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 논란에서도 말한 적 있었지만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징벌사회라 할 수 있다. 실력없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조차 누리지 못하고 가난과 좌절과 절망 속에 신음하며 사는 것은 어쩌면 매우 정의로운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노력하고 실력을 갖추려 할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면 그 반대편에 뭐가 있어야 하는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보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직원들이 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화를 앞장서서 반대한 이유도 이것이다. 내가 그렇게 노력해서 정규직씩이나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공기업 정규직이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하는 일 자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 같은 건 그들에게는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단지 자기들처럼 노력도 안했고 실력도 없는 무지렁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정규직이라 불리게 될 것이란 자체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노력 않고 실력도 없으니 벌받는 게 당연하고 자기들은 노력도 했고 실력도 있으니 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 보안검색요원들이 정규직된다고 자기들처럼 급여도 오르고 사무직으로도 전환될 것이라며 되도 않는 주장을 하고 스스로도 강하게 믿는 자체가 그같은 자신의 노력이 부정될 지 모른다는 절박한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는 어떨까? 이과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이들이 선택받아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의대였다는 것이다. 이과 나와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도 존경과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의사인 때문이었다. 의대를 나와 의사만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가난한 집 출신들은 신분도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다 참고 고등학교까지 공부만 했으며, 의대에 가서도 그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버티며 수련의도 거치고 전공의도 거치며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의대를, 자기는 그렇게 어렵게 딴 의사자격증을 이제는 정원도 수 천 명이나 늘려 마구 퍼주겠다 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 벌어야 할 돈은? 내가 누려야 할 명성과 지위는? 본전생각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의사라는 아주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정부도 자기들을 특별하게 예우해야 한다.

 

의사들이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정부는 기본적으로 의사를 이 사회를 이루는 여러 구조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의료라고 하는 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의 하나로 여기는 것이다. 반면 보수정당에서는 의사들을 검사들처럼 특별한 존재로 대우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자기들 자식부터 의사를 시키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이니. 자식들 배우자로 의사가 좋지 않을까 고민하는 이들일 것이니. 어째서 조국 전장관의 딸 조민씨가 부산의전원에 입학한 사실로 온 나라가 들썩였는가. 조민 씨가 어떤 생각으로 의사가 되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의사를 그리 우습게 여기던 민주진영의 자식이 의사라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려 했다는 자체에 대한 반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들이 그랬다지? 어떻게 조국이 그럴 수 있느냐고. 아들이 아닌 딸이 타겟이 된 이유도 그래서라 보는 것이 옳다. 그냥 사회적으로 기능과 역할을 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인가, 아니면 특권을 가진 신분이고 지위인가?

 

의사들이 파업하겠다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의사가 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력한 보상을 받아야겠다. 자신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만 하겠다. 그것은 자신들이 다른 신분들과 다른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할 터다. 딱 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 논란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던 부류들이 딱 이 논쟁에도 비슷한 논리로 같은 입장에 선다. 의사는 보상을 받아야 하고, 공항 보안검색요원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그러므로 의사들 수가를 올려주기 위해서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건강보험의 건전성을 위해 보장은 줄이고 나머지는 민간보험에 맡기라. 이 뭔 개소리인가? 건강보험료 더 나가는 것은 싫고, 그러니까 자기 실력껏 민간보험에 의지해 살아갈 테니 국민보편의 의료복지인 건강보험은 의사들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라. 설사 자기가 그 피해자가 되더라도 그것이 정의라면 받아들이겠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을 끄집어내 가지고 온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상을 받아야 한다. 벌을 받을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고 상을 받을 사람은 상을 받아야 한다. 그 대상이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인 것이고 의사인 것이다. 박형순이라는 판사도 아시아나 해고노동자의 집회는 코로나를 이유로 불허하면서 민경욱의 집회는 허락했었다지? 같은 맥락이다. 어렵게 공부해서 판사씩이나 되었는데 해고노동자들과 같이 놀아서는 정의가 아닌 것이다. 해고노동자들에게는 벌을, 정치인과 같이 성공한 이들에게는 상을. 

 

온 나라가 코로나19의 급속한 재확산으로 난리인 상황에서 의사들만 한가하다. 의대생들, 수련의들, 전공의들만 한가하게 자기 밥그릇 챙기는 중이다. 자기들은 특별한 존재니까.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이들을 찾아서 그들 스스로 광화문까지 찾아갔던 것이고, 광화문에서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부모들부터 그렇게 가르쳐 왔으니. 저들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저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당연한 상식이며 정의다. 어디까지 썩어 있는 것인가.

그리 오랜 일도 아니다. 불과 90년대까지 때만 되면 만화책들 모아서 불태우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었다. 만화는 저급하고 해로운 것이니 아이들이 읽게 해서는 안된다. 누가 그랬을까? 아마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일 것이다. YWCA다. 

 

YWCA는 약자에서도 알 수 있듯 개신교 기반의 여성단체였었다. 한국 YWCA 창설을 주도한 면면을 보면 그 성격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활란과 최활란, 박마리아 등은 한국 여성운동의 효시라 할 만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김활란이나 박마리아 등의 자유당정권 이후의 행보에서도 볼 수 있듯 상당히 보수적인 여성인사들이 그 중심이 되고 있었다. 친일과 친독재는 그들의 본성과 같았다. 그런 이들의 후예가 과연 얼마나 진보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었겠는가.

 

YWCA의 만화 모니터링은 그 취지와 상관없이 그래서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만화에 대한 검열과 함께하고 있었다. 별 거지발싸개같은 되도 않는 이유들을 스스로 만들어 갖다대며 우수만화와 저질불량만화의 경계를 결정지었었다.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도 그래서 고길동을 만년과장이라고 놀린 부분을 두고서 과장을 비하했다며 불량만화로 판정한 바 있었다. 리니지가 아마 동성애 미화로 엮였던가 그랬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아무 이유라도 갖다 붙여서 저질불량만화로 만들고는 5월이면 모여서 화형식을 거행했었다. 오죽했으면 우수만화라고 상을 준다는데 이진주나 이희재나 도저히 못받겠다 거절하려 했었는가. 이진주는 후환이 두려워서 받아서는 내던져 버렸고, 이희재는 진짜 거절했었다. 바로 이 YWCA가 한국 여성주의의 온상과 같은 곳이었다.

 

이해가 되는가? 같은 만화가가 여성주의를 이유로 다른 만화가의 창작 자체를 금지하려 하고 있다. 그 엄혹하던 시절 선배 만화가들이 필사적으로 싸워서 쟁취한 자유를 그들 스스로 여성주의를 이유로 내다 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달동네를 말 그대로 달동네처럼 그렸다는 이유로 작품을 난도질당해야 했던 작가가 있었다. 도둑놈을 쫓더라도 어른인 도둑에게 아이가 반말을 써서는 안되고, 부모자식이든 형제자매든 성별이 다른 가족이 같은 방에서 자서도 안된다. 아, 이건 그제 국세청장 청문회에서 나온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부모님과 여동생 둘과 단칸방에서 같이 먹고 자고 했었거든? 가난하다는데 집도 넓고, 방도 여럿이고, 담도 다 쓰러져가는 블록담이 아니라 미국스런 나무담이다. 여기가 어디냐? 그래서 게기면 아예 출판 자체가 안되었다. 그런 시절을 거치며 청소년보호법의 억압을 넘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여성주의를 이유로 작가의 창작 자체를 금지하겠다?

 

원수연이 나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원수연도 엄연히 그 뒷세대라 할 수 있다. 아마 빨라야 80년대 말 데뷔일 것이다. 자신도 겪은 것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바로 윗세대 선배들이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전해들었을 것이다. 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을 직접 맞서 싸워야 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배란 것들이 어느새 여성주의라는 완장을 차고서 같은 작가의 창작을 금지하겠다 설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니.

 

원래 뿌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피가 그렇다. 김활란과 최활란, 박마리아, 그리고 YWCA라는 한국 여성주의의 유전자라는 것이 그렇다. 권력에 기대어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던 그 비루함이 그들의 본질이란 것이다. 다르지 않다. 같은 여성이고 약자인 계약직 방송인인데 자기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밥줄까지 영영 끊으려 하는 그 잔혹함이야 말로 그들의 본성인 것이다.

 

진짜 옛날생각 나려 한다. 요즘은 여성주의지 당시는 반공주의였었다. 달동네를 달동네처럼 그리지 못했던 이유도 북한이 보고 좋아 할까봐. 북한이 보고서 체제선전에 이용할까봐.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집도 남매의 방은 따로 있어야 했다. 집도 제법 번듯해야만 했었다. 그 뿌리가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새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이 조선과 손잡고 정의연을 친 이유가 김재련 같은 박근혜에 부역했던 여성주의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박근혜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했던 집단이 바로 이들 여성주의자들이었고 보면. 피가 어디 가지 않는다. 벌레같은 것들. 시대가 달라졌어도 그들은 여전하기만 하다.

사실 PC방보다 음식점이나 카페가 전염병 감염에 더 취약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대부분 혼자 PC방을 찾는 경우 옆자리에서 뭘 하는지조차 관심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친구끼리 PC방을 찾았어도 굳이 의자를 돌리거나 하지 않는 이상 서로 얼굴 마주보고 침 튀길 일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더구나 마스크까지 계속 쓰고 있으면 헤드셋에조차 바이러스가 튀거나 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뭔가 먹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고, 특히 카페 같은 경우는 그냥 커피만 먹으려 들르는 곳이 아니라 대화하는 도중 서로 침이 튈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PC방은 규제하고 음식점과 카페는 내버려두는 것인가.

 

간단하다. 밖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밥을 사먹어야 할 때가 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 좋기는 한데 아무래도 어려우면 가까운 음식점에서 한 끼 해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카페 또한 식사 후 한 잔의 커피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요긴한 수단이기도 하다. 몸이 피곤해서도 카페인은 필요하고 마음이 헛헛해서도 카페인은 공급해 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필수시설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에 비해 PC방은 굳이 안 간다고 일상에 크게 불편하거나 할 일은 없지 않은가. 게임 좀 못한다고 크게 곤란한 사람이 있기는 하던가? 이밖에 영업을 금지한 시설들을 보면 일상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위락시설들이다.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음식점이나 카페가 전처럼 아무 제약없이 영업할 수 있는가면 또 아니라 할 것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아예 영업을 금지하면 곤란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음식점과 카페마저 영업을 금지할 정도라면 그때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코로나로 인해 끝장난 상황이라 봐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사회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음식점도 카페도 모두 영업을 중단시켜야 한다. 아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여기기에 필요시설은 최대한 남겨두고 불필요한 시설부터 순차적으로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를 욕해야 한다? 잘 풀리는 것 같던 상황을 꼬아 버린 놈들을 욕하면 되는 것이다. 민경욱, 김진태, 김경재, 차명진, 김문수, 전광훈, 그리고 기타등등등등...

 

정부로서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위에 있는 업소부터 차례로 규제하며 시민들의 대인접촉을 최소화함으로써 감염의 위험을 차단한다.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불만을 쏟아내도 정부로서는 더 많은 시민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PC방 업주들로부터 욕먹고 노래방 사장들로부터 비난을 듣더라도 감염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욕해야 할 대상이 틀렸단 뜻이다. 진짜 욕해야 할 놈들은 따로 있는데. 하긴 이러라고 언론은 열심히 물타기중일 것이다. 이미 감염은 확산되고 있었는데 광화문에만 탓을 돌린다. 수 만의 사람이 자가격리자와 밀집한 채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기자같은 상황이란 것이다. 더럽고 더럽다. 하여튼 도움이 안 된다.

하긴 나도 집 좁은 것 싫어서 곧 죽어도 방 두 개 짜리로 구해 혼자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집 구조를 대충 알고 있는 옆집에서 오해하더라. 아니 이렇게 넓은 집에서 혼자 살아요? 혼자 살지 그럼?

 

사실 11평이면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떠드는 그 서민 말고 진짜 서민 기준으로 한 서너 명 가족이 살기에 그리 좁지 않은 넓이이기는 하다. 방도 두 개니 부모가 한 방 쓰고, 자식이 한 방 쓰고, 혹은 노부모 모시면 아이가 노부모와 함께 쓰고,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나도 그렇게 살았단 것이다. 내가 외할머니와 방을 함께 쓰고, 넓은 큰 방은 부모와 동생들이 썼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고보니 아주 오래전 미국 시트콤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방 두 개에 욕실 하나 있는 아파트에서 몇 명이 잘 수 있겠는가. 많으면 네 명까지라 말했던 백인 양아버지의 대답에 할렘가 출신의 흑인 형제가 17명은 잘 수 있다 대답한 것이 기억이 난다. 사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다르다던가. 부부가 한 방 쓰고, 노모가 딸과 같은 방 쓰고, 여동생이 또 방 하나 쓰면 방 세 개가 딱 적당한데? 방 두 개로 부부가 아이와 한 방 쓰고 노모가 딸과 한 방 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뭐가 이상한가? 그런데 이상하다. 언론의 기사제목마저 이상하다. 그게 말이 되는가고.

 

이번 신임 국세청장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방 세 개짜리 집에서 노모와 동생과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라. 그걸 또 이상하다며 의혹이라 따져묻는 정치인이나 그걸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이나.

 

내가 이상한 것일까? 확실히 언론이 떠드는 서민의 기준에 비하면 나는 거의 외계인 수준일 것이다. 전세보다 월세가 더 나을 수 있다. 집 사는 것보다 그냥 평생 월세를 사는 게 나을 수 있다. 이상한가? 이상한 세상이다.

초기 가톨릭 교회의 역사란 영지주의와의 투쟁의 역사라 봐도 좋을 것이다. 영지주의란 당시 지중해세계에서 유행하던 비의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의 한 분파다. 심지어 이 영지주의야  말로 초기 기독교의 주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했었다. 당연한 것이 성경의 비밀을 자신들이야 말로 알고 있다지 않은가. 문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성경의 진짜 비밀을 자신들만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비밀이라는 것이 성직자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이들을 정리하며 보편적 교리로 묶은 것이 가톨릭, 가톨릭이란 자체가 보편을 의미한다.

 

중세까지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금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무런 기반지식 없이 섣부르게 성경을 직접 읽었다가 자기 멋대로 해석하겠다고 나서면 바로 영지주의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보편적인 해석이 있고, 로마 교회에서 교황과  여러 추지경들에 의해 새롭게 갱신되어지고 있을 텐데, 신자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해석을 들고 나와 이게 진짜다 주장하기 시작하면 난감해지는 것이다. JMS같은 미친 놈들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발에 차이도록 널리고 널렸었다. 그런데 워낙 신자들이 성경을 읽는 자체를 금지해 놨더니 성직자란 것들이 성경을 자기 멋대로 유리하게 해석해서 이용하기 시작하니 반발해서 나온 것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었다. 이제부터 로마 교회가 아닌 자기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해석하겠다. 루터 이후 이루어진 종교개혁에 대해 영지주의 음모라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이유인 것이다. 이로부터 별 어중이떠중이들이 자기의 해석이 진짜라며 떠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개신교회에서 심지어 신도 성경도 아닌 목사를 믿고 섬기는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인 것이다. 초기 영지주의 교회와 비슷하다. 소수의 영지주의 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비의야 말로  진정한 신의 말씀이고, 따라서 영지주의 성직자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신의 뜻에 다가가는 것이다. 자기만의 진정한 신의 말씀을 알고 있다 주장한다. 심지어 신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주장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신의 대리인이다. 신 그 자체다. 신의 뜻을 대변하는 목사가 그리 말했으므로 이야말로 신의 의지이며 유일한 진실인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중요할까? 현실의 가치나 정의가 중요할까?

 

신천지도 원래 그렇게 시작된 종교였었다. JMS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은 자기만의 해석이 진짜 성경의 해석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이 진정한 신의 말씀이란  주장이다.  그런데 어쩐지 닮아 있지 않은가. 순복음교회나 혹은 사랑제일교회나. 아니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또 신자가 모이기도 한다. 보편적인 개신교의 가르침이 아닌 이 교회 목사만의 해석을 쫓아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떻게 사람들이 귀기울일만한 자기만의 매력적인 해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진짜 신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목사들은 인기가 없어 하루살이도 걱정해야 한다.

 

차라리 사람의 해석을 더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 그대로를 읽고 믿으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도 이놈저놈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필요한대로 끌어다 이용해대고 있으니 그냥 성경의 말씀 그대로를 순수하게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러고보면 한 편에서 영지주의를 그토록 악마화하며 오만 것에 대해서까지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 한국 개신교였을 텐데. 그러나 하는 짓거리를 보면 어째서 가톨릭이 영지주의를 그토록 적대했는가만 새삼 확인하게 만들 뿐이다. 광화문 코로나 사태로 더욱 분명해진다. 이대로 개신교를 내버려두어도 좋을 것인가.  위험한 것이다.

스스로 힘이 있다 여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일 것이다. 신천지는 그래도 처음 숨고 속이고 버티다가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강하게 나오자 교주가 공개적으로 무릎까지 꿇었었다. 누락이야 있었지만 최소한 방역당국에 협조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었다. 그런데 개신교는 어떤가.

 

사랑제일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개신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목사며 장로며 신도들끼리 교회를 넘어 서로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신교는 아니라지만 개신교회를 대부분 한 묶음으로 보려 하는 것이다. 각각의 교회가 독립되어 있다지만 그래도 결국 개신교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얼마나 교회가 방역당국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고 방역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가.

 

종교가 아닌 정치집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신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정부의 방역을 방해하며 자신들의 힘을 더욱 과시하려고 하고 있다. 신자의 명부도 넘기지 않고, 광화문 집회에 참셕한 사람들의 명단도 철저히 감추고, 그러면서 어느새 지지율에서 여당을 추월한 야당의 뒤에 숨으려 한다. 김종인이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전광훈과 개신교를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꼬라지가 재미있다. 그러니까 굳이 방역당국의 노력에 협조하지 않아도, 심지어 거부하며 맞서 싸워도, 결국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정부만 곤란하지 자기들 곤란할 일이 있겠는가. 신자들이 감염되더라도 정부를 욕하지 목사인 자기들을 욕할 리 있겠는가.

 

그래서 굳이 하지 말라는데도 모여서 기도하고, 밥도 나눠 먹고, 침튀겨가며 행사도 하고, 그런 것 좀 못하겠다 말리려면 언론까지 나서서 그러지 마라 압박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능이 있고 그래서 전략이란 것도 세울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적의 매개를 찾은 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자기들이 대한민국에서 소수고 약자라 여긴다면 신천지처럼 굽히기라도 하지 자기들이 오히려 강자라 여기니 여론의 비판조차 우스울 뿐이다.

 

당장 뉴스를 통해서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서로 별개이고 독립되어 있다는 교회들의 목사와 장로, 신도들이 어떻게 서로 교류하며 감염병을 확산시키고 있었는지. 그를 막으려 정부와 방역당국이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었다. 이제는 오히려 저들이 정부와 방역당국의 노력을 비웃으며 탓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교의 힘을 꺾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한겨레마저 전광훈을 지키려 윤미향을 느닷없이 소환해서 기사를 냈던 것이었고. 개신교를 지켜야 한다. 개신교회를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이번이 기회다. 아니면 더이상 개신교를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틀 속에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대한민국과 별개의 세계로 존재하게 된다.

 

진짜 최악이다. 신천지를 그렇게 욕했는데 신천지 그 이상이라 봐야 할 것이다. 신천지가 한 달 갔다면 이번 개신교로 인한 난리는 몇 달을 이어질까? 덕분에 구직활동하던 것도 2주 이상 자체적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이런 때는 그저 납죽 엎드려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전광훈은 그저 수많은 목사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개같은 것이다.

아주 오래전 자칭 진보들과 잠시 어울릴 때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가 바로 한국 자칭 진보의 뿌리는 개신교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긴 당연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서구의 근대문물을 수입하는 창구 역할을 하던 것이 바로 개신교회였었고, 해방 이후에도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의 사상들이 개신교회를 통해 유입되면서 반독재투쟁의 구심점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당장 그동안 개신교회가 세운 학교가 몇 개이며 배출된 학생이 몇 명이던가.

 

사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성매매를 금지하는 특별법은 납득이 안되는 것이다. 성매매여성을 성적자기결정권을 통해 성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게 된 성노동자로 간주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전제하는 성매매금지의 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자기가 자신의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성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노동자들 역시 자신이 가진 노동력이라는 수단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매매여성은 일방적인 피해자이고 성매매는 부정하고 부도덕한 행위라는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겠는가. 

 

원래 진보란 자체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기존의 방식들을 부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구조들을 쌓아 올린다. 그래서 진보다. 그런데 한국 진보는 특히 도덕이라는 부분에서 심지어 조선시대보다도 더 엄숙하고 엄격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 사람이란 원래 욕망하는 존재이며 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더욱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자유 없이 진보가 있을 수 있을까?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가 다른 이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기에 서로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간다. 기존의 관념적인 도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고민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부정한 것이고, 따라서 개인이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부도덕이고 악일 수 있는 것이다. 그를 응징하는 것만이 정의고 진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정의당이나 녹색당 혹은 홍세화 같은 인간들이 하는 말을 가만 들어보라.

 

뭐와 닮았느냐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보이던 행동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말한 그대로 한국의 자칭 진보란 특히 개신교회를 통해 한국으로 수집된 개념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야기한 바 있을 것이다. 자칭 진보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대화하는데 어디서 누가 어떤 주장을 했더라는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더라. 그래도 제법 젊고 선명한 주장을 펼치던 자칭 진보였었다. 그래서 앞에 '자칭'을 붙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보란 미래를 위한 혁신이 아니다. 단지 보다 권위있는 대상으로부터 전해진 개념의 답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창구 역할을 하던 것이 개신교였었고. 바로 이 개신교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여성주의가 서로 만나고 있다. 이해가 되는가?

 

누군가 그런 의문을 제기했었다. 조국 전장관 사태로부터, 아니 안희정 전지사의 재판부터 이번 전광훈의 광화문 집회까지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일련의 행동들이 아닌가. 미래통합당이 주도했다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크고 너무 거대한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여성주의자와 자칭 진보들까지 일사불란하게 동원해서 보수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답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고보면 참여정부 당시도 참여정부와 가장 각을 세웠던 것이 보수 개신교도 아닌 그냥 개신교였었다. 그리고 그런 개신교에 뿌리를 둔 자칭 진보들은 개신교의 교리에 근거해 진보를 주장하며 참여정부를 공격한 바 있었다. 그때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 진짜 의도해서 안희정부터 전광훈까지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 것이라면 그 배후에 개신교가 있을 것이라 주장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동안 정의연에 우호적이던 한겨레나 경향마저 기꺼이 자신들의 취재를 무시하고 조선일보를 따라서 정의연을 공격해야만 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덕분에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문제를 역사로 묻으려 했던 김재련이 여성주의의 전사가 되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되었었다. 정의연을 공격해서 위안부문제 해결의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았더라면 김재련이 여성주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면에 나설 수 있었을까? 이수정 교수가 미래통합당으로 향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한겨레가 광화문 집회로 미래통합당이 힘들어지게 생기자 오보임이 명백해지고 있는 정의연 보도를 끄집어내어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고 있다.

 

지금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그래서 아예 기자들과 시민들의 입에 재갈까지 물리려 하는 여성주의란 그냥 여성을 위한 주장과 행동들이 아닌 권력까지 동반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주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과 친독재의 개신교 집단이 나온다. 친일과 친독재가 자칭 진보마저 장악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소재란 것이다. 여성주의라는 것은. 그리고 배후에 개신교가 있다면 이 모든 거대한 계획들이 논리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튼 신선한 경험이기는 했었다. 종교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울 줄 알았던 자칭 진보들이 오히려 더 종교에 빠져있는 현실을 보았었다. 바로 그 종교를 이유로 일제강점기를 긍정하고 한국전쟁을 긍정하고 군사독재마저 긍정한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고, 진보가 시작되고 뿌리내릴 수 있었다. 문창극의 발언이 전해지고 그 소속이 녹색당이 아닐까 의심한 이유였었다. 아주 오랜 옛날 이야기이긴 하지만. 문득 떠올랐다. 재미있다.

역시 똥걸레가 똥을 못 끊는다. 그러니까 왜 이딴 건 찾아가 보고 심지어 퍼와서 링크까지 걸어 놓느냐고.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윤미향 때문이다? 이 씨발 좆같은 기레기 새끼들이 정의연과 윤미향 관련 보도들 지금 정정보도 나오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건가.

 

하긴 이 씨발것들은 기껏 자기들이 취재해서 아니란 인터뷰까지 따놓고도 조선일보가 의혹을 제기했으니 인터뷰가 사실이 아닐 것을 전제로 기사를 쓰기도 한 벌레들이란 것이다. 이제와서 새삼 조중동과 한겨레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언론이라는 단일한 이해 앞에 진보와 보수란 이념은 의미가 없으니. 하긴 한겨레는 더이상 진보언론이 아니라 페미니즘 언론이었지? 페미니즘의 뿌리는 친일과 친독재, 친기독교였을 테고. 조선일보랑 어울린다.

 

대부분이 오보였다. 그냥 대충만 훑어봐도 대부분 말도 안되는 기사들이었었다. 취재과정에서 정의연 관계자가 사실확인까지 해주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 이따위 기사를 내는 이유는 전광훈으로 인해 미래통합당이 어려워질 것 같으니 지원사격을 하겠다는 뜻일 게다. 아무리 전광훈이 나빠도 윤미향 만큼은 아니다. 박근혜가 아무리 나빠도 박원순 만큼은 아니었으며, 최순실이 아무리 나빠도 조국 정도는 아니었다. 이 또한 일관적이지 않은가.

 

이런 게 기자란 물건들이다. 윤미향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졌다? 자기들도 참전한 오보의 대잔치였다는 것이지. 그 의도와 목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중이다. 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자기들도 함께 오보를 내고 있었다. 윤석열에게만 사과하지? 벌레만도 못한 것들. 거름으로도 못 쓰겠다.

이른바 조국사태가 내게 남긴 최고의 성과는 무엇보다 JTBC와 뉴스룸을 끊게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심지어 술마시다가도 저녁 8시만 되면 JTBC 뉴스룸을 보는 것이 일과가 되어 있었다. 이미 전부터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을 통해 손석희에 대한 신뢰를 쌓아 왔었기에 JTBC에 가서도 오히려 JTBC를 참언론으로 바꾸는 듯한 모습에 기대가 더욱 커진 탓도 있었다. 가끔 뭔가 아니다 싶은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대한 보도까지 더해지며 뉴스를 만들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한 게 바로 조국사태였었다.

 

그냥 한 눈에 봐도 이상했다. 취재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의혹이라며 제기하는 결론이 있다. 그런데 중간이 없다. A라는 사실과 C라는 결론에 이르기 위한 추가적인 B라고 하는 중간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그 빈 부분을 채우고 있던 것이 바로 '라면'이었다. 아마 작년 조국사태 당시부터 여기 드나든 사람은 기억할지 모르겠다. 조국이 그러면 안된다며 그래도 대통령 믿어보겠다던 내가 어느 순간 폭주하며 손석희와 뉴스룸을 욕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니까 조국 전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사모펀드에 가입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연결하면 불법적인 상속과 증여, 심지어 정치자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인가. 아무리 지켜봐도 없었다.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그저 '라면', '라면', '라면'. 라면 세 개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다.

 

그래도 손석희라면 믿었었다. 손석희가 보도를 통괄하고 있는 JTBC 뉴스룸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여겼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MBC 뉴스데스크를 매일 챙겨보기 전까지 덕분에 무려 반 년 넘게 TV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었다. 지금 와서 손석희가 어디 가서 사고로 죽는다 해도 아쉬울 것이 있을 것인가. 김웅과 관련한 재판 역시 여기에 뭔가 엮인 게 있으니 저런 훤히 보이는 보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냈구나. 사실관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취재가 아니라 취재한 사실을 결론으로 연결하는 논리적 고리의 허술함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석희처럼 똑똑한 사람이 모르고 내보냈을까? 알면서도 내보낸 것일까?

 

더불어 JTBC 말고도 경향과 한겨레의 민낯을 낱낱이 내보인 것도 하나의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었다. 경향과 한겨레, 나아가 자칭 진보의 목적은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치욕을 가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 그렇게 떠나고 경향과 한겨레 편집국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더라니까. 그래도 설마 그랬을까 싶었는데 노무현 전대통령의 일이 있고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한명숙 전총리를 검찰과 언론이 짜고서 그렇게 몰아갔더란 것이다. 최소한의 반성이란 것이 있었다면 그렇게 의심없이 검찰이 불러주는대로 받아쓰고 지금에 와서까지 오로지 자기들 잘했다며 변명에만 급급할까?

 

김완 기레기놈이 코링크PE 익성 실소유주 가능성을 제기하고서도 하어영의 기사를 계기로 태도를 전환한 부분도 흥미로웠었다. 하어영이 KBS의 검언유착을 가리려 윤석열과 김학의를 연결시키는 보도를 크게 터뜨리고 바로 그날 김완은 유시민을 악의적이라며 비난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겨레로부터는 조범동에 대한 판결이 나온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익성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경향일보야 이제는 그냥 조중동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약소언론이니 문화세계국민 아래 경향으로 하나 더 붙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경향일보에 기고하던 자칭 진보들 역시 그를 계기로 자신들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는 참여정부 이래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역시 사실로 확인하니 재미있다.

 

KBS를 정상화하겠다던 놈들의 민낯을 확인한 것도 또 하나 성과다. 이번에 한동훈과 이동재 사이의 녹취록에 대해 크게 오보를 터뜨리며 권언유착의 단초를 제공한 정연욱이 바로 KBS를 정상화하겠다며 소송까지 불사했던 인물이다. 김경록PB의 인터뷰를 왜곡하며 조국 전장관을 몰아간 사회부의 성창호나 법조팀의 김귀수 역시 KBS 파업을 주도했던 인물들이었다. 바로 정연욱의 오보를 근거로 수사심의위가 수사중단을 권고하자 9시 뉴스에서는 왜 계속 수사하느냐고 비판하는 제목까지 달았던 바 있었다. 공영노조만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공영노조가 보수정당과 닿아 있다면 나머지 KBS 구성원들은 검찰의 똥닦개나 다름없다. 김경록PB의 인터뷰왜곡이 알려지고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서 검언유착을 변호하며 떠들어대던 소리들 찾아 들어보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하도 욕을 들어먹으니 나중에 말을 바꾸기는 했는데 몸에 본능으로 새겨진 본성을 어쩔 수는 없는 것이다. KBS는 해체 말고는 답이 없다는 증거인 셈이다. KBS에 더이상 기대할 것이 남아있을 것인가.

 

그나마 나름대로 언론으로서 중도를 지키려는 언론이 MBC 하나 남았는데 워낙 다른 언론들이 이 꼬라지라 MBC 혼자만 친정부 언론이라며 미래통합당 정치인들이 취재에도 응하지 않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다른 언론들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 MBC만 친정부적인 어용언론이다. KBS는 당연히 아니라고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오보를 불사하며 정부를 공격하는데 언론으로서의 명운까지 걸고 있는 중이다. 결국은 조국 전장관이 워낙 잘 버텨준 덕분에 드러난 사실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의 본질은 무엇이고 그 가운데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언론은 과연 어디인가.

 

윤석열과 한동훈에게는 광속으로 저러다 죽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조국 전장관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오보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척 입을 닦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한동훈에게는 며칠만에 바로 사과했는데 어째서 김경록PB에게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고도 참언론인을 추구하는 양 유튜브에서 가식을 떠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역겨운가. 조국사태의 결론이다.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기자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언론에 기대는 없다. 더러운 것들이다.

내가 그래서 말했잖은가. 대부분 여성주의 주류들은 일반 서민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신분들이라고. 사람을 바보취급하는 게 아니면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어떤 이유로든 상사에게 부탁하고 부탁을 들어줄 때 어떤 식으로 대화하는지에 대해서. 더불어 직장인에게 '탈출'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이번에 나 또한 그만두면서 '탈출'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아니 그만두기 전부터도 '탈출'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언젠가 그만두게 될 순간에 대하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 동료직원들도 그만두는 사람이 있으면 탈출에 성공했다며 부러워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전보요청을 했고, 그래서 그에 대해 상의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회피를 위해 전보를 요청했는데 들어주지 못하겠다 실갱이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일상적인 인사이동과 관련해서 아쉬워하면서도 한 편으로 응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동안 일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좋았으니 떠나는 게 아쉽다.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좋은 데 간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겠다. 자기도 떠다는 것이 아쉬워 고민이 된다.

 

진짜 심각하게 전보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맘편하게만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라 터무니없이 착각하고 있거나. 난 처음 봤을 때 뭔 내용인가 싶었다.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자신들의 무고를 증명하려 내놓은 증거일 것이라 여기고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설마 이게 성추행과 성추행 방조의 증거라고? 언론은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고?

 

기자새끼들은 뇌가 없다. 아니면 사람새끼들이 아니거나. 더욱 기자란 종자들에 대한 혐오감만 깊어간다. 제정신이면 나올 수 없는 증거고 기사들인 것이다. 차별금지법에도 반대해야 할까? 직업을 이유로 사람을 혐오하거나 차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기자는 사람이 아니잖아?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버러지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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