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한반도에는 무자리라 불리우는 유민집단이 있었다. 달리 화척이라고도, 혹은 수척이나 양수척이라고도 불리던 이들은 고려의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떠돌면서 각종 천직에 종사하던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여진이거나 혹은 몽골에 쫓겨왔던 거란의 유민들이거나, 아니면 고려인 가운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말 그대로 유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참고로 삼국시대 북방의 이민족을 부르던 말갈을 고대 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역시 뭍잣이 된다.
물론 고려야 워낙 중세의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백성들을 단지 생산을 위한 수단이자 소유의 대상으로만 여겼었기에 굳이 떠돌이 유민들에게까지 크게 신경쓰거자 하지 않았었다. 기존에 정착해 있는 백성들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었는데, 더구나 무신난 이후 원의 간섭기를 거치며 사실상 중앙집권이 와해되다시피 했던 고려조정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해 볼 여지 자체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에 의해 다스려지는 농업국가를 지향했던 조선은 달랐다. 단 한 뼘이라도 농지를 늘리고 생산을 늘려야 하는 입장에서, 더구나 고려말의 혼란기를 거치며 인구가 크게 줄어들기까지 한 상황에서, 이와 같이 제도의 밖에서 통제를 벗어나 존재하는 인구라는 것은 꽤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선조정은 조선전기 내내 이들의 정착과 동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아마 학교 다니면서 배웠을 것이다. 원래 백정은 평범한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던 호칭이었다. 말했듯 원래 천업에 종사하던 이들 이질집단들은 화척이나 수척, 양수척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조정에서 이들을 조선사회에 동화시킬 목적으로 백정이라 부르기 시작하니까 그에 대한 반발로 백정이란 이름은 그들에게 던져주고 기존의 백성들은 달리 백성이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 어째서 조선조정의 강력한 의지에도 백정은 원래 화척이라 불리우던 천민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을까? 바로 이질적 집단에 대한 정착과 동화정책들이 달리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가 떠올려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원래 기존의 자신들만의 방식을 지키며 살던 사람들에게 다른 조선의 백성들처럼 살도록 공권력을 사용해 강제했다. 요즘 기준으로 이런 정책들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맞다. 민족말살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일제강점기까지 함경도 산간지방에는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사는 여진족의 후예들이 적잖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더구나 북한에 공산주의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모두 잃고 철저히 북한사회에 동화되어 사라져갔다. 말이 좋아 동화지 그냥 하나의 민족과 문화가 권력에 의해 철저히 탄압받고 사라진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원래 보르도 지방에서 쓰이던 언어를 다시 복원하자는 운동이 한 때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가 국민국가가 되면서 철저히 제도적으로 탄압당하고 강제당했던 결과였다. 그래서 지금 중국에 사는 사람들을 한족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원래 중권을 제외한 지역들에는 저족이니 강족이니 장족이니 해서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원래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잃고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두고 동화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같은 일이 조선 전기 무자리들에 대해서도 이루어졌다.
아예 잡아다 한 지역에 땅까지 주어가며 정착케 했더니만 여전히 떠돌아다니려고만 하니까 심지어 그들로부터 여자들을 모두 빼앗아 관기로 삼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남사당들이었다. 그러고보면 무자리들과 유럽의 집시들 사이에 비슷한 점이 제법 많기도 하다. 일단 무자리들도 자기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그것을 기존의 정착민들에게 공연의 형식으로 보여주며 곡식과 돈을 받아 생활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여자를 죄다 빼앗아 관기로 삼고 나니 기존의 정착민 가운데 남자아이들을 납치하든 유인해서든 사들이든 데려다가 계속해서 무리를 이어나간 것이 바로 남사당인 것이었다. 역시나 원래 가축을 기르며 떠돌던 이들인 만큼 가죽 만지는 기술이 좋아 가죽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혹은 광주리 같은 나무나 다른 재료로 만든 자기들만의 공예품을 만들어 기존의 정착민들에게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들의 대표적으로 업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 고려 때까지 불교를 믿었었던 만큼 도축에 종사하는 이가 없었던 정착민들을 대신해서 소와 돼지와 개 등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정이라고 하면 일단 도축업에 종사하는 천민들부터 떠올리게 된다. 갖바치도 있었고 고리백정도 있었고 남사당도 당연히 비슷한 유래를 갖는 천민들이었다.
이렇게 당시 상황을 정주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이주민 유랑집단으로 정리해 놓고 나니 대충 그림이 보인다. 어째서 임꺽정은 무리를 이끌고 도적질에 나섰고 그 규모가 당시를 떨어울릴 정도가 되었는가? 사실 임꺽정이 아니더라도 조선전기 내내 정착과 동화를 거부하는 무자리들로 인해 소요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냥 무작정 정착지를 버리고 도망치면 양반이고 아예 대놓고 다른 정착민들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원래 하던대로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납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조선 전기 내내 그토록 무자리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인내하며 많은 정책들을 내놓았던 조정에서도 아예 손을 놓아 버리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백정들에게는 세금도 걷지 않았었다. 군역도 살지 않았었다. 신분은 천민인데 세금도 걷지 않고 군역도 살지 않으니 알부자들이 제법 많았었다. 물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으니 돈이 많다고 마냥 행세를 하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었다. 그냥 저 놈들은 천민으로 내버려두고 살자. 그것이 어느 정도 백정들도 조선을 이루는 천민으로 인식하게 된 후기까지도 이어져서 일제강점기 형평사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임꺽정이 도적질을 시작한 조선 명종대에 척족인 윤씨일파에 의해 황해도 간척이 이루어지면서 백성들에 대한 수탈까지 극심해지게 되었다.
아마 지금 나더러 드라마로 만들라 하면 이렇게 만들 것이다. 여진은 좀 식상하고 원래 고려를 위협하던 거란 귀족의 후예로써 거란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자기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살았었는데 어느날 조선이 건국되더니 자기들더러 고려인이 되라 강요한다. 땅을 주고 정착해서 농사나 지으며 살라는데 그것은 자기들이 그동안 지켜온 전통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선가는 여자들을 죄다 납치해가고, 어디선가는 아예 마음대로 이동조차 못하게 울타리까지 쳐놓고, 어디선가는 그래서 참다못해 산으로 도망쳐 도적이 된 이들마저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하필 척족 윤씨일파와 닿아 있는 탐관오리가 와서 자꾸만 자기들을 긁어댄다. 참아야 하는가? 아, 이러고 나니 오래전 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영화가 생각나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도 산으로 들어갔더니 당시 조선조정에 불만을 품은 조선백성들까지 다수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안되겠지? 어디 감히 백의민족이 다른 민족을 탄압씩이나 했겠는가?
사람에 따라서는 임꺽정이 힘이 장사였다는 점에서 그가 북방에서도 코카서스계인 유목민의 후손이 아니었는가 추측하기도 한다. 구한말의 기록 가운데 백인을 보았다는 내용도 있고 보면 아주 근거가 없는 것만도 아닐 터다. 당장 몽골인들만 보더라도 몽골고원에서 당시 수많은 유목민족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9천 년 전까지 함께 생활했었다는 일각의 가설이 무색할 정도로 다부진 몸과 강한 근력을 보이고 있지 않던가. 그런 점에서 어쩌면 고려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몽골인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다 가능성일 뿐이지만. 이미 사라진 역사이고 전통이었을 테니. 지금은 백정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지 않은가. 그리 많았던 백정이건만 후손조차 남기지 못했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