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들은 흔히 말한다.


"너 아니라도 사람은 많아!"


어느 관리는 전쟁에서 많은 병사들이 죽자 왕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한 해에만 전장에서 죽은 병사의 수 이상이 왕도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대한민국 인구만 5천만이 넘어간다. 말이 5천만이지 한 사람 앞에 삽 한 자루씩 주고 산을 허물라 하면 백두대간도 평지로 만들 수 있는 인력이다. 물론 그 많은 인원이 땅을 팔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는 전제 아래서.


사람에게 돈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생존에 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한다. 얼어죽지 않으려면 무어라도 따뜻한 것을 걸쳐야 한다. 혹시라도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충분한 장구를 지급해야 한다. 군인이라면 전장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아예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먹이지도 입히지도 손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그냥 전장에 밀어넣는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서 희생된 그 이상의 숫자를 끊임없이 동원하고 밀어넣을 수 있으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물론 2차세계대전 당시 막장으로 꼽히던 구일본군도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었다.


당시 구일본군이 저지른 막장짓 가운데 지금도 회자되는 것이 가미카제일 것이다. 비행기를 문제없이 띄우고 착륙하는 것만도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심지어 전투 도중 배치된 조종사의 항모이착함을 훈련하다가 함재기의 절반을 잃은 경우마저 있을 정도로 정상적으로 이착륙할 수 있다는 것만도 이미 대체하기 힘든 전력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조종사들을 일회용 자살공격에 동원하고 있었다. 살아돌아왔으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유용한 전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가능성을 단지 한 번 적함에 돌격해서 피해를 입히는 용도로 사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조종사를 길러내기는 어렵고, 더구나 조종사로 훈련시킬만한 인재를 찾기도 결코 쉽지 않다. 설사 자살공격이 성공해서 적에게 일정한 피해를 주더라도 뒤가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자살공격이 성공해서 미군이 진격을 멈추면 이미 많은 인력을 소모한 일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전근대의 군주나 지휘관들이 마음이 좋아서 굳이 병사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장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장차 일어날 상황을 대비해서 병사들을 훈련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잘 훈련시키는가에 따라 전쟁의 결과가 달라진다. 함부로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고 더 잘 무장시켜서 만일의 상황에 자신을 위해 용감히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정병, 혹은 정예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껏 길러놓은 정예병을 잃거나 하면 귀한 신분의 지휘관이 처벌을 받기도 했었다.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숙련된 소방관 한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아무나 소방관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소방관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많은 훈련과 실전경험을 거치면서 숙련된 소방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의 경우 큰 화재가 났을 때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기에 화재를 진압하고 위험에 빠진 시민들을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 숙련된 소방관들인 것이다. 이제 겨우 소방관이 되어 일을 시작한 사람이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런데 누군가 아무것도 없이 그런 숙련된 소방관들이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화재현장에서 무엇보다 소방관들이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화재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금 눈앞의 한 사람만 구하고 끝날 것이 아니다. 자기 말고 여전히 더 많은 소방관이 남아 있다 마음놓아서는 안된다. 자기 말고는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실제 한 사람이 희생되면 누군가 그 한 사람을 대신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희생된 한 사람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 만큼 경험을 쌓을 공백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소방관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첫번째 책임인 것이다. 물론 소방관에게도 가족이 있다.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소방관 역시 소방관 자신이 지켜야 할 시민의 한 사람이다.


어이가 없다. 말로야 친일당이라 하지만 원래 정치란 그런 것이라 수사적인 표현이라 여겼지 설마 싶었었다. 인력도 지원도 아닌 희생과 헌신이라. 장비도 증원도 없이 고귀한 생명을 구하는 희생과 헌신을 말하고 있다. 누구의 희생이고 누구의 헌신인가? 그러면 먼저 자기부터 세비를 반납하면 어떨까?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비같은 것 없이 자원봉사로 국회의원 노릇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원내대표다. 무려 원내대표씩 되면 그 한 마디는 그 당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표성을 갖는다. 심지어 자신있게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까지 하겠다 말하고 있다. 너무 금배지 달고 으스대다 보니 자기가 소방관들과 같은 사람이고 시민이라는 당연한 사실마저 잊은 것은 아닐까.


그저 건조하게 받아쓰거나 요식적으로 비판하며 보도하는 언론들부터가 문제다. 확실히 진보언론들까지도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여전히 자기들은 야권이라는 것일까. 이 정도 수준이만 막말도 보통 막말이 아닐 텐데 언론은 오히려 조용하다. 하긴 자기들이 쳐맞지 않았으니까. 국익보다 중요한 것이 기자인 자신의 체면이고 자존심이었지 않은가. 


하여튼 원래 그런 정당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막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다. 항상 상식을 깨부수는 파천황들일 것이다. 그에 동조하는 시민들도 아주 없지는 않으리라 장담한다. 내 목숨 아니니까.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무나 소방관이 될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을 테니까. 돈도 얼마 못받고 대우도 못받는 그깟 소방관따위. 과연 누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가. 아무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기에서 지켜줄 수 있을까.


원래는 소방관의 장비를 개선하고 인력을 증원하는데 무관심했던 이전 정권과 야당들에 더 큰 책임이 지워져야 했을 텐데.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다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 뿐이다. 화가 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명나라가 왜 망했느냐면 변경의 상황에 대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조정이 통제하려 해서 망했다. 원래 싸움이라는 것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겼다가도 지고 지다가도 이기는 것이 바로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명장이라 불리우는 지휘관이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아예 타고나서 그런 것 없이 잘싸우는 지휘관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다. 무엇보다 휘하의 장수와 병사들이 싸움을 통해 단련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싸움 한 번에 일희일비하며 혹시라도 지거나 후퇴하면 책임을 물 궁리부터 한다.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바로 이순신이 조정의 대책없는 간섭으로 인해 결국 파직되고 옥고를 치러야 했었다. 싸워야 할 때가 있고 싸워서는 안되는 때가 있다. 나가서 적을 무찔러야 되는 때가 있고 물러나서 그저 지키고 있어야 하는 때가 있다. 전국시대 일찌감치 군사개혁을 통해 진과도 겨룰 수 있는 강군을 길러냈던 조나라도 그러나 염파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한 조정의 간섭으로 인해 장평에서 30만이 넘는 장정을 잃고 말았다. 하긴 조나라가 망할 때도 왕전의 군대를 불리한 조건에서도 훌륭히 막아냈던 이목이 간신 곽개에 의해 죄인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이 염파와 이목은 천자문에 기전파목 용군최정(起翦頗牧 用軍最精)이란 문구가 나올 정도로 당시 중국에서 최고로 꼽히던 두 명의 장군 가운데 하나였다. 저기서 파목이 바로 염파와 이목이다. 그런데도 조나라는 막대한 군사를 잃고 망했던 것이다.


바로 말하는 관료제의 폐해라는 것이다. 현장에는 현장의 논리가 있다. 현장의 상황이 있고 현장의 이론과 이유가 있다. 원칙을 벗어난 임기응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있다. 아니면 거꾸로 임기응변을 사용하기 어려운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도 있다. 그것을 바로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결정한다. 하지만 중앙의 관료들은 그것을 단지 문서로써만 판단한다. 하긴 굳이 중앙의 관료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1차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선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각군의 지휘부들은 일선의 지휘관들에게 수많은 별 필요도 없는 서류작업을 강요하며 전선의 상황에 맞지도 않는 명령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요컨데 거리다. 그리고 그런 만큼 직접 현장을 마주하고 있는 일선의 책임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손자병법'에서도 지휘관은 전장에 나가면 왕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조작업을 하다 보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불을 끄다 보면 한 번에 쉽게 꺼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항상 쉽게 불을 끄고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칫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최선이라 여겼던 판단이 최악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소방관 자신들이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전문가들 아닌가. 설사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현장을 책임지는 당사자로써 그 판단과 결정을 먼저 최대한 존중하며 더 자세한 정황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모든 판단과 결정에 대한 심사를 받고 평가를 받는다면 과연 같은 상황에서 소방관들이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로 인해 징계나 심지어 처벌까지 받게 된다면 지난 세월호 참사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판단에 대해 평가할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린다. 혹은 전문가로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에 의한 판단이 있음에도 주위에 휩쓸려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기자새끼들이라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 기레기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쳐맞아도 잘맞았다며 좋아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기자가 아닌 다른 일반 시민이었으면 반응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소방관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었다. 진실을 묻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당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사실을 알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소방관이 타겟이었다. 유족들의 입을 빌어 소방관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소방관의 뒤에는 행정부의 수반인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언론 보도에 힘입어 야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을 보라. 그리고 그같은 집요한 물어뜯기의 결과 마치 죄인처럼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소방관들이 죄인이 되어 압수수색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래서야 과연 또다시 같은 화재가 일어났을 때 소방관들이 냉정하게 전문적인 판단을 적극적으로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어째서 불법주차된 차들을 단호하게 견인하도록 조치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 전에 화재현장에서 문을 부수고 창문을 깨는 행위조차 망설이게 되었는가. 그만한 충분한 재량을 주고 그에 대해 최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예우가 있어야 소방관들도 더 자유롭게 자신들의 전문적 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이제 가스탱크가 불타는 옆에 있어도 감히 물뿌릴 생각도 못할 것이다. 어차피 기자들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 단정지었으니 불이야 붙든 말든 구조대원 없이도 진압대원들이 건물로 진입해야 할 지 모른다. 내부 상황을 정확하기 파악하지 못한 사태에서도 유가족들이 원하면 통유리든 벽이든 일단 부수고 봐야 한다. 그러고도 또 누군가는 책임을 물을 것이다. 탓을 하고 비난을 할 것이다. 그냥 소방관 없는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나같으면 자괴감에 소방관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말겠다. 돈이라도 많이 주는 게 아니고 별별 하찮은 일들에까지 동원하며 이렇게 졸지에 죄인취급을 해버리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자새끼들 어디 가서 쳐맞든 뒈지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저 새끼들 어디 가서 불에 타 뒈져도 소방관들이 구해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새끼가 아니다. 불이 난 원인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을 끄기도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알고 있다. 소방관 증원을 반대했다. 예산증액도 반대했다. 지방직이라 지자체장이 예산을 전용하는 것도 묵인하거나 찬동했다. 자기들도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방관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기자가 지식인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같지도 않은 것들이 되었다. 토할 것 같다.

하긴 그동안도 애써 감추려 않고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자기들은 부당하게 비판을 들었다. 부당하게 책임이 지워지고 그로 인해 정권까지 잃게 되었다. 당장 여론이 불리하니 참기는 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되돌려주겠다.


이로써 자칭 진보언론인 경향과 한겨레가 어느 편에 서 있는가도 분명해졌다. 제천화재는 세월호와 같다. 소방관들은 당시 해경과 같고,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같다. 그러므로 소방관들은 당시 해경들처럼 초동대처를 잘못했어야 했으며 문재인 정부 또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어야 했다. 그렇게 맞추고 몰아가는 것이다. 너희들도 한 번 당해보라. 그러니까 이런 너무나 뻔한 의도에 부화뇌동하는 것들이 누구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현정부가 들어서고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소방관 수를 늘려야 한다. 소방관의 처우나 장비 등을 위해서라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당시 야당과 언론이 그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었는가. 뻔히 드러난 사실로도 인력이 부족해서 기본적인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마저 병행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하면 장비관리도 부실해지는 것이다. 소방관 더 채용하라고 추경예산 내려보냈더니 다른 데 쓰는 것을 두고 또 야당과 언론은 무엇이라 했었는가. 그런데 이제와서 정부 책임이다.


그냥 복수다. 앙갚음이다. 되갚아주려는 것이다. 부당하게 권력을 빼앗겼다. 문재인 정부는 부당하게 권력을 쟁취한 부정한 정권이다. 그저 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유가족과 소방관들이 안타까울 뿐. 그 뻔뻔함은 과연 불에도 타지 않겠다. 

  1. 하모니 2017.12.28 10:15 신고

    제천 소방수들은 문재인대통령에게 큰절 올려야 한다. 세월호때는 해경들 침몰하는 배에 기어들어가지 않았다고 살인마 소리들으며 처벌받았다. 니들이 무사한건 전적으로 문대통령과 촛불덕분이다.

카리스마란 여러 해석이 있지만 결국 기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 삼국지에서도 사람들이 조조와 유비를 따르는 이유가 각각 달랐었다. 조조의 심복들에게도 조조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듯이 유비의 측근들에게도 유비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를 위해서 두 사람의 신하들은 때로 목숨을 바쳤고 위험과 고난을 무릎썼다. 무엇이겠는가. 내가 지금 충성을 바침으로써 내가 바란 결과가 돌아올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돈일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권력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혈통이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모든 경우에 그 기대란 것이 뚜렷한 실체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형체도 없는 막연한 그 기대를 쫓아 무작정 한 사람을 따라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그마저도 자신이 가진 어떤 불안과 불만에 의한 것이기 쉽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결핍과 요구가 그것을 대신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원래 막연했던 만큼 그 불안과 불만의 형태 역시 그 대상이 결정하기도 한다.


세상이 혼란스럽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저지르고 있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정상을 벗어난 것은 분명하다. 머리가 아닌 본능이 그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은 지금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가? 이예 이전의 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거나, 아니면 다시 모든 부정과 일탈을 바로잡아서 원래의 정상으로 되돌리거나. 중요한 것은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함으로써 답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장이란 싸워서 이길 것 같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아무리 싸움이라고는 처음이라 해도 어찌되었든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 명장인 것이다.


바로 그것이 빠를 만든다. 광적인 추종자를 만든다. 심지어 자기 자신은 물론 소중한 가족까지도 그를 위해 기꺼이 내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다. 아니 무리를 짓고 사는 모든 존재가 가지는 본능이다. 누군가는 의지하려 하고 누군가는 이끌려 한다. 대부분은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라고 그 대상을 찾는다. 당연히 그 대상은 자신들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존재다. 이끌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잘 이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불안과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음을 뜻한다.


어째서 문재인이었는가 돌이켜보자. 무엇보다 어째서 노무현과 문재인을 대하는 지지자들의 태도가 다른가도 헤아려보자. 김대중에게는 김영삼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리고 1997년 대선에서 경쟁자였던 이회창 역시 썩 그렇게 몹쓸 선택은 아니었었다. 노무현은 바로 그 김대중을 계승했다. 그리고 어찌되었거나 김영삼 이후 무려 15년 간 이루어져 온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유시민 자신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정권 잡는다고 나라 망하는 것 아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했는가.


2012년 대선 직전 불었던 안철수 바람 역시 바로 거기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안철수의 경우는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부정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놈도 저놈도 다 마음에 안드는데 안철수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안철수라면 지금까지의 대통령들과는 다른 정치를 보여주지 않을까?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안철수가 내건 '새정치'라는 구호였었다. 그리고 그것은 2017년 대선까지도 여전히 유효했었다. 그래도 안철수라면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무언가 다르지 않겠는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의 선전은 그같은 막연한 대중의 기대에 힘입은 바가 컸었다. 그리고 2017년 대선을 치르고 안철수라는 인간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안철수의 바람은 비로소 끝나고 만다. 안철수의 정치에는 전혀 자신들이 바라는 새로운 무엇이 없었다.


물론 안철수 자신의 힘으로만 안철수 바람을 끝냈던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비교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한 기대였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보이는 모습을 통해 저절로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 안철수에게 대중들이 기대했던 그 모든 것이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에게 있었음을. 그러므로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이 자신들이 바라는 정치를 이루어낼 것임을. 지지율이 꺼져도 너무 한 번에 꺼져 버렸다. 그래도 유력대선후보로서 본전이란 게 있었을 텐데, 아예 남은 것이라고는 없이 모두 한 번에 털어먹고 말았다. 무엇이겠는가.


노빠들이 문재인을 지지한 이유는 하나다. 노무현의 후계자다.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다. 하지만 노빠가 아닌 사람들이 문재인을 지지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아마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던 것은 민주당의 분당 과정에서 문재인이 지켜낸 혁신안이었을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었다. 또 지금까지처럼 적당히 타협하며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 예단했었다. 하지만 집요한 흔들기에도 문재인은 고집스럽도록 우직하게 혁신안을 지키고 오히려 흔들던 이들이 제 발로 뛰쳐나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인상을 쓰거나 험한 소리를 내뱉는 법 없이 완벽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었다. 진짜 이 사람은 다르구나. 정치인으로서 이 사람이라면 다른 기대를 가져봐도 괜찮겠구나. 그 전까지 막연하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낫겠거니 여기던 것이서 지금으로서는 이 사람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문재인 말고 지금 누가 있다는 것인가.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아니면 심상정?


과거 노빠들도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대통령으로서 문재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문재인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희망이 없다. 그러니까 문재인의 잘못을 비판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문재인 정부의 힘이 꺾이면 누가 그 대안이 될 것인가 말이다. 노무현에게는 그나마 열린우리당조차 없었다. 노무현 한 사람도 불만스러운데 하물며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그보다 더 형편무인지경이었다. 문재인이 바꾸어 놓은 민주당이 또한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든든히 버티고 있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보다는 그래도 민주노동당이 아닐까. 그러나 이제 어느 정당도 정치인도 민주당과 문재인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가진 당연한 권리로써 나의 기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켜야 한다. 물론 그것은 지금 나 자신이 동의하고 있는 지금의 문재인과 민주당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카리스마를 신뢰라고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정직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기대인 것이다. 내가 바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기대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깨진다면 다시 노무현 때처럼 나는 문재인에게서 등돌릴지 모른다. 다만 노무현과는 달리 문재인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9년을 견디고 만난 대안이라는 것이다. 김대중과도 김영삼과도 이회창과도 비교될 수 있었던 노무현과는 달리 그 가면이 벗겨진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홍준표, 안철수 등이 그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기대치도 다르고 그만큼 만족도도 다르다. 어찌되었거나 아무리 그래도 다른 야당이나, 설사 같은 민주당이라도 안희정보다는 훨씬 나은 대안이다. 어떤 경우에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이른바 진보언론이나 지식인들과 문빠들이 갈리는 지점일지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절박감이 없다. 문재인이 아니면 안된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니까 반드시 문재인이어야 한다는 당위같은 것은 느끼지 못한다. 이해한다. 나도 노무현 때 그랬으니까. 그래도 설마 민주화가 이루어진지 몇 년인데 한순간에 그렇게 모든 것이 무너질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어차피 자신들이 원한 정권이 아니었으니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그나마 욕하기 좋다는 점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이 더 좋은 점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되었든 자신들이 바라는 정권이 아니었으니 그에 대한 강한 집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히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진보지지자 가운데 극단적인 사례를 몇 골라보면 좋을 것이다. 여성주의자 가운데는 워마드와 메갈리아 등에 그런 유형들이 넘쳐나고 있을 것이다. 아예 자기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못할 것 같으니 그냥 투표를 포기하라. 지금은 다른 이유로 매장되다시피 한 어느 유력 진보논객이 수 년 전 선거에서 주장한 내용이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개인이 아닌 정당이면 더 좋다. 개인이 아닌 이념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솔직히 문재인과 나와는 이념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민주당과도 과연 이념적으로 통하는가 의문스러운 부분이 상당히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이 위급한 비상상황인데. 그래서 카리스마란 대개 혼란 속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때로 카리스마는 개인의 힘으로 사회의 인습과 통념, 가치, 질서, 체계, 구조마저 뒤바꾸는 파천황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오로지 개인이 가진 역량에, 그보다 그에 대한 기대에만 기댈 수밖에 없으니 그밖의 모든 것이 의미를 잃게 된 결과다. 그러니까 과연 그동안 민주당이, 야권이, 진보진영이 대중에게 무엇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대하면 되는 것인가. 그래도 한때 교섭단체까지 노리던 민주노동당이 지금의 정의당으로 쪼그라들기까지, 그리고 민주당의 주류 다수가 국민의당으로 뛰쳐나가기까지 그들은 대중들에 어떤 믿음과 기대를 주고 있었는가.


솔직히 나도 문빠들 싫다. 노빠들도 원래 싫어했다. 하지만 언젠가 진중권이 진보당 지지자들에게 일갈하던 말을 기억한다. 너희들은 왜 노빠처럼 하지 못하는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저렇게 극성맞게. 저렇게 단합된 행동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가. 말 그대로다. 가만히 앉아 옳은 말이나 늘어놓는 정의로운 사람보다 틀렸더라도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행동하려 하는 이들을 더 신뢰한다. 차라리 틀렸거나 잘못된 것은 반성하게도 하고 고치도록도 만든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무것도 않는데 무엇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싫으면 싫은대로 부딪힌다. 마음에 안들면 마음에 안드는대로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사회는 더 다양해지고 그 다양성 속에서 새로운 대안도 나타난다. 주장하는 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마저 부정하는 정의라는 것은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문빠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그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적인 것이다.


어째서 문빠들이 나타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까지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더욱 지식인이라면 그것은 의무이자 당위이기도 하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문빠 몇몇이 이런 눈쌀찌푸려지는 짓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나쁘다. 배제해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만들었는가. 그 주범들이 그러고 있으면 지켜보는 사람은 그저 웃고만 싶어진다. 어이가 없다.

  1. 새정치 2018.01.11 16:19 신고

    https://www.dropbox.com/sh/e93hu34nqctgiv9/AAA2xxs7xtffbd4Ml4OXC4bza?dl=0
    안철수 새정치 없다는것도 더러운 언론과 정치세력을이 이간질한 거네요. 안철수에 이명박 프레임 씌우고 더럽고 교활한 짓해온 문주당을 보고 있자면 자한당보다 더 경멸스러워 지던대요..

갑자기 과장과 계장이 동시에 일을 시키면 일순간 멍해진다. 물론 더 높은 사람이 시킨 일부터 하는 것이다. 아니면 더 급한 일이나 더 빨리 끝낼 수 있는 일부터 하거나. 하지만 알면서도 일순 당황하게 되는 것은 내 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기까지 잠시 행동은 멈추게 된다.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건물은 타고 있다. 사람들이 건물 안에 갇혀 있다. 커다란 가스탱크가 불타고 있는 건물 옆에 방치되어 있다. 건물 가까이에 불법주정차된 차들까지 많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야 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우선순위부터 정해야 한다. 한정된 인력과 장비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일단 건물에 접근해야 하고 구조과정에 혹시 모를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위험에 처한 사람도 구해야 한다. 


바로 그 시간이다.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다. 3시 53분에 신고를 접수했고 다른 곳에서 고드름제거 작업을 하다가 구조대원들이 합류한 것이 4시 9분이다. 그리고 구조를 요청하는 시민을 구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진압대원들 역시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스탱크 주변의 화재진압에 먼저 집중하고 있었다. 가스탱크 주위가 안전하고 어느 정도 1층의 화재가 진압되고 나서야 안전하게 생존자의 구조에 나설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을 한 번에 동시에 진행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을 테지만 아다시피 소방인력이란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소방관 역시 화재진압과 생존자구조에 있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소방관 자신의 안전이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목숨을 걸고 불을 끄고 생존자를 구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 그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런 훌륭한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질지언정 그러지 않은 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더이상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는 것에는 소방관 자신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방관의 안전이 확보되고, 더이상의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을 통제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진압과 구조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자체가 매우 전문적인 업무다. 서로 사용하는 장비도 다르고 훈련받은 내용도 다르다. 그냥 소방관이니까 아무나 아무렇게나 그저 자기들이 바라는대로 모든 걸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 짜증나는 것이다. 유가족이야 그럴 수 있다. 그것은 유가족의 권리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큰 비극을 겪었기에 아무라도 붙잡고 원망하고 하소연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도 붙잡고 욕하고, 혹시라도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소방관을 탓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다. 그런 식의 중계만 하는 것이 원래 언론의 역할이었는가.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감정적일 수 있어도 언론이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언론들이 어떤 태도로 임했었는가를. 


그렇게 소방인력 충원과 예산의 증액을 정부와 여당이 관철하려 노력했음에도 그에 부정적이던 야당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비판적 보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었다. 오히려 그런 야당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오히려 앞장서서 주장을 더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마치 모든 책임이 소방관들에게 있는 양 유가족의 입을 빌어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언론의 기사들만 보면 소방관들은 머리가 셋에 팔은 열 쯤 되는 슈퍼맨들인 것 같다. 그 인력, 그 장비, 그 예산으로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초인들이었을 것이다. 아니니까 인력도 증원하고 예산도 증액하고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고 개선하자 주장하는 것이다. 불구덩이에라도 던지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말이 불구덩이에서도 안전하다는 말로 바뀌는 건 무슨 의도일까?


소방관들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물론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혹은 착오나 오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살리지 못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런 주어진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최선을 다해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했었다. 정작 불을 내고서도 뒤늦게 신고하고, 소방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거나 관리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건물주에 대한 비판은 어느 언론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비판은 불이 난 원인에 대해 돌려져야 하는데 소방관들에게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만 유족들까지 따져묻고 있는 중이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가. 어째서 유가족들과 소방관이 서로 불신하며 적대해야만 하는 것인가.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부추기는가.


이러니 기레기소리를 듣는 것이다. 소방관청의 해명도 들어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한정된 인력과 장비, 예산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바를 최선을 다해 해온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유가족 입장에서 당장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것을 돕는 것이 바로 기자들인 것이다. 더구나 그런 무책임한 중계식 보도에 다른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화재를 핑계로 문재인 정부와 그 지지자를 비난하는 글들이 부쩍 늘고 있다. 진보고 보수고 할 것 없이 이렇게 노골적이면 웃음만 나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고였고 있어서는 안되는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 철두철미하게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보도할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하다. 혼란과 동요를 최소화하고 회복과 치유를 도울 수 있는 그런 기사들이 필요하다. 싸움을 붙이고 갈등을 키운다. 한국 언론의 처참한 현실이다.

정부를 손봐주고 싶다. 없는 이야기도 만든다. 있는 이야기는 부풀려 더 키운다.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중국방문까지도 철저히 독자의 눈과 귀를 가려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려 했다. 이제 또 무슨 껀수가 없을까?


어딘가 불이 났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피해자와 유가족 가운데 소방당국의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방당국의 책임은 곧 행정부의 책임, 행정부의 책임은 곧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책임. 아, 일단 이거 써먹고 보자. 유리창을 깨서라도 사람들을 구해야 했는데 소방관들이 그러지 않았다. 생존자들이 갇혀서 살기 위해 유리창을 깨려 필사적이었는데 밖에서 물만 뿌리고 있었다. 소방관들의 잘못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영화에도 제법 많이 나온다. 밀폐된 공간에서 불이 났을 때 섣부르게 창이나 문을 깨거나 열면 갑작스럽게 유입된 산소로 불길이 폭발적으로 역류한다. 이른바 백드리프트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폭발하다시피 순식간에 불길이 이는 것이라 그 과정에서 많은 사고가 일어나고는 한다. 불을 끄는 것도 과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유가족의 인터뷰를 그대로 기사로 내보낸다. 소방관을 욕먹이는 것은 정부를 욕먹이는 것이다.


소방인력도 부족하다. 시설이며 장비 역시 열악하기만 하다. 고층에서 사람을 구할 사다리차의 문제마저 소방관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 그동안 소방인력을 충원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정면으로 막아서고 혹은 아예 외면하며 무시했던 것이 바로 누구였는가. 아예 한 푼도 늘리지 못하겠다며 막말까지 쏟아내던 야당에 대해 그나마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소방관의 탓을 한다. 소방관은 머리가 세 개고 팔이 스무개고 목숨은 아홉개쯤 되는 것인가? 예산지원 없이 없는 장비로 불끄는 신기한 능력이라도 가진 것인가. 현실은 저스티스 리그가 아니다.


이런 데서도 확실히 언론의 속내가 드러난다. 저놈들은 하이에나다. 진실따위 상관없다. 무엇이 진실인가따위 전혀 관심조차 없다. 중요한 것은 현정부를 엿먹이는 것이다. 그를 위해 꼬투리를 잡는 것이다. 별 것 아닌 문외한들조차 아는 사실을 외면한 채 그럴 수 있으면 아무거라도 - 아니 아예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내보낼 수 있다. 의도가 있거나 아니면 도저히 구제가 안 될 정도로 멍청하거나. 나름대로 대학도 졸업한 인재들일 텐데도.


불행한 사고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의도를 위해 그것을 이용하려 드는 기레기들의 모습에 구역질이 날 정도다. 그러니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제는 보고 있기도 지치는 수준이다. 그냥 모두가 편하게 다 망해버렸으면. 토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친구집에 놀러간 경우다. 돌아와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것도 친구에게 들리도록 티나게. 기껏 친구가 찾아갔는데 자기 볼 일 있다고 집에도 없었다. 집에 없어서 혼자 한 끼를 차려먹어야 했다. 겨우 인사한다면서 어깨를 툭툭 치더라. 홀대받았다. 기분이 어떻겠는가?


기자놈들이 열받게 하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겨우 쓴다. 언론 한둘이 아니다. 찌라시 하나나 둘이 저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야당 대부분이 같은 소리를 읊어대고 있다. 홀대받았다. 무시했다. 그러므로 외교는 실패했다. 정작 중국 정부는 성공적이었다 하는데 한국에서 언론과 야당들이 한목소리로 홀대받은 실패한 외교였다며 비하한다. 그냥 문재인 정부만 비하한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맞았던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다.


원래 외교일정이란 일조일석에 즉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정상이 방문할 정도면 벌써 한 달 혹은 그 전부터 조율이 시작된다. 어떻게 만나고 어떤 행사를 가지고 어떤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한국 정부가 그러고 싶다고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정부가 그러겠다고 일방적으로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조율이 끝나지 않으면 방문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행사는 그 하나하나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기호가 될 수 있다. 어째서 이런 식으로 기획을 하고 동선을 짰는가. 당사자들이 어떤 의도로 그같은 일정에 동의를 했는가.


다 무시한 채 드러난 행동만을 보고 무시한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디테일을 가지고서 홀대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식 논평을 보라.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 언론들의 보도를 보라. 무엇보다 방중의 결과를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폄하하기 위해 아예 중요한 외교파트너인 중국정부를 지우다시피 한다. 중국과 외교를 그만두었어야 했다. 중국에 전쟁을 선포해도 시원치 않았다. 저런 놈들이 정권을 잡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스러울 뿐.


다시 말하지만 한국 정부가 납득하고 동의했다면 어쨌거나 그것은 홀대가 될 수 없다. 일 때문에 늦으며 두 시간만 집 앞에서 기다리라. 그러겠다 했으면 그 또한 만남의 과정이다. 오히려 자기가 없는 사이 집안에서 직접 무엇이든 챙겨먹으라 했다면 크게 배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이 없는데서 외국정상이 중국국민들과 격의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중국의 사정이 그것밖에 안된다. 중국정부의 입장이 지금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알았다 한 순간 사정에 맞는 최선의 예우가 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맥락을 찾아야지 겉으로만 보고 홀대했다 실패했다 수치다.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그딴 식으로 쳐맞고 다니는 것이다. 멱살잡이나 할 줄 알았지 그런 맥락을 읽을 줄이나 알까.


중국이 대인배다. 그보다는 문재인이 워낙 잘하고 돌아왔다. 아니었으면 한국 언론과 야당들이 쏟아내는 말들만으로 중국정부가 당장 보복에 나서도 할 말 없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만 편파적인 것이 아니다. 중국 정부에도 무례한 것이다. 공식채널이었다면 중국정부에 대한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 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를 잘 풀고 나니 별 찌그레기들이 배설을 해대는 꼬락서니랄까.


한국 언론의 처참한 현주소다. 한국 정치의 한심한 현실이다. 저런 것들이 심지어 유력대선주자로 손꼽힌 적이 있었다. 하긴 그렇게 바람을 넣은 것도 언론인 자신들이다. 한국에서 언론이란 것이 의미가 있는가. 이제는 나가 죽어도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 같다. 쓰레기에 미안하다. 

물론 이성적인 것 좋다. 항상 냉정하게 객관적인 사실만을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그래서 남는 게 무언데?


당연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현실에서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정치인들이다. 이를테면 언론인들이다. 검사나 판사 경찰들이다. 지식인들이다. 그만큼 사회와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감정에 휩쓸리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에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개인은 다르다. 어차피 개인은 경찰이 아니다. 특정한 대상을 수사하거나 기소하거나 재판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와 관련해서 법을 만들거나 행정조치를 하는 것 역시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욕하는 것이다. 예의도 격식도 품위도 내던진 채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배설하는 것이다.


"저 놈 개새끼다!"


그것이 여론이 된다. 그것이 평판이 된다. 그마저도 금지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막걸리 먹다가 대통령 험담 좀 했다고 잡아다 고문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백성이 억울해서 나랏님 욕 좀 안 들리는데서 한다는데 뭘 어쩌라는 것인가? 차라리 조선시대에는 그같은 백성들의 원성을 귀기울여 듣는 것이 임금이 가져야 할 자세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었다. 배운 것도 없고 그래서 아는 것도 구애되는 것도 없는 백성들의 솔직한 한 마디 한 마디를 정성으로 듣고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실제 그런 임금은 역사상 아주 드물다.


몇 년 전 종영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정기준의 말 가운데 크게 동의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배우게 됨으로써 오히려 백성은 어리석어질 것이다. 솔직한 감정이 가리키는 바가 있었다. 당장의 현실에서 직접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배우지 않아도 안다.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낀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런데 그것을 굳이 익숙지도 않은 다른 누군가의 지식과 논리로 풀어내려 한다. 엄격하고 엄숙하게 격식을 갖추어 사고하고 행동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경 무지렁이 백성들과는 상관없는 누군가가 만든 것일 터다.


개새끼는 그냥 개새끼다.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다. 그것으로 족하다.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검사고 판삭고 그같은 솔직한 대중의 직관적인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내세운 기준이 아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대중 자신이 가진 솔직한 표현에 의한 것이다. 물론 굳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들을 필요도 인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자신들의 이익이 대중에 있다면 귀기울일 필요는 있다. 얼마나 대중을 우습게 여기는가. 대중이 욕해도 그 형식과 절차를 트집잡는다. 그러므로 대중의 비판은 자신들에게 아무 가치도 없다.


최근 중국에서 기자가 폭행당한 것을 두고 언론과 대중이 부딪히는 지점일 것이다. 대중들에게 기자란 쓰레기다. 그래서 기레기다. 그러니까 나가서 맞았어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에서 하던 것들이 있느니 결국 그것이 나가서 맞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잘 맞았다. 맞아도 싸다. 그나마 온건한 것이 그래서 맞아서 뭐 어쨌는데? 아무것도 가릴 것 없는 기자들에 대한 대중의 솔직한 속내다.


신문을 보지 않은지가 꽤 되었다. 포털 기사도 어지간하면 잘 보지 않는다. 같지도 않은 기사들이 너무 많다. 도저히 믿어야 하는가 판단이 서지 않는 기사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믿기에는 기자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런 기자들이 나가서 맞았다. 맞았거나 말거나. 결국 한국에서 하던대로 하다가 맞지 않았을까.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관심조차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원래 그런 놈들이다. 그것이 여론이 되는 것이다. 중국 사설경호원들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더 잘못한 것은 기자들이다. 그 무논리와 불합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평생 그러고 살 수밖에 없다.


하여튼 너무 귀찮고 복잡한 것이다. 이러이러해서 나쁘다. 이런 점들이 이런 이유로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이런 식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하지만 더 쉽고 간단한 한 마디가 있다.


"쓰레기네!"


딱 이 한 마디로 요약되는 것이다. 기자들이 중국에서 경호원들에 폭행당한 사실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한가롭지가 않은 것이다. 그냥 늬들이 쓰레기다. 수많은 말들을 압축해서 이 한 마디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늬들이 맞든 말든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시끄럽게만 말라. 그게 바로 이 사회에서 기레기들이 가지는 의미인 것이다.


참 어려운 말들 많이 쓴다. 복잡하게도 잘도 꾸며 말한다. 진실은 그게 아닌데도. 너무 많이 배운 탓이다. 쓸데없이 아는 것만 많아 생각만 어렵게 한다. 진실은 쉽다. 그래서 때로 우습게 여겨진다. 하찮다.



외교의 목적은 오로지 국가적 이익의 추구에 있다. 국가적은 이익을 늘리고 혹은 지키기 위해 정부는 국경밖 외국의 정부와 협상이라는 걸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설득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 혹은 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외교의 결과에 대해서도 오로지 그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자국의 이익을 늘렸고 손해를 줄였는가?


사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 그토록 강조하던 3불원칙에 대한 압박 또한 없었다. 중국 역시 아쉬운 것이 많고 바라는 것이 많다. 불만인 것도 많고 그래서 요구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외교라는 것이다. 어차피 들어줄 수 없는 것으로 압박해봐야 사이만 불편해질 뿐이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이상 한국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나라와의 관계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의 필요이기도 하지만 한국정부가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던 사드보복의 완전한 철회까지 이끌어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중국과 한국 정부 사이에 경제채널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국정부가 한국정부에 많은 것을 배려하고 양보했다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결과다. 


한 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사드 뒤통수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한중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좋아지는 것은 앞으로 남은 과제지만 최소한 더 나빠지기 전으로는 되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과연 어느 언론이 그런 방중외교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결과 어떤 성과를 내었는가 제대로 사실이나마 보도한 언론이 몇이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오로지 대통령이 밥을 혼자서 몇 끼를 먹었고, 그나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기자가 그것도 중국의 사설경호원에게 맞은 기사 뿐이다. 비로소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밀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기자가 맞았으니 외교도 그만두고 돌아왔어야 했다. 대통령 경호원들이 대통령보다 기자들을 경호했어야 했다. 기자가 국가다. 기자의 안위가 곧 국익이고 외교여야 한다. 


정작 중요한 외교성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쉴 새 없이 자기들 얻어맞은 것만 기사화하고 있다. 얻어맞은 것에 대해 중국정부를 탓하고, 심지어 한국 정부를 탓하고, 대통령과 정부에게 무능의 낙인을 찍으려 발버둥이다. 괜히 사람들이 그래도 같은 국민들인데 외국인 사설경호원에게 폭행당해 중상을 입은 것을 두고도 속시원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기껏 기자랍식고 따라가서는 제대로 된 기사 한 줄 내보내지 않았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중국에서 보이는 말과 행동들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분석해 보도하지 않았었다. 자기들 맞은 것만 큰 일이다. 자기들 맞은 것만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큰 일이다. 오냐오냐 했더니 아주 거만이 하늘을 찌른다. 기자를 위해 국정도 외교도 해야 한다. 대통령의 경호를 포기하더라도 기자의 경호까지 경호처에서 알아서 신경써주여야 한다. 바로 국민의 세금이다.


새삼 노무현 전대통령이 어째서 청와대 기자실을 폐쇄하라 지시했는가 납득하게 된다. 진보도 보수도 없다. 기자란 하나의 계급이다. 커넥션이다. 그리고 권력이다. 정부마저 언론의 자유를 명분으로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려 한다. 그렇다고 국민을 위해 진실을 보도하려는 의지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이명박과 박근혜가 저리 패악을 저지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언론이기는 한가.


중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다지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인 것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중국은 한국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한때 최악까지 치달았던 관계를 다시 정상화시키려는 중요한 방문인 것이다. 실패하라고 비는 것인지. 아니면 실패해야 한다고 단정지은 것인지. 심지어 아직 방문하기도 전인에 한국정부를 압박하겠다고 중국정부를 자극할 수 있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직 공식일정을 시작도 안했는데 홀대론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중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가려 했었다. 그리고 이제 방중외교의 성과에 기자가 폭행당한 사실만 남긴다. 국가도 국민도 없고 기자만 있다. 그러니까 기자인 자신들만 괜찮으면 박근혜도 괜찮은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단지 같은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며 그들과 함께 분노해야 하는 것일까? 저들에게도 기자인 자신들밖에 없는데.


아주 기사로 발악중이다. 뭐라 떠들기는 하는데 귀찮아 읽지도 않는다. 대충 하는 말은 알겠다. 동네에서 사고치던 양아치가 밖에서 두들겨 맞고 왔다. 속시원할 뿐 굳이 왜 맞았는가 알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와중에도 동네에서 패악질 부리는데 이유따위 알아서 무엇하는가. 아직도 신문과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문제다. 기자도 언론도 아닌 것들이 기자입네 언론입네 떠든다. 한심한 것이다.

경호원의 임무는 말 그대로 경호대상을 경호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시설이든 외부의 의도하지 않은 변화로부터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은 존재한다. 정확히 고용된다. 고용주가 허용한 이외에는 경호선 안으로 진입시키지 않는다. 안그러면 잘린다. 너무 당연하다.


대충 어떻게 된 사정인가를 들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기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편집한 기사들을 여럿 읽었다. 그냥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아마 경호나 경비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은 다들 알 것이다. 자기가 뭐 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호나 경비에 대해 얼마나 하찮게 우습게 여기는가를. 임무가 그것이기에 제지하고 통과시키지 않는 것인데 그런 경호원 경비원에 대해 오만 진상을 다 떨어댄다.


"내가 누구인 줄 알아?"


그러니까 외국 나가서도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중국 사설경호원들에게도 우리나라에서 하던대로 하면 된다 여겼던 모양이다. 자기들이 청와대 출입기자이니 청와대 요인들과 동급이라고. 오죽하면 청와대 경호원들이 자기들 지켜주지 않았다고 기사로 지랄할까? 청와대 경호원들이 기자들 경호해주는 사람들인가? 그럴 자격이나 있는가? 중국 경호원들도 대응이 지나쳤다는 점에서 잘한 것은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안에서 새던 바가지 밖에서도 샌 정황이 아주 강하다. 경호원이 안된다 하면 정식 계통을 거쳐서 항의해야지 경호원에게 싸움 걸어봐야 뭐 어쩌겠는가?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다. 외부인의 출입은 더욱 엄격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


기자라는 게 벼슬이 아니다. 특권도 아니다.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경호원들이 봐줘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방법은 거칠었다. 사실 경호수칙에도 물리적 충돌은 최소화할 것을 규정했다. 명백한 경호원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행동이 정당했는가. 무작정 경호원들의 탓만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막으려는 사람이 생긴다. 거칠게 들어가려 하면 자연스럽게 더 거칠게 막아서게 된다. 어째서 하필 기자였을까? 달른 사람은 큰 문제 없는데 기자들만 맞은 것일까? 참석한 다른 한국기업가나 교민들은 별 탈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있었다.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기자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다. 원래 기자란 그런 무리들임을 아는 것이다. 아무도 청와대 출입기자를 국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청와대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모욕당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나 자신부터 전혀 모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살인강간범도 한국인이니 외국에서 대우받고 다녀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쓰레기는 쓰레기. 기레기도 기레기. 자기들끼리만 난리다. 심지어 중국과의 외교마저 중단하라? 누구를 위한 외교인데? 그마저도 기자가 기자했다. 기레기가 기레기했다. 너무 어울려서 그냥 웃음만 난다.


이스라엘에서 미국인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자국민의 안위를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이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그것이 외교다. 그래서 외교란 때로 잔인할 정도로 비정하고 치사할 정도로 냉혹한 것이다. 하물며 기자들이 고작 사설경호원들에게 맞았다고 외교를 중단하라느니 외교부가 책임지라느니 심지어 청와대의 사과를 요구한다. 중국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한다. 하긴 그래서 굴욕외교였던가? 홀대였던가? 청와대 출입기자씩이나 되어 외교를 뭐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침부터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기자라는 것들이 하나가 되어 짹짹거리고 있다. 진짜 기자란 직업이 대단하기는 대단한 모양이다. 기자 하나를 위해서 중국과 같은 중요한 나라와의 외교마저 결정하라 한다. 원래 그런 놈들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감탄할 뿐이다. 괜히 중국 경호원들보다 기자들이 더 욕먹는 것이 아니다. 후속기사가 어지간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여론이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 가기 전부터 그랬었다. 중국에 가고 난 뒤에도 나오는 기사들이라는 것이 뻔하다. 그런 기사나 쓰라고 청와대 기자단을 운영하는 이유를 이제는 모르겠다. 자기들 맞은 일만은 열심히 기사로 쓴다. 그래서 기레기다. 훌륭하다.

  1. ㅇㅇ 2017.12.15 16:15 신고

    "중국 경호원한테 기자들 폭행당할때 김정숙 여사는 스카프 나누고 있었어"

    이게 오늘자 기사 제목입니다.

    이래서 기레기 기레기 소리를 안들을수가 없네요.

    쟤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 쳐맞아야해요

  2. 달이 2017.12.15 16:43 신고

    한국일보는 정부경호원들이 대통령 경호에만 몰두하고 기자들은 안도와줬다고 까더라구요 ㅋㅋ 국격떨어진다고 ㅋㅋ
    그럼 당연히 대통령이 보호 받아야지 어느나라가 기자들한테 경호원까지 붙여주나요?
    오냐오냐하니까 대통령 머리 위까지 올라간 기레기들.. 쟤들 머릿속엔 지들이 메시아라도 되는줄 아나봄. 기레기들은 죽을때까지 더 때려야됨

  3. 민재아빠 2017.12.16 14:28 신고

    기레기가 괜히 기레기일까요? 기레기니 기레기죠.

  4. wlsl 2017.12.17 08:30 신고

    그 대단하다는 기자들이 이명박근혜 특히 박근혜 때는 말한마디 못했죠

    참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국민만 아는

    기래기들
    청와대 출입처는 반드시 해체해야,,,
    그들은 오보나 왜곡 기사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는 건 오히려 그쪽으로 몰고간다는 건
    아직도 국민들이 지들보나 못하다고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들보다 더 국제정세에 전문성이 많고고 영어 중국어에 전문가 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기래기들도 완전 나라를 망친 적폐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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