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패턴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벽을 쌓고 총으로 위협하며 오히려 내쫓으려고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장면을 보면서 분노했을 것이다. 어찌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하지만 공포란 그런 최소한의 양심과 인정마저 마비시켜버리는 감정인 것이다.

 

당자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들만 보면 한국은 망해도 벌써 오래전에 망했어야 한다. 길거리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들로 넘쳐나고, 그저 스치기만 해도 바로 감염되어 죽어나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확진자라고 해봐야 모두 15명 정도이고, 그나마 사망자도 아직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문제란 것이다. 시민들의 공포를 더 부추겨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가는 영 의도대로 되기 힘들다. 심지어 감염자들조차 대부분 정부의 관리범위 안에서 나타났고 접촉자들 역시 거의가 당국에 의해 추적되어 관리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어떻게 시민들의 공포를 자극해서 혼란에 빠지게 할 것인가.

 

그래서 중국발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다. 중국에 환자가 몇 명이다. 사망자가 몇 명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인이나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감을 조장한다. 정부와 당국을 불신케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보도에 사람들이 기대도록 만든다. 공포는 장사다. 불안이야 말로 가장 남는 사업인 것이다. 진보와 언론이 따로 없다. 공중파와 종편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그러나 설사 확진이 되었어도 조기에 증상을 발견해서 바로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만 받을 수 있으면 아직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예방에만 힘을 쓰시라. 그게 안되니까 자꾸 사재기가 일어나고 혐오의 감정만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는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중국에서만 발병했는가. 벌써 중국인들이 세계 각지로 이동해 있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감염되어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인 확진자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감염되어 한국으로 들어오는 미국인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다만 전면금지는 아니더라도 입국자에 대한 통제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고 정부의 감시 아래 모든 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필수다. 무엇보다 전염병이 지나가고 난 뒤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예 신종 코로나로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전염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계속 중국과 무역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공포를 조장해서 여론을 몰아 일방적으로 정부를 압박하려고만 한다.

 

이런 때야 말로 진짜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다. 기자 같은 얼치기들이 아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모두 갖춘 진짜 전문가들이다. 지금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공포가 아닌 그런 사실에 근거한 냉정하고 이성적인 객관적 판단인 것이다. 언론이 해악이다. 언론이 쓰레기다. 아니 언론이란 자체가 비칭이며 멸칭이다. 언론이 언론한다. 역겹다.

정부 초기 기자들은 외쳤다. 언론의 본분은 권력비판이다. 사실보도는 뒷전이란 뜻이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최대한 동요와 혼란이 없도록 보도해야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기자놈들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하나를 둘로, 셋으로,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떼다.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차라리 병까지 이용하려 한다.

아침 신문을 보니 가관도 아니다. 능동 감시 도중 확진자가 발견되었다. 덕분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네 접촉자까지 확인해서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우한 교민을 소개한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의 혼란만 집중 보도한다. 그러니 국민은 정부를 믿지 말고 물병과 계란을 들라. 이념도 상관없다. 언론의 자유가 저들에게는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인가.

언론 보도만 보면 아포칼립스가 따로 없다. 숫자만 빼고 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워킹데드가 진행 중이다. 그래놓고는 내수 위축된다고. 한겨레 기자 방송에 부르는 김어준도 반성해야 한다. 언론이 적이다. 분명.

보면 볼수록 진중권이란 인간이 웃기기만 할 뿐이다. 검찰에게 들어서 쓰는 기사는 진실이고, 직접 관계자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따고 자료를 찾아 낸 보도는 가짜뉴스다. 검찰이 신인가? 한 점 오류도 없는 진실한 정의의 존재인가? 그러면 검찰교라도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좋겠다. 유희곤과 제사장 하면 딱일지도.

 

지난 화요일 PD수첩 방영분을 이제서야 유튜브로 볼 수 있었다. 사실 대충 아는 내용들이다. 그동안 여러 경로로 조각난 파편들이 전해졌고 그를 통해 나름대로 내용도 재구성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직접 울산까지 내려가서 관계자들을 찾고, 증언을 듣고, 자료를 확보하고, 아마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렵고 힘든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검찰청 출입기자들이야 상가에서 하극상하는 것이나 미리 전해듣고 준비했다가 기사로 내보내는 게 전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기사가 진짜고 PD수첩은 가짜다.

 

뭐 더 언급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언론이 뭔지, 검찰이란 어떤 조직인지, 그래서 어째서 검찰개혁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하긴 그동안 진보입네 입으로만 떠들었지 실제 검찰의 권력을 직접 정면으로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째서 검찰의 무책임한 독립이 위험한 것인가 이해하지 못한다. 검찰에게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잡아야 최성해도 동양대 총장으로 돌아오고 자신도 교수로 복직될 수 있는 것이다.

 

뉴스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성의를 다해 취재해서 내보내는 것이 진짜 기사인 것이다. 물론 그런 유희곤 잘한다고 1면을 내주는 것이 지금 경향일보의 수준이기는 하다. 그냥 기자들 죄다 검찰청에 보내 알박기나 시키는게 나을지 모르겠다. 이놈들 망하는 건 반드시 봐야겠다. 진중권 백수나 되라. 또 열받는다.

학교 다닐 적 전공기초로 역학을 배운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한다. 역학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그래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WHO 전문가가 조금 더 면밀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검은 고양이를 만졌거나, 집시와 스쳐지나갔거나, 혹은 불길해 보이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거나, 그래서 역시 치료법도 쉬웠다. 고양이를 죽이고, 집시를 죽이고, 불길한 물건들을 태운다. 하지만 진짜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그같은 일차원적인 접근이 아닌 보다 면밀하고 입체적인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생활패턴을 분석해서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 하나의 원인을 특정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특히 예방은 그런 과정들이 적확하게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견되었는데 증상을 가진 사람과 전혀 접촉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접촉한 사람 가운데 증상이 있던 사람이 없는데 어느새 감염되고 증상이 나타났으니 무증상 감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확진자의 주변을 살피고 동선을 분석하며 원인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혹은 무증상이 아니라 이제까지와 다른 타입의 증상이 나타나서 증상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모든 가능성을 분석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증상감염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을 특정지을 수 있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제대로 분석과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인가.

 

이 무증상 감염이라는 단어가 무서운 것은 한 마디로 증상이 없어도 전염의 가능성이 있으니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우한 출신을 찾아내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렸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우한에서 겨우 구출해 온 교민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해당 지역 주민들이 시위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도 안심할 수 없다. 겉으로 전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위험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만큼 병이 심각한 상황인가. 가까이 있는다고 모두 감염되는 것도 아니고 감염되더라도 조기에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다시 건강하게 회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언론이 앞장서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사이 사회의 타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만 더욱 깊어진다.

 

조중동이야 원래 그런 언론이니 그렇다 치자. 자칭 진보 아니던가. 타칭으로도 진보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도대체 누구도 확실하게 확인해주지 않은 무증상 감염을 1면에 실어서 경향일보가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정부를 망치기 위해서라면 국민적인 공포와 불안도, 그로 인한 타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도 모두 당연하게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인 것인가.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중에는 우한 출신도 아닐 것이다. 중국인도 아니게 될 것이다. 증상이 없어도 감염될 수 있으니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라. 혹시라도 길가다 기침이라도 하면 두려움에 내몰린 누군가에 의해 린치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언론이 하고 있는 짓거리다.

 

정부는 잘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하며 일상이 저해되는 일이 없도록. 관계기관과 담당자들만 바쁘면 되는 것이다. 그마저도 언론은 트집잡는다. 그래서 확진자가 수 십 명 씩 나온 것도 아니고, 확진자들과 접촉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파악하고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 보도만 보면 지금 워킹데드를 찍고 있어야. 병을 피해서 어디 벙커에라도 들어가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봐도 언론이 문제다. 조중동은 당연하고, 한겨레 경향도 역시 정부 공격할 건수가 생기니까 본능을 거부하지 못하고 만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국민이야 병들든 죽든, 그저 문재인 대통령의 목만 칠 수 있다면 저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이 나라 언론의 수준이다. 내가 언론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일 테고. 끔찍할 정도다.

확실히 경향에게 있어 반문재인 반민주당은 신념 이전에 이념인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하는 말은 절대 듣지 않겠다. 절대 믿지 않겠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무증상감염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다 밝혔는데 1면에 아예 제목으로 박아 넣었다. 문재인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것을 알았다면 차라리 마지막까지 박근혜를 감싸고 돌았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비말 - 즉 침에 실려 다른 개체로 이동해 감염시킨다. 즉 침속에 섞여 있지 않으면, 그리고 그 침이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지 않으면 아예 감염 자체가 안된단 뜻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라는 것이다. 그것도 침방울만 막을 정도의 마스크면 충분하다. 그러면 어느 정도 감염되었어야 바이러스는 침에 섞이는 것인가. 일단 숙주 안에서 충분히 증식되고 나면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면역반응이 일어나면 그 하나로 기침이란 걸 하게 되는 것이다. 기침과 발열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한 인체의 면역반응에서 거의 비롯된다. 바이러스를 죽이는 과정에서 사람의 몸이 버티지 못하면 사람이 먼저 죽는 구조다. 그런데 증상 없이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증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염이 일어날 정도로 침에 바이러스가 섞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경향에서도 인용한 who의 전문가도 더 연구가 필요하다며 가능성만 언급한 것이었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제까지의 방역체계를 바꿔야 하는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그로 인한 혼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언급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언론이 아예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까 증상이 없어도 우한에서 온 교민들이나 중국인들까지 이 나라에서 다 내삐쫓자고? 박근혜 정부였으면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을 테지만 문재인 정부니까. 문재인 정부을 망치기 위해서라면 사회적 혼란도 기꺼이 앞장서 조장하겠다. 조선 동아 말고 1면 보이는 곳에 검찰 기소 실은 유일한 언론이기도 하다. 아, 한겨레도 있었구나. 끼리끼리 진보다.

그냥 쓰레기다. 지금 경향은. 진보도 뭣도 아닌 반문재인 반민주 반개혁 언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보수정부가 상대라 진보처럼 여겨졌을 뿐. 진중권과 아주 잘 어울린다. 신임사장으로 진중권을 추천해 본다. 다 같이 망해 버려라. 갈수록 가관이다. 조중동이 참언론으로 느껴진다. 경향이 경향한다. 너무 당연하다.

국가적인 비상상황을 신속정확하게 대처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용한 모든 자원을 집중해서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정부가 있는 것이다. 필요한 인력과 시설과 장비, 물자 등을 중앙의 강력한 통제 아래 동원한 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분배해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국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국가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행동에 권위가 실려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재난상황에서 곧잘 폭동이 일어나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 혹은 할 수 없었다는 불신과 당장의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규범과 가치와 질서를 잊은 채 혼란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비상상황에서는 최대한 국민이 동요하지 않도록 보도의 내용과 표현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 아니더라도 어디선가는 집단의 공포와 불안이 만들어낸 유언비어가 자연발생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오히려 더 정확하고 절제된 기사로 국민들의 공포와 불안을 달래고 다독여야 할 언론이 앞장서서 그것들을 강화하고 확산시킨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어제 충북 진천에서 일어난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자국 국민들을 전염병이 발발한 곳으로부터 구출해서 데려오려는 상황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감염된 사람이 있을까 일정기간 격리해서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사는 지역에 그런 사람들이 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처음에는 천안이었고, 그 다음에는 아산과 진천이었다. 과연 한국사람들의 정이란 것은 실재하는 것일까? 엄격하게 격리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정부당국자의 약속에도 자신들은 믿을 수 없다. 우한에서 구출해 온 자국 국민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라. 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보다 공포가 앞서는 것이다. 워낙 언론에서 마치 눈만 마주쳐도 당장 전염되어 죽는 병인 양 난리를 쳐대니 근거없는 두려움과 불안만 커져 버린 탓이다. 같은 국민이라는 정체성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연민도 인정도 모두 뒤로 해야 할 만큼 그 두려움과 불안이 너무 커져 버린 때문이다.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라도 이기적이 되어야겠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기적이 되어야만 한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2월이 되어 중국에서 돌아오게 될 유학생과 교민들을 두고도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들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중국에서 한국 유학생과 교민들이 돌아온다. 그러니까 나라문을 닫으라고? 아예 돌아오지 못하도록 내쫓으란 것인가? 하긴 벌써부터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시키라는 주장이 보수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기는 했었다. 국제규약상 정부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자칫 중국 정부의 감정을 건드리면 전염병이 물러나고 난 뒤에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현재 무역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 중국과의 관계인데 그런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자고? 중국인의 입국을 아예 금지시키지 못할 것이면 중국인에 대한 섣부른 오해와 거기서 비롯된 혐오가 없도록 보다 절제된 적확한 보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누가 앞장서서 선동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가 방역에서 실패해서 온 나라에 전염병이 퍼졌다. 감염 가능성이 높으니 아예 바깥활동도 하지 말라. 그래서 그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간다는 것일까?

자영업자들 어려운 사정 걱정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 목적을 위한 구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르스 당시 정부의 방역실패와 그로 인한 국민적 불안으로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크게 피해를 입었던가. 그에 비하면 지금 유증상 감시자의 숫자도 200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의 숫자도 아직 수 백 단위다. 실제 확진자는 아직 4명 정도다. 걸린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니고 사망률은 2%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전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될 만큼 감염자가 발견된 것도 아니다. 그러면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국민들더러 이성을 놓으라 주장하는 것일까. 언론이 필요없는 이유다. 기자새끼들만 죄다 신종코로나에 감염돼 바로 뒈저 버렸으면. 언론만 보면 내가 정신을 잃을 것 같다. 언론이 만악의 근원이다. 단 하나 진실이다.

로또는 그야말로 월급쟁이들의 꿈이다. 1등에 당첨만 되면 당장 이놈의 직장 때려치겠다. 더이상 참지도 눈치보지도 않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 그런데 과연 로또 1등에 당첨된다고 종부세를 낼 수 있을까?

 

3억을 초과하는 불로소득에 대해 매겨지는 세금이 33% 정도다. 지난주 로또 1등 당첨금이 21억 조금 넘는 정도이니 단순계산으로 세금 떼고 14억 조금 넘게 실제 받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만 그러냐면 지난 20주 동안 로또 1등 당첨금의 평균이 대략 20억 정도다. 20억 보다 조금 많은 경우도 있고 그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15억 넘는 아파트를 사지 못해서 고민인 것이 서민이라면 로또 1등 당첨되어봐야 서민탈출은 불가능한 것이다.

 

서울의 모든 지역에서 아파트 가격이 15억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종부세의 대상이 되는 9억 짜리 아파트조차 사실은 매우 드물다. 아니 사실 2억 정도 하는 아파트조차 진짜 서민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경우가 더 많다. 지금 최저임금도 너무 많다는데 결혼하고 애까지 낳아 기르며 무슨 수로 돈을 모아 2억짜리 허름한 아파트라도 장만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종부세 대상인 9억이나 심지어 이번 대출규제의 대상이 되는 15억은 어지간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인 것이다. 연봉 1억이 넘는 의사의 수입을 기준을로도 15억 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수 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 9억이 넘고 15억이 넘는 아파트 때문에 온통 난리다. 대출을 막았으니 서민 실수요자가 이들 아파트를 살 길이 막히고 말았다.

 

실제 그렇게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출규제만 없었어도 자기도 역시 강남에 아파트 한 채 노려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대출을 최대 70%까지 끼고 사도 5억에 가까운 현금이 필요한데, 더구나 10억이 넘는 대출금의 이자만도 매 해 종부세 이상이다. 도대체 한 달에 얼마를 벌면 매달 10억이 넘는 대출금의 이자를 꼬박꼬박 갚고도 생활까지 가능한 것일까? 그러면 과연 언론이 걱정하는 서민 가운데 그 정도 벌이가 되는 경우란 몇이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30대와 50대가 당장 대출 끼고 15억짜리 아파트를 사지 못해 억울해 하고 있는가.

 

오히려 서민들 입장에서 걱정이라면 그나마 자기가 살 수 있는 정도의 아파트마저 천정부지로 그 값이 오르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그래도 부모로부터 지원도 받고 여기저기 돈도 끌어오고 하면 대략 4억에서 6억 정도 되는 아파트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아파트마저 어느새 8억이 넘고 9억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이래서야 내 집 마련은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9억이 넘고 15억이 넘는 아파트들의 소유주를 걱정하는 기사를 언론은 쏟아낸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서민이고 무엇을 위한 걱정인 것일까?

 

많은 언론들이 주장한다. 대출을 막으면 현금부자들만 좋을 것이라고. 어차피 현금이 많으면 대출 상관없이 오히려 더 유리한 조건에서 아파트들을 싹쓸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종부세가 있는 것이다. 현금 많다고 무작정 아파트를 사들이다가는 종부세를 두들겨 맞는다. 내년에는 다시 보유세를 올리려 한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적지 않은 종부세까지 내가며 아파트를 사서 가지고 있을 만큼 수익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15억짜리 아파트 4채면 60억이다. 아무리 현금이 많아도 60억이라는 돈을 아파트에 묻어두고 있으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그 아파트를 누군가 더 비싼 값에 사 주어야 세금을 내고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금부자들이 그런 아파트들을 더 비싼 값에 사주어 계속해서 값을 올려 줄 것인가? 현금부자들끼리 서로 사고팔며 하는 것으로 얼마나 지금처럼 아파트 값의 상승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조선일보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냈다. 정부의 정책 때문에 똘똘한 한 채로 몰리는 경우가 늘며 오히려 아파트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돈 있는 사람들이 전처럼 이것저것 여러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가장 가치있는 한 채만 소유하게 되면서 그런 고가 아파트들의 가격만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부동산 부자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그만 못한 다른 아파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원래 여러 채 소유하고 있던 것을 가장 가치있는 하나만 남기고 모두 처분해 버렸다. 매물이 늘면 공급이 늘고 공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진다. 어차피 부자들 사는 고가 아파트야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 두더라도 진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아파트의 가격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원래 정부의 정책이 의도하던 바가 아닌가.

 

결국은 수요가 있어야 가격도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요라는 것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한 실수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익실현을 노린 투자수요도 엄연히 존재한다. 미리 더 많은 아파트를 확보한 상태에서 시장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려 실수요자들에게 그 비용까지 모두 전가하며 차익을 실현한다. 공급이 늘어나는 만큼 대출까지 받아가며 더 공격적으로 더 많은 아파트를 독점함으로써 실수요자들이 더 비싼 값에 아파트를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 그럼에도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있기에 투자수요자들 역시 시세보다 더 비싼 값에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로부터 아파트를 사 주어야 할 실수요자들에게 더이상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아파트를 자기들이 독점하고 있어도 자기들이 올린 만큼 사 줄 수 있는 실수요자의 수가 갈수록 줄어든다. 그래도 투자수요는 여전히 실수요자들을 대신해서 아파트를 사들일 수 있을까?

 

어차피 대부분 실수요자들은 대출 없이 15억 넘는 아파트를 살 여력도 안되고, 9억이 넘는 아파트를 종부세까지 내가며 보유하고 있을 만큼도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차익실현을 위해 부동산을 매점한 투자수요자들이 아파트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더이상 그들이 원하는 가격에 아파트를 사들일 능력이 안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 고가 아파트는 그럴 능력이 되는 고소득의 이른바 현금부자들을 중심으로 실수요자들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수요가 그렇게 한정되어 있는데 과연 이들 고가 아파트들은 언제까지 그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더이상 추가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언제까지 그 가격이 오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어디까지 가격이 떨어져야 실수요자들은 다시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지금 언론의 걱정은 어디의 누구를 위한 걱정인 것인가.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소용없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공급을 늘려봐야 갭투기니 뭐니 대출 받아서 수 십 수 백 채 씩 아파트를 과점하려는 투자수요자들로 인해 여전히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 그리고 차익을 위해 투자한 만큼 아파트 가격을 올려받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가 오히려 공급을 통제하여 시장의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낳는다.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 안된다면 그러면 수요를 줄이면 된다. 실수요자를 건드릴 수 없으니 투자수요를 줄이면 된다. 부동산은 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자본재가 아니라 실제 거주 목적으로 사야 하는 생활재다. 그래서 일정 가격 이하의 무주택자나 혹은 이사를 목적으로 구입하는 아파트들에 대해서는 거의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중이다. 투자수요는 억제하고 실거주수요는 보장해준다.

 

아무튼 웃기는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봐야 어림도 없는 금액일 것이다. 그나마 종부세까지는 어떻게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언론에서 걱정하는 만큼 내기 위해서는 당첨금을 모두 아파트 사는데 써야만 한다. 그게 바로 서민의 단위다. 요즘 기자들 가운데 있는 집 자식들이 많다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돈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 지금 내 소유 아파트로 종부세 내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올라야 한다. 그래도 내 집 있다고 어디 가서 어깨 펴고 다닌다. 서울이라고 모두 9억 이상 15억 이상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디의 누구를 보고 기사를 쓰는 것인가.

 

돈 있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살라 그래라. 현금 많아서 15억 20억 하는 아파트 자기들끼리 살려 한다면 그러라 말하고 싶다. 대신 세금도 많이 내고, 더구나 괜히 서민들 사는 아파트까지 눈독들여 장난질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의 대책이 의미하는 바다. 그냥 형편 되는대로 너무 무리하지 않게 실거주목적으로만 아파트를 사라. 하지만 언론사 기자들과 진짜 서민들과는 돈의 단위부터가 달라서. 그래서 언론의 기사를 보면 차라리 어이없기조차 하다.

 

몇 억 하는 아파트보다 하루 5천 원의 지출에 더 신경쓰이는 것이 대부분 서민들이라는 것이다. 한 달 카드값 몇 만 원에 주름이 더 깊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돈이 우스워진다. 진심이다.

아마 몇 년 전 쯤 폐지를 줍는 건물주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건물주가 되었어도 그렇게 악착같이 벌고 모으니 잘 사는 것이다. 아니 건물주씩이나 되었는데 그보다 못한 노인들을 위해서라도 폐지 정도는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돈이 있으나 없으나 노인들이 당장 돈벌이로 할 수 있는 일이 폐지줍기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거리를 걷다 보면 손수레에 폐지를 잔뜩 쌓아 놓고 끌고 다니는 노인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거의 동네마다 한 둘 정도는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폐지를 줒고 할아버지 한 분이 고철을 줍는 식으로 분담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열심히 고철이며 폐지며 모아다 팔면 과연 노인들은 얼마를 벌게 되는 것일까? 하긴 나 역시 외할머니가 고물 주워 파는 일을 하셨었기에 대충은 그 내용을 알고 있다. 그래서 노인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고물 주워서 큰 돈 벌면 도대체 무슨 걱정일까?

 

건물청소든 경비일이든 나이 먹고 아무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보다 다행일 수 없는 것이다. 월급도 적고 근무조건도 열악하지만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노인들 입장에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마저도 거의 자리가 없기에 모아놓은 돈이라도 없으면 겨우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연명이나 할 수 있을 뿐이다. 복지단체에서 쌀이며 연탄이라도 가져다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노인인구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그런 늘어만 가는 노인들을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일까?

 

갈수록 저소득층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당연하다 할 것이다. 아무리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냈어도 일단 퇴직하고 나면 연금이며 퇴직금까지 다 더해봐야 아직 직장에 다니며 받던 연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근로소득이야 당연히 0에 수렴할 것이고, 아무리 모아놓은 돈이 많아도 소득 자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줄어든 수입과 할 일이 없어진 당장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리하게 창업했다가 그나마 있는 돈마저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네 새로 문을 연 프렌차이즈 업장의 사장들 보면 그래서 대부분 그렇게 창업한 퇴직자들이다. 물론 그나마 모아놓은 돈이라도 있는 경우들이다.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그마저도 없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폐지라도 주워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만다. 그러면 이들을 그냥 시장에 맡기고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그런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정책을 펴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냥 편하게 자신의 일상을 즐기며 살 수 있을 만큼 재정을 투입해서 지원하는 것일 터다. 아니 그 전에 국민연금만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연금수입만으로도 정부의 지원 없이 노후를 즐기며 살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국민연금을 적립하지 못한 국민들이 상당하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국회의 동의도 필요하고, 국민적인 합의까지 전제되어야 하는 재정지원보다는 차라리 정부의 재원을 이용해서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인 일자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장시간 노동도 어렵고, 그런 만큼 고강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도 아니기에 일하는 시간도 짧고 수입은 비례해서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라도 일자리가 주어지니 노인들은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갑작스런 수입감소로 인한 빈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최근 언론들이 공격하는 최하위 저소득층과 관련한 통계의 정체인 것이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가 늘고, 그런데 대부분 노인들은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소득이 감소하고, 그런 소득이 감소한 부분을 재정과 정책을 통해 보전한다. 그러면 그런 노인을 제외한, 즉 2분위 이상의 소득은 어떠한가? 언론이 2분위의 소득이 감소했다며 비판하는 기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2분위부터는 항상 소득이 올랐었다.

 

체감경기라고 하는데 그냥 문밖만 다서도 한 눈에 보이는 풍경인 것이다. 일 없이 시간만 보내거나, 혹은 폐지를 주워야 하는 노인의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런 노인인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언론은 절대 보도하지 않는다. 1분위 인구의 평균연령이 늘고 있는 사실이나, 어째서 그들의 소득구성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숫자만 뚝 잘라다가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선동한다.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정부가 정책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 서민이란 살기 어려워서 서민이라 부르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면 이미 중산층 이상이라 봐야 한다. 한 달 내 열심히 일해봐야 받는 월급으로는 당장 필요한 곳에만 아껴서 써도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얼마를 벌어야지만 그런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쓰고 싶은 곳에 써가며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혼자라면야 적당히 벌어도 그럴 수 있겠지만 딸린 가족이라도 있으면 어지간히 벌어서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데 누군가 와서 귓속말로 그 이유를 말해준다. 정부가 문제다. 통계가 이렇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작년보다 월급이 수 십만 원 더 올랐는데도 살기 힘들다며 최저임금인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그런 농간질의 영향일 것이다. 내 월급은 올랐는데 결과적으로 통계가 나빠졌으므로 내가 살기 어려워진 것은 최저임금 때문이다. 하긴 이유는 상관없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살기 힘들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므로.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서민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 통계만 제대로 본다면 그 사실은 너무나 명확해진다. 당장 자신의 월급을 보라. 자신의 늘어난 수입을 보라. 수입이 늘었어도 수입이 늘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의 수입까지 늘었기에 잘못된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쓰레기라는 것이다. 함께 잘살기보다는 누군가의 수입을 줄여서 내가 잘살기를 바라는 사회로 만든다.

 

과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경제적 최하층들은 어떤 이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들과 관계된 통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바로 자신의 주위와 관계된 사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눈만 조금 돌려보면 현실이 보인다. 자신이 무엇을 비난하고 어디에 책임을 묻고 있는가도. 답답한 것이다. 말해야 할 이들이 진실을 비튼다.

산을 끼고 난 도로를 다니다 보면 '낙석주의'라 쓰인 표지판을 흔히 보게 된다. 산 위에서 돌이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데 뭘 어쩌라는 것일까? 내가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도 없고 어겨봐야 사소한 것일 텐데 내 잘못도 아닌 우연히 떨어진 돌에 의해 사고라도 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돌더러 주의케 하자. 설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 잘못 없이도 재수없으면 굴러떨어진 돌 때문에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몇 배 더 조심하자.

 

아이들이란 존재 그 자체가 자연재해다. 인간의 의지로 - 정확히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의지라 할 만한 것이 자리잡기 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가 야단치고 타이르며 가르쳐봐야 대부분 잠시를 못 참고 다시 충동과 본능에 자신을 내맡기고 만다. 부모가 심각하게 야단치는 상황에서도 혼자서 울먹울먹하다가 갑자기 나비를 잡겠다며 뽈뽈거리고 뛰어다니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란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 뿐만 아니라 야생의 짐승들도 새끼 때 사고율이 매우 높다.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른단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스쿨존이란 것도 생겨난 것이다.

 

중학생 이상 쯤 되면 자기가 알아서 조심하면 된다. 교통법규라는 것이 그렇게 중학생 수준에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복잡하기만 한 것이 아니기에 그때 쯤 되면 학교와 가정에서 배운대로 법규를 준수하며 다니면 크게 사고가 나거나 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다 큰 성인들조차 때로 어처구니 없는 충동에 몸을 맡기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쯤 되면 자기가 알아서 하고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어린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아이들보다 어른인 운전자들이 더 조심하자. 그게 스쿨존이다. 어차피 통제도 안되고, 가르쳐봐야 교통법규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나이이니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더 배려해서 행동하도록 하자.

 

즉 스쿨존이란 곳은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기에 그런 만큼 언제든지 충동적으로 돌발적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아이들과 조우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더 주의하고 더 조심해서 운전하지 않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성인들과 달리 크게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이란 뜻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몇 배 더 조심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혹시나 있을 만에 하나의 상황에 항상 대비해야만 한다. 문득 최근 민식이법 통과 직후 민식이법에 대해 비판여론이 커지는 것을 보며 들게 되는 의문인 것이다. 스쿨존이라고 법이 정한 것보다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스쿨존이란 자체가 그런 곳이었다는 것이다.

 

저기 저 골목 귀퉁이일지도 모르고,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 뒤인지도 모르며, 엄마와 함께 걸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가로지르려 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서행하라. 그러니까 몇 배 더 천천히 몇 배 더 조심해서 신경쓰며 운전하라. 사실 그 정도 되면 어지간해서 사망사고까지 일어나는 경우는 많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심, 또 조심, 자칫 잠시의 방심으로 하나의 안타까운 목숨이 사라질 수 있다.

 

민식이법에 대한 반론이야 말로 민식이법의 취지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더 조심해야 한다. 기껏 차를 운전하면서 심지어 걸어가느니만 못할 정도로 천천히 기어가듯 운전해야만 할 지 모른다. 아예 스쿨존 자체를 지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여기서만큼은 아직 판단과 행동이 미성숙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차라리 스쿨존 자체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면 또 모르겠다. 어째 저쪽 지지자들의 머릿속은 죄다 이따위인 것인지. 화도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어렸을 적까지는 남자 혼자서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물가 수준에 비추어 그저 적당히 직장에 오래 붙어 있기만 해도 자기집 정도는 살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 혼자서 벌어도 그 돈 가지고 이리저리 아껴쓰면서 저축도 하면 자기집도 아주 꿈만은 아니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남자들을 월급을 더 올려서 여자들이 굳이 맞벌이할 필요가 없게 만들면 출산률도 더 오를 것이다. 그게 얼마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 정도 월급을 받으려면 최소 10대 기업 정도는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들어가야 어느 정도 승진도 하고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 8천 원 넘게 올렸다고 이 난리들인데. 지금 월급수준으로도 너무 많다고 이 지랄들인데. 그런데 모든 기업의 급여를 그 수준으로 올리자고?

 

사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더 많아진 것은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어서라기보다 더이상 남성들의 급여만으로 생활할 수 없게 된 탓이 더 클 것이다. 경제성장에 비례한 물가의 상승 만큼 급여수준이 따라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여성도 함께 나가서 벌어야만 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수입이 낮은 일용직이나 혹은 저임금 생산직 노동자들만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번듯하니 넥타이 메고 출근하는 화이트칼라들까지 그 대상이 되고 말았다. 어지간히 큰 회사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까지도 아내가 함께 벌어주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고 자식들 교육마저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걸리고 말았다. 여성이 결혼하고도 직장생활을 계속하려면 바로 걸리는 문제다.

 

결혼하면 일단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다니더라도 임신하면 어쨌든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지금도 많은 남성들이 말한다. 결혼은 몰라도 임신하고 나서도 계속 직장에 다니는 것은 민폐다. 임신하고 나면 잔업도 야근도 철야도 못하지 않는가. 외근도 못하지 않는가. 더구나 출산이라도 하고 나면 출산휴가로 인해 자리가 비어 버린다. 원래는 그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단기간 사람이 비는 만큼 쓰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 하지만 그러자면 돈이 들어간다. 품이 들고 수고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임신했으면 내보내자. 아이를 낳았으면 나가도록 하자. 그런데 여성들도 계속해서 직장에 붙어 있어야 하는 사정이 생기고 말았다.

 

미친 듯이 오르는 집값 역시 아주 상관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 집 마련은 하고 싶은데 지금 급여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 악착같이 부부가 일해서 돈을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으니 아예 결혼할 생각 자체를 포기한다. 남성은 자기 급여가 적어서, 여성은 만에 하나의 경우 남성에게만 기댈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남성의 조건을 따지는 여성들을 마냥 탓할 수만 없는 것은 그래서 만에 하나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까지 했을 때 회사에서 나가라고 압박을 주면 어쩌라는 것인가. 그때는 여성의 수입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남성 혼자 가계를 거의 책임져야 하는데 남성의 능력에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와 장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구조 아래서 고용이 불안정한 여성이 남성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경단녀 되어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 해도 그 급여수준이란 최저임금이나 겨우 받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으로 어떻게 가계를 안정되게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인가.

 

한 마디로 노동자의 급여인상과 근로시간의 단축은 또한 출산률에 대한 대책이기도 한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전체적인 급여수준을 높이면 그만큼 여성의 가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아니 남편 역시 더 적은 부담으로 아내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공백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정해진 시간만 일할 수 있게 한다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불리함을 상당부분 덜어 줄 수 있다. 법정근로시간 안에서라면 임신한 상태에서도 여성들 역시 남성들과 똑같이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도 더 적은 근로시간으로도 충분한 급여로 가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파견노동자와 관련한 부분을 정비해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공백을 메워줄 임시직 노동자에 대한 급여와 처우는 정부에서 보조하는 식의 대책도 필요하다. 어찌되었거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어야 여성들 역시 마음놓고 일하면서 아이도 낳아 기를 수 있게 된다.

 

출산률이 낮아지는 것은 그리 걱정하면서 그러나 직장에서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받는 불이익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무심한 정도를 넘어 가혹하기까지 하다. 임신한 여성은 민폐다. 일하면서 아이까지 낳아 기르는 여성은 조직에 불필요하다. 피해가 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여성이 일하지 않아도 되도록 남성들의 급여만 높이면 과연 얼마까지 현재의 급여수준을 오려야 한다는 것일까? 그냥 여성들을 직장에서 내몰면서, 그러나 남성 혼자서 벌어서는 안되니 여성도 일해야 하고,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면 내쫓아야 하면서 여성은 일하면서도 임신하고 출산도 해야 한다. 열심히 밖에서 일하면서 집안에 앉아서 열심히 살림하고 아이도 낳아 길러야 한다. 아마 많은 남성들은 자기가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얼마전 또 공무원 사회에서 임신한 여성을 비하했다가 중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발언이라는 것이 인터넷에서 흔히 임신한 여성을 향해 내뱉는 발언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여성은 왜 남성처럼 일하지 않는가. 그런데 여성은 어째서 임신하고 출산까지 하고서 직장에 계속 남아있는 것인가. 그래서 차라리 여성도 결혼을 포기한다. 어차피 결혼하고 나서도 일해야 하는데 결혼하고 나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러나저러나 결혼은 여성 입장에서 불필요하다. 의외로 그래서 일단 결혼만 하고 나면 출산률은 꽤 높아진다. 어째서 여성들은 결혼을 포기하는 것인가.

 

정부의 정책방향이 옳다고 하는 이유인 것이다. 여성들더러 아이를 낳아라 낳아라 강요하기보다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지금으로서 그것은 직장에서 여성의 권리를 보다 강화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그마저 반발한다. 생각없는 남성들도 그에 동조한다. 하지만 출산률은 높여야 한다. 웃고 마는 것이다. 뭐가 중요한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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