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리 한결같을까. 처음 김봉현씨의 법정증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아, 또 시작이구나. 한명숙 전총리부터 조국 전장관에 이어 실패했지만 유시민 이사장까지 질리지도 않고 검찰이 또 같은 수작을 부리고 있구나. 역시나 이번에도 강기정을 엮어 넣는 조건으로 뭔가 딜이 들어갔겠지. 그리고 강기정을 시작으로 KBS와 SBS등에도 보도자료가 다 넘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KBS가 진영 장관을 걸고 넘어졌던 것.

 

강기정이 진짜 잘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되도 않는 헛소리로 사람을 음해하려 드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으면 병신인증이다. 대부분 서민들이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거의 알지 못하고, 더구나 그러려고 해도 그만한 여유가 되지 않으니 참고 당하는 것이지 그래도 정치인들 아닌가. 법 만드는 일에 몇 년이나 종사했고, 그 전에는 선거에서 당선될 정도로 지역에서 알려진 명사들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정치인인데 바로 나서서 한 마디 해 주면 파급력도 있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아무리 떠든다고 과연 들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허위사실로 자신을 음해했다. 법정에서 거짓증언을 한 김봉현에게는 위증죄까지 더해서 조선일보 기자들까지 포함 한꺼번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해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날조고 거짓말이다. 심지어 김봉현 자신이 돈을 건넸다고 지목한 사람마저 다른 말을 하는 상황에 하필 청와대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그 증언의 신빙성을 더욱 의심하게 만든다. 아무리 나라가 개판이라도 현금 5천만원을 청와대에 숨기고 들어가서 직접 건넨다는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증거도 없이 그저 검찰 말만 믿고 지른 상황이라 자칫 이대로 있다가는 더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차라리 검찰과의 거래를 폭로해서 검찰을 궁지로 모는 것이 검찰의 보복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니까 이강세가 어디서 강기정을 만났는지 정도는 확인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기정이 이강세를 청와대로 직접 불로 만난 것부터 신의 한수였다. 그게 옳다. 거래처와 만날 일이 있어도 그냥 바로 사무실로 불러서 만나면 되는 것이지 괜히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만났다가 잘못 일이 꼬이면 뒷말이 나오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여성직원과도 모두가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만 같이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바로 녹음버튼부터 누르고 그 자리를 빠져나와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청와대 경호팀이 혹시 모를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청와대 안이라면 어지간한 구설수는 원천차단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직자는 공적인 장소에서만 외부인을 만나야 한다. 뭔가 한 자리 하는 사람이다 싶으면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교훈 하나를 남겼다. 더불어 모든 내용은 문서로 만들어 공식화해서 보관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무튼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라임으로 인해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자칫 위증과 명예훼손이라는 혐의까지 추가되면서 김봉현으로서도 선택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 끝까지 검찰을 믿어 볼 것인가, 아니면 아직 40%중반대의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부와 180석의 거대여당을 믿고 검찰을 상대로 한 번 들이받아 볼 것인가. 검찰이 그냥 당근만 내밀고 위증을 종용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동안 검찰로부터 받았던 수모와 굴욕까지 더하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이 새끼들 한 번 제대로 먹여보자. 그리고 콰앙! 

 

너무 빠르다. 그래도 조금은 더 끌고 갈 줄 알았다. 그래도 강기정 전수석이 고발한 내용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아마 계속해서 언론과 검찰이 합심해서 물어뜯으려 들 것이다. 그만큼 검찰의 힘이 빠졌다는 뜻일 것이다. 정확히 윤석열 검찰총장의 힘이 많이 빠진 것이다. 검찰보다는 정부가 더 힘이 있고, 여당에 더 기회가 있다. 괜히 윤석열 코인에 편승하려 한 언론만 망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반성할 언론이 아니겠지만.

 

무조건 강기정이 잘한 것이다. 이건 모두 강기정의 공이다. 원래 너무 싸움꾼이라 컷오프되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필 이런 싸움꾼을 건드려서. 아마 싸움꾼이니 제대로 건드리면 바로 도발에 넘어올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의외로 지능적인 싸움꾼이었다. 정치인이 머리 나빠서는 정치같은 거 못한다. 너무 싱겁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언론은 병신이다. 역시 뒈지는 게 세상을 위해 도움을 주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서민도 서울대 의대 출신이었지? 어쩜 이리 닮았냐? 

 

서민이 그토록 대깨문이라며 조롱하고 모욕하는 그들이 바로 강연을 나가면 와서 자리도 채워주고 하는 대중들이란 것이다. 시립도서관이라면 당연히 시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곳일 것이고, 시의 재정이란 것 역시 시민이 내는 세금에 의해 많은 부분 충당될 것이다. 정부에서 교부금 내려가는 것도 결국 국민의 세금이니 세금을 낸 당사자로서 시의 재정이 어떻게 쓰이는가 감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그런 정도 계산도 못하는가? 지금까지 서민은 무려 40%가 넘는, 50%에 육박하는 국민들을 대놓고 모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를 모욕한 대상이 와서 강연을 한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김구라가 예전 '썰전'을 진행하면서 아주 좋은 말을 했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 연고전하는 앞에서 오징어를 파는데 고대생이라 밝히면 연대생이 사겠는가? 내가 예전 그래도 진중권을 인정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뻔히 욕먹을 줄 알면서도 대세를 거스를 줄 알았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데 돌맞을 것을 각오하고 자기 주장을 폈었다. 그게 지식인이다. 그래서 유시민도 알릴레오를 시작하면서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했던 것이었다. 당시 유시민은 알릴레오 등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으로 매우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은 상태였었다. 그런데 심지어 모든 언론이 조국 전장관을 공격하는 상황에 괜히 나섰다가는 오히려 함께 휩쓸려갈 상황에서도 조국 전장관의 편에서 자기 주장을 폈던 것이었다. 언론을 등에 업고 입으로 배설이나 일삼는 서민이나 진중권 나부랭이들과 전혀 상황이 다르단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자신에 실망하여 등돌리고 심지어 비난까지 퍼붓는 대중들을 향해 유시민 이사장이 한 마디라도 원망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진중권이 그나마 쓸만했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대중이 자신을 욕해도 아랑곳없이 내 할 말만 한다. 그에 비하면 지금 모습은 얼마나 비루하고 구차하기만 한가.

 

아무튼 자기가 선택을 했으면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술안주로 치킨을 사왔으면 삼겸살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다. 오늘 관악산을 올랐는데 북한산을 함께 오를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게임 삼국지를 즐기고 있는데 같은 컴퓨터로 동시에 문명까지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둘 모두를 가지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대가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까지 감수하고 각오하며 사람들은 대부분 선택이란 것을 하게 된다. 공공의대와 정원확대를 막기 위해서라면 의사국시를 치르지 않겠다. 그러면 공공의대와 정원확대를 저지한 만큼 대가를 치르면 되는 것이다. 차라리 의대생들이 교수나 전공의들보다 더 솔직하다는 이유다. 자신들이 그럴 각오로 선택한 것인데 이제와서 추가시험을 치르네 재시험을 치르네 하는 것이 다 무슨 의미인가. 마찬가지로 내가 혐오와 경멸을 담아 마음껏 남을 모욕하고 조롱했다면 그 대상이 된 이들로부터 경원과 배척을 당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한다는 건 얼마나 큰 모순인가.

 

아직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 숫자가 거의 절반이다. 조국사태 당시 모든 언론이 총공세를 펴는 와중에도 40%의 지지율은 어떻게든 유지되고 있었다. 그나마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졌을 당시가 40%바로 아래 있는 정도였다. 그런 국민들을 모욕한 것이다. 대깨문이라고. 그냥 대통령만 욕한 것이 아니다. 조국 전장관이나 민주당 정치인들만 모욕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조롱한 것이다. 국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이들을 경멸하고 혐오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조중동 기자들은 민주시민들 모인 자리에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한다. KBS도 JTBC도 모두 숨어서 시위를 중계해야 했었다. 자기만 특별취급인가?

 

서민이 그동안 내뱉은 말들을 떠올려 보라. 진중권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중들에 뭐라 떠들어도 되지만 감히 대중이 자기에게 무어라 해서는 안된다. 자기가 대중들을 어떤 말로 모욕하고 조롱하든 대중은 그저 닥치고 들어야만 한다. 누가 의대 출신 아니랄까봐. 그러고보니 안철수도 그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의대가 문제인 것일까? 하필 문제있는 놈들이 의대를 나왔던 것일까?

 

눈을 의심했다. 모자란 것 아닌가? 하다못해 사람도 얼마 없는 한적한 블로그에서 글질이나 하는 나도 내 성향을 드러낸 데 따른 결과 정도는 각오하고 글을 쓴다. 가끔 와서 공격하는 댓글이 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이유다. 내가 내 성향 내 마음대로 드러낸 결과인데 뭐 어쩌라고? 그만한 각오도 없이 그런 험한 말들을 내뱉어 온 것인가.

 

권력이 아니다. 중앙정부나, 여당, 혹은 지자체에서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란 것이다. 순수한 혐오다. 반감이고 경멸이다. 서민 저 인간 꼴보기 싫다. 강연하는 건 더 보기 싫다. 누가? 국민이. 대깨문은 국민이 아니라 여기는 놈들이야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안되는 것이다. 저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문빠도 국민이니까. 웃기는 짜장찌꺼기들이다.

한 마디로 펀드란 것은 '내가 돈 잘 굴려서 이익나면 돌려줄테니 믿고 돈 좀 맡겨 주세요'다. 뭔 말이냐면 펀드에 가입한다는 자체가 수익의 배분을 약정받는다는 뜻이다. 물론 투자에 실패해서 손실을 보면 당연히 투자금도 까먹게 된다. 그러니까 펀드에 투자할 때는 최대한 꼼꼼히 따져보고 조심해서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자본력이 되는 금융기업의 경우는 다른 상품과 결합해서 원금보전을 약속하는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공직자의 펀드투자가 허용되어 있는 현실에서 펀드의 수익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뉴스로 보도될 만큼 중요한 사안인가.

 

혹시 모른다. 이익이 생기면 이익을 나누고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특별히 원금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정이 따로 이면에 되어 있다면 특혜를 의심할 수 있다. 당연히 세상에 공짜란 없으므로 특혜가 있다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따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에 투자하고 5월에 환매정지가 되어 원금도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다. 돌려받기는 커녕 꼼짝없이 사기피해자가 되어 상당한 재산을 날릴지 모르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수익을 나누어받기로 했으니 부정이 의심된다. 범법이 의심된다. 말했잖은가. 공직자의 펀드투자는 합법이라고. 그래서 장관의 직위를 이용해서 펀드의 투자에 관여하고 부정하게 돕기라도 한 정황이 발견된 것인가.

 

요즘 KBS가 어느때보다 노골적이다. 아마 박원순 시장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공격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박원순이라는 성추행범이 몸담고 있던 정당이니 아무렇게나 공격해도 정당하다는 판단인 것일까. 한동훈을 구하겠다고 자가발적으로 오보를 내고 바로 사과하더니만 프레임이 바뀌었는데 왜 계속 수사하느냐는 뉴스를 주력시간대에 내보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경화에 이은 진영 장관까지. 그렇다고 몰라서 그리 보도한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런 의심을 가지도록 타이틀을 짜고 내보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KBS 정상화른 명분으로 파업한 다음에 당시 지도부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를 끝장냄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해 보이겠다.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원래 그것이 KBS의 목표였고 KBS의 정상화였다. 한국은행 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일단 정부부터 까는 기사를 내보내거나, 의사파업에 대해 정부가 분명 잘못했을 건데 방법이 잘못되었다 말하거나, 심지어 아예 인터뷰이의 인터뷰를 조작해서 사실을 왜곡해서 내보내고 인정조차 않거나. KBS 좀 보지 말라는 소리다. KBS의 정상화는 KBS의 폐쇄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새삼 확인한다.

 

문제, 회사에 평생 아래아한글(이하 한글)만 써 온 부장님이 계시다. 거래처에서 MS워드만 쓰기에 서식에 맞춰 보내려니 한글의 기능은 아는데 MS워드는 전혀 모르고 있어 곤란해 하는 중이다. 과연 일반적인 경우 부장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물론 대부분은 그냥 MS워드 쓸 줄 아는 직원 불러다 시키고 말 것이다. 자기가 직접 해야 하는 경우다. 자기가 아는 한글의 기능으로 대부분 작업을 마친 뒤 MS워드로 옮겨서 완성지을까, 아니면 그냥 MS워드의 기능을 배우고 말까?

 

나도 직장 다닐 때 문서작업 꽤나 해봤기에 말하는 것이다. 일하면서 제일 짜증나는 게 뭐였냐면 회사에서는 MS오피스와의 연동 때문에라도 MS워드를 주로 사용했는데 공공기관과 문서를 주고받으려면 반드시 아래아한글을 사용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MS워드에서 작업한 것이 아래아한글과 바로 호환되었느냐면 표고 그림이고 다 깨져나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것이 나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대개는 컴퓨터에 내부용 MS워드와 외부용 아래아한글을 함께 깔아놓고 용도에 맞게 따로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MS워드의 장점과 한글의 장점을 모두 살리기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 모두를 사용해 작업하는 경우가 있었느냐면... 미쳤거나 바보냐는 소리나 듣고 만다. 왜 그래야 하는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MS워드든 아래아한글이든 필요한 기능만 배우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이다. 어지간히 바보가 아닌 이상 메뉴만 몇 번 클릭해서 실행해 보면 대충 어떤 기능이 어떻게 쓰이는가 정도는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이 별개란 것이지 워드프로세서로써 반드시 필요한 기능들은 구체적인 내용만 다를 뿐 메뉴 자체는 서로 많은 부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아래아한글 잘 쓰면 MS워드도 대충은 기본은 쓸 줄 알고, MS워드도 잘 쓰면 아래아한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기능 정도는 쓸 줄 알게 된다. 내가 그랬으니까. 남들처럼 평소에는 거의 아래아한글만 쓰다가 정작 직장에 들어가니 MS워드만 쓴다길래 그때부터 혼자서 메뉴 몇 번 뒤져보고 배워서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정경심 교수와 함께 일하던 조교들은 아래아한글을 제법 잘 썼다면서? 그런데 왜 MS워드여야 했던 것일까?

 

전에도 썼지만 검사의 기소내용을 보고서 내가 가장 먼저 가졌던 의문이었다. 왜 MS워드와 아래아한글을 같이 쓰느냐고? 굳이 MS워드와 아래아한글을 오가며 작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정도면 정경심 교수의 지능에 대한 아주 악의적인 폄훼이고 모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캡쳐는 MS워드로 하고, 표창장은 한글로 만들고. 그냥 한글로 다 하면 되지 않겠는가. 아니 캡쳐만 따지면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당시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조교에게 물어보면 되지. 평소에도 별 시답잖은 것까지 물어보고 대신 시키는 통에 그리 원망이 자자했다는데. 아니나다를까 평소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위조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던 인간들조차도 여기까지 와서는 생각이 달라지는 듯하다. 검찰이 병신인가?

 

기자새끼들은 그냥 뇌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다. 기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이유다. 기자에 대한 인격모욕과 성희롱? 언어폭력? 그런 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법률에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유해조수라 판명되면 그나마 보호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아래아한글을 써보고 MS워드를 써봤으면 저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말이 안되는가를 알았을 텐데. 한글에 그런 기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MS워드로 가능한가의 여부조차 의미없이 왜 굳이 그렇게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이다. 결국 MS워드에서 파일을 잘라서 아래아한글의 서식에 붙였다면서? 그 과정에서 서식도 많이 손봤고. 그 자체가 아래아한글을 쓸 줄 안다는 의미인 것이다. MS워드만큼은 쓸 줄 안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몇 가지 기능 정도 주위에 물어 배우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진짜 만일 주위에 누군가가 서로의 장점을 모두 살리려 MS워드와 아래아한글 두 가지 프로그램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말한다면 한 마디 해 줄 것이다. 너 바보냐? 아니면 미쳤냐? 그런 수고를 할 거면 차라리 프로그램 하나를 제대로 써서 작업하는 쪽이 훨씬 빠르고 편하고 결과물도 낫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본을 부산대에 직접 제출까지 했다는데 그런 식으로 티나게 위조했으면 부산대에서 그대로 통과시켰을까? 전혀 티나지 않게 위조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 줄 안 모양이다. 더구나 서식도 있고 전용 표창장용지도 있는 상태인데.

 

아무튼 기자새끼들이며 검찰놈들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는 또 하나 사례일 것이다. 아니 MS워드든 아래아한글이든 배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더구나 그렇게 많은 고도의 기능들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그냥 캡쳐하고 잘라내고 갖다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두 프로그램을 오갈 이유가 있었는가. 근본적인 의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느냐고? 답이 없는 것이다. 저런 놈들이 그래도 이 나라의 엘리트라는 것들이다. 병신들이다.

아마 전에도 썼던 것 같다. 사람이 어째서 욕을 하는가에 대해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절대 욕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욕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리는 달동네에서 살았던 경험에 기초한 말이다. 어떤 때 사람은 욕을 하는가. 말이 생각보다 말보다 앞설 때. 당장 뭐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머리도 마음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른 압축된 한 마디를 내뱉고 마는 것이다.

 

"야 이 개자식아!"

 

이를테면 기레기라는 표현도 그렇다. 어째서 취재를 안하느냐? 하다못해 당사자와 인터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인터뷰했으면 그대로 내보내야지 제목만 그런 식으로 다는게 말이 되느냐? 무엇보다 지금 네가 쓴 이 기사가 사실 맞아? 진실이 맞아? 그런데 그렇게 길게 쓰려니까 그렇지 않아도 일상이 고단한데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압축한다.

 

"이 기레기새끼가!"

 

당장 나만 해도 기레기니 기더기니 기자것들이니 기자놈들이니 욕을 섞지 않고 쓰려 했으면 글의 길이가 적어도 두 배는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답답해서 내 성질에 벌써 숨이 넘어갔을지 모른다. 여기서 뭔가 기자와 언론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는데 그것 다 쓰다가는 내가 죽을 지경인 것이다. 그러니까 기레기새끼. 그러니까 기더기년들. 그러니까 언론것들. 씨발 개좆같은 새끼들 죄다 파묻고 밟아버렸으면 좋겠다. 얼마나 편한가? 

 

그렇기 때문이다. 대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일상이 분주해서 차마 그 길고 복잡한 내용들을 다 가슴으로 머리로 정리하지 못하고 내뱉으며 겨우 살아가는 이들이란 것이다. 혹시라도 노가다 같은 몸쓰는 일 할 일 있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이다. 진짜 말들 험하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인데 듣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상처받고는 한다. 울컥해서 싸움도 자주 한다. 싸우고 술먹고 또 싸우고 술쳐먹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같이 일하지 못한다. 그러면 거꾸로 굳이 그렇게 급하게 욕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대신할 필요가 없는 여유있는 이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교양있는 사람들은 교양있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것 역시 근대의 산물이었다. 혈통에 의한 신분의 세습이 의미를 잃고 자기 실력으로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쟁취하던 시절 어느새 지배계급으로 올라선 자신들을 피지배계급과 구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책값이 싸지도 않던 시절 돈이 없으면 배우는 것도 어려웠다. 그저 글을 읽고 쓸 줄만 알아도 대단하게 여겨지던 때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제 응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보통의 시간과 노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같에 10시간 넘게 몸을 쓰며 일하는 사람들이 헬스를 할까? 필라테스를 받을까? 일주일 내내 하루만 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이니 무용이니 미술이니 하는 것은 그저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앞에서 피아노 연주가 어떻네, 누구의 화풍이 어떻네, 솔직히 짜증난다. 아 저 부르주아새끼. 하지만 그런 만큼 자기 생각도 다 정리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럴싸한 말들로 그런 모든 것을 풀어낼 책임도 지워지게 된다. 유시민 이사장이 여전히 지식인 사회는 물론 대중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식인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에 두루 능통하게 양자를 잇는 최고의 역할을 도맡고 있다.

 

아무튼 교양이란 교양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신분, 혹은 계급을 전제로 한 개념이란 것이다. 하루종일 관절이 부서져라 일하고 술 몇 잔에 그 고통을 속이며 잠자리에 누워야 하는 이들에게는 전에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경험했든 교양이란 것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명한 대학교수라도 아파트 경비를 하느라 하루종일 주민들과 싸우고 돌아온 뒤라면 그 감정을 풀어내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 자기가 대학교수고, 혹은 전직 대학교수였고, 누군가 자신이 하는 말을 중요하게 받아써주고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괜히 방문자수 천 명 단위 넘어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 멘탈에는 딱 방문자수 400명 까지가 아무 생각없이 글 쓰기 좋은 수준이다. 그 이상 넘어가면 신경쓰여서 글을 쓸 때 무척 조심해야 한다. 여기 보면 가끔 그렇게 읽는 사람 의식하고 조심해서 쓴 글들을 드물게나마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언론의 주목을 값싸게 비난과 조롱으로 팔아넘기는 놈들이 있으니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그 잘난 서울대 출신들이란 것이다. 누군가는 석사고 누군가는 박사다. 어디 기자라는 여자도 하나 끼어든 모양이다. 돈도 많지 않은가? 시간도 많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차고 넘치는 조건에 있는 이들이다. 더구나 머리까지 좋으니 보통 사람들에 비해 그 속도도 상당히 빠를 것이다. 머리좋은 놈들 암산하는 것 보면 저것들 사람들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말을 하고 글을 쓰더라도 그에 어울리게 써야겠지. 시정잡배처럼 비아냥과 조롱 말고 제대로 된 논리와 서술로, 아니 비유를 사용하더라도 절로 무릎이 쳐지는 직관적이면서 날카로운 매우 적확한 비유로써 상황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시정잡배의 욕은 짧기라도 하지 욕설이 길어지면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이다. 욕이 길면 더이상 욕이 아니다. 욕은 때로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모욕과 도발은 응징의 대상일 분이다. 그래서 지금 자칭 진보 버러지새끼들은 욕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진중권이든 서민이든 얼마나 컴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는지를. 그래도 권경애와 김경율은 저들과 격이 다른 인물들이다.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프레시안은 예전부터 아오안이라 이름까지 기억은 못하겠다. 그나마 가끔 한 마디 할 때마다 어느 정도 그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낄 때 안 낄 때를 최소한 가리려는 노력은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조차도 조금만 사정을 알면 역시 낄 때 안 낄 때 가리지 않는 천박함과 경박함을 바로 느끼게 될 테지만.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들어주었으면 싶었을까. 그런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대놓고 무시하고 있으니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욕하면 칭찬해주고, 욕하면 받아써주고, 욕하면 그래서 인정받게 된다.

 

아마 글을 보면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같은 욕을 쓰는데도 진중권이나 서민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욕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너무 지저분하다. 그래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욕을 하기 위한 욕이다. 욕하기 위해 일부러 쥐어짜낸 욕설들인 것이다. 비난하기 위해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해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비아냥거린다. 욕은 시정잡배처럼 하면서 여전히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니 이성과 지성으로 쥐어짜낸 증오와 혐오라는 고약한 부조화의 산물이 만들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아예 그냥 다 내려놓고 욕하던가.

 

과연 이런 것들을 지식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인가. 그러니까 저따위로 욕하는 것이라고. 욕도 아니고 뭣도 아닌 그냥 의도된 배설물들이다. 자기 똥을 자기 손으로 똥처럼 꾸며 놓은 기괴한 괴물들인 것이다. 그러고서도 대학교수입네 논객입네 자기를 추켜주고 인용해주는데는 굉장히 민감하다. 예형이 그래도 이름을 남긴 이유는 그 비난과 조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뒤가 없었다. 예형에게 미안한 일이다. 수준이 참 한결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뭐냐면 국민의힘이나 정의당이나 언론이나 자칭 진보, 자칭 정의로운 중도, 우파들이나 있지도 않은 사실 가지고 지금껏 추미애 장관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냥 군규정에 있는대로, 더구나 이전에도 지휘관 재량으로 해오던대로 휴가를 연장해서 쓴 것을 가지고 특정인의 주장만을 근거로 탈영이다, 특혜다, 비리다, 신나게 떠들면서 장관은 물론 그 가족까지 비난하고 조롱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3년 전 그냥 일상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양심란 게 있는 것인가?

 

시작은 탈영이었다. 휴가자가 복귀일에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으니 군무이탈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뒤늦게 휴가연장으로 처리되었으니 남모를 비리 같은 게 있는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주장해 왔었다. 오죽하면 함께 근무했던 병사가 저런 주장까지 하겠는가. 오죽 할 말이 많았으면 지금와서 저렇게 자기 이름과 얼굴까지 까고서 폭로하고 나섰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군무이탈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다른 청탁이나 특혜가 있었는가 여부였다가, 그리고는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아 그런 적 없다 한 것으로 트집을 잡는다. 그러니까 당시 보좌관에게 문자를 했음에도 안했다 한 것이 거짓말이면 없는 사실로 비난한 행위 자체도 거짓에 근거한 부당한 공격이었던 거거든? 왜 반성을 않을까?

 

언론이야 오래전에 기대를 접었고, 대중이란 얼마나 병신같은가도 역시 타진요를 통해서 질리도록 체험했다. 그래서 더 어이없는 것이다. 저런 병신같은 버러지들로 인해 그동안 나라가 이토록 시끄러웠던 것인가. 낚이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서민이나 진중권이나 김경율 같은, 그 밖에도 김종대를 비롯한 정의당이나 한겨레, 경향 등 자칭 진보언론들은 참 그 대가리속이 궁금할 지경이다. 민주당은 그래도 되니까. 민주정부라면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렇게까지는 않는 것인가. 저 새끼들을 사람취급하는 내가 병신인 거다. 더러운 것들.

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평생 놀면서 돈버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할 것이다. 일은 없고, 그렇다고 잘릴 걱정도 없고, 그러면서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심지어 퇴직하면 연금까지 제때제때 나온다. 얼마나 좋은가? 

 

추미애 장관이 한동훈을 무척 좋게 본 모양이다. 지금 막 카카오맵으로 찾아보니 도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으면서 주위에 숲도 우거진 것이 무척이나 한적해 보인다. 이런 곳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러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악을 써가며 사법고시 공부도 했었던 거겠지?

 

백수 석달에 이력서 쓰는 거 지겨워서 걍 노가다 뛰기로 결심하고 나니 그래서 더 부러워지는 것이다. 평소 근력 키우겠다고 고중량저반복으로 운동하다가 노가다 뛰려면 근지구력이 더 필요하다고 고반복운동으로 바꾸고 나니 정말 저 신세가 너무 부럽기만 한 것이다. 출세해봐야 뭐하는가. 일만 많아지지. 그렇지 않아도 사건에 치어 뻑하면 야근에 철야에 주말도 없다는데 저런 데 있으면 그야말로 칼퇴근에 칼휴무 아니겠는가. 아니 근무지가 휴양지다. 

 

추미애 장관이 한동훈을 안좋게 본다거나 그래서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그래서 사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아끼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까 월급도 연금도 꼬박꼬박 챙겨줄테니 거기서 마음편히 퇴직할 때까지 쉬고 있으라. 나도 쉬고 싶다. 연금복권 당첨되면 저 비슷하게 되려나.

 

요즘에는 윤석열 총장보다도 심지어 대통령보다도 더 부럽게만 여겨지는 대상일 것이다. 사람이 살려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나도 누가 어디 좌천 좀 시켜줬으면. 연수원에서 손톱발톱 아주 잘 깎을 자신 있다. 머리카락도 한 가닥씩 핀포인트로 염색이 가능하다. 

 

한동훈이 부럽다. 그래서 축하하고 싶어진다. 나중에 더 풍경좋고 한적한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깨 맞대고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수도권은 요즘 재개발한다고 난리더만. 지방이 좋다. 역시.

환관 조고가 어느날 대신들이 있는데 사슴 한 마리를 던져 놓고는 모두에게 말한다.

 

"이건 말이오!"

 

그래서 사슴은 말이 되었다.

 

어느날 임금이 생선이 맛있다고 은어라 부르니 은어가 되었다가, 다시 나중에 생선을 맛보고는 실망해서 도로묵이라 부르라 했더니 생선 이름이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의 권이다. 저울이 무게를 달 듯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에 대해 규준을 정하고 판단하여 분별하는 것이 바로 권력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량형도 권력자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도량형 자체가 징세의 기준이고, 화폐를 발행하는 경우 화폐의 단위가 되는 것이기에 권력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돈 1전의 가치를 은 1냥의 100분의 1로 정했다가 나중에 은의 가치가 오르고 구리가 귀해지면서 돈 400전이 은 1냥의 가치를 가지도록 정한다. 군포는 면 1필로 하되 길이는 포백척을 적용하여 한 척이 46cm 정도이고 길이는 전체 35척으로 한다. 아니면 난리가 난다. 하긴 그렇게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량을 다투거나 하면 그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권력이기는 했다.

 

내가 정한다. 내가 그리 정했다. 그러므로 내가 기준이다. 조국사태나 정의연과 추미애 장관과 관련한 이슈들에서 김어준은 자신의 뉴스공장에 관련자들을 섭외하여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언론들이 특정인들의 주장만 열심히 받아쓰는 사이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또다른 관련자들과 당사자들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 인터뷰를 통해 직접 자신들의 입장을 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다. 당사자로서 이해와 주관이 반영된 주장이기에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또다른 견해와 입장들을 통해 사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언론들은 무어라 떠들고 있었는가. 정작 자신들은 취재하지 않은 대상들을 출연시킨 자체를 가지고 편향이라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추미애 장관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실 논란은 추미애 장관의 아들 서모씨가 복무한 부대의 동료병사들과 간부들을 불러 물으면 이렇게 오래 끌 것도 없이 바로 해결될 사안이었다. 하지만 특정인의 주장만 오로지 받아쓰느라 심지어 중대가 달라도 당직은 같이 서니 같은 부대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내세워가며 다른 모든 증언과 주장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권한을 가진 지원장교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허락했다 말해도, 동료병사들이 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휴가가 연장되었다 주장해도, 국방부에서 원래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해명해도 절대 듣지 않는다. 오로지 현모씨의 주장만 받아서 당시 휴가연장은 불법적인 것이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나온 것이 병장회의라는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어이없어 실소부터 터뜨릴 해괴한 근거였다. 그래서 누가 객관적이냐고? 누가 중립적이냐고?

 

KBS가 김경록PB의 인터뷰를 취사선택해서 왜곡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당사자가 무어라 증언하든 결국 자신들이 바라는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들은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따라서 그 결론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왜곡한 의도는 정당한 것이었다. 한동훈에게는 광속으로 사과한 KBS가 그래서 아직까지 김경록PB에 대해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전혀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 '댓읽기'의 기자들이 보였던 태도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사정을 모르고 떠드는 것이다. 한겨레 김완도 그러면서 뒤에서 김어준 욕하더만. 원래 언론은 그렇게 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너희들이 더 성의를 가지고 협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저리톡에서 김덕훈이 욕먹은 이유 아니던가. 내가 기사를 써주려 하는데 어째서 정경심따위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인가.

 

기자가 권력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부장 나부랭이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가며 현직 국회의원을 압박하고, 그래도 안되니 원내대표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따져댔던 것 아닌가. 어디 정치인 나부랭이가. 정치인에게도 그러는데 과연 일반 국민에게는 어떨까? 한겨레 기자놈이 그랬다. 덤벼라 문빠들아! 그 전에도 문죄인이라 부르면 어떤가고 페이스북에서 도발을 시전한 기자놈도 있었다. 인터뷰내내 인상이나 쓰며 일베에서 퍼온 질문을 균형을 맞추겠다고 던진 송현정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자기들이 대통령보다도 위에 있는데. 그러니까 검찰과 자기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특수부가 아니면 검찰도 아니다. 특수부 출신이 아니면 승진도 이상한 것이다. 자기들이 기사를 쓰면 사실이 되고, 기사로 쓰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확인한다. 박덕흠의 3천억은 묻어도 추미애의 250만원은 대서특필한다. 그래도 된다. 자기들은 기자니까.

 

그것이 바로 기자들이 말하는 객관성의 정체인 것이다. 민주정부는 악이다. 정통성없는 죄의 온상이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오로지 민주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이 언론의 사명이고,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오죽하면 KBS의 기자 하나가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일단 정부 까는 기사를 썼다고 자백하고 있었겠는가. 왜 정부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기사를 편승해서 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의사들의 진료거부사태에서도 정부의 정책이 절대 잘못되었을 것이기에 단지 방법만 잘못되었다. 청와대의 범죄와 부도덕을 밝히려면 검찰과 언론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건 한겨레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이 되는 것이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가장 불공정한 찌라시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반대편 주장들을 고스란히 인터뷰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국민들이 객관적인 언론보다 정파적인 언론을 더 선호하는가. 기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성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의 차이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이란 진짜 아무 주관도 정파성도 개입되지 않은 엄정한 사실과 구체적인 진실 그 자체일 텐데, 정작 기자들이 추구하는 객관성은 그냥 정부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반대편에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또다른 정파성이며, 오히려 정파성이라는 인식조차 없기에 극단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러니까 객관성과 정파성 가운데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더 지독한 정파성과 그나마 나은 정파성 가운데 선택한 결과란 것이다. 아니 내가 왜 정의당도 국민의힘도 국민의당도 지지하지 않는데 오로지 그들의 편에서만 기사를 쓰는 한겨레따위나 읽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내가 검찰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닌데 뭐 좋은 일 보겠다고 JTBC 뉴스나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바로 국민과 기자들이 가지는 객관석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괴리인 것이다. 기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그냥 더 편향된 더 악랄한 정파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객관적이라며 자기들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오히려 편향적이라 욕하고 있으니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모두 편향적이고, 오로지 자신들과 함께하는 국민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다. 그 자체가 편향이라는 것을 언제쯤에나 저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까? 국민은 기자를 부정하고, 기자는 국민을 부정하고. 그래서 우습다. 자기들이 부정한 국민을 향해 제발 좀 도와달라고 기사를 써대는 뻔뻔함이. 자신들이 적대하고 있는 그 편향적인 국민들이 원래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준 동지들이었다. 선택한 것이다. 그런 것을 객관이고 중립이라 여긴다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당위고 정의다. 어차피 자신들도 이전 정권을 그리워해서 그러고 있는 것일 테니.

 

아무튼 웃기는 것이다. 진짜 자기들이 중립적이라 생각한다. 자기들이 보도하는 내용들이 모두 객관적인 사실들이라 믿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진보와 보수, 공중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모두 한 목소리로 떠들게 된다. 언론은 하나다. 그래서 기레기인 것이다. 개별 언론사와 기자와 기사를 구분해서 보라고? 세상에 쓸데없는 소리다. 언론 자신이 그렇게 구분해 사고하고 있지 않다.

 

기레기가 기레기인 이유다. 언론이 버러지인 이유다. 좋은 기자는 오로지 죽은 기자들 뿐이다. 좋은 언론사는 오로지 폐간된 언론사 뿐이다. 언론은 하나다. 언론이란 자체가 언론이 주장하는 객관성과 중립성의 근거다. 언론이 권력이다. 조선일보가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이유다. 정의당조차 조선일보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선을 바꾼다. 재미있다.

이명박 때였냐? 박근혜 때였냐? 진짜 10년도 가까이 된 일을 가지고 몇 시 몇 분에 봤는지까지 따져가며 진술의 진위를 따져묻는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분명 뉴스를 보긴 봤는데 사실 그동안 전혀 기억을 소환할 일이 없다보니 정확한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차피 이명박근혜가 아니더라도 이전에도 있어 왔으니까. 사기꾼 놈이 자기 대통령과 친척이네 뭐네 돈 끌어다 쓰다가 끝내는 걸려서 경찰수사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원래 사기꾼들 방식이 대개 그렇다. 자기 돈으로 사기치는 놈은 거의 없다. 사기를 칠 때는 꼭 남의 돈으로 친다. 그런데 남의 돈을 거져 끌어올 수 있으니 뭔가 꼬투리를 만든다. 누군가처럼 되도 않는 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한다거나, 누군가처럼 굳이 자기 사업에 유명인들을 끌어들인다거나.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JU의 경우도 견미리 등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이들이 여럿 연루되어 있었다. 앤 해서웨이의 전 남자친구도 그런 식으로 유명인들 돈까지 여럿 끌어다 사기를 치다가 제대로 걸려서 감옥까지 가지 않았던가. 괜히 앤 해서웨이까지 연루를 의심받고.

 

너무 간단한 상식인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없다. 사무실 하나 달랑 있다. 투자자를 모으려 한다. 무엇으로 투자자를 모아야 할까? 뭐 이것저것 투자한다고 포트폴리오는 만들어 놨지만 결국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적지 않은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담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유명인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아니 유명인의 이름을 앞세울 수 있기에 사기를 칠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과 사진도 찍었다. 이런 사람과 같은 자리에서 대화도 나눴다. 내가 이 사람과 원래 어떤 관계였다. 학연 지연 혈연 아무튼 끌어다 붙일 수 있는 건 다 갖다 붙여서 연관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나 말고 이 사람을 믿고 투자해 달라.

 

물론 실제 공범일수도 있다. 혹은 배후일수도 있다. 아니면 대가를 받고 뒤를 봐 준 조력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건 실제 증거가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다.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더라. 누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었다더라. 거의 007 수준이다. 청와대 경호원들을 속이고 현금만 5천만원을 가지고 들어가 직접 전달하는 수준이라니. 이런 걸 의혹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것 가지고 의혹을 떠벌리지는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의 먼 친척이라는 이가 사기를 치고 다녔어도 그 친척을 욕했지 대통령까지 욕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책임 아래 있는 건 처가까지 4촌 이내의 친족관계 뿐이다. 그런데 뭐가 의혹이라고?

 

라임과 옵티머스에 있어 정관계 로비가 어떤 식으로 그들의 범죄를 도왔는가 정황도 전혀 드러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금융이라는 게 돈을 따면 사업이고 돈을 잃으면 사기인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실물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 아니기에 대부분 뜬구름잡기고, 그래서 정상적인 사업인지 사기인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금융사기에 꽤나 이름있는 이들도 쉽게 당하고 하는 것이다. 사업 진행과정에서부터 정부가 일일이 감시하고 간섭하려 들면 그건 더이상 자본주의 국가도 아닌 것이다. 

 

아무튼 뭐라도 근거가 있어야 권력형 게이트니 뭐니 떠들 수 있을 텐데, 언론 버릇 또 나왔다. 언론이 얼마나 민주당을 증오하고 있는가. 정확히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라 부르는 이들이 어디까지 민주당을 혐오하고 경멸하고 있는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 머릿속에 그렇게 각인된 모양이다. KBS 기자들이며 한겨레 기자들이며 민주당과 청와대를 악의 온상으로 아예 단정짓고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웃기는 짜장들이다. 짬뽕이나 먹어야겠다.

역시나 아주 간단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권리와 존엄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지만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더 엄격하게 존중되고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일까? 일방적인 위계관계일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 어느 대등한 관계에서 어느 한 쪽 만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존중하고 지켜주고 하겠는가.

 

내가 살면서 기자가 다른 사람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태연히 기사로 사람을 모욕주고 절망에 빠뜨리고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는 것이 바로 기자란 종자들이다. 그러면서도 단 한 마디 사과조차 없다. 단 한 번도 반성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람이 죽으면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환호성까지 지른다. 아니 자기들이 그렇게까지 기사를 썼음에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비난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그런 기자들의 인권은 존중해달라?

기자에게는 인권이란 없다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그냥 우발적으로 어쩌다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와 전혀 다르다. 상습적으로 의도적으로 상대의 존엄과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며 그를 짓밟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이다. 처벌조차 거의 받지 않는다. 채임조차 거의 묻는 법이 없다. 사람을 고통받게 만들고 그래서 심지어 목숨까지 끊게 만들면 오히려 칭찬받고 승진한다. 더 높고 더 영광스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런 놈들의 인권따위 내가 왜 신경써야 하는가? 자신들을 향한 비난과 모욕이 듣기 싫다? 너무 견디기 힘들게 고통스럽다? 자기들이 쓴 기사로 인해 그 이상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들이 저렇게나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저들이 어리석고 편향되어서 비판하는 것이라 무시할 뿐이다. 자신들이 무시하던 상대로부터 비난을 들으니 그게 그리 더 고통스러웠던 것인가.

 

국제법상 포로를 재판없이 함부로 살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우슈비츠를 점령한 미군들이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즉결로 처형한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고서도 여전히 인간으로서 존엄과 권리가 지켜지기를 바라는가. 의사놈들과 확실히 닮았다. 자기들만 특별하다. 자기들은 얼마든지 사람들을 상처주고 모욕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도 성과가 되는데 자신들을 향한 어떤 비판도 비난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을 죽이고도 그저 몇 마디 비난을 듣는 게 그리 고통스럽다. 다른 사람들을 나락으로 떠밀고서도 자기를 향한 날선 말들이 그저 두렵기만 하다. 기자질 그만두면 된다. 그따위로 기사쓰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면 기자같은 것 그만 두고 더 건전한 다른 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기자 월급 그리 많지도 않다면서? 기자질은 해야겠고, 사람은 죽여야겠고, 책임은 지기 싫고. 그러니까 기레기란 말조차 차라리 하는 짓거리에 비하면 찬양이고 고무라 여기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쓰레기에게 미안하고, 구더기에게 미안하다. 기레년이라는데, '년'은 사람에게 하는 욕설이다.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셔먼이 참 좋은 말을 남겼다. 좋은 기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기자들은 다 죽고 사라졌다. 죽은 기자들만이 좋은 기자들이었다. 멀쩡한 놈들이 아직도 기자질이나 하고 있을 리 없다.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차마 거기까지는 너무 나간다 싶어서 참는다. 기자는 좀 탄압당해도 된다. 인권같은 것 무시당해도 된다. 그래야 마땅한 존재들인 때문이다. 징징거림이 짜증난다. 세상에 지들만 사는 것 같다. 역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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