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백만 번 쯤 양보해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입법부가 자신의 책임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되는가. 추미애 대표의 발언으로 기분나쁘고 상처입은 것이야 단지 그들 개인의 사정이고, 정당의 사정이다. 그와 별개로 입법부로서 국회의원 개인에게, 그리고 국회 전체에게 지워진 책임과 의무는 공적인 것이다. 그러라고 유권자는 표를 주고 막대한 세금을 국회의원 자신과 보좌관을 위헤 쓰고 있다. 그런데 자기들 기분나쁘다고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간다. 그것이 과연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국회가 국민의당의 사유물인가?


더 어이없는 것은 언론들이다. 특히 한겨레와 경향은 조중동과 더불어 굳이 기사를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언론이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다. 대통령을 뽑는 중요한 선거에서 상대후보의 네거티브를 위해 증거를 조작한 사건이다.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공당에서 공적인 성명까지 수도 없이 내놓았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받은 유권자가 있다면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을 공당의 위계에 의해 중대하게 침해당한 사건인 것이다. 그에 대해 엄정하고 강경한 태도를 공당의 대표가 취했다고 과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오로지 문제가 된다면 그 대상이 된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의 기분이 나빠졌다는 정도일 것이다. 언제부터 언론이 야당 정치인들의 기분까지 그리 챙겨주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새 잠잠해지고 있었다. 국민의당 스스로 내놓은 아무도 믿지 않는 자체조사 이후 없었던 일처럼 언론까지 침묵하며 잊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레기라 불리는 것이다. 한걸레라 불리고 경향일보라 불려도 전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은근슬쩍 소리소문없이 책임지지 않고 넘어가려던 국민의당 원로를, 그것도 법사위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표현이 지나친 점은 있을지 몰라도 과연 법과 정의라는 당위에 비추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만한 사안인가. 판단할 머리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민주당과 정부만 아니면 된다는 것일까.


뉴스룸이든 뭐든 언론이 조금만 더, 그러니까 양정철 전 비서관이 귀국한 사실마저 집요하게 추적해 보도할 정도의 성의를 절반만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돌렸어도 이런 참담한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다. 언론이 조금만 더 엄격하고 냉정하게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바르게 이끌려 노력했다면 - 그런 주제들이 되었다면 처음부터 국민의당을 위한 받아쓰기 보도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국민의당이 위기에 몰리니 반사적으로 구원에 나선다. 추미애의 발언은 녹취록조작보다 더 나쁘다. 녹취록조작도 문준용씨 취업특혜가 사실이면 큰 잘못이 아니다. 그놈들의 도덕수준이다. 대가리 수준이다. 이런 놈들이 이 나라의 언론이고 국회의원들이다.


다행히 민주당 내부는 이전과 달리, 물론 그 구체적인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잠잠한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당에서 당권을 쥐고 있는 것은 대표 추미애가 아니다. 청와대에는 문재인이 있고, 당장 선거가 시작되면 경선에 참여하게 될 당원들이 신경질적일 정도로 엄격하게 당과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있다. 조금의 이탈도 허락하지 않는다. 괜히 틈을 노려 국민의당과의 합당을 이야기했던 우상호 전원내대표가 아주 대단히 혼쭐이 나고 있었다. 어차피 언론은 믿을 것이 못된다. 아직도 한겨레와 경향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면. 국민이 주인이다. 당원이 주인이다. 잊지 않는다면.

신고

아주 오래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보수는 구호도 정책도 모두 단순명확하고 누구나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반면 진보는 그것이 어렵다. 도대체 왜일까? 탈원전과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새삼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차이다.


원래 이웃마을과 왕래하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어디는 벼랑이라 위험하다. 조심하면 된다. 길이 구불구불해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일찍 출발해서 걸음을 재촉하면 된다. 호랑이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몰려다니면 호랑이도 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말한다. 차라리 보다 안전하고 빠른 새로운 길을 찾으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어디의 어떤 길을 찾으려는 것인가?


같은 것이다. 지금껏 해 온 일들이 있다. 여러 문제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더 낫게 만들면 된다. 그것이 보수다. 반대로 진보는 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직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모두가 일단 공유하고 있는 경함과 지식 안에서 끄집어내는 이야기와 전혀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그 난이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나마 찾는 대안이 이미 성공한 다른 나라의 사례들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 우리 자신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보수의 반론인 것이고.


원자력발전은 위험하다. 아주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 현실이 될 경우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쉽다. 당장 몇 년 전 기준에 미달되는 부품을 사람들 사이의 문제로 사용하다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부정이나 비리가 아주 없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실수도 하고 어디선가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여기서 원전에 찬성하는 이들은 원천차단을 시도한다. 원전은 그동안의 경험도 있고 실적도 있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기대와 증거도 있다. 그에 비해 원전에 반대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아직 원전에 비해 검증이 충분치 못한 것들이다. 기왕에 가 본 길이 있는데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탈원전 논쟁의 어려움이다. 그걸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분량으로 설명해야, 아니 그 전에 먼저 대중은 지치고 만다.


'썰전'을 보면서 유시민이 그렇게 몰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처음부터 불리한 주제였다. 원자력발전이라는 그동안 검증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박형준에 비해 유시민은 대체에너지라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을 뿐인 대안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해야마나 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원래 '썰전'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당장 원전을 바로 아예 폐지하자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만으로도 유시민의 논리는 막힐 수밖에 없다. 상당히 비열한 방식의 토론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전략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차근히 논의해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어떤 대안이 있고, 그 대안들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것을 결국 어떻게 개선해나가면 좋은가. 원자력발전을 계속 유지하려면 또 우리 사회는 무엇을 각오하고 감수해야만 하는 것인가. 합의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사회는 원자력 발전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겠다. 아니면 더 많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더 안전한 다른 에너지를 찾겠다. 


혀가 매끄러운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들의 주장에는 분노가 없다. 분노가 없다는 것은 슬픔도 없다는 뜻이다. 기계적으로 단지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도구로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차라리 전원책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 '썰전'에 대한 인상이다. 인간적으로 그다지였다. 

신고

다른 것도 아니다. 무려 대선의 결과를 바꿔보겠다고 녹취록을 조작해서 공당이 정식으로 브리핑을 하고 논평까지 쏟아냈다. 무엇보다 대선이었고 더구나 공당이 정식으로 제기한 문제이기에 그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자신의 선택을 바꾼 사람이 적지 않을 터였다. 노회찬 의원의 비유처럼 설사 녹취록 조작이 이유미 개인의 판단에 의한 단독범행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실확인조차 없이 대선에 이용한 것은 국민의당 자신인 것이다. 그에 반해 어쩌면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박지원 의원이 법사위에 있으면서 검찰을 압박하려는 것을 경고한 추미애의 발언이 가지는 엄중함이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한 쪽은 사실상 대선조작이었고 다른 한 쪽은 그 당사자에 대한 공당의 대표로서의 비판이었다. 수위가 센 감은 없지 않지만 그만큼 중대한 범죄이기에 더 엄격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대선조작은 어디로 치워버렸는지 추미애 대표의 발언만을 문제삼는 언론들이 넘쳐나고 있다. 공당이 저지른 대선조작은 눈감은 채 그 정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추미애 대표의 발언에만 책임을 묻고 있다. 언론이 국민의당의 버릇을 잘못 들였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저러니 그런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묻고 있지.


도대체 대선조작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얼마나 큰 잘못인가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가조작을 솜방망이처벌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무려 자본의 신용을 교란한 것에 전혀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언론도 정치인도 그에 대해 강하게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게 바로 국기문란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책임을 저버리고, 행정부도 행정부의 책임을 외면하고, 언론도, 정치권도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와 책임을 돌아보지 않는다. 참 나라가 이 꼬라지로 유지되기라도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추미애 대표의 발언과 국민의당의 대선조작 가운데 무엇이 더 큰 잘못이고 누가 더 큰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


잘못이라는 자각조차 없는 모양이다. 그것이 너무나 큰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모양이다. 저런 놈들이 그동안 민주당에서 중진이랍시고 어깨에 힘주고 다녔었다. 다시 한 번 차라리 앞으로 3년동안 식물국회로 있더라도 국민의당의 폐기물들을 다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이유다. 국민의당과의 재합당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런 재활용도 불가능한 폐기물들이 여당으로 들어와서 여당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다시 같은 짓들을 반복한다. 추미애 이후가 그래서 걱정이기는 하다. 아직 저들과 줄이 닿은 민주당내 인사들이 적지 않을 테니. 새삼 확인하는 바다. 저것들은 안된다. 악취가 여기까지 진동한다.

신고

단어 하나가 빠졌다.


'그나마'


그러니까 그나마 합리적인 보수라는 것이다, 바른정당이.


바른정당 정도가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국의 보수는 합리와 거리가 멀다. 워낙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 보니 조금만 합리적으로 보여도 합리적 보수가 될 수 있다. 똥에도 설사가 있고 된똥이 있는 것처럼.


똥도 어지간해야 거름이 되는 것이지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땅을 썩게 만드는 폐기물이 되고 만다. 아니 이미 똥은 중요한 폐기물로 간주되고 있다. 더 좋은 똥 나쁜 똥 가릴 이유가 없다는 이유다. 그나마 합리적이고 그보다 덜 합리적인 차이를 일부러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도대체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 어떤 노선과 행동의 차이가 있는가 모르겠다. 논평을 내는 것도 크게 차이 없고, 정치적 행보 역시 거기서 거기다. 그냥 당만 다르다. 지금 국민의당까지 합해서 세 당이 찰싹 붙어다니고 있다. 합당이야 어차피 시간문제이기는 했었다.


언론이 만들어낸 레토릭이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말미암아 보수가 지리멸렬하니 바른정당에 합리적 보수라는 타이틀을 붙여 만일을 대비하려 한다. 어차피 불과 얼마전까지도 새누리당에서 같은 짓거리 하던 인간들을.


원래 그런 놈들이야 생각하니 별다른 감흥도 없다. 멋대로 해보시라. 오래는 못갈 터다.


신고

술자리에서 어쩌다 어깨 둘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만 탕수육을 안주로 시키고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한 사람은 부어먹자고 하고 한 사람은 찍어먹자고 한다. 그러면서 사이에 낀 자신에게 어떻게 먹을 것인가 선택하라 강요한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중간자의 딜레마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양쪽 모두로부터 불신만 살 수 있다. 어느 한쪽도 100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부족한 만큼 원망을 듣게 된다. 원망으로만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양쪽 모두를 누구로부터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만족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당장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간단한다. 누가 더 센가를 확인한다. 그리고 누가 더 자기에게 우호적이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상대인가를 살핀다. 그리고 선택한 한 쪽과 손잡고 다른 한 쪽을 힘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센 상대와 함께 아예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버렸는데 이제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마침 오바마 정부부터 미국은 나날이 성장해가는 중국을 압박하는 정책을 취해오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트럼프정부는 경제적으로 더 강력한 중국에 대한 압박을 천명한 상태다. 사드는 바로 그런 일환이었다.


중국이 적당히만 했어도 한국정부 역시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적당히 양쪽의 눈치를 보며 줄타기하는 묘기도 제법 선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을 달래는 한 편 중국이 양보한 만큼 그것을 협상카드로 삼아 미국을 달랜다. 하지만 중국이 강경일변도로 일방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하자 선택은 좁아지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의 협박에 굴복해서 이전 정부에서 미국과 약속한 사드배치를 철회한다면 미국의 불신을 살 수밖에 없다. 중국이 압박하면 한국정부는 굴복할 것이다. 중국이 실력행사에 나서면 자신들과의 신뢰를 배반하고 그들의 요구대로 따르고 말 것이다. 세상에 그런 동맹은 없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중국인가? 아니면 미국인가? 중간은 없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 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나마 한국정부가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던 입장에서 아예 미국에게로 돌아서 버리면 곤란한 것은 바로 중국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대만이 중국의 대양진출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마저 완전히 미국에게로 돌아서서 대중국압박에 동참하게 되면 중국은 태평양은 커녕 황해에 갇히는 곤란한 처지가 되고 만다. 그동안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유효한 수단이었던 경제마저 미국이 정면으로 중국경제를 겨냥하게 된다면 도리어 중국을 노리는 비수가 되어 돌아올 판이다. 한국 혼자라면 경제적으로 중국에 물려 있는 만큼 중국정부의 의도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지만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다면 도리어 그로 인해 중국이 더 곤란해질 수도 있다. 중국경제라고 지금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국내정치상황이 마냥 시진핑에게만 유리한 것도 아니다. 한국정부는 중국정부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하는 만큼 FTA재협상이나 방위비분담등에 있어 미국에 요구하는 카드로 삼으면 된다. 한국정부는 한미동맹을 위해 이 정도로 경제적인 피해까지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중국정부가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강경한 언사들을 쏟아내는 이유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정부가 아예 돌아서서 미국의 요구대로 대중국압박에 동참하게 되면 그만큼 중국정부에, 무엇보다 독재자 시진핑에게 압력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쓸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썼다. 여기서 더 나가는 것은 아예 한국정부와의 관계에 있어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여길 수 있다. 어차피 사드는 배치될테고 한국정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한국이 받는 경제적 타격과 별개로 중국도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한일정상회담의 결과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재인정부가 노무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한일관계를 과거사문제와 별개로 다시 복원하려 한다면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입지까지 흔들릴 판이다. 원래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겁먹은 고양이가 사납게 울어댄다.


그러면 과연 이대로 사드배치를 강행할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마냥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중국정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중국정부가 이렇게까지 반대했는데 한국정부가 무시하고 사드배치를 강행했다. 그래서 더욱 한미동맹의 강화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국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중국을 설득하라. 먼저 핵개발을 동결케 하고 한국정부와의 대화에 나서게 하라. 환경영향평가등 필요한 절차를 거치는데 필요한 시간은 중국정부에 주는 시한이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이 구체화되고 공식화된다면 그때는 그 수단으로서 사드를 활용할 수 있다. 북한핵문제 해결이라는 치적을 가질 수 있다면 트럼프 입장에서도 그깟 사드배치따위 얼마든지 철회할 수 있다. 어차피 중국정부 입장에서도 국제사회에서 자꾸 자신들의 입장만 곤란하게 만드는 불편한 이웃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기는 해야 했다. 바로 인접한 동맹국인 북한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행세할 수는 없다. 결국 중국까지 나서서 북한핵문제만 완전히 해결되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풀리게 된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경일변도로 나가다가 외통수로 몰리게 된 것은 중국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바마 정부 이래 트럼프 정부까지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견제와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일본과의 과거사문제로 한국정부와 보조를 맞춰오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어려워지게 생겼다. 북한핵문제와 연계되면 명분까지 한국과 미국에 있다. 어차피 한국과 미국이 합의하여 대중국 압박과 견제에 동참하게 된다면 이제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중국의 강경한 입장을 오히려 지렛대삼아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그를 통한 대중국압박으로 되돌려주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탁월한 외교역량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사이에 끼어 있지 않겠다. 더 강한 쪽에 서서 함께 압박하는 편에 서겠다. 완벽한 반객위주다.


결국 이달초 예정되어 있는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모든 것이 걸려있다 봐도 좋을 것이다. 푸틴과의 정상회담마저 상당한 성과를 낸다면 - 어쩌면 트럼프와 푸틴의 우호적인 관계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어 줄 수 있다. 뜻밖에 아주 일찍 북한의 전향적인 입장변화로 인해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적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려 있는 트럼프 입장에서도 돌파구는 필요하다. 강대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북한도 더이상 지금처럼 뻗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차피 북한이 원하는 것도 미국과의 협상이다. 미국이 한국을 앞세우면 한국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만만하기도 하다. 과연 만만할까는 지금가지 보아온 대로 실제 협상에 임해봐야 알 일일 테지만.


한 마디로 시진핑의 전략실패다. 너무 문재인 정부를 물로 봤다. 온건해 보인다고 만만하게 봤다. 한국 진보정치인들이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너무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문재인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박근혜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마주 미사일발사 훈련을 명령하며 압박에 나서는 것이 바로 지금의 문재인 정부인 것이다. 사람 좋다고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줄타기가 안되면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괜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대한민국에는 그럴 유용한 수단이 가까이 있었다. 더 힘센 놈이 있으면 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

신고

노무현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말들이 좀 그래서 그렇지 상당히 온화하고 온건한 사람이었다. 노무현 정부처럼 야당에 잘 양보하고 많이 양보한 시절도 사실 없다시피 했었다. 그래도 여당이랍시고 원내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이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데다 언론까지 가세해서 야당과의 타협을 압박했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는 했다. 아예 국회의 문을 닫고 거리로 뛰쳐나가도 그 책임은 항상 온전히 정부에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니까. 민주주의에서는 아무리 부당한 요구라도 그 뒤에 있는 지지자들을 봐서 야당에 양보도 하고 서로 타협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양보도 해주고 타협도 해주고 하면 야당도 고마운 것을 알아야 할 텐데 그것이 전혀 아니었었다. 양보하면 나약한 것이고 타협하면 일관성이 없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정부를 흔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흔드는대로 정부가 흔들리고 국민의 지지율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강한 개혁정책을 기대하며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며 참여정부는 존립의 기반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야당에 양보하고 타협해서 참여정부에 돌아온 것이 무엇이던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 있으면서 그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 듣고 느껴온 사람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하나씩 양보하다 보면 어느새 안방까지 내주게 된다. 야당에 양보하며 집권 초기부터 정부의 선명성이 흐려진다면 지지층은 이반하고 정부는 목표한 개혁을 추진하려 해도 그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국민이 정부를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야당이 아니라 국민을 본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 바람과 요구만을 보려 한다. 아직까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70%를 넘어서고 있다. 야당이 아니다. 야당의 입장에서 기사를 써대는 언론이 아니다. 아직 문재인 정부를 믿고 지지하는 국민들이다. 그들이 정부가 추진할 개혁의 진짜 힘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노무현이 양보하는 만큼 조금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노무현이 대화에 나서고 타협에 동의한 만큼 그들 역시 노무현 전대통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런 모습들에 대해 언론과 국민이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있었더라면. 최소한 임기 초기에는 높은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등에 업고서 무리해서라도 개혁의 성과를 국민들에 확인시켜 주었어야만 했다. 이재명보다 문재인이 더 잘 안다.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지. 협치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배운 것은 철저히 행동에 옮긴다. 가장 무서운 타입이다. 한 번 정한 것에 타협도 양보도 없다.


그래서 나 역시 정부 초기부터 그리 주장해 왔었던 것이기도 하다. 정부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차라리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더라도 국민만 믿고서 확실한 정부의 신념과 목표를 보여주어야 한다. 오히려 그러니까 국민의 지지가 더 높아지고 있다. 야당과 언론이 그토록 부정적인 내용들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지명한 인사들에 대해서까지 상당히 높은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을 본다. 국민을 등에 업는다. 어쩌면 노무현은 정치를 너무 오래했었는지 모르겠다. 정당과 정당, 정치인과 정치인이라는 기성의 논리에 너무 일찍 편입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여당인 민주당과 함께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의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정부는 국민만을 보고 국민은 정부만을 본다. 국민의 믿음과 기대를 알고 정부는 그에 부응하려 하고 정부의 의지를 알고 국민 역시 지지를 보내준다. 정말 끈끈한 밀월관계다. 야당과 언론과만 밀월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야당과 언론이 먼저 떨치고 일어난 탓에 이제 그곳에는 정부와 여당과 국민만 남았다. 그 사실을 야당과 언론만 모르고 있다. 아직도 자신들의 몫이 남아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이제 곧 지방선거이기도 하다. 국회의 의석만이 정치의 정부는 아니다. 권력은 이렇게 지키고 쓰는 것이다. 정치가라기보다 통치자다. 대통령 문재인이 무서운 이유다. 노무현과 다르다.

신고
  1. 하모니 2017.07.05 07:41 신고

    문재인대통령께서 인사오대원칙과 협치 미끼로 적폐야당들 통수 후려치는게 너무나 통쾌하더군요 ㅋㅋㅋ

사실 이것 역시 북한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참여정부 당시 양국의 정상이 만나기도 하고 실무자들이 수도 없이 서로 접촉하는 가운데 북한이 어떤 행동을 했었는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미사일발사에 핵실험에 꼭 참여정부에 불리한 행동만 일삼고 있었다. 하필 타이밍이 그래서 참여정부에 대한 압박이나 혹은 길들이기였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놈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북한과의 대화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국내정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아무리 북한과 대화를 하고 구체적인 협의를 하더라도 결국 국내정치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문재인 자신도 지난 총선기간 선거운동을 하며 선언한 바 있었다. 이번에는 오래가는 정부를 만들겠다. 다시는 정권을 내주지 않도록 강한 정부 강한 여당을 만들겠다. 그러자면 북한 역시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관리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엇박자를 낼 경우 여러가지로 곤란해지는 한계도 경험한 바 있었다. 결국 핵심은 미국이다. 북한 역시 북미를 말하지 북남을 말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동의해야만 속도도 내고 확실한 효과도 낼 수 있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같은 민족간의 온정적인 대화가 아닌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관계다. 미국의 입장에 충실하게 미국의 전략 안에서 최대한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한다.


개인적으로 북한과 당장 대화에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정부 초기에 저리 미사일을 날려대며 선물도 훌륭하게 보내는 북한을 그냥 여느 인정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개인의 정의나 인정과는 별개로 수천만 국민의 이익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 또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북한이 먼저 성의를 보이라. 당연해서 더이상 더할 말도 없다. 공은 이제 북한에게로 넘어갔다.


확실히 참여정부와는 다르다. 참여정부를 통해 청와대에 있으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는지 매 걸음마다 그 처절한 반성이 느껴진다. 야당을 대하는 것도, 미국을 대하는 것도, 북한을 대하는 것도 모두 그 반성이 담겨 있다. 야당에 섣불리 양보하다가 참여정부가 결국 어떤 처지로 내몰렸었는가. 영리하다기에는 그저 자기가 깨달은 바를 묵묵히 실천에 옮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기대가 갈수록 커져간다.

신고

국민의당이 조작된 녹취록을 근거로 논평을 내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히 그 대상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였다. 문준용씨의 취업특혜의혹을 아예 파슨스 동문의 증언까지 조작해가며 기정사실화시켰고 그 결과 문준용씨는 유력대선후보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일동안 거의 모든 미디어를 통해 인격살인에 가까운 난도질을 당해야 했었다. 공당의 발표이기에 믿고 문준용씨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비난을 쏟아낸 국민도 적지 않았거니와 그로 인해 고통받았을 문준용씨 개인과 가족을 생각하면 정말 치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문준용씨의 아버지가 바로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다. 결국 유력대선후보로서 지지율에서 앞서가던 문재인 당시 후보를 끌어내리기 위해 녹취록조작과 폭로라는 강수까지 쓰게 된 것이었다. 첫논평이 나간 5월 5일 이후 선거가 치러진 9일까지 국민의당이 그를 근거로 문재인을 향해 퍼부어댄 국민의당의 공식 비공식 논평들은 막말이라는 말도 고상하게 들릴 정도의 것들이었다. 아무리 다른 당이고 선거에서 경쟁하던 상대라 할지라도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개인의 인격과 명예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을 퍼부어댔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한 감정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당은 그 시작부터 문재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이념삼아 출발했던 정당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 다음이 공당의 무책임한 폭로로 인해 유권자로서 자신의 선택을 방해받아야 했던 국민들이어야 했을 것이다. 국민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세 번 째다. 하긴 언론 가운데서도 그 사실을 지적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도 그토록 많은 이들이 큰 지지와 신뢰를 보냈던 언론사 JTBC의 '뉴스룸'조차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아닌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해야 했던 안철수를 동정하는 논평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보다 큰 정치를 위해서는 사소한 개인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가족이라면 그 정도 피해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하물며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는가. 대통령의 가족이 되지 않았는가. 과연 현대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정치인의 가족이라고 개인의 인권을 어떻게 여기는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선거를 위해 필요했으니까. 안철수가 이기는 것이 자신들이 보기에 정의에 더 가까웠으니까. 아직도 대통령으로 문재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인 인사권마저 부정하며 대통령이 실패하도록 최대한 모든 것에 반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녹취록이 조작되었어도 국민의 여론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지만 상대당의 정치인과 가족에 대해서까지 미안함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다. 예외가 없다.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 그 점을 지적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원래 안철수를 바라보고 국민의당에 몸담았을 정도라면 인격적으로도 알만하다 여겼었는데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의 인사들조차 인권감수성이 바로 이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정당이 집권당이 되었다면. 다수당이 되어 국정을 주도하는 위치에 섰다면. 그러면서 밝혀진 사실이 자신이 연 희망토크에서 불리한 질문을 했던 참가학생의 신상을 파악하려 시도한 사실이었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만이 국민이다. 자신들과 같은 편에 선 국민만이 마땅히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국민이었던 것이다. 문준용씨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라서가 아니었다. 국민의당도 그리고 언론도 인간을, 개인을 대하는 자세가 원래 그랬던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필요하니까 그런 정도는 어쩔 수 없다. 당사자의 신분과 환경이 그런 정도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어디까지 미쳐있는 것일까? 저런 것들이 원내 3당이고, 그런 사실을 하나 지적하지 않는 것들이 언론이고 기자들이라 하고 있다. 하긴 그래서 기레기들이다. 정상이라면 먼저 그것부터 지적하고 비판했어야 했다. 비판하기 전에 먼저 그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오히려 화를 내고 있다. 협박을 일삼고 있다. 그것을 또 잘한다고 그대로 받아쓰기해서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국민의당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관성 이전에 그냥 현정부에 상처를 입히고 싶은 욕구다. 진보라는 말은 최소한 언론 앞에 써서는 안되겠다. 참담한 심정이다. 저것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아직도 있다.

신고

아주 오래전 언론이란 계몽을 위한 수단이었었다. 그래서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혁명에서도 훨씬 전부터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편집자나 주필들이 중요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레닌의 후계자이면서 스탈린의 대적자로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는 레온 트로츠키가 그렇게 신문과 잡지에서 논설을 통해 자신을 알린 논객 출신이었다. 이를테면 사회주의의 유시민이랄까? 말은 옳게 하는데 행동이 싸가지 없어서 결국 쫓겨나고 죽임을 당했다.


우리사회에서도 불과 얼마전까지 기자라고 하면 사회의 지성이자 양심으로서 높이 대우해주는 문화가 실제 있어 었었다. 하긴 그만한 학력과 지식이 있어야 기자도 되고 기사도 쓸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었다. 아무나 기자가 될 수 없었고, 기자가 되었다고 실력도 의지도 없이 언제까지나 버티고 있을 수도 없었다. 오로지 대중들에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 하나로 고단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회의 각분에야서 서슬퍼렇던 권력과도 맞서야 했던 것이 기자들이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기자라면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쓴 기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받아들이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것이 독이었을지 모르겠다. 자칫 한 걸음만 잘못 내딛으면 권위는 곧 권력이 되어 버린다.


모두가 떠받들어주는 시대의 지성이자 양심으로서 기자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기자로서 자신이 쓴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기사를 쓰고 내보내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취재의 대상이 된 그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기자인 자신을 어려워하는 모습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심지어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언론이 어떻게 하나의 권력을 난도질하여 대중과 유리시키고 끝내 침몰케 할 수 있었는가 학습하게 되었다. 한겨레와 경향 등 이른바 진보언론들이 특히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부쩍 그 논조보다 태도가 달라지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자기들이 권력이다. 자기들이 진짜다. 정치권력은 가짜다. 자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권력따위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 그 필두에 언론권력이라 불리우는 거대언론 조선일보가 있었다.


말 그대로다. 바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왜 기자들은 공부를 않는가? 뻔히 아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오보까지도 습관처럼 서로 베껴쓰기에 급급하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런다고 자기들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자기들이 뭐라 하면 그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한다. 거슬러올라가면 역시 김대중이 언론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을 이겼다.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을 눌렀다. 그런데 굳이 그런 자신들이 사람들에 더 잘보이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들이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닌 세상이 자신들에 맞추는 것이다. 그것을 언론의 사명이자 자존이라며 스스로 여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동안 이른바 한경오사태라 불리우는 진보언론과 대중과의 충돌은 그런 사정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대중이라기보다는 한 개인들이다.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문제가 있다 여기는 점들을 신중하게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면 오히려 비웃으며 화를 낸다. 자기들은 대단한 언론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자기들은 원래 이런 언론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만 한다. 심지어 독자인 대중을 모욕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런다고 대단한 정치권력도 자기들을 어쩌지 못했는데 고작 개인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당장 구독자도 줄어서 경영에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도 언론이라는 자존심을 지키려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언론인데 대중에 굴복할 수야 있겠는가. 대통령도 여당의 유력정치인도 언론인 자신들 앞에서는 낮은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미국에서 한국언론들이 저지른 추태가 현지언론인들의 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더불어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이 던진 한심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질문들까지 대중의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현지의 언론과 전혀 다른 내용의, 오히려 사실과 전혀 동떨어지면서 나라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기사들까지 당당하게 대중앞에 내보여지고 있었다. 아, 이런 것이 한국 언론의 수준인가? 하지만 언론인 스스로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언론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정치권력만의 경우인가? 언론조차 감시하지 않은 언론권력은 예외인 것인가? 교양도 품격도 예의도 없이 당장 손에 쥐어진 특권에 도취된 천박한 졸부의 알몸이 바로 언론의 자화상인 것이다.


아마 몇 년 되었을지 모르겠다. 어느 아이돌 관련 인터뷰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글의 말미에 그리 썼던 적이 있었다. 기자가 지성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더이상은 아니다. 아무나 기자가 될 수 있다. 대학부터 아무나 갈 수 있다. 너무 많은 대학이 있고 그동안의 경제성장은 더 많은 학생들에게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주고 있었다. 언론사도 많아지고, 큰 언론사는 정부의 보조금까지 주어지며 기자로 취직하기도, 취직해서 기자로서 살아가기도 전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월급은 나온다. 월급도 나오고 기자라고 대우도 해준다. 배부른 돼지가 여전히 돼지인 이유는 당장 자기 먹을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엄정함으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던 선배기자들을 떠올린다.


기레기라는 말도 사실 아깝다. 많은 쓰레기가 재활용된다. 어쩌면 당장은 악취나는 쓰레기일지라도 먼훗날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장점은 있다. 일개 블로거라도 저놈들보다는 나을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진짜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는 아예 어림도 없다. 기사란 그런 것이다. 포털의 댓글보다도 한없이 가벼운 키보드 위 기자의 손가락을 본다. 똥이 썩으면 그것도 거름이 될 수 있다. 같잖은 것들이다. 한밤중이다.

신고

협상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쁜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도움이 필요하고 상대의 양보가 필요하기에 상대의 양해를 구하고자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언어로 대화해야겠는가.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극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보여주며 원만하게 끝나고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장 공동언론발표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 전에없이 강경한 북한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한 마디로 트럼프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대통령과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 결론이야 어떻게 내리든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결론은 상대의 뜻대로 내리더라도 과정에서는 항상 자신의 주장을 가장 먼저 앞세우고 있었다. 좌측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말은 과격한데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말로는 상대를 자극하고, 행동은 그 말을 지지하는 또다른 사람들을 배신한다. 이래저래 양쪽에서 욕먹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협상가로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다르다. 확실히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지 않는다. 어차피 실현되지도 않을 자기 주장을 앞세우느라 상대를 거스르지 않는다. 어차피 북한 핵문제 해결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이 양해하고 도와주어야 문재인이 의도한대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미국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의도가 미국 정부의 입장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미국의 전략 아래에서 대한민국을 자신들에게 허락된 최선의 노력들을 기울일 뿐이다. 결정도 선택도 미국이 하고 그 모든 과실도 미국이 갖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니까 미국 너희들이 옳다.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옳다. 다만 그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역할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충실히 하고자 한다. 미국을 높이고 우리를 낮춘다. 트럼프 대통령을 철저히 높이면서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주장은 뒤로 숨긴다. 선물보따리도 잔뜩 챙겨들고 갔었다. 공동발표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장 먼저 미국을 방문해서 장진호전투기념비에 헌화하고 6.25참전용사들과 만난 것도 그런 일환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미국에 큰 은혜를 입었고 아직도 미국에 고마워하고 있다. 사드에 대해서도 단지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는 것 뿐이며, 그 민주주의는 미국이 대한민국에 선물한 것이었다. 사드배치를 철회하려는 것이라 절대 오해하지 말라. 


그렇다고 아예 자기 이야기를 안했는가면 그럼에도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합의된 것은 거의 없었다. 우호적이지만 아직 상당한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내 의도와 전혀 다른 주장인데도 들어줄만 했다. 충분히 인내하고 고려할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 외교의 기술인 것이다. 협상의 기술이다. 같은 말도 얼마나 기분나쁘지 않게 오히려 더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듬고 포장할 수 있는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능력이거나 아니면 청와대에 탁월한 전략통이 있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은 문재인 자신의 역량이라 봐야 할 것이다. 


기대한 것보다 더 좋았다. 전에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친근하게 대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까지 없던 극진한 예우를 보이는 것도 그랬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다 하고 회담을 마쳤다.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면 아무나 외교를 할 수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면 외교라는 자체가 필요없어진다. 더 긴 인내와 노력 그만큼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확실히 정상회담은 커녕 후보시절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띄워주는 발언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트럼프를 높이 평가하면서 자기야 말로 트럼프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이런 것이리라. 과연 탁월하다.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