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전에는 한겨레가 민주당을 까더라도 조선일보의 논리를 그대로 쫓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기만의 논리가 있었다. 자기들만의 주장과 근거가 있었다. 그래서 진보언론이라 불러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기들이 직접 취재까지 하고서도 조선일보의 주장을 사실로 전제하고 그를 쫓는 기사부터 쓰려 한다. 조선일보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비판하기보다 그를 따라가기 급급하다. 심지어 그를 위해 자기들 선배며 상사까지 들이받는 걸 서슴지 않는다. 왜?

 

보았던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어떤 권력과 특혜를 누리는가를. 어떤 대접과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보수정부에서 정권과 유착해서 제대로 해먹는 조선일보를 보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다. 실제 한겨레 기자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니까? 차라리 이명박근혜 시절이 언론에게는 더 나았었다. 권력에만 잘 보이면 정부광고도 팍팍 퍼주고 보조금도 푹푹 밀어준다. 출입처 기자들에 대한 대우도 다르다. 그에 비하면 민주당은 뭔가? KBS가 반정부로 노선을 바꾼 이유도 정권이 바뀌면 한 자리 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배신감 때문이라는 내부폭로가 있었다. 

 

자기들도 조선일보 기자들처럼.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기자들처럼 뭔가 제대로 받으며 행세하고 싶다. 그래서 들이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정작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며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들이 홀대받고 검찰과 정치권과 유착해서 가짜뉴스나 만드는 기자들이 대우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유착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더 인정받고 대우받는다. 기자놈들이 언론개혁법에 단체로 발악하는 이유인 것이다. 가짜뉴스야 말로 기자의 힘이며 무기다. 가짜뉴스가 곧 기자인 자신들에게 권력이 되고 지위가 되어 줄 것이다. 진실은 무가치하다.

 

그래도 지식인다운 곤조가 사라졌다. 한겨레에서 느껴지든 그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럽던 기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개새끼들이지만 확신범이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저 남의 눈치나 보며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똘마니에 지나지 않는다. 한겨레의 논조는 조선일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굳이 한겨레를 읽지 않아도 조중동을 보면 한겨레 기사의 내용이 무얼지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중동이 이런 기사를 썼어도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달리 바라는 바는 무엇인 것일까. 문제는 과연 그런 똘마니들에게도 조중동 정도의 대우가 돌아갈 것인가.

 

기자놈들에게 언론의 자유란 가짜뉴스의 자유다. 언론의 가치란 가짜뉴스의 대가로 돌아오는 돈과 자리들이다. 쾌락이다. 자기들 주머니에 돌아오는 현물들이야 말로 언론이 언론인 이유인 것이다. 성접대까지 받았다는데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한겨레와 경향일보가 국민의힘을 위해 철저히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오보까지 내가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당은 양심상 못하지만 국민의힘이라면 가능하다. 지금 한겨레의 현주소인 셈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리 바뀌어 왔을 테지만. 그게 그들의 언론이란 것이다.

내가 서울대 이야기를 자꾸 하는 이유가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들은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서울대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언론이 안철수를 밀었던 이유였다. 자칭 진보들이 안철수를 지지한 이유였었다. 그리고 안철수가 떨어지고 경희대 출신인 문재인이 당선되자 그런 그들의 열망은 더 강해졌다. 서울대 대통령! 서울대 대통령!

 

지금 대선후보랍시고 나온 놈들 학벌과 언론과 주류사회의 반응을 보면 분명해진다. 여성계의 선택 또한 그런 맥락 위에 있다. 어째서 윤석열이나 최재형 같은 나부랭이들까지, 심지어 하태경이나 윤희숙 같은 잡챙이들까지 나서서 대통령 되겠다 설치는가. 경희대 출신 대통령이 나온 걸 봤거든. 하는 걸 봤다. 오세훈이 방역정책을 세우던 원리와 비슷하다. 쟤들도 하는데 내가 뭘? 경희대도 하는데 내가 저만큼 못하겠는가?

 

그래서 아무 준비도 없이 대뜸 출마부터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최소한의 고민조차 없이 서울대와 사법고시, 그리고 국회의원 배지를 앞세워 출마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같은 세계에 속한 언론과 지식인 사회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아무 비판없이 지지부터 보내고 있다. 그래도 서울대인데. 아무렴 서울대가 경희대만 못하겠는가. 상고출신만 못하겠는가. 그들도 하는데 서울대 출신이면 분명 다를 것이다.

 

전부터 윤석열과 자칭 진보의 유착을 비판하며 몇 번이고 반복해 말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더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달라진 것이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민주당 안에서도 이낙연이 낮은 지지율에도 오히려 주인공처럼 경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 말로! 그래서 윤석열이든 최재형이든 하태경이든 이낙연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차라리 이낙연이 대선후보가 되지 않으면 윤석열을 지지하고 말겠다. 그런 놈들이 조국을 입에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째서 민주당 안에서마저 이재명에게 증오도 아닌 혐오와 경멸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 놈들이 저리 많은가. 

 

서울대의 발악이다. 어째서 그토록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울대 출신들 사이에서까지 크게 일어나고 있었는가. 얼마전 서울대에서 일어난 청소노동자의 죽음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들은 그들이 가진 본질적 정체를 드러내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니까. 서울대라서. 서울대이므로. 서울대는 서울대로써 존재해야 한다.

 

아무튼 덕분에 자칭 진보의 솔직한 속내를 확인할 수 있어 아주 나쁘지만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칭 진보들에게 세계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서울대와 이화여대, 그리고 그 나머지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노회찬도 서울대가 아니었었지? 서울대 이하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 된다. 류호정이나 장혜영처럼. 웃기는 것들이다.

글쓸 때도 마찬가지다. 쓰고 있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 응용과 변주가 자유롭다. 발췌와 인용과 변형을 통해 얼마든지 자기만의 새로운 텍스트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분야라면 그저 기존에 있는 텍스트를 가져다 복사해서 붙이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시피 하다. 당연하다. 뭐라도 알아야 더하고 빼고 고치고 바꾸고 하는 거지 전혀 모르는데 괜히 글자 하나 마음대로 고쳤다가 망신만 당하고 마는 것이다.

 

뭔 말이냐면 윤석열과 최재형이 과연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120시간 노동에, 후쿠시마 방사능누출 부정에, 부정식품 허용과 임상이전에도 시험중인 의약품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듣고서 읊어댄 것일까.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 주변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같은 편이라 여기는 바로 그들이다. 평소 아예 관심도 없던 분야인데 누군가에게 듣고서 그게 전부인 양 떠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지? 어째서 자칭진보들은 그런 윤석열과 최재형에 대해 한 마디 비판조차 못하는 것일까? 민주당을 향해서는 그리 디테일하고 신랄한 것들이.

 

확실히 윤석열과 최재형이 귀한 인재라는 이유일 것이다. 자칭 진보의 진짜 속내를 읽는다. 어차피 주 36시간 못하면 주 120시간 일한다고 뭔 일 있겠는가. 더구나 자칭 진보들이 그런 일 할 일은 없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조차 정작 현장이 아닌 노조전임자들인 것이다. 최저임금 11000월이 안되면 최저임금을 낮추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가 더 고통받아야 자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 자칭 진보가 민주당을 증오하는 진짜 이유다. 민주당이 있는 한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기 쉽다.

 

아무튼 바로 윤석열과 최재형이 내뱉는 말들이야 말로 자칭 보수와 자칭 진보의 그동안 감춰 왔던 솔직한 속내인 것이다. 중도적인 척 여러 커뮤니티에서 활약하던 이름들도 그를 계기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상식을 넘어선 그들의 진심이 더이상 그들로 하여금 가면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진중권과 정의당도 한 몫 끼고 있고. 한겨레나 경향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나 멋진가. 저 자칭들의 연대가.

 

초짜들인 탓이다. 정치감각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지렁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요령을 알았다. 홍준표 역시 어떤 말이 대중의 귀에 착착 감길지 감각적으로 알고 실제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자칫 속아넘어가기 쉬운데 윤석열과 최재형, 그리고 이준석 덕분에 더이상 그러기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자칭진보란...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이유다. 역겨울 따름이다.

시험을 잘보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아니 최소한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입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화원도, 보안원도, 시설관리원도, 조리사도 모두 시험을 봐서 뽑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란 실기테스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시험이다. 서울대에서 미화원들에게 강제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험을 가장 잘 본 서울대 출신에 심지어 사법외무행정 3대고시 합격자라면 가장 우월한 인간들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관심이 없어서 모를 뿐이다. 그다지 노력할 가치가 없어서 못하는 것 뿐이다. 자기들이 하려 하면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실제 그동안 만났던 서울대 출신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공통된 특징들이다. 항상 서울대 출신임을 드러내며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과시하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우월한가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로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 나왔는데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는가.

 

윤석열과 최재형이 아무 준비도 없이 대뜸 대선에 출마하겠다 결심부터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보수는 몰라도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과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 출신에 사법고시까지 합격했으니 당장은 몰라도 잘만 주위에서 가르치고 도와주면 최소한 서울대도 못나온 다른 정치인보다야 몇 배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이념도 지향도 성향도 정책도 다름에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대 나왔으면 언젠가 올바른 정답을 스스로 찾아내게 될 것이다. 자기들의 정답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식한 정도를 넘어섰다. 무식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평소 가치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저 물류센터에서 몸쓰는 일이나 하는 나조차 경제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기만의 규준을 가지고 있는데 저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지지한다. 그런데도 한 몸 바쳐 지지한다.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이라면 문재인을 확실히 죽여 줄 테니까. 너무 뻔해서 말할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 날이 너무 덥다.

누군가 나에게 그리 묻더라. 정의당이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는데 그 근거가 뭐냐고? 정의당이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공식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적이 과연 언제 있었느냐고? 그래서 대답해 주었다. 지금까지 당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위해 논평을 낸 곳이 어디였는가.

선거운동이란 기본적으로 내로남불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된다. 내가 하는 건 검증이고 네가 하는 건 네거티브다. 내가 하는 건 너의 자격을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고 네가 하는 건 단지 인신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는 검증이라 그러고 누구는 네거티브라 말한다. 그러면 윤석열의 아내와 장모의 사기행각과 윤석열 자신이 그에 관여한 정황을 파헤치기 위한 과거 검증을 두고 네거티브라 주장하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재미있는 것은 정의당 대변인 이름으로 윤석열 처가에 대한 검증을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이고 네거티브라 공식적으로 주장한 것이 윤석열이 그 유명한 120시간 발언을 한 직후란 것이다. 하긴 120시간 발언 뿐이 아니었다. 늦게 알려졌지만 부정식품을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 등 주옥같은 발언이 인터뷰를 통해 터져나온 뒤의 일이었다. 하긴 진중권은 대놓고 윤석열 실드를 치고 있더만. 재미있지 않은가? 민주당은 되도 않은 관용구 하나 가지고도 그 생난리를 치는데 윤석열에 대해서는 어떤 의혹이나 발언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비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윤석열이 잘못이라 하니 탈원전도 잘못이고 김학의 수사도 잘못이다. 김학의가 출국하도록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무슨 뜻인가? 윤석열이 어떤 이념과 지향과 성향과 정책과 노선을 가지고 있든 정의당은 상관없이 윤석열을 지지하겠다. 이유야 당연히 하나다. 윤석열이라면 문재인을 죽일 수 있다.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오욕속에 죽도록 만들 수 있다. 정의당이 노무현 이름을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를테면 자기 손으로 죽인 누군가의 이름을 계속 되뇌며 상대를 경고한다면 무슨 의미이겠는가. 무의식인 것이다. 너도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을 때, 아니 죽이고 난 뒤에도 정의당이 그들에 한 팔을 거든 것을 나는 잊지 않는다. 

물론 오세훈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정의당이 대놓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미친 짓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 한겨레나 경향일보는 몰라도 정의당까지 대놓고 지지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오세훈 때도 정의당은 노골적으로 오세훈을 지지하면서 정작 겉으로는 여성주의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 여성후보 자신이 당선되기 위한 선거운동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단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오세훈의 잘못에는 침묵하며 민주당을 공격하는데만 모든 힘을 집중했을 뿐이었다. 한겨레 역시 그래서 의도적으로 오보를 내고 오세훈의 의혹을 똥통에 빠뜨린 것 아니던가.

120시간 노동도, 최저임금제 철폐도, 부정식품 허용과 환자에 대한 임의임상시험 허용 등의 주장들도 더이상 정의당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주장이란 것이다. 완전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불완전한 지금의 제도따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불완전의 원인이 된 민주당을 파멸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을 이 사회로부터 배제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살 수 있다. 2007년 내가 어느 진보주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노무현 때문에 진보가 망하고 있다.

당장 논평들을 보라는 것이다. 민주당을 향한 모든 네거티브는 검증이고 사실이며, 민주당이 시도하는 모든 검증은 네거티브고 악의적 공격이다. 다만 한겨레의 경우는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가능성을 재느라 때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준석을 배우라 민주당에 조언하던 한겨레였으니. 벌레새끼들이란 것이다.

이래서 내가 민주당 지지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정권이 바뀌고 국민의힘이 의회까지 장악하면 어떻게 될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겨우 무기직 되었는데 해고가 쉬워질 테고, 차라리 일하는 시간을 줄여 일상의 여유를 챙겨볼까 하는 계산도 무모한 것이 되어 버리기 쉽다. 그게 국민의힘이다. 아니 정확히 이 사회 엘리트란 것들의 사고다.

 

아마 최재형이나 윤석열이나 어려서 부모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렇게 된다."

 

도시미화원이나, 혹은 공장노동자, 공사장 잡부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지 계속해서 들으며 그를 동기삼아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도 진학하고 사법고시도 합격했을 것이다. 즉 저들은 그만한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저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이다. 저렇게 되지 마라.

 

명문대 출신 자칭 진보들이 더이상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진보의 가치에 천착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아니 심지어 처음부터 노조집행부라는 꽃길을 걸었던 자칭 노동자총연맹들도 이제는 이해못하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냥 노동자는 이렇다. 노동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 전형성 위에서 노동자 정책을 주장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노동자의 현실을 직접 몸으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도 단축하고, 법정공휴일도 챙겨주고, 산업재해에 대한 대처도 하고, 필요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다. 자기들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중대재해법도 정의당과 민주노총은 반대했었다. 참고로 중대재해법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국민의힘은 그 결과 노동존중의 정당까지 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것이 이 사회 엘리트란 것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더 적은 돈을 받더라도 더 많은 시간 일해서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도무지 사람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저질 식품이라도 값싸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다. 우습게도 상당수 2030 청년세대가 그런 주장에 크게 동조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였어도 경쟁만 공정하다면 패배자나 낙오자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의롭다. 괜히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비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이라고 민주당에서 대놓고 이따위 소리 지껄이는 인간은 없었다. 하다못해 이상직조차도 대놓고 노동자의 삶과 지위 권리에 대해 주장하지는 못했었다. 같은 엘리트고 같은 기득권이지만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과도 민주당이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때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아무리 그런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게 노동자인 내게 가능한 일인가.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정당은 이제 하나 뿐이다. 민주당. 혹은 열린민주당. 정의당은 아니다. 정의당은 기득권 여성들을 위한 정당이다. 자칭 진보란 기득권 여성들을 위한 이념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가르쳐준다. 윤석열과 최재형을 지지하는 정의당이 주류들이 그 사실을 명확히 해 준다. 윤석열이 120시간 노동을 주장했음에도 정의당은 나서서 김건희를 변호하고 있었다. 영부인이 되려는 사람이지만 여성이니 검증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끝으로 지방으로 가면 생활비가 적게 들 테니 임금을 적게 받아도 괜찮을 것이란 주장 역시 그냥 관념에 의한 스테레오에 지나지 않는다. 거주비는 적게 드는데 문화생활을 좀 하려 해도 인프라가 열악해서 몇 배의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도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어렵게 품을 팔아야 겨우 구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오히려 지방이 더 비싸기도 하다. 노동자는 이런 존재다. 지방은 이런 곳이다. 한 번 제대로 살아보기를 했는가.

 

어째서 2030은 국민의힘을 더 지지하는가. 특히 그토록 공정을 강조하는 2030들이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그 대다수는 대학생들일 것이다. 명문대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라. 그래서 민주당이 더이상 2030 남성들의 여론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그리고 정의당의 청년당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엘리트의 현주소다. 서글픈 현실이다.

光天之下 天生聖人 爲世作則

해석하자면 '빛나는 하늘 아래 하늘이 성인을 내시어 세상을 위해 도리를 만들었도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성인은 당시 황제이던 주원장으로 글쓴이는 황제를 칭송하고자 이 글을 썼었지만 도리어 주원장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빛이란 반짝이는 대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니 승려생활을 했던 주원장의 불우한 과거를 비꼬는 것이며, 도리를 가리키는 칙則은 도적을 가리키는 적賊과 발음이 같으므로 홍건적 무리에 속했던 자신의 전력을 비방하려는 것이다. 말이 안되는 트집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의 뜻이었기에 감히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청 옹정제 때는 사사정이라는 한인관료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에 있는 '백성이 머물러 사는 곳維民所止'이란 귀절을 시제로 냈다가 다시 황제를 능욕했다 해서 처벌받은 사례가 있었다. 이유인 즉 옹정雍正에서 머리부분을 빼면 止가 되는데 이마저 民所라는 글자로 갈라 놓았으니 대역무도한 의도가 있다 여긴 것이다. 역시 말도 안되는 트집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가 그렇다니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혹시라도 꼬투리잡힐까 과거 이미 있던 문헌을 고증하는 것으로 학문을 대신한 결과가 바로 청대에 유행한 고증학의 등장이었던 것이다. 

 

머리를 짧게 잘랐으니까, 특정 단어들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의도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과거 전효성이 '민주화' 발언을 했다가 욕먹은 것도 '민주화시키지 않는다'라는 명백히 민주화를 부정하는 의도의 표현 속에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사투리의 '노'와 일베식 표현의 '노'를 구분하는 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운지니 부엉이니 하는 단어들 역시 어떤 맥락 속에 쓰였는가에 따라 일베인가 아닌가가 결정된다. 하긴 일베 놈들 입장에서야 자기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가지고 괜히 트집잡는다 여겼을 것이다. 자신들은 악의로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의 언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그 일상의 언어가 광주의 희생자들을 조롱하고 세월호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점이 그놈들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래서 과연 짧은 머리와 특정한 단어들이 그런 맥락으로 읽혀지고 있는가.

 

숏컷은 역사도 아주 유구한 헤어스타일이다. 반드시 여성주의자라서가 아니라 미적인 목적으로, 혹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숏컷을 선택하는 여성이 현실에 넘쳐나도록 많다. 실제 남성 가운데도 여성의 숏컷 스타일을 무척이나 선호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헤어스타일까지 강제하려는 것인가? 페미니스트가 되기 싫으면 머리를 길게 기르라. 그러면 머리를 길게 기른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인가. 정의당 강민진도 머리가 무척 길더만. 특정 스타일을 특정 부류와 연관지으려면 그 역의 관계도 성립해야만 한다. 페미니스트라서 머리가 짧다. 따라서 머리가 짧으면 페미니스트다. 숏컷이 아닌 단발의 여성주의자들은 무어라 말하려는 것인가.

 

오조오억은 그리 자주 보지 못했지만 웅엥웅은 아주 오래전부터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으면 조롱하는 용도로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던 표현이다. 혹은 자신의 말을 어물거리며 넘길 때도 웅엥웅이란 표현을 쓰고는 했었다. 남성의 어떤 특징을 비하하여 만든 표현이 아니라 그장 말을 어물거리는 자체를 의성어로써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웅엥웅 해보라. 그게 어떤 식으로 들리는가를. 오조오억 역시 내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삼십육만육천과 비슷한 의도였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밥을 사야 하는 이유를 삼십육만육천가지만 대 보라. 여성시대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니까 페미니즘 용어고 남성비하 언어다. 그러면 바보 병신도 남성비하가 되는 것일까? 하긴 여성비하이기도 하다.

 

맥락을 배제하고 단어만 남기면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요즘도 국어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가 모르겠다. 전체의 유기적 구조와 맥락적 이해가 아닌 개개의 어휘와 표현에 집착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역시 권력인 것이다. 지난 보궐선거 이후 20대 남성을 부쩍 추켜올리면서, 여기저기서 특히 20대 남성을 대변하는 곳으로 특정 사이트를 주목하면서 기왕에 주어진 관심과 권력을 어떻게든 과시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렇게 인민재판하듯 여러 혐의자들을 만들고 사냥을 주도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올림픽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정신적 모국인 일본이 조롱받는 도쿄올림픽이다. 일본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인 선수를 용서할 수 없다.

 

재미있는 건 차라리 김건희는 옹호해도 안산 선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성주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김건희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저리 큰데 안산 선수를 위한 목소리는 일부러 찾아듣지 않으면 안될 정도다. 원래 여성시대나 워마드, 메갈리아는 일베와 뿌리가 같다. 성향도 같다. 그러고보니 여성주의자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유도 그렇게 맥락상 이해가 된다. 워마드와 메갈리아의 성향은 항상 일관되게 반문친박이었다. 내가 여성주의자들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박근혜 사면이라 주장하는 이유다. 어이가 없다. 

원래 여성주의에서는 집안에서 살림만 해도 배우자의 사회적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 주장한다. 배우자가 밖에서 사회활동에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며 '내조'한 공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반 시민이어도 그런데 하물며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이다. 심지어 국가수반의 배우자는 반드시 국가수반과 동행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격식과 예우를 받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 배우자 되겠다는 사람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증하지 말아야 하는가?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씨의 과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김건희 자신은 물론 그 친정어머니까지 윤석열이 검사시절 수많은 범죄에 연루된 의혹들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검사로서 자기 직분을 이용해서 이들 사건들을 강제로 덮었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수사해서 처벌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그런데 당사자는 아니라 하니 이런저런 근거들을 찾는 와중에 과거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여성을 대상으로 그런 식의 검증을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여성은 내버려두라.

 

윤석열이 얼마전 주 120시간 근로 발언을 한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정확히 상관없을 것이다. 말하지 않았는가. 전 검찰총장 부인이자 대선후보의 배우자가 아니었다면 정의당도 저런 식으로 변호하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에서 여성은 전문직 여성이다.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이다. 자신이 전문직이거나, 혹은 배우자가 전문직이거나,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여길만한 위치에 있는 이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이 노동에 대해 무어라 발언하든 여성주의자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당한 집권자에게 권력을 넘겨주어 불의한 찬탈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정의'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윤석열을 지지한다.

 

그냥 남자문제가 아니다. 그냥 과거 직업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든 행적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들과 연관되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되겠다는 이의 배우자 아닌가.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의 정상들과 만나야 할 사람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통령을 대신해서 얼굴을 비추게 될 사람이다.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진보인가. 그 전에 상식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전히 윤석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의당과 경향일보를 보면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여성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적 가치가 아니다. 저들의 여성주의는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후에도 그 지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그런 가치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후보인 박영선이 아닌 보수후보 오세훈을 지지했던 것이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부동산 문제에 그리 민감하던 자칭 진보가 김현아를 대하는 것을 보라. 이제는 자칭 진보라는 말조차 너무 저들을 인정해주는 것은 아닌가 자괴감마저 든다. 벌레는 벌레다. 예외없다.

아주 오래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였다. 베스트극장이었는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은 고인이 된 김무생씨가 주인공을 맡아 우연한 선행이 알려지며 세상의 주목을 받고 파멸해가는 어느 식당주인을 맡아 연기한 바 있었다. 갑작스런 세상의 관심에 더 큰 관심을 받고자 선행을 베풀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자식들까지 주워다 기른 아이들로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마지막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라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 아내는 밤거리의 여자였다!"

 

아마 이 또한 자신의 선행으로 미담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지리라 믿고 그리 홀로 외쳤던 것이리라. 그러고보면 오래전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사람 가운데 아내가 다방 종업원이었던 이가 있었을 것이다. 법무부장관이었던가?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 합격해서, 사방에서 한 지위 한 재산 하는 집안이 열쇠까지 몇 개 씩 챙겨들고 달려드는 상황에 오로지 사랑 하나만 보고 과거를 묻지 않고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했다. 오히려 불우하기에, 비참하고 참혹했기에,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그 용기와 그 결단은 칭찬받을 만하다. 

 

정의당이 김건희를 두둔하고 나선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었다. 김건희의 과거와 상관없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이란 사람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다.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비난하는 과거를 가진 여성을 아내로 맞아 지금까지 해로하고 있으니까. 정의당의 윤석열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과연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금도 - 하긴 상관없다. 이미 지난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오세훈과 박형준을 공공연히 지지한 바 있었다. 주호영과 김현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박주민을 비난했었고, 김학의 사건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이성윤을 비판하는 공식논평까지 냈었다. 아무튼 그런 여성까지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윤석열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었다. 그래서 굳이 김건희의 과거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니 그 전에 김건희 자신이나 윤석열이나 일부 인터넷매체에서 문제삼는 줄리는 자신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한 바 있었다. 사실을 알 수 없으니 인터넷 매체의 주장만 믿고 그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설사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오로지 사랑이란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면 남자로서 윤석열을 칭찬해 줄 만하다 여겼었다. 나라도 그런 과거를 가진 여성이라면 어지간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몇 년이나 같이 살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한 쪽에서는 부정하면서 한쪽에서는 애써 문제가 아니라 주장하는 모순된 태도일 것이다. 부끄럽지 않다면 어째서 부정하는 것이며, 애써 부정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어째서 문제가 아니라 주장하는 것인가.

 

당당하면 까면 된다. 그러면 지지해 줄 용의도 있다. 최소한 사랑해서 그런 과거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면 그 하나만은 분명 인정할만한 부분인 것이다. 다만 그렇다면 자신과 상관없는 특정 여성에 대한 관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긴 정의당이며 김경진이며 장제원이며 당사자는 아니라는데 왜 자꾸 사실로 못을 박으려 드는 것인지. 그리고 단지 줄리를 조롱했을 뿐인 그림에 어째서 윤석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던 것인지.

 

아무튼 이낙연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제대로 먹인 느낌이기는 했었다. 조선시대 남녀의 성기를 표현하는 단어가 '더러운 아래'였었다. 역모로 국문이 열리면 죄인들의 말 가운데 차마 옮겨적지 못할 내용들을 '참담하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었다. 벽화의 내용이 사실이든 허구든 사실 썩 보기에 좋은 내용은 아닌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중요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사실일 경우에 오히려 더욱. 절묘하긴 했다.

한국 여성주의는 이 셋만 기억하면 된다. 이화여대, 개신교, 그리고 김활란. 참고로 이 씨발년들은 여성주의의 시작을 개신교의 포교로 잡고, 그 개신교의 자유로운 포교가 이루어진 일제강점기를 근대화의 기점으로 여긴다. 한 마디로 식민지근대화론자이며 친일옹호자들인 셈이다. 그러니 김활란에 대한 추앙으로 이어진다.

 

이화여대의 선민의식은 서울대의 그것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다. 급은 당연히 서울대와는 거리가 먼데 자신들은 그 정도 급은 된다 여기는 것들이다. 하긴 이화여대는 전통적으로 있는 집 자식들이 지원해 다니는 학교였었다. 중산층만 되어도 위화감 느껴서 다니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이 8,90년대였다.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가장 소극적이던 부류였었고. 그 선민의식이 여성주의와 만난 것이 지금의 한국 여성주의다. 여성주의이기는 한데 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은 대상이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이 청소노동자나 주방노동자 여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걸 본 사람.

 

같은 여성인 비정규직노동자, 일용직노동자, 저임금노동자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역시 여성주의에 포함될 터였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여성운동과 전혀 다른 것이다. 여성주의를 표방한 이후 정의당은 노동자를 버렸다. 최저임금인상도 반대, 근로시간 단축도 반대, 대체공휴일도 반대, 다 반대다. 과연 여성주의가 진보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튼 또 이화여대란 이름이 나오네. 개신교란 종교가 나오고. 꽃길만 걸었을 여성이다. 한 번도 가장 어려운 곳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겪었을 현실의 문제들을 경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개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그렇다. 정의당에도 이제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실이 그렇다. 좆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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