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다. 정통성 확실하고 대중적 지지가 높다면 굳이 미국이라는 외세에 기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기 힘만으로는 권력을 가질수도 지킬수도 없으니 미국이라는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고, 프랑스도 그랬고, 중국도 그랬다. 자기들이 아예 다 뒤엎고 직접 지배할 것이 아니라면, 아니 직접 지배하는 경우에도 협력자는 필요했고 따라서 그 대상은 항상 자기들에 기대서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나 개인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분쟁 가운데 상당수가 그렇게 제국주의 시대 열강들이 뿌려 놓은 씨앗에서부터 시작된 것들이었다.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미국이 괜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자격으로만 귀국할 수 있도록 강제했던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에 남아 있던 조선인들이 스스로 자기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조직한 자생적 기구인 건준조차 인정하지 않았었다. 한반도인들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과 지지가 아닌 친일파와 그들의 옹위를 받는 이승만을 앞세우려 했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지배에 협력했던 친일파들의 전문성보다는 역시나 한반도인들로부터 크게 반감을 사고 있었기에 미군의 지지 없이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는 그 취약성을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그래서 5.16 당시에도 장면이 아닌 박정희를 선택했던 것이었고, 12.12 이후에도 민주화진영이 아닌 전두환을 후원했던 것이었다. 명분도 정통성도 취약하다면 더욱 이용하기가 수월하다.
실제 독립운동가로서 이미 명성이 높았던 이승만이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성과로 대중적 지지가 높았던 박정희의 경우 미국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의 지지가 아니더라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굳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미국의 의지대로만 따라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장면 이후 5.16쿠데타를 지지했던 것이었고, 박정희 이후 민주화진영이 아닌 12.12 쿠데타를 지원했던 것이었다. 덕분에 명분과 정통성에서 취약했던 박정희와 전두환은 미국 정부에 많은 것을 양보하며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손아귀 아래서 일본에 더욱 종속되어 가던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현지인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더라도 역시 명분도 정통성도 지지기반도 취약한 정권일수록 자기들에게 도움이 된다.
베트남도 그래서 망했던 것이었다. 베트남의 우파 인사 가운데도 호치민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대중적인 인망과 지지가 높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청렴하고 능력있고 무엇보다 베트남이란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확고하던 인물이 아주 없지는 않았었다. 아니 1공화국의 응오딘지엠부터가 상대적으로 덜 부패하고 능력도 확실한 인물이었으며 새로운 베트남을 그럭저럭 잘 이끌어나가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응오딘지엠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고 지나친 압력과 간섭으로 인해 방어적인 독재로 나아가도록 떠미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그리고 응오딘지엠을 몰아내기 위해 군부의 쿠데타를 사주한 결과 그나마 유지되던 남베트남의 체계와 질서는 사실상 붕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베트남을 마음대로 하겠다고 응오딘지엠을 몰아세울 게 아니라 적당히 협력하려 했다면 과연 베트남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응오딘지엠까지 경제력이나 행정력, 군사력에 있어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앞서는 상태였었다.
그나마 한반도의 사정이 나았던 것은 첫째 그래도 미국이 선택한 이승만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성이 김일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으며, 무엇보다 조봉암의 제안으로 시작된 토지개혁의 결과 국민적인 지지역시 매우 높았다는 점일 것이다. 김일성의 명성이 이승만과 비교할 정도가 되었었고 조봉암이 없어서 여전히 지주가 농민을 수탈하는 구조였다면 한반도도 예외없이 베트남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부패한 독재자로 전락했을 때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손에 끌어내려졌던 것이었고, 박정희도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는 가운데 측근들에 암살당했던 것이었다. 전두환의 군사정권역시 그 결말은 같았다. 명분도 정통성도 없는 부패한 권력은 반드시 국민의 손에 의해 끌어내려진다. 다만 차이라면 한국전쟁과 이후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미국의 많은 지원을 받으며 이미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자발적 친미국가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미국이 그토록 다루기 불편해했던 이승만과 박정희가 결국 한국을 자발적 협력자로 남겨둔 공로자들이란 점에서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원한 반대편에서 미국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졌다.
자발적 협력과 지배와 통제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전자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하다. 그리고 후자는 거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었다. 남미에서도 미국이 앞세운 수많은 독재권력이 무너지고 대중적 지지를 받는 반미정권들이 들어서며 미국을 크게 곤란케 만들고 있었다. 미국의 압력에 의해 다시 친미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그 정권의 수반이란 놈들이 거의 비슷한 놈들이라 여전히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한 나라의 사회의 악과 미국의 영향력이 등치된다. 그래서 그 악을 거부하고 배제하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반미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미국은 악이다. 사회의 악이란 곧 미국의 존재다. 그러면 미국 정부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가? 모른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미국에 북한 전문가는 없다고. 아시아 전문가도 없다. 미국에는 미국 전문가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민족주의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인을 제외한 각 사회의 저변민중의 의지와 힘에 대해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국제관계를 단순한 힘과 이해의 구조로 이해하고 그를 전제로 모든 계획과 전략을 수립한다. 민주주의란 미국의 가치이지 인류의 가치가 아니다. 국민이 스스로 존엄하며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미개한 야만인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다. 한국의 모델을 다른 나라들에게까지 적용하기에는 그 주체인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 무시한다. 배제한다. 그래서 항상 어딜 가나 뻔한 놈들을 앞세우고 그 대가를 치르고 만다. 배우지 못한다. 베트남에서도, 남미에서도, 불과 몇 년 전 베네수엘라에서 실패를 겪었음에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최대한 존중하고 고려해서 새로운 리더와 질서를 세우려 했다면 사정은 달랐을지 모른다. 실제 힘과 명분을 가지고 아프가니스탄의 대중들을 이끌 인물을 선택해서 힘을 실어주었다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능한 것을 넘어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조차 희미했다. 당장 탈레반이 수도를 공격해 오는데 필사적으로 맞서고자 하는 의지마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놈들만 선택한다. 탈레반으로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대중적 지지가 높은 상식적인 인물이 상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다면 사정은 달랐을지 모른다. 그런데 심지어 미국은 탈레반과 맞설 유력인사들마저 무력화시키는 것에 앞장서고 있었다.
제국으로서 미국의 무능이다. 미국의 무능이기 이전에 이전과 다른 제국의 통치방식에 대한 숙제인 것이다. 문명의 차이가 이전처럼 확연하지 않다. 문명의 차이로 억누르기에 민족이라는 존재가 더없이 강고해졌다. 종교와 역사와 전통과 인식과 관념이 하나의 힘이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것을 용인치 않는다. 세계화란 그런 수많은 약소민족들에게도 통용되는 논리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긴 한국마저 어떻게든 예전으로 돌리려 애쓰는 점이 미국이란 제국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할 것이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어떻게 한국은 미국의 지배 아래에서도 공산화가 되지 않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모두 이루고서도 친미국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인가.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은 이후로도 계속 친미의 전도사들이었다. 미국이야 말로 자유고 평등이고 인권이고 민주주의 그 자체다. 반면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 대한민국은 가장 반미정서가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보호하고 후원한 결과가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미래 또한 없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 없이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여전히 미국은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한다. 우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