 말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간첩몰이당할 때와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퇴진을 외치던 때의 민주노총을 한 번 비교해보라. 그런데도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민주노총은 누구를 더 적대했었는가.

 

기대할 만하니 기대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비판의 정도가 아예 정권을 내줘야 할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예 잡아 죽이겠다. 자기 멋대로 높여 걸었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아예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른 경쟁자에게 내주고야 말겠다. 그래서 민주당 심판하자고 이재명만 물고 늘어졌던 것이 2022년 대선이었었다. 윤석열에 대한 - 아니 오세훈부터 시작해서 자칭 진보들이 앞장서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모든 검증시도를 몸을 던져 막아냈던 것이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이 요구했던 도덕적인 수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에서 더 가깝게 이루어진 것인가.

 

100 가운데 하나라도 더 옳으면 옳은 것이고 그보다 반 개라도 더 좋으면 좋은 것이다. 반대로 100 가운데 반의 반 개, 그 반의 반의 반 개라도 더 나쁘면 나쁜 것이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가. 그래야 더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째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가. 악화는 싸다. 금화인데 금이 적고, 은화인데 은이 적으면 당연히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더 싸게 든다. 더구나 금과 은이 더 많이 들어간 돈을 아예 쓰지 않고 녹여 버리면 더 많은 양의 금화와 은화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두 가지를 같이 놓고 평가하면 결국 비용이 덜 들어가는 쪽이 더 많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도덕성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나마 하나라도 더 도덕적이고자 하는 사람과 그 하나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어차피 다 똑같다고 평가를 포기해 버리면 당연히 후자 쪽에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다가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어차피 기대할 것도 없다며 아예 요구를 안해 버린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가해지던 도덕적 수준에 대한 비판이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원래 그런 놈들이라며 아예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당은 위선적이라 싫다면서 더 나쁜 놈이라고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인간들마저 있는 지경이다. 그래서 그나마 국민의힘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민주당의 현재 도덕성에 대해 절대평가를 통해 낙제점을 주게 되었을 때 더 이익을 보는 놈들은 어느 쪽일 것이고, 그것을 과연 대한민국의 도덕적 수준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갑자기 정권이 바뀌자마자 이재명 정부를 위한다면서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경계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을 공격하던 놈들로 인해 그보다 도덕적으로 더 타락한 놈들이 정권을 잡고 말았다. 위선이 싫다고 위선이 없는 정당을 지지한 결과 위선없는 놈들의 선의와 도덕이 무엇인지 실제 겪어보아야 했었다. 상대적으로 더 우위인데 절대적으로 아니라고 심하게 야단친 결과 그보다 더 못한 놈이 권력을 쥐게 되었으면 그런데도 과연 절대적인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일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자기과시다. 내가 이만큼 도덕적이다. 내가 이만큼 도덕적으로 숭고하고 완결하다. 나는 심지어 이재명 당선을 도왔음에도 그를 비판할 수도 있는 존재다. 무엇을 위해서?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언가? 도덕성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것을 지지한다는 뜻도 당연히 아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만 하나라도 더 도덕적이면 도덕적이다. 전과목 100점이 아니더라도 몇 문제 틀렸어도 1등이면 1등인 것이고 그것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점수가 몇 점이고 그것이 얼마나 낮은 것이든 그럼에도 등수가 전교에서 4등이면 최소한 문제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라 평가해주는 쪽이 이후 더 잘할 동기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 100점 만점이 아니면 그건 그만큼 노력도 집중도 부족했다는 뜻이다. 자기는 좋을 지 몰라도 어차피 야단맞는 게 같다면 그냥 안하고 놀면서 야단맞는 쪽이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인사에 대해 그 도덕성 만큼은 전정부보다 조금 나은 정도면 신경쓰지 않겠다 말하는 이유다. 괜히 쓸데없이 기대만 높였다가 실망했다고 등돌리기 시작하면 다시 그보다 더 못한 놈들로 인해 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그런 뒷일도 생각지 않는 놈들은 그냥 자기 잘난 맛에 살라 그러면 된다. 대신 그놈들이 정의니 도덕이니 진보니 하는 걸 떠드는 꼬라지는 더 이상 봐 줄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이 정의고, 도덕이고, 진보일 것인가. 고민도 없이 맹목만 추구하는 것을 흔히 병신이라 부른다. 병신 똥버러지새끼들이다. 민주당 지지자라는 새끼들도 그런다. 진짜 지지자도 아니겠지만. 웃기는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