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에 대해서 여러 이해와 정의가 존재하고 있지만 역시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증오'라는 감정일 것이다. 공포와 증오는 시작도 끝도 없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를 보면서 아무것도 없는데 막연히 무서운 감정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섭다. 정작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데 자기의 상상이 스스로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증오 역시 마찬가지다. 이유는 없지만 심지어 대상조차 없이 무작정 밉고 싫다.


사실 대부분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 크든 작든 불만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내 벌이가 시원치 않고, 그래서 나의 일상이 누추하고 비루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들이 충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불만에 대해 누군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바로 저놈들 때문이다!"


바로 유대인 때문이다. 바로 사회주의자 때문이다. 바로 외국인 때문이다. 바로 흑인들, 아시아인들, 히스패닉들 때문이다. 아랍의 테러리스트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로 저놈들만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모두 힘을 합쳐 몰아내자.


결론이 있으면 비로소 이유가 만들어진다. 일단 먼저 결론이 내려지면 어떻게든 이유는 그 뒤에 따라붙게 된다. 자신의 사고와 주장과 행동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를 시도한다. 누군가 그것을 대신해주면 더욱 좋다. 그래서 대부분 증오는 그 같은 이유를 대신해서 들려주는 특정한 개인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옳다. 그의 논거와 논리야 말로 아직 사람들의 모르는 진실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선지자같은 것이다. 모두가 말하고 싶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해서 들려준다. 더불어 그들 우상들은 이같은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가 모여서 이 사악한 현실을 바꿔보자.


이 모든 것이 북한 때문이다. 사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북한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는, 아니 우리의 근현대사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면에는 북한을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산당은 나쁘다. 북한은 나쁘다. 그러니 무엇보다 우선해서 공산당을 때려잡고 북한과의 대결에 집중해야만 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들마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당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권마저 침해하며, 무엇보다 부정한 권력을 부당하게 휘둘러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당장 호시탐탐 적화통일만을 노리고 있는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권력을 중심으로 모두가 똘똘 뭉쳐야 한다. 


지금 경제가 안 좋은 것도 모두 노조 때문이다.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고 개인의 주머니가 가벼워진 것도 모두 현실을 모르는 얼치기 진보주의자들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으면 나라경제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라도 자신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물러나면 나라의 경제와 안보는 그 순간 무너지고 만다. 개인들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입과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도 그 같은 절박함과 위기감만이 자신들의 일방적인 논리에 동의하게 만들 것이라는 나름의 냉정한 계산 때문인 것이다. 가난하게 만들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안철수가 전국을 돌며 하는 짓거리를 보며 안철수라는 인간에 대해 느꼈던 혐오가 더욱 선명한 확신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다. 하긴 처음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대중 앞에 새로운 정치의 희망으로 등장한 것도 바로 그 '증오'라고 하는 감정 때문이었다. 정치가 싫다. 정치인이 싫다. 자신은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돌아보지 않고 방치하는 정치와 정치인들이 너무나 밉고 싫다. 그러니까 새로운 인물을 갈구한다. 기성의 정치와 동떨어져 있으면서 기성의 정치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메시아를. 내가 처음 문재인에 대해 경계심을 가졌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사실 많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내가 우려한 그대로의 말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다 해주실 거야. 문재인 대통령님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님에 반대하는 모두는 인정해서도 용납해서도 안되는 자신들에게 악이고 적이다. 다만 그럼에도 정작 문재인 자신은 단 한 번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를 말한 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넘긴 적도 없다. 한국정치에서 지금까지 유일하다.


아무튼 지난 대선에서 비천한 바닥을 낱낱이 드러낸 뒤임에도 아직까지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안철수를 추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신들이 보기에 한국 정치는 너무 저급하고 저열하다. 너무나 한심해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정치권 이외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 희망이 현실정치에 대한 자신들의 혐오와 증오를 정당화하고 사실로 입증해 줄 것이다. 민주당은 바로 어제까지 자신들이 욕하던 기성정당이었다. 문재인은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그토록 가혹하게 비판했던 기성정권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당과 정치인이 너무 잘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 같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이해와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 아니 심지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지식인의 오만한 본성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 비록 그 구성원 다수는 기성의 정치인이더라도 새로운 제 3정당과 제 3의 인물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철수가 자신들을, 자신들의 옳음을 밝혀주고 구원해 줄 것이다.


정말 너무 어이가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런 식으로 가는 곳마다 '홀대론'이나 떠들어대는 수준이고 주제라니. '홀대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어렵고 힘든 것이 모두 저놈들 때문이라는 것 아닌가.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땅이다. 한반도도 겨우 남쪽 절반만 차지하고 있을 뿐인 작은 나라다. 그런데 이쪽 저쪽 편을 갈라 서로를 탓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 싸우도록 만든다. 사실 지역주의 자체는 거의 없는 나라가 없다 할 정도로 인류사회의 보편적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서로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잘났고 남이 사는 동네는 뭔가 못하고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가면 같은 지역 출신들끼리 모여 공감대를 이루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지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서 서로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것까지 일상적이지는 않다. 그냥 막연한 감정일 뿐이고 실제 행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최소한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사는 지역으로 인해 대상을 단정하고 심지어 실제 행위를 통해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작고 사소한 이유다. 그런데 그래도 원내 제 3당 대표라는 인간이 앞장서서 지역마다 돌며 지역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리도록 부추기고 선동하고 있다. 이런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호남홀대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호남홀대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참여정부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과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차별하고 홀대해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미워하고 싫어할만한 타당한 이유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어린 시절 호남출신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거나, 젊은 시절 호남을 여행하다가 바가지라도 썼거나. 그러고보면 박지원이 문재인 자서전의 내용 가운데 문장 하나를 발췌해서 호남홀대론의 근거로 써먹은 것도 그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결국은 영남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산 출신이고 김해 출신이기 때문이다. 영남사람이기 때문에 영남만 우대하고 호남을 차별하고 홀대한 것이었다. 심지어 호남의 정당이던 민주당마저 독차지하고 호남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호남이 하나가 되어 호남을 무시하는 문재인과 그의 민주당을 응징해야만 한다.


하필 호남에서 홀대론을 떠들고 난 다음 안철수가 찾은 곳이 대구경북이었다. 같은 영남으로 묶이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근현대사에서 대구경북과 부산울상경남이 걸어온 길은 서로 사뭇 달랐다. 그래서 정서적으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의 여러 선거에서도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바로 그 부산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었다. 어제까지 함께 보수정당을 지지하던 부산울산경남의 지지가 대구경북이 지지한 후보를 떨어뜨리고 부산출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터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부산출신인 대통령이 대구경북에 복수하려 할 것이다. 대구경북을 차별하고 홀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문재인 정부와 대적할 수 있게 자신들에 힘을 실어달라. 이제는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마저 서로 구분지어 대립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증오의 구심점을 자신으로 삼도록 유도한다. 누가 참모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저열하고 흉악하다. 그래서 안철수가 정권을 잡으면 홀대받던 호남과 대구경북의 원망은 누구에게로 향하게 될까?


증오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미 말했었다. 영남출신이 호남을 차별했다. 부산 출신이 대구경북을 차별했다. 그냥 부산출신 문재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문재인이 나왔고 그를 지지했던 부산과 경남에도 그 책임은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부산출신이라서 그런 것 아니던가. 그래서 부산출신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니던가.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학살이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영국의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영국의 지배 아래 로힝야족이 우대받았던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스리랑카 등 열강의 침략을 겪었던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같은 조선인이 친일파로서 앞잡이역할을 했었다. 자비를 설파하는 불교의 승려가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만큼은 정당하다 말할 수 있는 그 이유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그나마 안철수의 지지율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서 다행이라 할 것이다. 지식인들이나 자존심때문에 아직까지 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미 안철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놓아버린지 오래였다. 안철수가 히틀러만큼 논리야 어쨌든 말 잘하고 친화력도 있는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주위에 괴벨스같은 탁월한 선동가가 있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그동안 지역주의가 나쁘다는 사실을 질리도록 주입받아 온 탓에 국민 자신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홀대론은 이제 너무 식상하다. 안철수가 멍청해서 다행인 걸까? 아니면 그래도 국민들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조금은 현명해진 것에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안철수이기 때문에 고작 가십으로 끝났지만 안철수가 아니었어도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아주 위험할 뻔했던 행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라를 둘로 쪼갠다. 다시 셋으로 쪼갠다. 충청도에 가서는 다른 말을 할까? 강원도에 가서는 또 어떤 말을 할까?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도 오로지 문재인에 대한 증오 뿐이다. 원래 자기 것이어야 했을 자리를 빼앗아 간 누군가에 대한 원망 뿐이다. 그런 인간이 정치리더의 하나로서 지식인과 언론의 추앙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도 다수 언론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있다. 물론 그 다수는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역시 언론의 증오와 혐오였을 것이다.


제대로 비판하는 언론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들조차 지난 총선부터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다. 비판할 가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비판해서는 안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바보라서 다행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다. 똑똑하고 말잘하는 놈들은 위험하다. 안철수라서 그나마 낫다. 안철수라서 정말 다행이다. 신을 믿게 된다. 

커다란 도끼 하나만 있으면 소든 닭이든 솜씨에 따라 얼마든지 문제없이 잡을 수 있다. 굳이 전기톱까지 필요없다. 괜히 비용도 많이들고 닭처럼 작은 짐승은 잡아봐야 남는 것이 없어질지 모른다. 닭잡을 칼도 하나 없는 사람이라면야 한 번에 소도 잡을 수 있는 도구를 필요로 할 수는 있다.


한반도는 아주 작다. 그나마 그 작은 한반도를 둘로 나누면 더 작아진다. 요즘 전투기들은 거의 기본으로 마하로 날아다닌다. 1초에 340미터이고 1시간이만 1200킬로미터가 넘는다. 거기에 전투기 한 대가 한 번에 몇 톤 씩 폭탄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중거리 미사일만 있어도 북한영토의 끝까지 미사일을 발사해 타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한 F-15전투기만 40대다. F-16전투기도 130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 지상을 타격할 수 있는 각종 미사일 전력만 천 여 기를 훌쩍 넘기고 있다. 사거리와 탄두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숫적으로 북한 전역을 뒤덮기에 부족함이 없는 규모다. 여기에 각종 야포며 자주포, 로켓발사기까지 포함해 보자. 북한군이 보유한 무기들과 최소 두 세대 이상 차이나는 그야말로 최첨단전력들이다. 그래서 북한과 당장 전쟁을 치르면 우리가 형편없이 북한에 밀리고 말 것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더이상 군사력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우위를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우위는 커녕 어느새 역전되어 압도당할 상황이었다. 심지어 당시 한국군에 비해 열세였던 각종 무기와 장비들이 지금도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있는 것이 북한군의 형편인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인데 군사력까지 열세라면 어떻게 한국과의 대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체제경쟁에서 패배했다고 그대로 북한을 들어 대한민국에 바칠 것이 아니라면 대한민국과 경쟁할 수 있는 무엇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핵무기다. 핵무기를 가져야지만 비로소 대한민국에 대해 군사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으며 최소한 대한민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해질 수 있게 된다. 나름의 절박함이다. 핵무기라도 없으면 북한은 끝이다. 그렇게 북한에게 있어 대한민국과의 군사적 경쟁을 위해 핵무기는 필수지만 이미 오래전에 대한민국은 핵무기 없이도 북한을 괴멸시킬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러면 북한이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래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드도입을 결정했던 것 아니었던가. 킬체인등 북한핵무기를 방어하기 위한 무기체계도 오래전부터 연구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의 경우 핵무기가 우리의 영토에 떨어졌을 경우를 가정해서 보복수단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전술핵재배치 주장이다. 우리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북한이 두려워서 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주한미군 없이도 한국군만으로, 더구나 이번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무게에 대한 제약을 풀어주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한국군이 보유한 기본전력만으로도 얼마든지 북한을 원시 이전으로 되돌려놓을 힘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이 말한 재기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상당히 순화해 표현한 것이다. 평양만 집중타격하면 100년 뒤 누군가 평양을 발견해도 나오는 것은 돌가루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에 핵무기는 이미 떨어졌는데 피해를 입고 마주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이 이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만일 한국군이 진짜 북한을 괴멸시킬만한 힘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의미있을 수 있다. 아직 북한을 힘으로 누를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기에 핵무기라는 비상의 수단을 보유해야만 하는 필연과 절박함이 생긴다. 하지만 벌써 오래전에 한국군의 전력은 북한을 넘어 강대국에 속하는 일본과도 견주어지고 있다. 중국조차도 한국과 군사적인 대결을 벌이려 하면 상당한 피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수준이다. 세계수준에서 놀고 있는 한국군에게 고작 북한 하나를 잡자고 외교적인 부담도 작지 않은 핵무기를 도입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가 핵무기를 가진다고 북한이 사용한 핵무기의 피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충분한 보복수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각오하고 핵무기를 쓰는 놈들인데 우리가 가진 핵무기가 두려워서 핵무기 사용을 자제할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전술핵을 보복수단으로 보유하는 자체가 북한이 대한민국과 동맹인 미국의 보복까지 각오하고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 막아야 할 최악의 상황이며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 보복할 모든 수단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


사드만 가지고도 저리 난리에 지랄인 중국이다. 핵무기는 사드와는 차원이 다른 무기체계다. 호시탐탐 핵무장을 노리는 일본 역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무기 하나 막자고 배치하기에는, 그것도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 것을 전제로 보복수단으로 도입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핵무기가 없다고 북한을 타격하지 못하는 것도 그들을 괴멸시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의 피해를 입느냐가 문제지 북한을 지도에서 지우는 것은 우리군만으로도 충분하다. 닭잡는데 소잡는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이너마이트라도 터뜨리자는 수준이다. 중국이나 일본을 상대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저들은 피해를 입겠지만 우리는 지워진다. 냉정한 현실인식이다.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써서 우리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난 다음 우리가 보유한 핵무기란 어떤 의미인가? 그렇게까지 절박한 요구여야 하는 것인가. 냉정해지는 이유다. 나이를 먹은 탓이다. 감정이 참 하찮게 느껴진다. 요즘 더욱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바보가 되는 쪽이 미친 놈이 되는 것보다 백만 배 정도 낫다. 국회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진 상황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다당제 아래에서 120석으로 원내 1당임에도 야당이 단합하면 소수정당으로 전락해버리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는 중이다. 그나마 국민적인 높은 지지가 청와대와 여당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그마저 사라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게 되어 버린다.


물론 김정은과 북한 지배층의 미친 짓으로 말미암아 고통받아야 할 북한주민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저 딱하기만 하다. 혹시라도 그로 인해 굶주리지는 않을까.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한 다리 건너 남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같은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왔던 우리의 동포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고려인이나 조선족, 자이니치와 같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남의 국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을 책임질 일차적 책임은 우리 정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정부에 있으며, 우리 정부에게도 역시 자국 국민을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은 그러고 난 다음에 가능한 범위에서 도움을 주어도 주면 된다. 그래서 도움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것은 말한 것처럼 정부로서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이어야 한다.


먼저 흔들리고 있는 국민의 지지를 다잡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오로지 지배층의 미친 짓으로 인해 무고하게 고통받아야 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를 베푸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국민의 감정이 보기에 그것은 북한에 대한민국의 재산과 물자가 흘러가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으로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는데 북한에 국민의 세금 가운데 일부가 어찌되었거나 국제기구를 통해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을 다수 국민의 감정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긴 그에 대한 여론조사도 있었다. 압도적이었다. 인도적인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60%를 넘었다. 그런데도 그런 국민의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북핵문제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국민의 지지가 떠나면 여당과 청와대에 미래는 없다.


대통령의 선의는 인정한다. 청와대가 나름 어렵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청와대생활을 경험해봤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선이 반드시 집단의 선과 일치하지 않으며, 개인의 선의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박성진만 해도 너무 시간을 끌었다. 너무나 많은, 지지자들마저 고개를 젓게 만드는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었다. 그래도 자진사퇴라는 모양새를 취하도록 배려하고 싶었겠지만 당장 박성진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박성진을 그대로 임명강행하면 여론 가운데 일부는 정부로부터 등돌리게 될 것이다. 당장 여당부터 박성진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때로는 잔인하게, 야비할 정도로 냉정하고 교활할 정도로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박성진이 그렇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그렇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옳아도 국민적 지지를 잃는 순간 문재인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런 결과를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바보가 되는 것은 쉽다. 그러면서도 어렵다. 그래서 가치부전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차라리 미치기가 더 쉽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만 하고, 그 결과를 뻔히 예상하더라도 모른 척 대세에 자신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대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을 받아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때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나 흐름에 자신을 맞추며 힘을 축적했느냐 달려 있다 보면 된다. 바로 그 기회를 노리기 위해 바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해야만 하는 것들을 숨기며 대중과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못하면 끝이다. 그러면 역시나 나 또한 문재인 정부를 포기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력한 정부에게 더이상 기대를 걸기에는 나의 일상부터 너무 고단하고 분주한 때문이다.


냉정해져야 한다. 독해져야 한다. 가혹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위치에 지워진 숙명이자 저주다. 더이상 자기 좋은대로 좋은 사람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형극의 길인 것이다. 매 걸음마다 시린 칼날이 밟히고 지나온 길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다. 그만한 각오가 없다면 대통령을 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고 무엇을 가장 두려워해야 하며 무엇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가. 물론 대통령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사회에서 인권이란 가장 우선해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의 하나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권리다.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주어지는 권리다. 그것은 누구도 자의로 침범해서는 안되며 외적인 이유로 침해되어서도 안된다. 심지어 자신조차 자신의 인권을 마음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런 인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고 하는 당위다. 누구도 함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되며, 쉽게 생명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그러니까 다른 정치외교적 이유로 인해 자신의 생존을 위협당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몇 차례 핵실험까지 감행한 것은 오로지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지배층의 결정이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하긴 민주주의 국가라면 동기야 어쨌든 핵무기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시작되어 살기가 어려워지면 탄핵이든 선거를 통한 심판이든 벌써 오래전에 집권자를 끌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북한인데 오랜 경제제재로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지배층은 여전히 절대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런데 소수 지배층의 핵개발 의지를 좌절시키겠다고 북한주민들의 삶까지 궁지로 내모는 것은 정당한 판단인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간인까지 수단으로 삼아 폭격하고 학살하는 것이 과연 현대사회에서 용인되는가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강경일변도였던 - 강경이라기보다는 그냥 포기나 방치에 가까웠지만 -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도 북한과 대화와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인도적인 지원은 계속 이뤄져 오고 있었다. 그냥 북한 정부에 쌀이며 의약품 및 생필품을 가져다 던져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제기구의 감시 아래 그것들이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관리, 감독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북한 지배층의 헛된 야망에 대해 국제사회가 단죄하는 와중이라도 그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고유한 인권, 그 가운데서도 생명권까지 침해당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키고 도와줘야 한다.


하긴 한국사회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아주 최근에서야 대중에게 허락된 것이었다. 그나마 항상 제한적이었고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인권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 지켜질 자격이 없는 사람의 인권은 얼마든지 무시되고 침해되어도 상관없다. 당장 인터넷이 그렇다. 오로지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그것을 심지어 자랑으로 여긴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천부의 권리가 아닌 자신들이 자의로 판단해서 자격을 부여하는 시혜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은 과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아니 생명으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생존권을 보장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 자신들 개인이 아닌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이름이 그 자격마저 결정한다. 북한주민은 살 자격이 없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런 걸 흔히 맹목적 증오라 부른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지원한다고 그냥 달랑 돈과 물건을 주고 북한정부더러 알아서 하라고 맡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보수정권에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계속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북한 정부가 밉더라도 북한주민들까지 그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당연히 합의된 현대사회의 보편적 정의가 같은 민족이라서가 아닌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써 북한주민들에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문재인 정부에서 검토중이라는 이유로 다시 색깔론이라니. 역시나 대한민국에 인권은 먼 이야기라고나 할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경제제재대로 따로다. 그건 전혀 별개다. 북한의 지배층을 타겟으로 그들의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더이상 그들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차단한다. 결국 고통받는 것은 북한주민도 마찬가지지만 부와 권력의 일방적인 편중이 북한의 지배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항암제가 결국 정상세포도 죽이지만 더 탐욕스러운 암세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정상세포까지 암세포와 함께 죽도록 방치해야만 하는가. 굳이 통일을 않더라도 바로 국경을 마주한 이웃나라 국민들이다. 당연한 말을 참 어렵게 받아들인다.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국민의당이 안되는 것이다. 저런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문제다. 대한민국은 입헌주의 국가다. 모든 법률과 명령과 제도는 헌법이 정의한 정신 위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헌법의 정신을 지키고 있고 어긋나 있는가 판단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인 것이다. 이 나라의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이 실제 겪는 현실과 헌법의 정신을 이어준다. 그 헌법재판소장이다. 그런데 그런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기 위해 가부를 묻는데 지명자의 자질과 성향, 능력이 아닌 임명권자에 대한 감정을 우선시한다. 그게 말이 된다 보는가?


결국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확실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나라의 중대한 문제보다 문재인에 대한 감정이 우선한다. 헌법재판소장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중대성보다 오로지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반감만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당이 국민의당이었다. 친노친문 싫은 사람 모여라 해서 안철수를 중심으로 뛰쳐나가 만든 정당이 바로 국민의당이었다. 안철수가 당대표가 되고 가장 먼저 했던 일 역시 문재인을 목표로 다시 한 번 호남에서 호남홀대론을 불지피는 것이었다. 새삼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해악인가도 아랑곳않고 그저 문재인과 민주당만 꺾을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성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문재인이 하는 일을 훼방놓기 위해 부결시키고 만다. 나라도 국민도 무엇도 없는 그저 반문재인 정당과 정치인의 민낯이다.


하여튼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탓에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조차 모른다. 일본에서는 북한이 미사일발사하고 핵실험하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총리인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대응하려고 한다. 어찌되었거나 지금 총리는 아베다. 모든 판단과 결정은 총리인 아베와 그 정부의 책임 아래 내려질 것이다. 보다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내려진 결론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정치권과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어 아베에게 힘을 실어준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 없다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도 원내 3위의 의석수를 가진 유력정당의 대표다. 그런데 이 위중한 시기에 자기가 정부의 대사들은 물론 외교부장관까지 교체하겠다 기자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떠들어댄다? 아무도 하지 않는 짓을 자기는 하고 있으니 새정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안철수만이 아니다. 어째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지지도 문재인정부의 여러 실책들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오를 줄 모르는가. 위기상황이면 어떻게든 야당 또한 정부에 협력해야 한다. 6차핵실험의 결과 북한이 수소폭탄의 개발에 성공했다면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하면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북한보다 먼저 대통령부터 공격한다. 어떻게하면 북한핵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대안을 내놓기 전에 오로지 대통령을 공격해서 끌어내릴 궁리만 하고 있다. 국가도 국민도 전혀 안중에 없이 그저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을 끌어내리기 위한 당리당략에만 열심이다. 안철수가 괜히 자유한국당과 함께 노는 것이 아니다. 염치도 도의도 양심도 모르는 그들과 안철수의 정치가 전혀 다르지 않다. 문재인만 끌어내리고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으면 나라가 더 위기에 빠지는 것이 더 좋다. 아니라 장담할 수 있는가?


도대체 그런 정당 그런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그런 건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느끼는 것이다. 저놈들에게는 나라도 국민도, 무엇보다 유권자인 나마저도 전혀 안중에 없다. 최소한 문재인을 지지하는 70%가 넘는 유권자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아도 나라의 주권자인 유권자들이기에 그들의 눈피를 살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만 거꾸러뜨리면 된다. 문재인만 거꾸러뜨리면 국민들의 지지는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지지가 돌아오면 그때 자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무엇으로 문재인과 다른 자신들만의 대안으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일까? 문재인을 빼고 단 한 마디라도 해보았으면 싶다.


그냥 자폭이다. 열심히 밧줄을 잡아끄는 동료를 골탕먹이겠다고 절벽에 매달려서 밧줄을 끊으려는 심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공당으로서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나라와 국민에 대해 궁리하고 고민하며 대안들을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대한민국을, 어떤 대한민국의 미래를 자신들은 그리고 있는가. 그것이 이념이며 지향이라 하는 것일 게다.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재인이 싫다.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 그래서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고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자칭진보언론들도 있다. 한국정치가 참 저렴해진다. 모멸감마저 느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는 나라의 정치다. 웃는다. 

그러니까 그나마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념적으로 성향이 전혀 달라 동의할 수 없었다는 명분이라도 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두 정당 모두 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두 정당이 지향하는 보수적 가치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자의 성향이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이념과 신념, 양심에 비추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실제 그러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국민의당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고 가장 처음 나왔어야 할 말이 바로 이것에 대한 것이었어야 한다. 자신들은 어째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반대하고 어떤 이유에서 임명에 동의하지 않고 부결에 표를 던졌는가. 심지어 김동철 원내대표와도 말이 다르다. 자기들이 아니라 민주당의 반란표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는 부결로 인한 국민의당의 정치적 책임을 줄여보려 되도 않는 말까지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당대표라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자기들 정당에 결정권이 있다는 따위였다니. 그러니까 캐스팅보트를 쥔 제 3정당으로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부결시켰다는 소리다. 국가도 국민도 없고 이념도 신념도 없는 그저 당의 이익만을 위한 결정이었다.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을 알았으니 새삼 실망도 없다. 도대체 한경오는 뭔 생각으로 이런 안철수를 대통령후보로 밀었던 것일까? 안희정이 민주당 경선에서 낙마해서? 황교안이 보수정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아서? 유승민이 자유한국당 후보가 아니었어서? 홍준표가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아서? 자기가 뭔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인간이 한때 유력 대선후보였다. 대중의 가벼움도 함께 읽고 만다. 한바탕 코미디다.

사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헌법재판소장이나 대법원장의 임명을 두고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슈야 되었겠지만 그것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나 그리 와닿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북한의 6차핵실험이 있기까지 흔들림없는 지지를 보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작 논란이 된 인사 가운대 국민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가 거의 없었다. 다만 살충제달걀을 둘러싼 식약청장의 문제는 타격이 좀 있을 듯 보였다.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이 없다면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럴 여유도 그럴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김이수가 어떤 사람인가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알고 있는 국민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이제 하나만 남게 되었다. 헌정사상 초유로 야당의 반대로 정부의 첫 헌법재판소장 임명이 부결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머릿수를 무기로 유례없이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부결시키고 말았다. 하물며 국민의당은 호남홀대론을 부르짖으면서 호남출신 헌법재판소를 반대하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미 있는 지지에만 만족한다면 상관없겠지만 더 외연을 넓히고 지지층을 확보하려 한다면 자충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인상은 그렇게 박혀 버렸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그런데 국민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헌법재판소장 임명에 야당이 하나가 되어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위해 부결시키는 초유의 행위를 저질렀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불과 얼마전까지 김장겸 사장의 체포영장에 반발해서 국회를 보이콧하다가 막 기어들어온 상황이었다. 이놈들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도 타격은 있다. 역시 소수정권이다. 여당이고 다수당이지만 과반을 가지지 못했기에 한계가 있다. 그런 상황이 앞으로 3년은 더 이어져야 한다. 신뢰를 가지기에는 아직 너무 미약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대안으로 야당을 지지하자니 하는 짓거리가 너무 어이없고 괘씸하다. 그러면 과연 그 결과는? 굳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박하지는 않다. 말했듯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 국민 자신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안이다.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일 수 있지만.


도대체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무슨 생각으로 부결시켰는지 모르겠다. 바른정당은 아마 MB정부시절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수사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모양이다. 국민의당은 그냥 반문이다. 국민의당 절반이 반문이다. 다른 것은 없다.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 것들이다. 재미있어졌다.

원래 진보라고 다 같은 진보가 아니었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PD와 NL이 같은가고. 차라리 군사독재의 후신보다 그들에게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이 서로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그들일 것이다. 하물며 NL가운데서도 경기북부니 인천동부니 해서 파벌이 갈리고 그들은 결코 쉽게 화합하지 않는다. 서로 이념의 전제와 이해와 지향이 다른 탓이다.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과 꿈꾸는 이상이 다른 탓이다. 그런데 진보라고 다 같다 말할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가 다른 이유다. 보수가 바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현상유지다. 그냥 다른 것 다 따지지 말고 지금까지 문제없이 해 온 대로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나가자는 것이다. 서로 이익을 가지고 다툴지언정 노선으로 다툴 일은 거의 없다. 반면 진보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보자는 것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자는 것이다. 위험한 만큼 그에 대한 기대도 믿음도 크다. 아니라면 굳이 불확실한 가능성에 그렇게 매달릴 이유도 없다. 서로 출발점도 가고자 하는 방향도 다르다면 그들은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 등 진보언론들은 지금의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자신들과 동지로 여기고 있기는 한 것인가. 멀리 노무현 정부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이야 이들 진보언론들과 서로 가는 길이 달랐었다. 노무현 역시 이들 진보언론들과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었다. 그래서 지난 대선, 아니 그 전의 총선에서도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 등 진보언론들은 문재인과 문재인을 중심으로 일신한 민주당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었다. 그만큼 홍준표보다도 끔찍히 싫을 정도로 자신들과 노선이 전혀 다른 정당이고 정치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뒤에도 오히려 조중동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비판에 앞장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때로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하고,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면서, 의도적인 오보까지 내면서. 이미 그들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한때 같은 야권이었으니 같은 편이다? 모순된다.


굳이 멀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같은 진보라 말하는 한경오가 지면을 통해 주장하는 것들만 가만 살펴봐도 답은 명확해진다. 처음부터 한경오는 민주당과 같은 편이 아니었다. 문재인과도 같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조차 한 번도 해 본 적 없을 것이다. 차라리 안철수가 문재인보다는 자신들과 더 가깝다. 홍준표가 문재인보다는 자신보다 더 가깝다. 그것이 그들 진보언론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너무 착하다. 하긴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 결국 언젠가 돌아돌아 만나게 될 사이다. 지금은 서로 등지고 외면하지만 어떻게든 같은 길 위에 모이게 될 사이들이다. 그러고보면 나도 운동권 내부의 이념투쟁같은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겠거니. 그러나 정작 그들 사이에서는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었다. 전쟁중이다. 적폐와의 큰 싸움중이다. 과연 그들을 믿고 뒤와 옆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은 명확하다.

전쟁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적이 밀려들고 있다. 당장 눈앞에 적의 대장이 10만이 넘는 대군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 어디를 어떻게 막으면 이길지, 어디에서 어떻게 싸우면 적을 패퇴시킬지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적의 주력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공상이고 망상에 불과하다.


이미 민주당과 지지율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 그나마 자유한국당 정도만 텃밭인 대구경북에서 선전하고 있을 뿐 나머지 야당들은 전국 어디서도 민주당의 높은 지지에 밀려 지리멸렬한 상태다. 존재감도 미미한데다 대통령이 이슈까지 독점하고 있어서 무엇을 하든 화제조차 되지 못한다. 그나마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것이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는 대통령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나마 대통령을 걸고넘어지면 화제라도 될 수 있다. 다른 것 다 차치하고 무조건 대통령 하나만 잡아야 한다.


이를테면 금적금왕이라 할 것이다. 적을 잡고 싶으면 대장을 잡으라. 대장만 잡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딸려 온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대장들은 가장 크고 강한 군대에 둘러써야 있는 경우가 많다. 틈을 노리거나, 아니면 무모하게 도박을 하거나. 다행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헛짓한다고 잡아죽이지는 않으니까. 대중이 실망하고 분노한다고 자기들을 잡아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무작정 달려든다. 아무렇게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흠집을 낼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새로 당대표로 선출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당선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문재인 정부의 호남홀대론을 다시 불지피는 것이었다. 자유한국당 역시 김장겸 사장의 체포영장을 빌미로 장외투쟁에 나섰다. 목표는 하나 문재인 대통령에 흠집을 내보자.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가지고 민주당과 싸울 것인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해 자신들은 어떤 대안을 내놓을 것인지. 어떻게 문재인 정보와 민주당과 차별되는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것인지. 핵무장의 이슈마저 오히려 미국의 도움으로 문재인 정부가 선점해 버렸다. 그러니까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저 문재인 하나 붙잡고 늘어지는 것 밖에는.


사지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들어가야 하고 안될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한다. 아니면 그나마 말라죽는 수밖에 없다. 미래가 없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 어느 정당에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미래는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반문재인 뿐이다. 죽든 살든 마지막까지 그 한 가지에 걸어야만 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그에 동참하고 있다. 역사상 없다. 이런 것이 만인적이라는 것인가. 팽성전투에서 고작 3만의 병력으로 유방의 50만 대군을 무너뜨린 항우의 위세가 이러했을까? 오로지 문재인 한 사람의 힘으로 네 개의 야당을 모두 초토화시키고 있다. 물론 정확히는 여전히 70%를 넘나드는 국민적 지지가 든든하게 문재인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가 그에게 있는 한 명분 역시 문재인에게 있다.


참 정치뉴스가 이렇게까지 재미없었던 적이 없다. 그래도 전에는 치고받는 이슈라도 있다. 네가 옳네 내가 옳네 다투는 것이라도 있었다. 명분도 없고 실질도 없다. 오직 한 사람 문재인만이 있다. 문재인에서 시작해서 문재인으로 끝난다. 자유한국당의 뉴스도, 바른정당의 뉴스도, 국민의당의 뉴스도, 심지어 정의당의 뉴스마저.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판단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것일까? 그야말로 말라죽어가고 있다. 뿌리부터 말라가고 있다. 그래서 결국 민주당도 없이 문재인 한 사람만 남는다. 이런 심심한데가.


어쨌거나 야당들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나마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은 없다. 김정은에게 제발 하고 빌고 있을지 모르겠다. 트럼프에게 부디 하며 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문재인은 한국 정치의 한계를 넘어섰다. 가끔 심각하지 않나 싶다.

현대에도 관용구로 흔히 쓰이는 '스파르타식 교육'은 사실 도시국가의 한정된 자원으로 최강의 군대를 이루기 위한 나름의 필연적 선택이었다. 다행히 이웃한 메세니아를 식민도시로 삼으면서 직접 생산에 종사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모든 시민을 숙련된 전사로 만든다. 오로지 혹독한 훈련으로 모든 시민을 전사로 만들어 그것으로써 폴리스를 유지하고 지킨다.


하지만 정작 폴리스를 위해 모든 시민들을 엄혹한 집단생활로 내몰았으면서도 한 편으로 스파르타 역시 다른 그리스의 폴리스들과 같이 철저한 개인주의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먹고 입고 자고, 더구나 평상시에도 조를 이루어 집단생활을 하면서 그 비용까지 모두 개인이 지불해야만 했다. 자식을 아고에라 불리운 학교에 보내려 해도 개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만일 그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면 폴리스의 시민으로서 모든 지위와 권리를 잃어야 했었다. 아예 나중에는 자식을 학교에 보낼 돈이 없어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마저 빈번하게 일어났다. 문제는 그 돈을 지불할 경제력이 모든 시민들에게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돈이 없으니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돈이 없어서 아예 출산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영아살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전쟁을 한 번 치르면 많은 인구가 죽어나간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존에 있던 시민의 수마저 줄이고 늘리기를 포기하니 제대로 사회가 유지될 리 없었다. 심지어 스파르타가 몰락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코린토스 전쟁 당시 스파르타에 시민권을 가진 성인남성의 수는 불과 1천명 정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전성기에는 무려 9천 명이 넘고 있었다. 불과 수백년 사이에 완전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수가 10분의 1로 줄어든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코린토스 전쟁에서도 스파르타는 시민이외의 계급 - 즉 시민자격을 박탈당한 계급에서까지 충원하고서야 겨우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굳이 왜 지금 이런 글을 쓰는가는 아마 거의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부국강병을 기치로 개인을 수단으로 삼으며 집단속에 매몰시키면서도 정작 모든 부담과 책임은 개인에게로 돌린다. 결국 국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도태되거나 사회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다. 과연 소수의 엘리트만이 남아 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별 건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스파르타식이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것이 어느 사회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인을 수단으로 삼아 사회의 부와 번영을 추구한다.


스파르타가 멸망한 이유는 단순히 코린토스 전쟁에서 패배해서가 아니었다. 코린토스 전쟁 이후에도 스파르타는 도시국가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메세니아가 독립하고 스파르타는 더이상 이전과 같은 성세를 회복하지 못한다. 나중에는 그리스에서도 가장 낙후된 도시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전혀 바뀌는 것이 없었다. 흔적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지기까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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