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의연 논란을 통해 더욱 확실해진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자칭 진보는 수구보다 민주당을 더 끔찍히 싫어한다. 둘째, 더불어 자칭 진보는 조중동을 신뢰하며 두려워한다.
오늘 경향일보와 중앙일보가 똑같이 이용수 할머니의 인터뷰를 실었는데 그 강조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경향일보의 인터뷰에서 윤미향 전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던 이용수 할머니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아예 정의연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이용수 할머니의 진심일까?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경향일보에서 지금까지 보수언론의 정의연에 대한 공격을 최소한 방조한 이유가 바로 이 인터뷰 기사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윤미향을 사퇴시켜야 한다.
즉 감히 자신들과 연대하던 정의연의 이사장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자체가 괘씸죄가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악의 온상일 텐데. 진정한 진보사회를 위해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대상일 텐데. 그런데 그런 정당의 당적을 가지고 정의연의 윤미향 이사장이 무려 비례대표까지 되었다. 어차피 윤미향 당선인이 사퇴해봐야 바로 다음 순번의 비례후보가 비례대표를 승계하게 될 테지만, 그렇더라도 정의연의 이사장이 민주당 당적의 비례대표가 되어 대중과 언론 앞에 노출되는 상황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 그러므로 차라리 정의연을 해체하더라도 윤미향 이사장은 사퇴시켜야겠다. 경향만이 아니다. 침묵하기는 한겨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의연과의 연대보다 민주당에 대한 증오가 앞섰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렇더라도 그동안 매우 밀접하게 연대해 온 대상인데 그렇게 한순간에 저버릴 수 있는 것인가. 최소한 정의연의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커져가는 가운데 정의연의 존립이유에 대해서라도 근거를 제시하는 기사 정도는 하나쯤 내주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윤미향은 버리더라도 정의연까지 버리지는 않겠다. 윤미향은 민주당 당적을 가졌으니 내치더라도 정의연과 함께 해 온 세월들까지 내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나마 정의연의 편에서 논설이라도 실었던 한겨레조차 차라리 조중동에 사정을 하면 했지 그 논리와 논거의 부당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입바른 소리 그리 좋아하던 자칭 진보 지식인이며 정치인 가운데 보수언론의 공격이 부당하다며 비판하며 나서는 경우도 역시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민주당이 뭐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오만 소리를 지껄이던 그들이었다.
결국 뭐냐면 검히 조중동에 맞서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 전에 조중동이 보도했으니 사실로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채널A의 검언유착 의혹에 대한 태도에서도 볼 수 있듯 한겨레와 경향은 이미 그와 같은 보수언론의 행태에 대해 하나의 관행적인 취재방식이고 보도방식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오히려 조중동의 그와 같은 방식들을 배우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언론으로서 그와 같은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는 것도 언론의 보도기술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렇게 보도하게 만든 당사자들이 잘못인 것이지 언론은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로서 그리 보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보도되었다면 그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야 한다. 왜곡보도를 한 조중동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빌미를 준 정의연의 잘못이다.
더구나 보수언론이라면 오랜 세월 이 사회의 기득권을 대변해왔을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 자칭 진보들은 깨달았다.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누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 그러므로 진보인 자신들이 이 나라와 이 사회에서 제대로 진보운동을 하려면 누구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지. 조중동의 눈밖에 나면 죽는다. 보수진영의 눈밖에 나면 자신들은 망한다. 그러므로 눈치를 봐야 한다. 바로 어제까지 동지였어도 조중동의 눈밖에 나면 남이고 적이다. 어떻게 그 많은 자칭 진보들 가운데 정의연의 편에서 떠드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인가. 그나마 늦게서야 진짜 망하게 생겼으니 띄엄띄엄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는 한다.
한국 진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바로 지난 1월 경향일보에 '민주당만 빼고'같은 칼럼을 진보의 이름으로 게재하고 그를 거의 모든 진보가 지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민주당이 적이다. 민주당이야 말로 최우선으로 타도해야 할 진보의 적이다. 그리고 보수언론은 신뢰하고 두려워하며 복종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정의연도 기꺼이 버릴 수 있다. 인터뷰하는 내내 혹시라도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에 대한 오해를 풀까봐 조심하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다.
과연 저들의 의도대로 정의연이 해체되면 누가 더 즐거워할까? 그보다 윤미향 당선인이 사퇴한다면 그런 정도는 상관없다 말할지 모르겠다. 그게 바로 자칭 진보란 것이다. 항상 자칭을 붙이는 이유다. 꼴같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