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많은 일본인, 혹은 그에 동조하는 한국인들이 그리 주장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들어온 일본군은 일본에서도 2군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일본의 진짜 주력은 일본 본토에 남은 채 조선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만일 이들까지 조선으로 갔다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다. 조선은 단지 일본의 2류 무장들에게도 고전한 한심한 나라였다. 이순신도 고작 그런 이들만을 상대로 공을 세운 정도에 불과했다. 과연 그럴까?


역사상 일본의 주류는 어디까지나 관서였다. 관동이 관서보다 더 중요해진 것은 에도시대 이후로 불과 몇 백 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일본의 경제와 문화와 정치와 군사의 중심은 쿄토의 서쪽 관서지방에 있었다. 일찌감치 포르투갈을 통해 조총을 받아들인 것도 역시 서쪽의 큐슈 다네가시마였었다. 워낙 전국을 통일한 것이 오다 노부나가이고, 그의 가신이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마침내 바쿠후가 열렸기에 관동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전국시대 중요한 싸움들 역시 거의 관서지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기후를 근거로 전국의 주도권을 잡기 전까지 가장 큰 세력도 모두 시마즈, 오우치, 오토모, 모리 등 서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다케다나 우에스기나 이름만 높았지 고작 몇 만 명 동원하는 것도 버거운 시골영주에 지나지 않았다.


즉 인식의 오류란 오로지 결과만으로 그 과정과 원인까지 정의하려 할 때 발생하기 쉽다. 결국 전국을 제패한 최후의 승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 전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였고, 그 전에는 오다 노부나가였었다. 모두 관동에 속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들이 전국의 주도권을 쥐기까지 싸운 상대들 역시 관동의 인물들이었다. 실제 전국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싸우고 승리한 상대들 역시 다케다와 우에스기, 사이토, 롯가쿠, 아사쿠라, 아사이 등 미요시를 제외하고 동국의 다이묘들이 거의 전부였다. 모리와는 말년에 사소하게 부딪혔을 직접 전력을 기울여 싸우거나 한 적이 없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탁월한 정치력으로 아케치, 시바타. 그리고 호조만을 직접 상대했을 뿐 모리 등 서국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승리만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도쿠가와가 전국을 통일하게 된 세키가하라는 동국과 서국이 서로 뒤섞여 있었으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승자인 오다, 토요토미, 도쿠가와만을 기준으로 나머지 인물들도 평가해야 했기에 아무래도 서국의 - 그것도 패자가 된 이들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바로 어떤 멍청이들에게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코에이의 게임 '노부나가의 야망'이었다. 직접 싸운 적도 없는 이들이 이런저런 - 그나마 공식적인 사료도 아닌 기록들을 근거로 능력이 계량되어지고 수치로 정의된다. 단지 주인공이 되는 이들과 직접 싸우고 훌륭히 싸웠기에 높은 수지를 받고, 주인공들과 직접 부딪힌 적이 없었기에 간접적인 비교 결과 객관이라는 이름 아래 낮은 수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런 건 역사가 아니다. 살아남는자가 강하다지만 살아남았다고 모두가 강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역사에 무지하게 알아서 빠지고 마는 함정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당시 일본이 조선과의 전쟁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 아니었는가. 제대로 조선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보급이 닿지 않고 있었다. 먹을 쌀과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겠는가. 세키가하라 싸움의 승패를 결정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이순신이었다 말하는 사람마저 있는 이유다. 조선과의 전쟁에서 그토록 많은 인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가문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큐슈의 패자 시마즈마저 세키가하라에는 그저 명목만 세울 뿐인 병력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보유한 모든 병력과 물자를 전쟁에 쏟아붓는 것은 게임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의 전쟁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그래서 더 가혹하다.


쵸쇼카베다 나베시마, 다치바나 같은 이름들이 그리 가벼운 이름들이 아니다. 모두 서국의 주력으로 조선에 출병했던 이들이다. 시마즈와 모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초전에서의 놀라운 승리와 달리 평양성전투 이후 육전에서마저 번번히 패퇴하거나 고전을 피하지 못했다. 보급에 한계를 느끼고 해안에 틀어박혀 농성했던 정유재란의 마지막이 딱 일본이 가진 한계였다. 물론 피해가 더 컸던 것은 조선이 분명하지만. 역사는 냉정하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국지연의를 아예 해체하여 재창작하다시피 한 만화 '창천항로'에서도 동탁은 서량의 기병대를 이끌고 중원을 오로지 무도와 난폭으로 짓누르는 마왕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하긴 원래 양주 출신이기도 하고, 그를 따르는 측근들이며 사병들 역시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생 벼슬을 한 것도 기반을 닦은 것도 모두 그곳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하진이 밀지를 받고 낙양으로 들어왔을 때 동탁이 거느리고 있던 병력은 고작 3천 정도에 불과했었다. 군세가 적은 것을 감추기 위해 이유가 억지로 꾀를 부려야 했을 정도로 미미한 세력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과연 동탁은 이후 전국의 난다긴다는 제후들을 거의 아우르다시피 한 17로의 연합군을 상대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동탁이 정권을 잡고 17로 제후군이 일어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삼국지연의에서 병주자사의 신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가서 황제를 폐위시키려는 동탁에 맞섰던 정원은,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하진의 명령을 받고 낙양으로 들어가 손발노릇을 하며 집금오의 관직에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집금오란 곧 황실숙위대의 장이니 결국 황실을 호위하는 친위군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다. 대장군 하진이 십상시에 죽임을 당한 뒤에는 사실상 낙양에 주둔중인 중앙군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동탁은 굳이 여포를 꼬드겨 그를 죽이게 만들고 그의 병사를 자신의 휘하로 흡수하려 했던 것이었다.


일부 특수한 겨우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가장 정예인 군사는 왕이 머무는 수도 인근에 주둔하는 중앙군이었다. 물론 실전경험이야 싸울 일이 많은 변경의 군사들이 더 많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군을 이끄는 실질적인 힘은 지휘관과 병사들 사이를 이어주는 요즘으로 말하면 부사관, 바로 하급지휘관들이었다. 전근대사회에서 거의 세습되었으며 임지와 직위마저 항상 고정되어 있었던 이들이야 말로 군을 움직이는 신경망이며 군을 지탱하는 허리와 같았다. 당장 한국군에서 부사관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해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실전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오랜세월 신분을 세습해가며 직업군인으로서 전문성을 축적해 온 이들의 역량은 허투루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낙양의 중앙군을 흡수함과 동시에 주준과 같은 조정의 경험많은 지휘관들 역시 함께 휘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동탁이 가진 진짜 힘의 정체였던 셈이다.


역시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으로 이미 후한말에 이르면 중국의 군사기술은 이민족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역사상 한무제 이후 역대 중국의 왕조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퇴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삼국지에서도 어지간한 이민족들은 몇몇 장수들에 의해 어이없이 패퇴하고 토벌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고구려마저 관구검의 1만 병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변경의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라는 것도 고작 그런 의미다. 그같은 고도로 발달한 군사기술을 모두 집약한 것이 바로 중앙군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과 기술을 계승하며 발전시켜 온 것이 이들 전문직업군인들이었다. 17로 제후군이 아무리 수도 많고 강하다고 그런 중앙군을 쉽게 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역시 많은 왕조에서 역시 지방에서 일으킨 반란이 그 크기와는 상관없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진압되곤 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면 어째서 중원을 차지한 조조의 군사가 다시 원소와 원술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천하의 패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는가.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이들 하급지휘관들 역시 결국 낙양에 그 기반을 두고 생활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며 이들 또한 자신의 기반을 잃게 되었다. 동탁이 죽고 여포와 이각 등이 다투고 다시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우는 사이 동탁이 처음 장악했던 중앙군은 하나둘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 중앙군의 유산을 가장 많이 의미있게 받아들인 것은 누구이겠는가. 원래 그런 이유로 어느 시대이든 난세를 끝내고 패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딱 중앙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초반의 혼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동안 축적해 온 힘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전쟁은 관우와 장비 등 그저 이름있는 장수 몇 명 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인적이라 불리던 관우와 장비는 물론 유비 역시 한중에서 조조를 패퇴시켰을 정도로 군사적인 역량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어째서 매번 싸우기만 하면 지고 쫓기기를 반복했는가. 조운이나 진도 같은 지휘관급은 어떻게 개인의 의리나 인정으로 가까이에 붙잡아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하급지휘관들은 생활인들이다. 명분보다 당장 자신의 가족과 내일의 삶이 우선이다. 굳이 앞날도 보이지 않는데 싸움에 져서 도망치는 유비를 끝까지 따라가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게 되자 유비는 신야에서만도 여러 차례 조조군을 물리치며 만만치 않은 군사적 역량을 과시한다. 손발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줄 때 아무리 고수라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바로 이들 하급지휘관의 존재가 위촉오 삼국의 군사적 특성을 정의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중원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강동은 굳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천하를 제패해야한다는 동기 자체가 매우 약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장을 지키는 것에는 목숨을 거는데, 그러나 영토를 벗어나 다른 이의 땅을 공격하는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촉은 상당수 외지인드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쉽게 근거지인 촉을 벗어나 한중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굳이 성도의 조정과는 상관없이 제갈량과 그 뒤를 이은 강유를 따라 중원진출에 목숨을 걸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정작 성도에 남아있던 토착인들은 등애가 산을 넘어 공격해 오자 쉽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위의 군사들은 대세를 따라간다. 특히 중앙군은 누가 권력을 쥐는가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원래 후한의 중앙군도 하진에서 동탁으로, 동탁에서 조조로 쉽게 자신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서량기병이라고 하지만 마초와 한수가 일으킨 반란 역시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조조에 의해 진압되고 있었다. 연의와는 다르다. 연의에서는 그나마 조조가 고전하기라도 했지만 실제 정사에서 마초는 그저 변방에서 작은 소란 정도나 일으킨 것이 고작이었다. 장로로부터 군사를 지원받아 기산을 공격했을 때도 하후연이 군을 이끌고 오자 지레 도망치고 있었을 정도였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군은 결국 기술이고 문명이 된다. 다르지 않다.

그냥 딱 사도세자 라이트버전이다. 그나마 사도세자와는 달리 나이들어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이미 세자의 자리에 있었고, 임진왜란 동안 보여준 것들도 있어 지지세력 또한 작지 않았다. 선조 역시 명분을 무시하고 마냥 광해군만을 괴롭힐 수도 없었다. 덕분에 어찌되었거나 선조가 죽고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왕위까지 물려받았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쇠도 두드리다 보면 부서진다. 어느 순간까지는 강도가 올라가지만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바로 깨지거나 부서져버리게 된다. 사람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까지는 견디며 스스로 강해진다. 내성이 생긴다. 하긴 이 내성이 생긴다는 것도 문제다. 허구헌날 부모로부터 맞으며 자라다 보면 어느 순간 맞는다는 자체에 익숙해지게 된다. 내가 맞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모르는데 타임이 맞는 것에까지 익숙해져버리고 만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채 그것을 어느새 자신도 반복하게 된다. 폭력이 유전되는 과정이다.


워낙 선조에게 시달린 나머지 더이상 누구로부터도 그와 같은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싫은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한다. 딱 자기 좋은 사람들만을 주위에 두고 쓴다. 분명 조정의 주류는 남인과 서인이었다. 일찌감치 조정에 출사하여 한양에서 기반을 닦았던 서인은 물론이거니와 이황의 문인을 중심으로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남인의 기반은 북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나마 북인마저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고, 소북 가운데서도 중북이 떨어져나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반도 약하고 숫적으로도 부족하며 구심점이랄 것도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다시 찢기고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은 정인홍이나 이이첨은 전적으로 신뢰했을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먼저 서인에게 손내밀고 남인을 아우르며 아버지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각 당파의 이해를 조정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방법이 분명 있었다. 이미 선왕에 의해 세자로 책봉되어 명분상 아무런 하자 없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 정통성을 가지고 시비걸 간 튼 위인은 당시 조선팔도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서인과 남인까지 모두 아우른다면 영창대군이 다른 마음을 먹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기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결국 광해군의 일방주의적인 정치가 서인과 남인을 소외시키면서 능양군의 반정에 동참하도록 강요했던 것 아니던가. 하지만 광해군은 세자시절의 경험을 근거로 신하들을 내 편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로 나누고 철저히 자기 편만을 등용하여 쓰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서인과 남인을 무리해서라도 모조리 죽이는 것이 나았다. 그럴 힘도 명분도 없으면서 서인과 남인을 소외시키는 것은 후환을 남기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자신을 지지하던 대북 가운데서도 중북이 떨어져나가고, 그나마 나머지 가운데서도 이렇게 저렇게 떨어져나가며 사실상 친위세력이라 할 만한 것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이이첨조차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고립을 자초한 것은 광해군 자신이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편을 가르고, 그 가운데 내 편만을 쓰고 내 편의 말만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철저히 배척하고 멀리했다. 그러고도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실제 광해군은 폐위되기 전에도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고립된 나머지 권신 이이첨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한심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반정이 일어난 것을 알았을 때도 광해군이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이 이이첨이었을 정도로 광해군은 끝까지 그를 불신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폐위와 위리안치이고 비참한 최후였다.


문득 어느 분이 떠오르는 이유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그 분은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내 편과 남의 편을 나눈다. 내 편 가운데서도 진짜 내 편과 가짜 내 편을 나눈다. 그리고 진짜 내 편의 말만을 듣고 그들의 요구대로 행동한다. 그나마 조선에서는 광해군을 밀어날 정도로 소외된 나머지가 단합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건만. 서인과 남인보다 더 큰 거리가 나머지들 사이에 있다는 것으 그분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더 그 사이를 벌리고 그 사이 진짜 내 편의 지분을 늘린다. 하지만 덕분에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비리인사 하나 쳐내지 못한 채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아주 소수의 측근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리고 마는 것이다.


광해군의 몰락을 아쉬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뻑하면 토목에, 심심하면 옥사에, 아무리 욕먹어도 아버지 선조도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편을 갈랐으면 정치라도 자라던가. 백성들의 마음도 떠나고, 지배집단인 사대부의 마음도 떠나고, 조정까지 분열되었다. 그러고도 유지되는 정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다. 몰락은 수순이었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광해군은 왕이었고 한 나라의 주인이었다.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었다.

사람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세포는 여러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당연히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가 있다. 원자핵 안에는 양자와 중성자가, 그리고 양자와 중성자 안에는 쿼크가 각각 들어 있다. 그러면 그것들은 다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러나 그 전에 원자의 크기란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이며 거의 원자핵 지름의 2천배에 이르고 있다. 즉 그 나머지는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인식하느 사물이란 촘촘하게 결합된 입자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단일체도 아니다. 오히려 느슨하게 대부분은 빈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와 세포 사이, 분자와 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 그리고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처럼. 아마 실제 질량을 가진 입자들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그려본다면 대부분은 빈 공간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것을 양감으로, 질감으로, 색감으로 인식한다. 그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때 게임업계에 몸담았던 탓에 게임그래픽에 대해 이해하며 불현듯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컴퓨터 본체 안에는 그저 cpu와 메인보드와 ram과 그래픽카드와 기타 ssd와 케이스를 잇는 여러 케이블들이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게임을 통해 보는 산이나 강이나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데이터가 저장되는 ssd 역시 마찬가지다. 메모리반도체가 집적되어 있을 뿐 그곳에도 다른 세계의 우주나 행성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순간 사용자들은 게임을 통해 그것이 실제 있는 것처럼 여긴다. 실제 만질 수도 있고, 집을 수도 있으며, 부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러면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최초의 우주는 0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주 이전은 지금의 우리들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주의 탄생 이후에 생겨난 것들이다. 우주 이전에는 지금 인간이 알고 있는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러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0이이란 그러면 무엇인가. 0으로부터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이, 이 끝도 없는 우주가 만들어졌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ssd에는 그토록 방대한 세계가 담길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확실히 절대자의 말씀에서 이 세계가 탄생했다는 히브리의 신화는 놀라운 직관을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사람들이 노란색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노란색'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회색과 녹색이 분리되기 전에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색을 같은 색으로 여겼었다. 즉 다시 말해 우주는 어쩌면 여전히 0인 채인지도 모른다. 이 방대한 우주를 모두 더하면 여전히 처음과 마찬가지로 0인 그대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이 없다면 의식하지 않는 그곳에서 그것은 아무 의미없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우주가 방대하다는 것도, 우주의 공간과 시간과 질량이라는 것 역시도. 에너지란 무엇인가. 어쩌면 우주란 인간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인간의 감각속에 존재하는 허상일지 모른다.


과연 인간이 인지하는 우주와 실제의 우주가 같을 것인가. 인간이 인지하는 우주의 모습이 실제의 우주 그대로인 것일까. 우주 이전의 우주가 의미가 없듯 인간이 인지하기 이전의 우주 또한 의미가 없다. 인간 이외의 존재가 인지하는 우주란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리고 그것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다. 인간의 언어이고, 인간의 지성이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질서다. 인간조차 그저 무無의 허공에 존재하는 허상이 아닌가.


컴퓨터그래픽은 0이다. 전원이 들어가고 하드웨어들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까지 ssd에 저장된 게임의 데이터란 0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며 인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전원이 들어오고 모니터에 화면이 보이는 순간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이 존재한다. 인간과 새와 동물과 나무들이 존재한다. 다르지 않다.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는 어쩌면 프로그래머가 아닐까. 프로그램이란 무수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망상이다. 게임과 게임그래픽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느닷없이 이런 헛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런 헛생각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무려 수 천 년 전 붓다는 그것을 고민했었다. 장자는 꿈을 꾸었었다. 부질없다고 말한 것은 공자다. 그곳에 숨은 진실을 찾으려는 것이 이데아였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리란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있다. 끝이 없는 의식의 도돌이표다. 인간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현대과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결국 불교의 사유에 빠져들고 만다. 정확히 고대 인도인들의 상상력이다. 인간과 그리고 우주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은 물음이다. 과연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우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그러나 시간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고대인도인들이 찾아낸 대답은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시작은 없다. 당연히 끝도 없다.


우주의 탄생 이전에 대해 상상해 보자. 불가능하다. 우리가 경험으로, 혹은 선험으로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인간의 지식이란 존재하는 우주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만을 인지하고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우주는 바로 우주의 탄생 이후 당연한 말이지만 생겨난 것이다. 수십억년의 광대한 공간도, 시간도 모두 우주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과 시간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무엇이 있었는가고 묻는 자체가 공간과 시간을 전제하는 것이다. 공간도 시간도 없는데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존재했을까? 최소한 인간이 아는 형태의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의식을 넓혀간다. 인간에게서 지구로, 태양계로, 은하계로, 우주로, 그리고 그 너머로. 우주는 과연 얼마나 넓은가? 우주 밖에서 보는 우주는 얼마나 거대한가?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기 이전의 우주 이전의 우주를 기준으로 우주는 얼마나 거대해졌는가? 공간이 없으니 우주가 얼마나 거대해졌는가의 기준도 없다. 시간이 없으니 우주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의 기준도 없다. 우주라고 하는 자체가 없다. 태양이라는 거대한 천체 가운데 원자 하나에서 전자가 지나가는 경로에 있던 한 지점이란 태양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 존재하지 않는 한 점에서는 과연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러면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간은 인지할 수 있을까?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그토록 인간이 진화를 통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오랜 과학적 추론과 관찰, 실험의 결과가 어째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가. 어떻게 우연이라는그 불확실한 과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유일한 존재인데 우연이 그런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가정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인간중심의 사고다. 인간이란 특별한 존재이기에 다른 특별한 존재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을 것이다.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그 특별한 존재의 특별한 의지에 의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인간이 우주적인 차원에서 수소원자 표면위로 전자가 스치는 궤적의 작은 흔들름만도 못한 존재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한에 가까운 우주에서 고작 태양계 하나, 그 태양계 가운데 행성 하나, 그 행성 위에 존재하는 고작 50억의 개체들에 불과하다.


우주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같은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인간이 아무리 진화라고 성장하더라도 우주적인 차원에서 끼칠 수 있는 영향이란 거의 없다시피하다. 과연 지구에만이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훼손하고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지구적인 규모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해도 좋을 정도다. 그저 때되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태풍조차 미리 예방하거나 중간에 없애지 못한다. 멸종한 종은 새로운 종이 대체할 것이고, 바뀐 환경은 그에 적합한 새로운 종을 출현시킬 것이다. 인간이 마침내 사라졌을 때 지구와 지구의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남기게 될 것인가. 그 영향은 과연 얼마나 이어지게 될 것인가.


그냥 우연히 무작위로 키보드를 두드리도록 세팅해놓은 컴퓨터에서  수십억년의 시간 동안 한 부분을 떼어 놓고 보니 세익스피어의 문장과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어느것도 완벽하지 않다. 완결되어 있지 않다. 수많은 허점이 있고 나머지 짜투리가 있다. 그 가운데 유의미한 몇 가지만이 현실에 발현되어 존재한다. 인간의 게놈 가운데 그 역할이 밝혀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수십억년이다.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인간은 제대로 묻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사유하고 사유하고 또 생각한다. 한바탕 물거품과 같다. 비로소 빅뱅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시간이 생겨났다. 공간이 생겨났다. 비로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간이 아직 없다면 공간을 인식할 수 없다. 시간이 아직 없다면 시간 역시 의식할 수 없다. 얼마나 큰가도 알 수 없다. 얼마나 작은가도 알 수 없다. 얼마나 오랜가도 당연히 알 수 없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찰라이기도 하고 영원이기도 하다. 다행히 인간의 의식은 제한적이나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다만 그 너머의 것까지 보기에는 인간의 의식은 한계가 있다. 우주란 과연 무엇인가. 그 우주에서 인간이 가지는 위치란 어떤 것인가. 인간이란 우주적인 규모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때로 허무하기도 하다. 히틀러의 학살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우주적 규모에서 본다면 그냥 아주 찰라의 원자핵보다도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자기가 한 만큼 당연히 대가를 받게 된다. 그만큼 각자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러나 당장 한국에 사는 자신에게 브라질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살인사건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어린 소녀를 강간한 범인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 선도 악도 없다. 죄도 벌도 없다. 현상만이 존재한다. 의미는 인간이 만든다. 빅뱅 이후 태어난 시간과 공간처럼.


하기는 그래서 더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마저도 없다면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은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냥 인간의 의식이 인간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없이 단지 인간의 의식이 인간을 현실에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존재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색을 칠한다.


논란의 해법은 간단하다. 우주적 규모에 있어서 지구의 위치는, 그리고 인간의 크기는. 우주씩이나 신경쓸 필요도 없다. 수십억년의 지구 가운데 모두가 이간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단지 인간이 특별한 것이 문제다. 인간인 자신이 특별하다. 특별한 곳에서 왔다. 재미있다.

유비가 이릉에서 육손에게 크게 패한 것이 서기 221년,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상심하여 백제성에 머물던 유비가 병을 잃고 사망한 뒤 불과 4년 만에 제갈량은 조위를 상대로 북벌을 시작한다. 이릉에서 상당한 인적자원을 잃고 유비라는 구심점까지 사라진 상태에서 제갈량은 불과 5년도 지나기 전에 조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여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조위를 상대로 무려 7년 동안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기적과도 같은 반전이었다.


사실 유비가 죽는 순간 촉한의 운명은 그것으로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촉한은 오로지 유비가 있었기에 세워질 수 있었던 나라였다. 고작 익주 하나였다. 변방이었고 인구도 물자도 모두 터무니없이 적었다. 혼자서 세력을 이루어 살아남기란 이미 조조가 한의 천하 대부분을 발아래 두고 있던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 장송도 익주 혼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기보다 제발로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 그 보호를 받고자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유비의 존재가 그같은 장송의 결심마저 바뀌게 만들었다. 유비라면 촉이라는 변방을 기반으로 천하를 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대의명분이었다. 당장 유비 자신이 황제의 먼 친척이었고, 그동안 끊임없이 무모할 정도로 조조에 맞서버 부딪혀 오고 있었다. 원소마저 사라진 당시의 천하에서 패자가 되어 황제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와 맞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비 한 사람 뿐이었다. 아직 한의 천하를 기억하고 조조에 반대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유비를 중심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당장은 조조의 지배 아래 있지만 아직 한의 천하를 잊지 못하고 있기에 기회만 되면 유비를 따라나설 이들이 천하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관우가 조인을 번성으로 몰아넣고 우금을 포로로 잡았을 때도 그래서 조조의 천하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바로 그 유비가 있기 때문에 촉은 반조조의 중심인 것이고, 바로 그 유비가 있었기 때문에 한이 망하고 한을 이은 또다른 한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유비가 죽었는데 촉은 전처럼 하나의 나라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전례를 보더라도 유비라고 하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공백에는 당연한 수순처럼 분열이 뒤따랐다. 권력층이 분열하고, 혹은 통제를 잃은 관료층이 부정과 부패로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가만 내버려두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촉한은 망해 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서촉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가 죽고 촉이 가장 큰 위기에 놓였을 때 오히려 조위가 그를 방치했던 이유였다. 굳이 자신들이 먼저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당장 말해야 할 나라에서 어느날 군대가 출병하더니 옹양주 일대를 한순간에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바로 그것이 제갈량이 대단한 점이다. 선주 유비의 고명을 받으며 유비가 가진 명분까지 모두 계승했다. 이엄의 숙청은 자칫 분열될 수 있는 촉한의 내부를 제갈량 자신을 중심으로 하나로 묶기 위한 과정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주군 유비를 대신하는 존재가 된다. 그것을 모두에게 납득시킨다. 사실 제갈량이 촉의 승상이 되어 이룬 모든 업적보다 이것이 가장 대단했다. 오로지 유비에 의해 유비로 인해 세워진 촉이었기에 유비가 죽은 지금도 유비가 필요했다. 제갈량 자신이 유비가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모두의 동의를 받아낸다. 이후는 그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반란을 진압하고, 내정을 안정시키고, 그리고 군비를 키운다. 불과 4년이었다. 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북벌에 나서게 된 것이. 그러고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군사적으로도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 내정도 전혀 피폐해지지 않았다. 과로사했다는 말이 허투루들리지 않는 이유다.


군재가 부족하다지만 그것은 재상으로서의 중국역사상 한손에 꼽히는 능력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지 당시로 한정했을 때결코 정확한 평가라 볼 수 없었다. 당장 당시 조위의 최고 명장이었던 장합이 제갈량의 함정에 빠져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조진을 이은 도독 사마의가 회전에서 제갈량에게 패한 뒤 다시는 모험을 않게 되었다.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지휘관인 한신이나 백기 같은 인물들도 그토록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에서 안정된 적을 상대로 그같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었다. 모험을 시도하기에는 촉과 위의 현실적인 차이가 너무 절대적이었다.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위를 약화시켜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나 역시 만약 유비가 살아서 제갈량 대신 북벌에 나섰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재상으로서의 역량은 과연 소하와 장량에 비견할 수 있고, 군지휘관으로서도 한신과 비교해 그의 상대는 항우가 아닌 사마의였고 조위였다. 거의 유비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이 빈손에서 시작했다. 마이너스였다. 유비에게 오로지 황실종친이라는 명분만이 있었듯이 제갈량에게도 유비의 고명대신이라는 명분이 주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같은 초기족건을 충실히 활용하여 역사를 움직인 것은 개인의 역량이었다. 대단하다 여기는 부분이다. 어쩌면 소설보다도 실제의 제갈량은 더 대단하다. 바람을 부르지도 미래를 내다보지도 못해도 역사를 바꾼다. 심지어 제갈량이 죽고 나서도 장완과 비의, 그리고 강유까지 그가 남긴 인재들이 제갈량의 유지를 받들어 촉을 지탱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남기듯 제갈량은 그들을 남겼다. 삼국지 후반의 주인공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사를 이유로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유명한 이들은 다시 평가받고, 상대적으로 무명인 이들에 대해 다시 평가된다. 정사에 비해 연의의 제갈량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과장된 것이지 모두가 거짓인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가 있기 전에도 제갈량은 명재상의 상징이었다. 당징 손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한 서진에서부터 제갈량의 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갈량과 같은 시대였다.

원래 포유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척추가 수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평으로만 움직인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상어와 고래를 비교해 보면 더 분명해진다. 상어는 수직으로 난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움직여 추진력을 얻는데 반면 고래는 수평으로 난 꼬리를 위아래를 움직여 추진력을 얻는다. 육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마뱀이든 악어든 땅위에서 달리려면 요란스러울 정도로 몸을 좌우로 비틀어 움직여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이든 바다든 땅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속이야 크게 상관없지만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육지에서 이전처럼 척추를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가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몸 전체를 움직여야 하니 에너지소모도 크고 그만큼 속도도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다. 초기포유류가 돌연변이를 통해 척추를 수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면 그럴 수 없었던 초기공룡의 일부는 아예 상체를 일으켜서 척추를 움직이지 않고 두 뒷다리로만 이동하는 방법을 진화를 통해 획득하게 된다. 앞발까지 합친 만큼 거대해진 뒷다리로 일어서서 달리게 된다면 척추를 움직이느라 몸 전체를 비틀어야 하는 비효율과 비능률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러고 났더니 이제는 앞다리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같은 진화과정에서 뱀도 출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뱀의 진화는 먼저 앞다리의 퇴화에서 시작되었다. 아예 어깨뼈부터 앞다리가 사라지며 뒷다리까지 퇴화되어 몸에 묻히게 되었다. 땅위를 빠르게 달리는데 앞다리는 필요없다. 뒷다리만 비정상적으로 크고 강하게 진화하며 앞다리는 점차 작아져 흔적만 남게 된다. 티라노사우르스의 위압적인 모습과는 달리 앙증맞기까지 한 앞다리가 이를 보여준다. 과연 티라노사우르스에게 있어 앞다리란 어떤 의미였을까. 어떤 유의미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까. 


물론 앞다리가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뒷다리로만 서서 달리다 보면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전환하거나 할 때 중심을 잡기도 어렵다. 그럴 때 새들은 날개를 펴서 균형을 맞춘다. 날개를 활짝 펴서 속도를 조절하고, 때로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필요한 움직임을 더하기도 한다. 공룡의 앞다리에 깃털이 - 그것도 아주 큰 깃털이 자라기 시작한 것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다. 처음부터 날기 위한 도구로서 깃털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새끼이거나 아니면 개체의 크기가 작을 때 깃털은 어느새 항온동물로 진화한 공룡의 체온을 보존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점차 깃털이 진화하며 퇴화된 공룡들의 앞다리에 역할을 부여하게 되었다. 공기의 저항을 이용하여 항력과 양력을 부여함으로써 육상에서 달릴 때 더 효과적으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단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익룡이 새의 직접적인 선조라 여기는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이처럼 처음 공룡의 깃털은 날기 위한 것보다 다른 목적을 위해 생겨났고 진화하고 있었다. 앞다리의 큰 깃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다리로서 기능을 잃은 앞다리가 커다란 깃털로 인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게 되었다. 빠르게 달리면서 날개짓을 통해 얻게 된 양력은 이후 공룡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을 것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날개가 더 큰 양력을 부여한다. 어떤 공룡들은 여전히 땅위를 달리고 있지만 어떤 공룡들은 아예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날아가게 되었다. 땅위를 잃은 대신 공룡들은 새로운 하늘의 지배자가 되었다.


물론 모든 공룡이 새가 된 것은 아니었다. 공룡 가운데서도 조반류만이 살아남아 새로 진화하고 있었다. 효율의 문제였다. 중생대 말 갑자기 밀어닥친 환경의 변화는 보다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종들에게만 생존의 기회를 남겨주었었다. 하늘을 날 수 있었고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빠른 수직이동이 가능했다. 육상에서는 새롭게 진화하기 시작한 포유류에 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부 새들은 땅위에서 빠르게 달리며 자신들의 영역을 지켰다. 단, 인간이 나타나기 전까지. 인간의 자연파괴는 아주 일찍부터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현재진행형이다.

아주 오래전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닭이나 타조와 같은 새들은 원래 날개가 있어 하늘을 날 수 있었는데 지상에서 오래 생활하는 사이 날개가 퇴화되어 날 수 없게 되었다 그리 배웠었던 것 같다. 원래 날개가 있는 모든 새들은 하늘을 날 수 있었지만 그러나 몇몇 종류의 새들은 하늘이 아닌 땅에서 생활하느라 땅위에서의 생활에 알맞게 진화하느라 날개가 그 역할을 잃은 것이다. 한 마디로 닭이든 타조든 결국 날지 못하는 새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로 - 그래봐야 최초의 가설이 나오고 거의 십수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 원래 새들 가운데는 하늘을 나는 새가 있었고 땅위를 달리는 새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공룡은 멸종한 것이 아니었다. 공룡 가운데 조반류 일부는 살아남아 지금 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공룡 가운데 다수는 깃털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공룡 가운데서 앞발 사이에 피막이 생기며 하늘을 날 수 있던 익룡의 종류도 나타나게 되었다. 원래는 땅에서 생활하며 깃털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그 가운데 하늘을 날게 된 공룡이 있어 새는 하늘을 날게 된 것이었다.


퇴화가 아니었다. 당연히 날기 위해 깃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화석으로 남은 공룡 가운데 일부는 실제 타조처럼 생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면 육상생활을 하는 조류 가운데 타조는 물론 도도새 등 상당히 체격이 큰 종들이 적지 않았던 점도 공룡과의 관계를 입증해주는 듯하다. 과거에는 그보다 더 컸지만 변화된 환경으로 인해 조금씩 거대조류는 사라지고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조류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체구의 차이로 인해 오해하게 되었을 뿐 그마저도 오랜 진화의 결과였다.


아무튼 유전적으로 공룡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한 것이 닭이라 하는데, 문득 이해가 되었다. 수탉놈들 얼마나 성질이 사나운가. 그 성질머리에 덩치까지 컸다고 생각해 보라. 날지도 못하면서 동남아의 정글에서 무수한 포식자 사이에서 인간에 의해 사육되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알을 많이 낳았던 것도 있지만 다 큰 수탉의 경우 암컷과 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울 수 있는 용맹함이 있었다. 그 용맹함은 어쩌면 먼 조상인 티라노사우루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지금도 호전적이고 도발적인 성격을 두고 수탉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진화에 있어 퇴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새가 날개를 가지고 날 수 있거나, 혹은 날개가 있는데도 날 수 없거나. 진화란 현상이다. 법칙이나 진리가 아니다. 하나의 정답이 없다. 무수한 오답 가운데 살아남은 답들이 정답이 되는 것이다. 먼 과거에는 날개없이 땅위를 지배하던 거대한 육상조류가 있었고, 지금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들이 생존에 더 적합하다. 착각하는 것이다. 진화란 진보다. 그런 것은 없다. 진화에 의지는 없다.

윈터펠 전투에서 존 스노우와 산사는 싸움에 임하는 동기도 목적도 자세도 모두 달랐었다. 존 스노우는 스타크의 성을 물려받지 못한 말 그대로 서자에 불과했다. 당연히 윈터펠을 상속할 권리 역시 롭의 유언장이 전해지지 않은 지금 그에게는 없었다. 윈터펠 전투에 참가할 당시 존 스노우는 단지 스타크 가문의 일원일 뿐이었으며, 윈터펠이 아닌 오로지 스타크를 위해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반면 산사는 윈터펠의 영주 에다드 스타크와 그의 아내 캐틀린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였다. 어쩌면 산사가 릭콘의 죽음을 방관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에다드와 캐틀린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 중 행방이 밝혀진 것은 산사와 릭콘 뿐이었기에, 만에 하나 릭콘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윈터펠을 수복하게 된다면 아들인 릭콘이 에다드의 정식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산사의 늑대는 너무 일찍 죽었다. 고향인 북부가 아닌 킹스랜드에 너무 물들어 버렸다. 꿈에서 깨고 그동안 보아온 것이 세르세이와 조프리, 그리고 리틀핑거였다. 탐욕과 모략과 살육에 익숙해 있다. 굶주린 개를 풀어 램지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것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스타크의 다른 형제들과는 다른 냉혹함과 잔인함을 보여준다. 윈터펠을 가지겠다. 자신이 윈터펠의 주인이 되겠다. 그를 위해 리틀핑거를 용서하고 그의 군대를 이용한다.


바로 그 차이였던 것이다. 윈터펠인가, 아니면 스타크인가. 윈터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스타크라는 이름을 위한 것인가. 그럴 자격조차 없었다. 그런 자각마저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릭콘의 위기를 보자마자 바로 말을 달려 뛰쳐나갔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릭콘을 구하려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롭과 에다드가 보여주었던 스타크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하면 산사는 자신의 영지를 되찾고자 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냉정하고 치밀하며 그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존 스노우마저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베일의 기병이 램지군의 뒤를 치며 전세가 역전되자 존 스노우가 바로 몸을 일으켜 램지를 뒤쫓은 것도 무슨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없었다. 그냥 어머니는 다르지만 자신의 형제이자 마지막 남은 스타크의 아들인 릭콘을 죽인 범인을 어떻게든 잡아 죽여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슬플 정도로 초라하게 그는 램지를 뒤쫓아 성문을 부수고 다시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램지를 잡아 때려누인다. 무기가 아닌 맨주먹이라는 점이 그래서 무척 인상적이다. 무기란 권력이다. 하다못해 램지의 굶주린 개조차 권력이라는 수단이다. 램지를 내리치는 동안 존 스노우의 손까지 피로 물든다. 그냥 하나의 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아닌 존 스노우라는 개인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바로 롭과 존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롭은 스타크의 후계자였다. 적장자로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스타크의 후계자로서 길러졌었다. 스타크와 윈터펠, 북부에 대한 고결한 책임과 의무는 그때부터 이미 롭과 하나였다. 그러나 존 스노우는 단지 에다드 스타크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머니조차 알지 못하는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다. 나이트워치에서도 그는 사실 그렇게 리더로서 책임을 느낄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나마 산사는 윈터펠의 상속자로서 이리저리 떠넘겨졌고 킹스랜드와 리틀핑거, 특히 램지로부터 직접 겪으며 배운 것들이 있었다. 스스로 군주이고자 하는 자와 군주라는 자각조차 없는 자와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개인이었다. 단지 존 스노우였다. 에다드 스타크와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으며, 롭과 산사와 아리아와 브랜과 릭콘의 형제였다. 그래서 형제를 위해 스타크를 위해 싸움에 나섰다. 아무런 공식적인 작위도 직함도 없이 그냥 스타크라는 이유만으로 싸움에 나선 것이었다. 다만 이 싸움의 결과 산사가 윈터펠을 차지한 이후가 중요할 듯하다.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아마 소설보다 드라마의 존 스노우가 훨씬 나이가 많을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상당한 시일이 지났으니 더 나이가 들어 버렸다. 그래서 착각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존 스노우는 그냥 철부지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롭 스타크도 결국은 그런 미숙함이 자신의 죽음과 스타크의 파멸을 불러오고 말았었다. 도대체 작가는 소설을 언제나 끝내려는 건지. 나이도 적지 않고만.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성장하기에 아직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막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 싸움에서 패했었다. 바로 다케다 신겐과의 미카타가하라전투였었다. 당시 아직 젊었던 도쿡가와 이에야스는 무모했고 결국 그의 용맹은 전국최강이라 일컬어지던 다케다 신겐의 군대에 대부분의 병사와 가신들이 몰살당하는 참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바로 이 싸움을 반면교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음흉할 정도로 진중하고 교활할 정도로 냉정한 책략가로 거듭난다.


한 편 이릉싸움에서 참패하며 모든 기반을 잃었던 유비도 있었다. 유비가 삼국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제까지의 다른 전쟁과는 달랐다. 그냥 신하였다. 탁군에서 처음 거병했을 때부터 함께였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도 관우와 장비는 자신을 주군으로 받드는 수많은 신하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신하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기반을 걸고 복수전을 벌였다. 오히려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기에 유비는 신화가 될 수 있었다. 설사 싸움에서 패했어도, 결국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어도, 그러나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이었다.


형제를 구하기 위해 필마단기로 적진을 향해 달려간다. 어쩌면 그가 서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친형제였기에 산사는 릭쿤에 대해 냉정할 수 있었다.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에다드 스타크의 아들임을. 롭과 리쿤의 형제임을. 스노우가 아닌 스타크임을. 전투에서 입었던 피해는 오히려 그에 비하면 사소하닥고 할 수 있다. 명분을 가진 사람에게 사람은 모인다. 존 스노욱가 나이트워치에서 모두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정규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나의 군을 이끌고 싸워본 경험이 없었다. 하나의 무리를 대표해 본 경험도 없었다. 무모했고 어리석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낸다. 형제를 구학기 위해 목숨을 건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단지 형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누가 진정 왕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는가. 산사의 늑대가 일찍 죽은 것은 예언과 같다. 역시 인간과 역사에 정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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