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은 퇴로가 없다. 따거나 아니면 모두 잃는다. 딴다고 모두 따는 건 아닌데 잃는 건 확실히 모두 잃는다. 그나마 돈만 잃으면 상관없는데 돈을 모두 잃고 나면 당장 살아갈 수단을 모두 잃게 된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한 판이다.
혼자라면 상관없다. 혼자 죽는 것이야 누가 뭐라겠는가. 아내 수술비다. 딸 등록금이다. 아들이 사고당해 받은 보험금이다. 당장 집 전세 계약할 돈이다. 그런 걸 두고 흔히 미쳤다고 말한다. 그런 인간은 가장으로서 자격도 없다.
민주주의의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든 외교든 군사들 올인은 결코 있어서 안된다. 잘되면 좋지만 자칫 잘못되면 그대로 망하는 것이다. 한 사람만 망하는 게 아니다. 단지 국가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수의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퇴로를 만든다. 여지를 만든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도 아직 이 사회 안에 남아 있다. 대안이 남아 있다.
사드배치가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것은 세 살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당장 중국을 근접에서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미국에 주어진다. 중국의 많은 중요한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미국에 넘어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단지 그 가능성만으로도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밀히면 강대국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뻔히 옆나라에서 자신들에 위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실제 하려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위신에도 크게 손상이 간다. 국내외적으로 중국정부가 손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마냥 거절할 수는 없다. 미국이 사드를 배치하자는데 동맹국의 입장에서 마냥 못하겠다 버티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일단 들어주어야 한다. 대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 미국의 편에서 파병하게 되었더라도 중국에 충분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 미국과 동맹관계라 어쩔 수 없이 입장을 함께 하는 것일 뿐 대한민국 자신이 중국을 적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직접 설명은 못하더라도 적당한 정치외교적 제스처를 통해 중국의 반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중국의 원한을 사서 적대하게 되는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예 중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면 모를까 결국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공존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숙명이다.
사드는 배치해야 한다. 그에 대한 논의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반발하는 중국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설득을 시도해봐야 한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이해를 구해야만 한다. 원래는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당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최소한 사드배치로 인해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통제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그것이 외교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도 여당도 전혀 아무것도 않은 채 오히려 중국에 대한 적대감만을 키우고 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국민들로 하여금 오히려 중국에 적대감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 중국과 사이가 나빠져도 그다지 대한민국과 국민들에 실질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다. 사이가 나빠지는 자체가 피해인 것이다.
결국 정부도 여당도 하지 않는다면 야당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와는 달리 야당 국회의원들이 중국에 가서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간에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국회의원 개인자격으로 찾은 것이기에 거기에서 나눈 대화나 했던 말들에 대해 어떤 구속력 같은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양국 정부는 굳이 필요없다 싶으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야당 국회의원들이 현지에 가서 의견을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차라리 중진급 거물이 아니기에 크게 정치적 외교적 부담 없이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또다른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현지에 전하고 민간의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최소한 여기 있는 이들 초선국회의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중국의 적이 아니다.
전쟁이 아니다. 일사불란할 필요는 없다. 전쟁중에도 굳이 모두가 하나의 전략만을 쫓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만에 하나의 퇴로를 만들어둔다. 정부가 한다고 모든 것이 옳은 것도 아니고,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반드시 국가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중국과의 관계에서 만에 하나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도 노력을 벌써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일부는 - 아니 다수는 끊임없이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정부에도 명분이 된다. 한국정부가 미국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양국 사이가 서로 긴장해야 하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가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삐져서는 아예 생까고 외면하는 것은 한 나라의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초선의원인 것은 그만큼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중진이 아니기에 그만큼 말과 행동에 무게가 실리지 않고 한국정부나 중국정부 역시 조금 더 가볍게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다. 그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현정부의 참을 수 없는 옹졸함이다. 국민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외교를 전쟁으로 착각하는 무지함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하고 중국과 적대하면 영영 중국 안 보고 살 것인가? 중국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동떨어져 살려는 것인가? 그런 와중에도 더민주 내부에서 다른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것이 더민주 모두의 뜻은 아니라고 하는 역시 또다른 퇴로다. 초선의원들의 어설픈 혈기가 그같은 무모한 행동을 결정하게 만들었다. 물론 원내대표 우상호가 그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바로 어제 전쟁했어도 오늘 당장 화해하려 나서야 하는 것이 중국과 한국의 관계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도 그토록 처참한 피해를 입고서도 조선조정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바로 이웃해 있는데 여전히 적대하고 있어서야 국가적으로 너무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언제 다시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될 지 몰라 군비에만 모든 자원을 쏟아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에는 당장 대한민국의 경제적 이익까지 걸려 있다.
창구는 여러개 만드는 것이 좋다. 굴은 여러개 파놓는 것이 좋다. 다행히 더민주 초선의원들이 주로 민간을 대상으로 현지 여론을 듣고 한국국민의 입장을 전하겠다 시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결과는 당연히 내놓을 수 없다. 그러나 과정이 중요하다. 외교는 언제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생물이다.
논의가 참 저열하다. 사대 아닌 외교가 어디 있는가. 나보다 세면 눈치봐야 하는 것이다. 당장 내 목숨줄이 걸려있으면 자세를 낮춰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생존이다. 외교란 서로 위협이 될 수 있는 강자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의 전략이다. 우습다. 그냥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