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과 관련해서 여성주의자들이 실수한 것이 그나마 여성주의에 온건하던 4050마저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박원순이란 인물을 고작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그 삶까지 모두 부정하고 가족에게까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입혔다. 그러고서도 다시 남성들을 상대로 증오와 저주의 단어를 퍼부어댔었다. 정의당은 아예 민주화세대를 부정했고, 한겨레는 자신들의 기사를 소비해주는 독자로서도 4050의 남성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2030이야 원래 여성주의에 비판적이던 세대였지만 4050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 여성주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가?

 

이번 선거의 패배를 계기로 누구보다 강하게 여성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수정을 요구하는 계층이 그래서 4050의 민주당 지지자들이란 것이다. 원래는 여성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라도 온건하거나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여성주의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던 이들이 여성주의를 민주당을 패배케 만드는 원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여성주의에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여성주의자들이 오세훈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민주당에 투표한 대신 남성들은 완전히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었다. 손익계산이 들어간다. 여성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어봐야 지지는 못 받지만 남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주의자들이라고 모든 여성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여성주의자들도 일반 여성들과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주의자가 여성을 온전히 대표하는 것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나치게 과격하고 투쟁일변도의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염증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 남성들은 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아예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며, 동의도 지지도 필요없다며 무시하고 배제하던 남성들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공당이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그러고보면 내가 여성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된 계기도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오히려 여성주의자로부터 입닥치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였을 것이다. 여성주의는 남성의 동의니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성은 대상이지 절대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누구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할까? 바로 윤석열이나 오세훈이나 이명박, 홍준표 같은 진짜 기득권 남성인 것이다. 그래서 기생페미니즘이다. 기생이다. 매춘부다. 권력자에 기생하여 권력자의 권력을 자신의 것처럼 행사하던 천박한 주제들인 것이다. 역사에 많다. 몸을 팔아 권력에 기생하는,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여성에게 선택지란 따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이 그래서 무척 흥미롭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몰라도 지지층은 거의가 여성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주의는 민주당의 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이다. 물론 여성주의자들이 선택한 것이다. 박원순에 대한 공격을 넘어 민주당과 문재인정부, 나아가 지지자들까지 모두 싸잡으려 했다. 박원순에 우호적이던 여성들도 함께였다. 그런데도 지지를 바라는가.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확실해졌다. 원래 한국 여성주의란 친일로부터 시작했다. 군사독재시절 불의한 권력에 기대서 성장해 왔을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새삼 떠올랐다. 여성주의란 유한부인들의 유흥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대학교육도 받을 수 있고, 굳이 취업해서 돈 벌 필요도 없는, 가사노동에도 종사하지 않아 시간이 남아도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과시하느라 선택했던 놀음이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과연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성들과 똑같이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에 종사하는 같은 여성이란 어떤 의미이겠는가. 더러운 것들이란 이유다. 끔찍하다.

그러고보니 이명박의 악정을 보면서 자칭 진보들은 노무현 정부를 더 욕하고 있었다. 노무현이 못해서 정권을 내준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다.

 

박근혜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이 못해서 대선에서 졌으니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저들이 당당하게 안철수를 지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안철수였으면 이겼을 텐데 문재인이 나가서 진 결과 이리 된 것이니 문재인과 민주당이 책임지라. 세월호 때도 그래서 유가족의 가슴에 쇠못을 박던 당시 새누리당보다 그를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민주당을 더 비난하기도 했었다. 세월호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공격하는 명분이 아닌 민주당을 부정할 더 큰 명분이 되었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명박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박근혜도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한나라당 새누리당도 원래 그런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그런 사람 그런 정당이 그러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따라서 그를 막지 못한 민주당에 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유시민이 예전 말했던 민주당 무능론이다. 그러므로 이명박근혜나 한나라새누리당에게는 비판을 자제하고 민주당부터 조지고 본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정치를 못하면 밑에 신하들이 욕을 먹었다. 임금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보수정당은 항상 상수다. 민주당은 변수다. 보수정당은 원래 그런 존재들이고 원래 그래야 하는 존재들이고 원래 그럴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민주당인데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항상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즉 보수정당의 잘못까지 모두 민주당의 잘못이 되는 신박한 논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를 그대로 믿어 버린다. 민주당이 잘해야 보수정당도 잘한다. 그래서 말했잖은가. 민주당이란 보수정당이 잘하도록 만드는 도구일 뿐 민주당 스스로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칭 진보의 진보정책이란 그런 것이다. 원래 보수적인 보수정당을 설득하고 잘 유인해서 진보정책 비슷하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감히 민주당이 그런 것을 하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민주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과 법안들에도 정의당이 아주 사소한 말뿐인 동의에도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감격해 한 이유였다. 이 시대의 정통성있는 왕이고, 그런 왕을 바로 이끌 신하라면 지금 상황이야 말로 감히 반역하여 찬탈한 불편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오세훈이 용산참사에 대해 참담한 발언을 했어도 비판하는 자칭 언론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였다. 일단 주인을 제자리에 앉히고서 그 다음에 비판하든 견제하든 하며 바르게 이끌겠다. 잘못해도 역시 민주당 잘못이지 보수정당의 잘못은 아니다. 심지어 노동정책에 있어서조차 감히 보수정당을 비판 못하는 것이 바로 자칭 진보인 탓이다.

 

자기들이 비난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민주당은 잘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오히려 훼방놓고 막아서더라도 그마저 극복하고 잘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잘하는 게 아니라 보수정당이 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자칭 진보와 수구정권의 관계에 대해 지금껏 해 온 말들의 내용이기도 하다.

 

오세훈이 잘못하면 그것은 오세훈의 잘못일 것인가? 국민의힘이 잘못해도 그것은 민주당이 잘못한 탓이다. 국민의힘과는 손잡아도 민주당과 손잡을 일은 없다. 충신들 나셨다. 자칭 진보의 민낯이다.

이소영이 자백했네. 언론과의 소통과 토론. 그런데 언론은 민주당과 대화할 생각이 없거든. 아예 대화할 생각이 없는 상대와 할 수 있는 소통은 한 가지 뿐이다. 굴복. 순종. 누구일까? 이토록 언론과의 소통을 필요로 할 사람은?

 

언론의 도움 없이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언론이 원하는대로 뭐든 하겠다. 조국이든 추미애든 문재인이든 당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제물로 바치겠다. 언론 만세! 물론 그 언론은 조선일보겠지.

 

이소영이나 오영환 나부랭이들이 자기들끼리 생각해서 결정한 내용이 아니다. 열린우리당 시즌2가 시작되려는가. 이낙연에 기대한 인간들만 바보된 듯. 역시 이재명 밖에 없는 것인가. 실망이 크다. 인간이 추악하다.

전부터 선거 때면 당연하게 들던 생각이다. 왜 영입할까? 역사가 오랜 정당이면 각 지역마다 오래전부터 당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오래되고 영향력도 있으면 위원장이니 뭐니 감투도 쓰고 있을 것이고, 아니더라도 당의 행사에 얼굴을 내밀며 자기 돈과 시간을 쓰던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당의 정체성에 오래전부터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해 오던 이들이 아니었겠는가.

 

사실 그런 이들 가운데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 맞는 것이다. 정확히 당에 필요한 인물이라면 설사 영입이란 절차를 거쳤더라도 지구당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생판 살아 본 적도 없는 동네에 낙하산으로 공천받아 내려간다고 얼마나 지역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인가. 얼마나 지역민들과 밀착되어 있을 것인가. 지역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더구나 당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표창원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표창원은 처음부터 민주당과 맞는 인물이 아니었다. 조응천 또한 민주당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필요에 의해 영입된 경우였다. 그러니까 이소영이니 오영환 같은 나부랭이들이 되도 않는 짓거리를 마음대로 저지를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민주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며, 민주당의 이념과 지향과 정책과 가치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보겠다고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출마한다. 오세훈도 원래는 환경변호사였다. 이소영과 같은 과다. 오영환이 소방공무원의 권익을 위해 행동한 점은 인정하더라도 원래 민주당과 같은 이념과 지향을 가진 인물이었는가. 그러니까 잡탕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오랜 보수의 정체성으로 영입한 인사들을 찍어눌러 동화시키는데 민주당은 워낙 민주적이라 그런 잡탕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 결과 금태섭이니 이소영이니 하는 나부랭이들인 것이다. 공당의 정치인들이 지지자를 무서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기 일쑤인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김해영이니 박용진이니 하는 무리들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당원이란 오랜 동지들이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이고, 또한 자신이 공천받고 당선도 되게 해 주는 고맙고 무서운 사람들이다. 이소영은 지역 당원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 정치헌금까지 해주던 지지자들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느끼지 못한다. 그보다 더 무섭고 더 고마운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닌가. 이낙연이 바라는 것은 계파별로 나눠먹던 그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라면 지금 그 주위에 있는 썩은 물들에게도 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유인태가 왜 저 지랄인가도 그런 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지랄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따로 영입이 필요없는 풀뿌리 당운영을 보다 체계화시켜야 한다. 지구당에서 오래 활동한 이들 가운데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후보를 결정한다. 될 수 있으면 지자체에서 정치를 경험한 이들이면 더 좋을 것이다. 구의원 시의원에서 시작해서 도의원도 되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나아가 지자체장이나 능력만 된다면 대통령도 노려 볼 수 있다. 아직 정치경험이 일천한 젊은 신인들을 위해서도 지자체 의원은 매우 의미있는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몸으로 느껴보고 실력을 증명해서 더 높은 자리도 노려 볼 수 있다. 그런 게 기회 아니겠는가.

 

진정 청년들을 위한 대책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지구당을 통해 정치경험을 쌓고 중앙정치로 진출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정치외적인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아닌 오로지 정치인으로서 공동체에 헌신할 기회만 노려 온 청년들을 위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해 준다. 한 편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청년보좌관을 일정 이상 채용하도록, 그 가운데서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정치도 전문직이다. 교수 출신이, 검사나 판사 출신이 생전 처음 하는 정치에서 얼마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앙당에서의 계파보다 지구당에서 풀뿌리 민심을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원래 속했던 지구당에서 당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가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민심들이 하나로 모이며 하나의 정당이 된다. 내가 맨날 쌍욕에 증오의 배설이나 하며 사는 인간은 아니란 것이다. 그런 놈들이 있으니 쌍욕을 하는 것이지 나도 생각이란 걸 하며 산다. 먹고 사느라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을 때가 많지만.

 

최고위원을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한다고? 누구의 수작인지 알겠다. 지금 그럴 수 있는 인물은 한 명 뿐이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바뀌기 싫은 것 뿐이다. 오래전 해왔던 방식 그대로, 자기가 알던 사람들이 조언해주는 내용 그대로, 그리고 또다시 등장하는 이름 양정철! 지난 총선 끝나고 느낀 위화감이 이렇게 현실이 되는가. 능력을 넘어서는 야심은 항상 독이 되는 것이다. 위험하다. 지금 민주당은 아주 위험하다. 

만화 '창천항로'를 보면 주인공 조조의 입을 빌어 원소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패배를 패배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이 평가는 동시대의 인물 조조와 유비에 더 걸맞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조조는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 있었기에 어지간한 패배에도 바로 수습하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확고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적벽에서 수 만의 병력을 잃었음에도 당대에 천하를 평정하는 목표만 수정했을 뿐 조조의 패권 자체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었다.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의지할 땅 하나 없이 천하를 떠돌면서도 처음 품었던 큰 뜻을 포기하지 않은 유비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여포의 배신으로 서주를 잃고, 조조에게 패하며 서주에서 여남에서 신야에서 계속 쫓겨 도망치면서도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굳이 관우, 장비며 손건, 미축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싸움에서 크게 지고 흩어졌다가도 어느새 다시 유비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이들이 항상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위연과 같은 이들도 있었다. 어째서? 유비에게는 대의가 있었으니까. 혼란한 천하를 바로세우겠다는 큰 뜻이 있었고 그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랬기에 유비에게는 패배가 패배가 아니었고,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역시 실패가 실패가 아니었다. 언제고 기회만 찾아온다면 유비는 반드시 자신들이 헌신하고 희생한 만큼 그 고귀한 뜻을 이루어 줄 것이다.

 

그래서 유방이 그렇게 항우에게 패하고 쫓겨다녔음에도 그를 따르는 이들은 오히려 더 늘어만 갔던 것이었다. 수도 없이 패배하고 비참하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어느새 다시 일어나 항우와 맞섰던 유방과 한 번의 패배에 모든 것을 잃은 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의 선택에서 초한쟁패의 결과가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이다. 진정 자신의 길에 한 점 의혹이 없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패배를 패배로 여겨서는 안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견디며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칭기즈칸이 한 번 싸움에 졌다고 모든 걸 포기했다면 과연 몽골제국의 신화가 가능했겠는가? 바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버티고 떠미는 것이 '대의'란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보수정당과 민주당의 가장 큰 차이라 할 것이다. 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내줬을 때와 이번 보궐선거에서 1년짜리 시장 두 자리 내줬을 때 어느 쪽의 충격이 더 컸을 것인가. 어떤 패배가 더 치명적이었을 것인가? 그런데 당시 큰 패배에도 국민의힘이 지금 민주당처럼 혼란스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을 내주었을 때도 한나라당은 오히려 당당했었다. 2017년 박근혜가 탄핵되었을 당시에도 당시 새누리당은 반성따위 하지 않았었다. 자기들이 진짜 옳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언제고 국민들이 자신들을 선택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작년 총선이 끝나고 국민의힘은 더 오만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180석을 얻고서둬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확신이 없다. 자신들이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그것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의 지금까지 해 온 것들에 비판적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자기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검찰개혁을 왜 하는가? 언론개혁을 왜 해야 하는가? 사법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성주의 정책들은 어떻게 펼쳐야 하는가? 확신이 있다면 패배에도 전술은 바꿀지언정 전략까지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향과 정체성까지 부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 번 졌다고 아예 지금까지 해 온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배가를 생각부터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정 옳다면 국민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선택해 줄 것이다.

 

양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진정 옳고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 젊은 남성들도 동의해 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다면 전술은 바꾸되 전략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해 온 가치와 정의와 지향이 진정 옳았다면 방법론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방향이 옳았음을 국민들이 알아 줄 것을 믿고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라. 초선 나부랭이들이 벌써부터 민주당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며 나서는 것을. 대통령의 목을 베어 항복할 기회만 노리는 중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너무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행동이 그들만의 독단은 아닐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면 안다. 문재인이 대표가 되기 전 민주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할 것이다. 이낙연의 주위를 채우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들은 적 있었다. 씨발 다시 민주당이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이번 전당대회가 중요하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최고위원 선출에 관련해 계속해서 발언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놈들이 있다. 그러면 이익을 보는 놈들일 것이다.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오히려 패배에도 민주당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는 때인 것이다. 패잔병들이여 모이라고. 민주당을 도우려는 이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라고. 서주에서 도망쳤던 유비가 원소의 명을 받고 여남으로 오자 그동안 흩어졌던 관우와 장비까지 모두 모이고 있었다. 한 번 졌으니 이제라도 조조를 따라갈까? 그러면 관우는 왜 굳이 조조를 벗어나 유비에게로 갔던 것일까? 

 

민주당이라는 정체성보다 그저 국회의원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영입되어 공천까지 받은 정치신인의 적나라한 현실인 것이다. 아마 국민의힘에서 제안이 왔어도 이소영이나 오영환이나 장경태나 망설임없이 그리로 향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쪽이 더 정체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이 한 번 패배했으므로 민주당의 방식은 틀렸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당 옮기라니까. 국민도 아닌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왜 붙어있는 것인가.

 

유럽이 아예 나치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도 처칠은 이제 남은 것은 피와 땀과 눈물과 헌신 뿐이라며 오히려 전의를 드높이고 있었다. 나치독일의 공세에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까지 함락당할 상황에서 스탈린은 항복보다 독일에 이길 방법만을 찾고 있었다. 한두 번의 패배야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투에서 졌어도 전쟁에서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라. 해 줄 말은 이 한 마디 뿐이다. 어째서 민주당인가? 민주당이어야 하는가? 그 답을 스스로 들려줄 수 없다면 민주당이 굳이 존재할 이유조차 없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뒤에 숨은 그놈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느낀다기보다는 안다. 어째서 2030은 지금의 민주당에 등을 돌렸는가? 나도 30대 때 열린우리당을 아예 상종 못할 놈들이라며 외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아니 이미 상당부분 그때로 돌아가 있는 것을 느낀다. 달라진 것이라면 전보다 그렇게 적극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은 인내심만 강해진 나 자신 뿐이다. 패배가 아닌 바로 그 점이 위기인 것이다. 심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남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자칭 진보들은, 어쩌면 민주당 다수도 잊고 있는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성별과 더불어 신분과 계급이라는 게 있었다. 대부분 약소한 개인들은 그런 구조의 말단에 존재하게 된다. 이를테면 중소기업 사장에게 갑질하는 대기업 직원이란 그런 말단의 일부인 셈이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갑을관계가 워낙 강고하니 개인들조차 그 안에서 그 구조의 일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편의점 시급제 직원은 대기업 임원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존재인가? 겨우 월세나 내며 사는 독신자 50대 남성은 월세를 받으며 사는 30대 젊은 여성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한 위치에 있는가? 민주당의 여성주의 정책이 가진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확히 주류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가진 가장 큰 모순이다. 그런 현실의 차이를 무시하며 오로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만 강조하며 강요한다. 당장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젊은 남성들에게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내와 양보만을 강요한다. 내가 당장 죽을 지경이란 것이다.

 

물류센터에서 일해보면 더 확실히 느끼게 된다. 어차피 최저시급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 다르다. 여성이라고 더 쉽고 더 편한 일을 더 짧은 시간만 하게 된다. 물론 그 결과 받는 돈은 남성이 더 많다. 밤늦게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하니 수당도 더 붙어서 급여차이는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과연 남성이 여성보다 우대받는가? 남성들과 똑같이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은 그래서 같은 여성들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 자기는 그렇게 힘들게 일하며 돈을 버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일하며 여전히 적지 않은 받아가고 있다. 그만큼 남성들은 그 편한 일을 할 기회를 잃게 된다.

 

남성들도 더 편해지고 싶다. 더 안전해지고 싶다. 더 수월한 일을 하며 더 여유롭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그런 일들이 독점적으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그래도 되었다. 그만큼 남성과 여성의 격차가 컸으니. 어렵게 사는 동생을 도와주는데 내가 도와준 덕에 내 재산의 한 30%정도는 되는 수준이 되었다면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고 더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30%만 되어도 굉장히 형제간에 정이 깊은 경우이고 그 이하에서도 괜히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 본전생각이 나는 것이 사람의 심리란 것이다. 하물며 현실에 보면 나보다 더 잘살고 잘나가는 여성들도 많은데 어디까지 자신은 여성들에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불편하게 힘들고 위험한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참으라 한다면 어디까지 남성들은 참아야 하는 것인가.

 

정히 여성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겠으면 그런 남성들의 의견을 듣기라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모여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듣고 공감대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여성의 일방적인 입장만을 강요했고 젊은 남성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물론 여성들에 대한 불만만은 아니다. 이미 사회의 주류가 되어 있는 4,50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다. 그러면 정당차원에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그러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 설득할 수 있는 결과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어떠했는가. 사실 박원순 시장 논란은 여성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더 치명적이었다. 평소 여성주의자를 자처했던 박원순 시장이기 때문이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그래서 위기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옳기에 여성주의를 강요하고 강제할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넘어갈 것인가. 그래서 저 씨발년들이 조국을 걸고넘어지는 것이겠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해졌다. 여성주의자들은 반여성주의 정책을 펴더라도 철저히 보수정당의 편에 설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잡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주의 정책을 펴도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들인가? 여성주의 정책만 포기하면 다시 지지해 줄 지 모르는 젊은 남성들일 것인가? 메시지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를 통해 나와야 한다. 아니면 박주민 정도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거나. 고민할 시점이다. 과연 모든 남성은 여성보다 강하고 우월한가. 좆까라는 소리다.

 

현장에서 더욱 느끼게 되는 사실이다. 남성과 다름없이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고 편하고 안전한 일만 하려는 같은 여성들을 더 혐오하고 증오한다. 남성들은 그래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할 말도 못하고 그냥 참고만 있는데 여성들은 그런 여성들을 향해 자기가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낸다. 그 여성들이 틀려서? 그게 바로 사회의 구조란 것이다. 하긴 류호정이 보좌관 자른 과정을 보면 자칭 여성주의자들도 모르는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아무튼.

이번 보궐선거로 분명해졌다. 오세훈이 젠더특보를 없애자 젊은 남성들은 환호했고 여성주의자는 침묵했다. 남성인 오세훈이 젠더특보를 없애도 여성주의자들은 여전히 오세훈을 지지했고, 젊은 남성들은 압도적으로 그런 오세훈을 지지했다. 즉 더 여성주의 정책을 펼치더라도 여성주의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할 일이 없고, 더 여성주의 정책을 펼치면 아예 영영 젊은 남성들은 민주당에 등돌릴 것이다. 선택의 시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성주의일 것인가.

 

권인숙이니 여성신문이니 여성주의자들이 느닷없이 조국을 욕하고 박원순을 욕하며 책임을 돌리기 시작한 이유인 것이다. 강선우가 아예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유다. 아니면 여성주의에 책임이 돌아갈 테니까. 시작은 여성주의였고 원인도 여성주의였고 결과도 여성주의다. 여성주의자들이 실수한 것이다. 여성주의에 가장 우호적이던 40대 남성들마저 등돌리게 만들었다. 저들에게 자신들은 단지 무시하고 배제해야 할 적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 하나만 욕하고 버티면 여성주의를 지킬 수 있다. 박원순에 모든 책임을 돌리면 민주당에서 여성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 아는 것이다. 결과로써 확인한 것이다. 더이상 민주당이 여성주의 정책을 적극 지지할 이유가 사라졌다. 민주당에 여성주의는 단지 짐이고 심지어 적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당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성주의를 끌어안고 자멸할 것인가. 아니면 여성주의와 거리를 두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할 것인가.

 

박주민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여성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여전히 박주민이었을 테니. 이 역시 여성주의자들이 실수한 부분이다. 하필 박주민을 내로남불이라며 공격하는 바람에 박주민의 여성주의자로서의 입지를 완전히 틀어막고 말았다. 박주민이 더 큰 꿈을 꾸려면 지금 당장은 여성주의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상징성을 이용해서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럴 만한 깜냥이 되는가. 아니라면 거기까지인 것이고. 생각이 필요하다.

지난 총선 직후 유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강하게 항의했던 것은 김영춘이었다. 아마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어려운 선거국면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영향력있는 스피커였을 텐데, 언론이 완전히 돌아선 상태에서 뭔가 하나 내놓으려 해도 이슈화하는데 거의 절망과 같은 현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지만 정작 유시민으로 하여금 정치평론을 그만두게 만든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민주당 전당대표 이낙연이었었다. 유시민을 공격하는 면면을 보고 바로 눈치를 챘었다. 유시민의 영향력을 꺼려한다. 유시민이란 존재가 민주당에 드리운 그림자를 불편해한다. 민주당은 온전한 자신의 당이었으면 한다. 이낙연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민주당이 그렇게 조직적으로 집요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유시민을 민주당으로부터 도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상관없는 자기만의 정당 민주당에 대한 이낙연의 집착은. 그래서 이소영과 오영환 나부랭이들을 부추겨 그런 되도 않는 기자회견까지 했던 것이었다. 첫째는 언론에 대한 항복선언이자 기사구걸이었으며, 둘째는 민주당의 선거패배에 대한 자기책임의 희석이었다. 당연하게 민주당이 선거에서 졌다면 그동안 민주당을 책임진 최고 지도부에게 책임이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 이낙연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중인가.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와중에 미리 대선출마를 위해 당대표를 사임했다고 꽃놀이중이다. 그런 상황에 민주당 패배의 책임이 전 대표였던 이낙연에게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민주당을 탈당한 것이었다. 민주당의 승리를 바라지만 이낙연의 방식에 동의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하고 나 또한 지지하고 있기에 그동안 우호적으로 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론이 결국 이소영의 배신이 아니었던가. 대통령도 부정하고 지지자도 부정하고 딱 오래전 민주당의 방식이다.

 

이소영의 배후에 이낙연이 있다는 것은 이낙연 주위에 포진한 인물들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재명은 쓸 수 없는 수다. 오래전부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 관여해 온 놈들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지지자를 민주당과 분리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튼 이낙연이나 그를 따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금 매우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다. 김어준만으로는 안되었다. 그래도 역시 유시민이 있어야 했다. 이 또한 이낙연의 성급함이며 아집이었다. 그때 벌써 대선후보감은 아니구나 여겼어야 했는데. 올초까지 이낙연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내 잘못이다. 탈당도 해서는 안됐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하긴 군사독재에만 책임을 묻기에는 일제강점기나 그 이전 조선과 고려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반 백성이 정치에 대해 자기만의 지향이나 주장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먹고 사는 일에나 충실하며 나라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르는 것이 백성의 본분인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런 백성이 임금의 정치를 비판하고 그를 바로잡겠다고 직접 나서기까지 한다면 그를 여전히 평범한 백성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인가.

 

말하자면 언론에서 말하는 순수한 국민이란 것이다. 대학생으로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민주당의 정책이 옳다 여기기에 민주당 장적을 가지고 직접적인 활동도 한다. 그래서 지금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정당활동을 하고 있으니 대학생이 아닌 것인가? 평소 정치적인 주장들을 많이 해 왔으니 평범한 국민은 아닌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래서 유가족으로서의 평범성과 일반성과 무엇보다 순수성에 대한 공격에 수도 없이 시달려야 했었다. 아니 심지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를 추모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더이상 국민을 넘어 인간으로서 순수성과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진정 중립적이라면 세월호에 대해서도 자기 주장을 가져서는 안된다.

 

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이 아닌 이유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독립운동가들은, 아니 독립운동은 커녕 그냥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불만을 가진 조선인들조차도 불령선인이라 하여 비국민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군사독재시절에는 민주화운동가들을 좌경용공이니 운동권이니 하며 일반 국민들과 분리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지금 정의당이나 한겨레 같은 자칭 진보들이 과거 운동권들을 자신들로부터 배제하려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들은 남성이고 기득권이며 정치적이고 불순한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의사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므로 가치가 없다. 아무런 정치적 의도를 가지지 않는 이들만이 순수한 시민이며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노동자라도 정의당이 보기에 나는 순수한 노동자가 아니다.

 

그런 인식은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과거 가지고 있었다. 순수한 국민과 구별되는 또다른 존재로서 표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닥 달갑지 않은 대상으로 지지자들은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 국민이란 자신들의 지지자들과 다른 순수한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목적도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 자신들을 지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국민이 아니다. 과거 민주당이 아예 의도적으로 지지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부정하고 배척해 온 이유이기도 했었다. 국민이 아닌 지지자들의 말을 들으면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지지자들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 2008년 선거의 결과가 어떠했었는가?

 

이소영과 오영환 나부랭이들의 지지자와 국민 어쩌고 하는 개소리는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뒤에 코치한 배후가 있을 것이라 단정짓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을 거치며 지지자와 국민의 뜻이 어떻게 합치하는지, 지난 촛불정국을 통해서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가진 국민의 존재에 대해 직접 겪었을 이들이 새삼 지지자와 국민을 분리하려 시도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지지자와 나머지를 분리하여 그 나머지의 편에 서고 싶은 것이다. 언론이 바라고 야당이 바라고 자신들이 바라는 바다. 저 지지자들로 인해 금태섭이 공천도 받지 못했고 많은 현역들이 재선에 도전조차 못하고 말았다. 내가 그런 꼴을 당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늬들은 표만 주라. 우리는 진정한 국민을 위해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 그런 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비슷한 개소리를 올 초 새해벽두부터 들었던 적이 있었다. 운동권은 국민이 아니다. 민주화를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면 더이상 순수한 국민이라 할 수 없다. 세월호참사를 추모해도, 윤석열을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지지해도, 심지어 나 자신을 위해 최저임금인상을 지지해도. 그래서 내 비판따위 아무렇지 않게 씹어 버린다.

 

끝난 게 아니다. 안철수가 다 데려간 게 아니었다. 남은 놈들이 있었다. 그 놈들이 비슷한 부류의 초선들을 부추겨 대통령을 끝장내자 언론에 타협을 제시한다. 정확히 항복을 선언한다. 문재인이든 조국이든 추미애든 다 죽여서 목을 내줄테니 우리만 살려달라. 지지자따위 죄다 죽이든 노예로 팔아버리든 상관없으니 우리만 배지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 잘도 그렇게 해주겠다. 2008년에도 살아남은 놈들이면 생각이 다르겠지만. 벌레새끼들이다. 역겹게도.

예상대로다. 너무 뻔해서 오히려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소영이니 장성태니 하는 나부랭이들이 사과한 대상은 국민이 아니었다. 언론이었다. 당연하다. 대부분 국민들에게 조국이든 추미애든 이미 지난 이야기란 것이다. 조국사태가 있고서도 민주당은 작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었고, 추미애는 오히려 조국에 비하면 여론이 일방적이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언론만이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이소영 장성태 오영환 나부랭이들은 굳이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사과씩이나 해야 했던 것일까? 말하지 않았는가. 오로지 언론만 일방적이었다고.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언론의 힘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언론이 묻으려 하면 어떤 사실도 진실도 다 묻을 수 있고 비틀고 바꿀 수 있다. 언론의 도움이 없이는 이제 어떤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정확히 자신들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물을 건네고 용서를 구하는 항복선언을 할 것이다. 국민들에 사과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누가? 그러니까 이런 논란이 일 것이 분명한 행위를 과연 초선나부랭이들이 아무와 상의도 않고 독단으로 저질렀겠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 안에 언론과의 휴전, 아니 언론에 굴복하여 그 자비를 구하고 싶은 놈들이 초선 나부랭이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누군지 굳이 콕 짚어 말하지 않겠다. 이번에 새삼 언론의 사악함을 깨달은 듯한 발언을 했으며, 그러면서도 그런 언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과거 열린우리당을 망친 주역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다시 정확히 이소영 나부랭이들이 언론에 항복선언을 하며 건넨 제물은 조국, 추미애 등만은 아니란 것이다. 조국 추미애를 누가 장관에 임명했는가? 조국과 추미애가 누구를 대신해서 윤석열과 피를 흘려가며 싸워야 했었는가. 마지막에 초선나부랭이들은 민주당 지지자는 비국민이라며 지지자의 말이 아닌 국민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예전 민주당에서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던 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결국 노무현을 제물로 바치고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이어간 바 있었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이 항복선언을 통해 약속한 것은 기회가 되면 문재인 대통령도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대통령 지지율도 빠지는 것 같고,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전만 못하니 나라도 살기 위해서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과 민주당을 제물로 협상을 시도하겠다. 한 부류는 어차피 민주당 없이도 국회의원 배지 정도는 계속 달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에 넘치는 놈들이고, 하나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는 놈들이다. 그러면 그동안 초선 나부랭이들은 누구와 소통하고 있었을까?

 

더이상 지지자들의 말따위 듣지 않겠다. 대통령도 상관없고 오로지 언론의 말만 듣겠다. 재미있는 건 그러다가 금태섭이 어떻게 지지자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민주당에서 내쫓기듯 나가게 되었는지 모르는 놈들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있다는 것이다. 당권에 가까이 있는 인간일 테고, 어차피 지지자들과 상관없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망할 것이란 확신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최선이다. 이 비슷한 짓거리를 얼마전에 했던 인간이 있다. 그래서 이해한다. 그 인간이 아니면 이런 일을 벌일 놈이 없다.

 

중도층이고 나발이고 대통령과 지지자들을 버리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항복선언도 이런 굴욕적인 항복선언이 없다. 그러니 언론이 자기 좀 잘 봐 달라. 자기에 대해 기사 좀 잘 써달라. 하긴 아쉽기는 무지 아쉬울 것이다. 한때 꿈에 거의 가까이 다가갔다가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로 정치생명이 아예 끊길 지경에 내몰렸으니.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일단 저 새끼들은 다시 볼 일 없기를 바라면서. 국민의힘으로 갔으면 배지는 커녕 밥심부름도 못했을 한심한 물건들인 것이다. 역겨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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