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자칭 진보들과 잠시 어울릴 때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가 바로 한국 자칭 진보의 뿌리는 개신교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긴 당연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서구의 근대문물을 수입하는 창구 역할을 하던 것이 바로 개신교회였었고, 해방 이후에도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의 사상들이 개신교회를 통해 유입되면서 반독재투쟁의 구심점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당장 그동안 개신교회가 세운 학교가 몇 개이며 배출된 학생이 몇 명이던가.

 

사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성매매를 금지하는 특별법은 납득이 안되는 것이다. 성매매여성을 성적자기결정권을 통해 성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게 된 성노동자로 간주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전제하는 성매매금지의 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자기가 자신의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성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노동자들 역시 자신이 가진 노동력이라는 수단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매매여성은 일방적인 피해자이고 성매매는 부정하고 부도덕한 행위라는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겠는가. 

 

원래 진보란 자체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기존의 방식들을 부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구조들을 쌓아 올린다. 그래서 진보다. 그런데 한국 진보는 특히 도덕이라는 부분에서 심지어 조선시대보다도 더 엄숙하고 엄격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 사람이란 원래 욕망하는 존재이며 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더욱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자유 없이 진보가 있을 수 있을까?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가 다른 이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기에 서로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간다. 기존의 관념적인 도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고민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부정한 것이고, 따라서 개인이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부도덕이고 악일 수 있는 것이다. 그를 응징하는 것만이 정의고 진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정의당이나 녹색당 혹은 홍세화 같은 인간들이 하는 말을 가만 들어보라.

 

뭐와 닮았느냐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보이던 행동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말한 그대로 한국의 자칭 진보란 특히 개신교회를 통해 한국으로 수집된 개념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야기한 바 있을 것이다. 자칭 진보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대화하는데 어디서 누가 어떤 주장을 했더라는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더라. 그래도 제법 젊고 선명한 주장을 펼치던 자칭 진보였었다. 그래서 앞에 '자칭'을 붙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보란 미래를 위한 혁신이 아니다. 단지 보다 권위있는 대상으로부터 전해진 개념의 답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창구 역할을 하던 것이 개신교였었고. 바로 이 개신교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여성주의가 서로 만나고 있다. 이해가 되는가?

 

누군가 그런 의문을 제기했었다. 조국 전장관 사태로부터, 아니 안희정 전지사의 재판부터 이번 전광훈의 광화문 집회까지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일련의 행동들이 아닌가. 미래통합당이 주도했다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크고 너무 거대한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여성주의자와 자칭 진보들까지 일사불란하게 동원해서 보수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답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고보면 참여정부 당시도 참여정부와 가장 각을 세웠던 것이 보수 개신교도 아닌 그냥 개신교였었다. 그리고 그런 개신교에 뿌리를 둔 자칭 진보들은 개신교의 교리에 근거해 진보를 주장하며 참여정부를 공격한 바 있었다. 그때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 진짜 의도해서 안희정부터 전광훈까지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 것이라면 그 배후에 개신교가 있을 것이라 주장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동안 정의연에 우호적이던 한겨레나 경향마저 기꺼이 자신들의 취재를 무시하고 조선일보를 따라서 정의연을 공격해야만 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덕분에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문제를 역사로 묻으려 했던 김재련이 여성주의의 전사가 되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되었었다. 정의연을 공격해서 위안부문제 해결의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았더라면 김재련이 여성주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면에 나설 수 있었을까? 이수정 교수가 미래통합당으로 향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한겨레가 광화문 집회로 미래통합당이 힘들어지게 생기자 오보임이 명백해지고 있는 정의연 보도를 끄집어내어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고 있다.

 

지금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그래서 아예 기자들과 시민들의 입에 재갈까지 물리려 하는 여성주의란 그냥 여성을 위한 주장과 행동들이 아닌 권력까지 동반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주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과 친독재의 개신교 집단이 나온다. 친일과 친독재가 자칭 진보마저 장악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소재란 것이다. 여성주의라는 것은. 그리고 배후에 개신교가 있다면 이 모든 거대한 계획들이 논리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튼 신선한 경험이기는 했었다. 종교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울 줄 알았던 자칭 진보들이 오히려 더 종교에 빠져있는 현실을 보았었다. 바로 그 종교를 이유로 일제강점기를 긍정하고 한국전쟁을 긍정하고 군사독재마저 긍정한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고, 진보가 시작되고 뿌리내릴 수 있었다. 문창극의 발언이 전해지고 그 소속이 녹색당이 아닐까 의심한 이유였었다. 아주 오랜 옛날 이야기이긴 하지만. 문득 떠올랐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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