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왕 선조가 이후 조선의 역사에 끼친 가장 큰 해악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기축옥사를 첫손에 꼽는다. 사실 이순신을 죽이려 한 것도 그럴 수 있다 보고, 아예 일본군을 피해 중국으로 도망가려 했던 것도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다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이순신을 고문했지만 아예 죽이지 않았기도 하고,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맞아서도 왕권을 지키면서 복구까지 국정을 나름 잘 수행하기도 했었다. 전쟁에 대한 대비가 안되었다는 부분도 당시 10만이 넘는 병력을 바다 건너로 투사할 수 있는 나라가 드물었었고, 지리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일본이 조선보다 영토도 크고 인구도 많다는 사실을 일본조차도 아직 알지 못하던 때이기도 했다. 오히려 진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라면 바로 기축옥사일 텐데...
기축옥사 이전까지 조선조정에서 당쟁이라고 해봐야 서로 무리를 지어서 상대의 뒷담화나 하고 조정에서 논의할 때 상대의 논리를 깎아내려 우위를 점하려는 정도였다. 그렇게 국왕의 신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상대정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서 더 많은 좋은 관직을 자기들이 가지고 싶다는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고 있었다. 일단 연산군 때부터 수도 없이 사화를 겪으면서 수많은 선비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죽어나간 선비들이 당시 조정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사림 자신들에게도 스승이거나 선배이거나 일문이거나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인 가운데 누군가는 연루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사림 자신이 대개 학맥을 따라 나뉜 경우라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단한 학자를 배경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유학자로서 딱히 그 이상의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기도 했었다. 그런데 선조가 갈수록 비대해지는 신료들의, 정확히 사대부들의 힘을 꺾기 위해 송익필의 무고를 빌미로 정여립의 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부터 상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송익필이 정여립을 무고한 이유부터 노비로써 자신의 주인을 무고하여 몰락케 한 가문의 범죄에 연루되어 하루아침에 존경받는 유학자에서 노비로 신분이 추락한 데 대한 보복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을 선조가 정여립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까지 섞어서 크게 옥사로까지 이어지면서 당연하게 증오와 혐오와 경멸이 더해진 크나큰 피바람이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 몰아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이때도 선조는 역적에게 자비는 없다며 그동안 늙은 여인이나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는 고문하지 않던 전례까지 무시하고 연루된 사대부들의 늙은 어머니나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고문하게 하는 등 상황이 더 극단으로 치닫도록 부추기고 있기도 했었다. 실제 사화라고는 하지만 연산군 때부터 정작 죄를 지었다는 사대부들 자신은 죽거나 귀양을 갔더라도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일가족까지 고문받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었다. 그런데 기축옥사에 이르면 그런 것 상관없이 아예 호남에서는 사대부의 씨가 말랐다 할 정도로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 그 희생자만 물경 천 단위를 넘어갈 정도였었다. 괜히 조선의 유학사를 이야기할 때 호남 유림은 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때 가장 큰 희생자를 냈던 것이 바로 호남유림이었었고, 그 결과 아예 그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호남유림은 조선사회에서 주변으로 내몰리게 되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렇게나 크게, 그것도 전례없이 잔혹하게 피바람이 분 결과 조선의 유림 사이에는 씻을 수 없는 원한의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
조선 광해군 때 북인들이 당시 기축옥사에서 선조의 의도대로 남명 조식의 학맥들로 이루어진 호남의 유림을 절딴내는데 앞장섰었던 서인은 물론 그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남인들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였었다. 아니 그 전에 이산해는 세자의 책봉을 둘러싸고 정철을 꼬드겨서 나서게 한 뒤 바로 뒤를 쳐서 그를 모함해 귀양을 가게 한 전력이 있었다. 이때도 선주는 이미 쓸모가 다한 정철을 제거하고 조정에서 힘을 얻기 시작한 서인을 누르기 위해 이산해의 모함을 기꺼이 이용해주는 면밀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아예 서인 전부를 호남의 동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씨몰살하려 했던 이산해의 의도를 선조의 뜻을 받든 류성룡이 막아서면서 다시 동인 안에서 북인과 남인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피로써 쌓은 원한이니 피로써 씻어야 한다. 서인이 집권하고 북인은 아예 조정에 출사조차 못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이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칠순을 넘기면 사사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또 깨고서 서인이 정인홍을 사사하여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여기가 당쟁의 1막이다. 인조반정이 비단 인조 개인의 왕위에 대한 욕심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튼 그렇게 선조가 씨앗을 뿌린 피로 피를 씻는 증오와 원한에 의한 당쟁이라는 줄기는 다시 아버지에 이어 자신까지 적장자로 즉위하면서 정통성에 대해 감히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었던 숙종대에 다시 크게 꽃을 피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요즘 자칭 중도들 사이에서 꽤나 현명한 투표방식으로 회자되고 있는 환국이었었다. 처음에는 서인으로, 그 다음에는 남인으로, 그러다가 다시 서인에게로, 그러면서 그때마다 상대 당파의 중요인물들을 죄다 죽이고 귀양보내고 하다 보니 학연과 혈연으로 이어진 당파 사이에 원한과 증오가 쌓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 당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 더 악착같이 상대 당파를 죽이고 벌주고, 그러니까 더욱 그 복수를 위해서라도 왕에게 잘보이기 위해 경쟁하면서 상대 당파를 죽이고 벌주려 하고, 그렇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상대 당파가 인정하는 왕은 자기 당파에서 인정할 수 없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인좌가 노론의 당여이기도 했던 영조를 인정하지 못했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나, 노론의 선비가 경종은 자기들의 왕이 아니라면서 그 능 앞을 말을 탄 채 지나간 사건들이 그 결과인 것이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환국이 정작 너무 깊이 패인 원한의 골로 인해 왕마저 무시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괜히 영조가 탕평을 내세운 게 아니란 뜻이다.
너무 서로 죽고 죽이다 보니 그 원한으로 인해 왕마저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당파간의 결집이 강해지면서 신하로써 충성을 바쳐야 할 왕마저 그 이후로 밀리는 상황마저 벌어지게 되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서도 구선복을 제거하는데 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보내야 했던 이유였다. 오히려 사저에 있으면서 노론과 자주 교류했었기에 영조 자신이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노론에게 경종은 왕이 아니었고, 소론에게도 영조는 그러했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조정 안에 두 당파가 공존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앞에서 충성을 경쟁하도록 몰아갔던 것이었다. 바로 기축옥사 이전 선조의 조정이 그러했었다. 돌고 돌아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 정작 왕권을 위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조는 자신의 친위세력을 만들려다가 세도정치의 판을 깔아주고 말았었으니...
바로 주권자로서 중도적인 국민들의 가장 현명한 투표방식으로 극찬받는 환국투표의 현실일 것이다. 환국투표의 전제 자체가 그렇다. 정치인들은 모두 썩어 있고 믿을 수 없으니 매번 정권을 바꿔주어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정책의 일관성이고 나발이고 얼마나 좋은 정책과 인물로 정당들이 경쟁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죽임으로써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대립하고 대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 깨끗해진다. 하지만 그같은 복수의 정치에는 결국 국민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컷 정치보복하고 마음대로 정권을 휘두르다가 다시 내어주려 하니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헌법마저 무시하는 상황이 바로 그 예일 것이다. 인물이 좆같고 정책이 똥같으면 조금이라도 나은 정당에 계속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데, 조금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으면 그를 심판하기 위해서 죽일 수 있는 상대정파를 인물도 정책도 따지지 않고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어도 역시나 그렇게 투표하도록 만든 상대 정당의 책임으로 돌린다. 이야말로 무오하다는 전제왕조의 군주나 쓸 법한 논리 아니던가.
조선시대에 환국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찌되었거나 당시 조선에서 주권자는 국왕 자신이었고, 따라서 국정 또한 국왕 자신이 주도해서 직접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바뀌지 않고 행정부와 국회만 바뀌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 대통령까지 바꿔 버린다. 내정이고 외교고 죄다 내다버리고 그냥 서로 죽고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도록 의도적으로 유권자가 몰아가 버린다. 그것을 현명한 투표고 올바른 정치라 여긴다. 이번에는 문재인과 이재명 감옥에 보냈으니 다음에는 윤석열과 김건희 감옥에 보내자. 교육을 탓하기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놈들이 대개 특정 세대 특정 성별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그냥 미친 것이다. 대가리가 썩은 것이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정치가 곧 현실이라는 자각이 없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자신의 삶까지 정의할 수 있다. 당장 내 월급과 내 일하는 환경과 조건과 직접 닿아 있을 것임에도.
아직 문재인과 이재명을 감옥에 보내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대선을 치르면 이재명이 나오게 될 것이다. 현재 계엄에는 반대하면서도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는 이들의 논리일 것이다. 아직 환국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시 환국을 할 수는 없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놈들이 이렇게나 많다. 아, 드라마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왕권강화는 선이다. 신하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악이다. 정치란 곧 신하들이 하는 짓거리와 같다. 당시의 당파싸움과 같다. 자기들이 왕이라 여기는 것일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아직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새삼 가르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 자란 어른의 생각을 어찌 바꿀까? 한심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