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배고파 죽겠다는 사람이 있다. 며칠을 굶어 일어설 힘도 없다며 엎드려 먹을 것을 달라 구걸한다. 그러자 그를 보던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발로 밟으며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먹던 걸 줄 수는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집에 가서 상을 제대로 차려 오리다."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무엇을 차려 올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면 가까운 가게에서 뭐라도 사서 주면 어떻겠는가? 첨가물 때문에 안된다. 트랜스지방 때문에 안된다. 너무 달아도 짜도 매워도 건강에 좋지 못하다. 유기농으로 영양의 균형을 맞춘 건강한 식단이라야 가능하다. 굶고 있는 당사자라 생각해 보라.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최저임금 인상분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반대한다. 근로시간단축이 자기들이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반대한다. 중대재해법도 자기들이 주장하던 것에서 많이 후퇴했으니 아예 통과되지 못하게 반대한다. 그래서 대체공휴일제도 자기들이 주장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반대부터 했었다. 무슨 뜻이겠는가. 자기들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한 어떤 시도도 결정도 반대하여 무산시키겠다.

 

최저임금이 한 번에 1만 원이 되지 못하니 그냥 7천 원 만 받자. 노동시간이 한 번에 주 40시간으로 줄어들지 않으니 그냥 앞으로도 계속 60시간 70시간씩 일하게 하자. 중대재해법에 허점이 많으니 전처럼 그냥 아무 책임도 묻지 않고 노동자가 죽어나가든 방관하자. 대체공휴일도 모든 노동자가 누릴 수 없다면 아예 모두가 누리지 못하게 하자. 그러면 결국 누가 피해를 보는가. 바로 나다. 노동자인 나 자신이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자칭 진보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겠다는 자칭 진보들이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완전한 법과 제도와 정책이 아니라면 반대한다는 순수함마저 보여준다. 아무리 배고파 죽겠다고 해도 제대로 격식과 영양과 맛까지 고려해서 정식을 차려 내와야지 먹던 음식을 내주는 것은 안된다. 내가 자칭 진보를 싫어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보다는 거리감이다. 절대 저놈들과 내가 함께 섞이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자칭 진보들이 그리 좋아하는 계급이란 것이다. 과연 노동자를 위한다고 노동자인 나 자신과 저들은 동류일 것인가.

 

자칭 진보가 그토록 비판했던 2017년과 2018년의 최저임금인상의 결과 그래도 먹고 살 만큼 수입이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아쉽기는 하지만 52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이 강제되며 일상에 많은 여유도 생겼다. 수입도 늘고, 여유도 생기고,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직장에서는 안전을 강조하고, 대체공휴일로 내일 하루 더 쉴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자칭 진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완전하지 못하니 반대만 일삼았다면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 취미와 현실의 차이인 것이다.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라 자칭 진보들은 완벽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나같은 노동자들은 작은 변화라도 실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을 바라게 된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정작 자칭 진보가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자칭 진보는 주장만 하고 민주당은 아쉬우나마 그것들을 실제로 이루어낸다. 반대하는 보수세력과 때로 싸우고 때로 타협해가며 하나씩 조금씩 현실로 이루어내고 있다. 실제 노동자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은 더 선명하고 올곧은 순수한 주장을 펼치는 자칭 진보가 아닌 그런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민주당인 것이다. 그것을 모르기에, 아니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칭 진보는 민주당을 질투하고 증오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위하지 않는데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다. 그래서 자칭 진보가 노동자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실제 현실로 이룬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그래도 괜찮은 위치에 있는 이들과 그래서는 곤란한 현실에 살고 있는 이들의 차이인 것이다. 당장 남이 먹던 빵은 거절할 수 있는, 바로 발로 밟아 뭉개 버릴 수 있는 사람과 그마저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도 4년 전에 비하면 월급이 많이 올랐다. 3년 전에 비하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도 더 많은 수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공휴일이 주말이라고 실망할 일도 없고, 사업장에서도 안전을 최대한 신경쓰고 있으니 괜히 떠밀릴 걱정도 줄었다. 더 완벽해야 한다고? 그럼 물론 좋다. 하지만 이나마라도 내게는 매우 고맙고 소중한 변화이고 발전인 것이다. 진보인 것이다. 진정 노동자인 나를 위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로써 분명해지게 된다. 이나마라도 이루어낸 민주당과 이조차도 반대한 정의당, 누가 나에게 정의인지.

 

한 걸음, 아니 반 걸음이라도 너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라도 결국은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실이란 그만큼 고단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진보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이 아니라면 그렇게 조금씩 나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히려 노동자로서의 삶을 더욱 치열하게 몸으로 겪으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생각까지 뒤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노조전임자라는 것이 있었다. 일은 안하고 노조활동만 하는 놈들이다. 노동자면서 노동자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그들은 과연 실제 현실의 노동자를 위하고 있는가. 대변하고 있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의 민주당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것이 나의 현실이며 정치의 이유다. 내가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나의 현실에 도움이 된다. 나의 현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 기대가 있다. 반면 정의당은 어떠한가. 물론 자칭 진보라면 당당히 와서 조롱하고 비난할 것이다. 무지렁이 노동자 따위가 무슨 노동문제식이나 이야기하려 하는가. 그런 건 잘나고 잘배운 지식인들이 하는 것이다. 언론인 지식인들이 하는 것이다. 그게 자칭 진보의 수준이다.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노동자의 실제 현실보다 우선한다.

 

실제 노동자의 삶을 몸으로 직접 겪으며 투쟁하던 이들도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은 않고 운동만 하던 노동귀족들이 노동자를 대변한지 벌써 오래 되었다. 그마저도 없이 머리로만 남의 이야기를 빌려 떠드는 놈들이 오히려 주류가 되어 있다. 어차피 내 일이 아니다. 그들과 나의 차이다. 계급의 벽이다. 싫어할 수밖에 없다. 더런 것들이다.

권력이란 곧 공포다. 그리고 이익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을 강제하는 동기다. 거스르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고 따른다면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아니 불이익을 넘어 치명적인 위협이 있다면 그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큰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나 큰 이익이 눈앞에 있다면 그를 얻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였었다. 나눠 줄 수 있는 이익도 많고 제재할 수단도 넘쳐났다.

 

소속 정치인 뿐만 아니다. 언론이며 지식인 사회 역시 보수정당 대표의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도 상당한 곤란을 겪거나 큰 명예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자칭 진보언론마저 감히 보수정당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후퇴한 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킨 것은 비난해도 아예 중대재해법 자체를 반대한 보수정당은 비판하지 못한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돌리지 못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해도 감히 최저임금의 인하를 주장하는 보수정당을 비판하지는 못한다. 보수정당 평의원의 한 마디에는 찍소리 못하다가 민주당 당대표 원내대표에는 협박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칭 진보인 것이다. 민주당이야 어떻게 해도 이익도 불이익도 없지만 보수정당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익도 불이익도 분명하다.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이 그동안 보수정당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었다. 대표의 존재감이 살짝 못 미쳐도 그를 대신할만한 존재가 반드시 배후에 버티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명박이라던가 박근혜라던가. 유승민조차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공천도 못받고 정치를 아예 그만둘 뻔 했었다.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당장의 실세를 거스르면 더이상 정치할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대신 말만 잘 들으면 선거에 떨어졌어도 제법 괜찮은 자리가 주어질 수 있었다. 그만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수 십 년 독재에 민주당의 자산까지 흡수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당의 기질 자체가 그런 것을 당연시여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므로 당원과 지지자들조차 그런 당대표의 의지를 충실히 쫓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소속 정치인이 당대표며 지도부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고 심지어 분열을 조장한다? 당대표를 대놓고 비난한다? 가능하겠는가?

 

첫째는 역시 연이은 선거의 패배로 상당부분 권력기반을 잃은 영향이 컸을 것이다. 정권만 빼앗긴 게 아니다. 지자체도 빼앗기고 국회의석도 겨우 100석을 넘기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나눠 줄 자리도 없고, 지역조직은 흔들리고, 거기에 돈도 사람도 더이상 전처럼 국민의힘에 몰리지 않는다. 위협이 될 만한 인사가 당 주변에 있어야 긴장하고 당대표의 눈치를 본다. 대선이 코앞에 있다고 하지만 대선은 총선과 다르다. 대선에 후보로 출마할 정도면 당대표도 눈치를 봐야 할 당내 거물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후 당내 권력은 새로운 대통령 후보에게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총선도 멀었지 대선을 앞두고 거물들이 날뛰지 지방선거는 상대적으로 중앙당의 역할이 크지 못하지, 그런 와중에 당대표마저 세력도 돈도 무엇도 않은 무선의 원외인사다.

 

당장 다른 사람도 아닌 이준석이 국민의힘의 대표로 선출된 것부터가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당권을 쥐어 줄 것인가. 누구에게 당의 미래를 맡길 것인가. 당을 틀어쥐고 이끌어갈 인사여야 했었다. 자신이 유력 대선후보이거나, 혹은 그 정도 급이 되는 유력정치인으로써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아니면 다수의 정치인을 배후에 거느리며 자신의 의지를 당의 의지로 바꿀 힘 정도는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그를 구심점으로 당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아니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었어야 했다. 당의 미래를 이끌 비전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그를 당의 미래로 삼아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없었다. 이준석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당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들 면면부터 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이준석이 선출된 것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차라리 나이라도 젊은 이준석에게 걸어보자.

 

그 결과다. 자기 사람이 없다. 자기 세력이 없다. 그렇다고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아니 능력이 뛰어나도 국회의원도 한 번 못 돼 본, 중앙의 정치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당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당대표까지 여러모로 부족한 인사다. 당원과 지지자들조차 선출은 했지만 전혀 신뢰하지도 복종하지도 않는 인사이니 그에게 뭐라 한다고 후폭풍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이 당대표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민주당 지지자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아싸리판이 벌어지는 배경이다.

 

그동안 민주당 당대표들이 그랬었다. 아니 지금 송영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졌다면 벌써 송영길을 흔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안정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니 경선을 치르며 당지도부를 흔들던 인간들부터 벌써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배경이 있어 주니 그나마 민주당이 조용한 것이지 그마저 없을 때는 정말 가관도 아니었었다. 당대표가 소속 정치인들을 징계하기보다 오히려 끌려다니며 임기조차 마치지 못하고 내쫓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당대표가 한 마디 하면 언론을 통해 반박하고 비판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을 소신이라 일컬으며 아예 중구난방으로 찢어져 따로 놀기 일쑤였었다. 그만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힘을 가진 놈들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도 국민의힘은 이준석이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보지 못한 그저 대중적으로만 유명한 최약체의 인물이다.

 

한 마디로 만만한 것이다. 흔든다고 돌아올 불이익 같은 건 없다. 따른다고 주어질 이익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차라리 그보다 다른 곳에서 이익을 찾는다. 이를테면 그래도 대선후보로써 지지율이 높은 윤석열이라든지. 혹은 다른 누구라든지. 그나마 유승민이라도 대선후보로써 지지율이 높으면 어찌 기대 볼 텐데, 유승민이나 하태경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겨레가 이준석을 그리 찬양했던 것일까? 국민의힘 망하라고?

 

그야말로 2015년 이전 민주당의 모습인 것이다. 더 최악인 것은 그래도 당시 민주당이 분열한 이유가 나름 거물들이 많아서 자기 잘난 맛에 나대던 결과였다면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나마 거물이라 할 만한 인물조차 없이 아예 중심이 될 만한 존재가 없기에 저리 난장판이란 사실이다. 언론조차 우쭈쭈하며 제대로 비판도 정리도 하지 않으니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되도 않는 곳에 힘을 실어봐야 분열과 갈등만 커진다. 그리고 바로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미있어지고 있다. 윤석열도 사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별 것 아닌 조무라기일 뿐이었는데, 하필 당대표가 그마저 급이 되지 않는 무선의 애송이라 더 상황이 우스워지고 말았다. 자기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지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닌, 그저 언론만 좋게 써주는 당대표가 언론을 등에 업은 윤석열에게 휘둘린다. 과연 지금처럼 중심없는 모습을 보이는 국민의힘을 국민들은 어찌 볼 것인가. 정의당이야 제 자리 찾아갈 궁리만 하고 있겠지만. 하여튼 웃긴다.

지난 대선 직전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유력정치인들이 검찰과 사법개혁을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이은 양승태의 사법농단까지 드러나자 검찰과 법원을 이대로 둘 수 없다며 사방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크게 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정의당이 검찰개혁을 말하지 않게 된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 김학의에 분노하던 정의당이 이제는 김학의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이성윤을 비난하고 나서는 중이다. 사법개혁은 물론 검찰개혁까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과 법원과 언론을 개혁하는 것은 독재고 폭거다. 어째서? 아는 것이다. 개혁되지 않은 검찰과 법원이야 말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

 

과연 저들이 조국 전장관과 가족의 무고를 모르고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유죄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히려 더 검찰과 법원을 엄정하게 개혁할 수 있도록 스스로 주장하고 행동에 나서며 여론을 만들어갔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면으로 막아선다. 그래야 조국 전장관과 일가족을 유죄로 만들 수 있다. 그를 공격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 나아가 그래야지만 정권이 바뀔 경우 문재인 대통령을 노무현 전대통령처럼 만들 수 있다.

 

무의식이란 것이다. 내 손으로 쳐 죽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상대를 압박한다면 이유는 하나인 것이다. 나로 인해 죽은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하고 경고하는 이유는 결국 상대를 죽은 사람과 동일시하는 무의식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을 들먹이는 것이다. 보수든 자칭진보든 그러니까 이딴 식으로 하면 문재인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총선 직전 심상정이 굳이 탄핵을 들먹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안철수가 말한 것처럼 신천지로 인한 코로나 확산으로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최악을 달리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개혁되지 않은 검찰이 자기들에 더 좋고 개혁되지 않은 법원이 자기들에 더 이익이 된다. 조국 전장관만이 아니다. 김경수 도지사나 손혜원 전의원 등 문재인을 위한 전초전은 이어지는 중이다. 그렇게 문재인을 죽이고 민주당을 망가뜨린다. 그런데도 그 첨병에 있는 윤석열을 지지할 수 있다는 버러지 새끼들이 과연 민주당 지지자일 수 있는 것인가. 문재인 지지자일 수 있는 것인가.

 

이번 재판은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올 초 있었던 초유의 판사탄핵으로 인해 판결은 재판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이 김경수 지사까지 유죄판결을 받고 말았다. 제대로 개혁하지 않은 결과가 이렇게 돌아온다. 이낙연이 그동안 손 놓고 있던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고 만다. 아무튼 자칭 진보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검찰과 법원이야 말로 진실이고 정의다. 재미있지 않은가.

 

정의당의 논리대로라면 인혁당 사건도 빨갱이들이 정당하게 처벌받은 사건이어야 한다. 조봉암의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들에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고 옥살이한 진보인사들 역시 그런 연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긴 지금 자칭 진보는 진보도 아닐 것이다. 버러지들인 것이다. 진보라 말하는 자체가 역겨운. 더러운 것들.

2012년 총선까지만 하더라도 인물은 보수정당이라는 말이 당연한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수 십 년 군사독재의 유산에 김영삼과 김대중에 의해 넘어간 민주당의 유산까지 더해지며 보수정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영삼이 큰 덩어리를 들고 민자당에 합당하고, 그나마 남은 것들마저 김대중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비열한 공작으로 와해시켜 신한국당과 합당하도록 내몬 순간 민주당에 남은 것이라고는 고작 반독재라는 대의와 김대중 개인의 카리스마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김문수도, 손학규도, 이재오도, 제정구도, 장기표도, 당시 재야의 유력인사들마저 군사독재의 후신인 보수정당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웃음도 나오지 않는 어이없는 상황인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정통을 이어받은 것은 민주당인데 정작 민주화운동의 주류 가운데 대부분이 속한 정당은 그 대상이었던 군사독재의 후신인 보수정당이었다. 당장 민주당에 몸담은 인사 가운데 김문수나 이재오, 이부영, 장기표, 제정구 등과 비견할만한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정의당의 당대표 심상정조차 김문수 앞에서는 감히 노동운동했다고 말을 꺼내기도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우상호나 송영길, 이인영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이니 문재인이니 자칭 진보가 대놓고 무시하며 적대감마저 내보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서울에서 활동한 것도 아닌 그런 잡놈들따위 어디 가서 민주화운동했다고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민주당 구주류가 여전히 노무현과 문재인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디 근본도 모르는 굴러온 돌이라는 인식에서다.

 

1990년대 좀 이름이 알려지고 쓸만하다 싶은 인재라면 당연히 보수정당의 제안이 들어가고 그를 승락하면 막대한 정치자금과 함께 공권력까지 포함한 조직의 지원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 언론까지 보수정당 후보에게 우호적이었었다. 2004년 선거를 제외하고 2016년까지 선거만 치렀다 하면 보수정당이 승리했던 이유였었다. 심지어 탄핵역풍을 등에 업고 압승이 예상되던 2004년의 선거마저 거의 간신히 과반을 넘길 정도의 승리밖에 거두지 못했었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유리하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당의 역량에서 차이가 크다 보니 후보 자신이 어지간히 못난 짓만 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게 당선될 수 있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정치에 뜻이 있으면 당연히 당선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보수정당부터 먼저 살피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었다. 보수정당에서 먼저 제안이 오거나, 아니면 자기가 먼저 보수정당의 문을 두드리거나, 그래서 안되면 그때 차선책으로 그나마 당선은 노려 볼 수 있는 민주당을 선택한다.

 

그래서 당시까지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인물이라면 둘 중 하나였다. 보수정당에서 공천도 받지 못할 정도의 쭉정이거나, 아니면 그래도 도저히 보수정당의 공천은 받지 못하겠다는 인물이거나. 그래서 선택된 인물이 주승용, 박주선 같은 토호들이거나 김민석 우상호 같은 운동권들이었다. 이전의 민주당이 호남정당 운동권 정당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이었다. 그마저도 없다면 오로지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돈받고 공천권을 판 찌그레기들만 남을 상황이었다. 김대중을 따르던 이른바 동교동계가 저리 형편없는 몰골로 전락한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다. 돈도 없어, 국회의원도 아냐, 더구나 독재권력의 탄압까지 받는 상황에서 김대중의 주변에 남아 있을 인물들이란 어떤 놈들이었을까? 진짜 쓸만한 인물이었다면 독재정권에서 먼저 유혹해서 데려갔을 것이다. 김대중 정도 거물을 배경으로 두면 언젠가 한 자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대중도 그나마 자기 이름값으로 당선시킬 수 있는 호남에 인물들을 끌어와서 출마시키고 다시 선수 쌓이면 수도권에 출마시키는 고육지책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김대중의 이름만으로 격전지인 수도권에 출마하려는 인재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2004년에마저 지지자들조차 이런 놈들 공천하고 표를 달라는 것이냐며 분노할 정도였다. 아무리 열린우리당에서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하려 해도 공천을 신청하는 놈들 수준이 그 모양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당장 후보자 약력만 놓고 봐도 보수정당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화려한데 민주당은 민주화나 시민사회에 관심이 없으면 뭔가 싶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2012년 한명숙이 여성계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 역시 그런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하고자 선택한 방편이었었다. 아니면 인물이 없는데. 반면 보수정당은 항상 선거때면 후보자의 면면이 화려했었다. 덕분에 정당의 스펙트럼도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 넓었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까지 포위할 수 있을 만큼 사회각계각층의 유력한 인사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정당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보수정당에서 결정되면 곧 대한민국의 결정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바뀐 것이 바로 2016년 총선부터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표창원을 영입했노라 선언했을 때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알기로도 표창원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었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여 상당한 지위에 오른 전문가였으면서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이었다. 원래라면 보수정당에 영입되어 공천을 받았어야 했는데 민주당에 소속되어 정당원으로 활동하려 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영입된 면면을 보면 오히려 보수적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성공한 보수정당에 어울릴 것 같은 인물들이 적지 않았었다. 반면 특히 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수정당의 이념성이 강화되며 보수정당의 인재풀은 상당히 협소해지고 있었다. 특정한 이념을 가진 인물들만 주류를 이루면서 예전과 같은 주류정당으로서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2017년 대선을 거치며 2020년 총선에서 극단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당시 보수정당과 민주당의 후보들과 당선된 면면을 보면 어떠한가. 성공한 법률가, 기업가, 저술가, 전문가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많은 인물이 포진해 있고 어느 쪽이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는가.

 

2016년 이전까지의 보수정당이 그래도 다양한 사회적 논의를 담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주류정당이었다면 이후의 보수정당은 단지 보수라는 특정한 이념만을 고집하는 이념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더 과격하고 더 극단적인 언행등을 경쟁하듯 쏟아내며 그런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당이 되어 버렸다. 지금의 보수정당을 보면서 인물은 보수정당이란 말이 당연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반면 실제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이나 실적과 상관없이 스펙만 본다면 이제는 민주당 쪽 정치인들이 훨씬 더 한참 우월하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보수정당은 이념싸움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보수정당이 내세울 인물이 윤석열과 최재형, 오세훈 정도다. 이준석을 그리 띄우는 것도 그만한 인물이 보수정당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아무나 찍어 앞에 내놔도 스펙만으로는 절대 보수정당에 꿇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중진이랄 인물들이 허접해 보일 정도다. 이래서야 대한민국의 주류고 기득권인 정당은 민주당으로 보인다.

 

실제다. 원래 사람은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까지 달라지는 법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도 사회적 약자와 정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으니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을 선택했을 테지만 그들 자신이 놓인 위치가 이 사회의 주류기득권인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미국 민주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유하고 상당한 명성과 인지도를 가진 이들로 이루어진 미국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지만 급진적인 진보내 개혁을 바라지는 않는다. 딱 자신들이 관리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자기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 있는 불확실성을 피해서 그 만큼만 개혁을 추구하고 실천하려 한다. 미국 민주당이 욕먹는 이유지만 그러나 그들 자신이 미국사회의 주류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기존의 체계와 질서와 가치 안에서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제와서 급격히 무언가를 바꾸기란 꺼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보다 자신은 몰라도 가까운 누군가 또한 그 영향을 받을 주류이고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내가 민주당에 대해 최근 냉정해지게 된 이유다. 이낙연의 발언을 보면서도 전처럼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 이유다. 이런 게 엘리트구다. 이런 게 주류고 기득권이란 것이구나. 그래서 화나는가? 그런데도 자기들의 이익 만큼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의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가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미약하나마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입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주도한 박주민이 또한 임대인이었다는 사실이 그를 대변해준다. 변호사 해서 번 돈으로 건물도 샀는데 그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도록 스스로 법으로 강제하게끔 입법을 주도했다. 그것을 모순이네 내로남불이네 떠들지만 그 자체가 오히려 대단한 자기희생일 수 있는 것이다. 법만 없다면 모두가 비판한 것처럼 얼마든지 더 많이 올려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게 스스로 법을 고쳤기에 앞으로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더 어려워졌다. 김진표처럼 자기 세금 때문에 개혁에 저항하는 놈들도 있으면 그들의 동의까지 끌어내느라 개혁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모든 입법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성공한 기업가이면서, 전문가이면서, 법률가이면서, 아무튼 기득권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상태에서도 기득권의 힘을 꺾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들이 손해를 볼 수 있게 법률을 고쳐야 한다. 자신은 물론 관련있는 주위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 있는 법률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느리다. 그래서 한참 모자르게 보일 때도 있다. 각오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방향의 개혁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민주당의 존재는 의미가 있다. 그래도 민주당에서 재벌의 사면과 법인세 인하를 주장해도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나오지 않지 않은가.

 

이해찬의 말이 옳다. 진화란 100 가운데 1의 차이가 쌓이고 쌓여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1만큼 더 생존하는 것이 수 십 세 대 축적되고 나면 그 차이는 절대적이 된다. 100 가운데 1만큼의 개혁도 100번 쌓이면 100 만큼의 개혁을 모두 이룰 수 있다. 조선에서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100년 넘는 시간이 걸렸었다. 그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정권을 잡고 의회까지 장악할 수 있으면 그만큼 다시 조금씩의 개혁을 더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인정할 수 있다. 민주주의란 욕망에 초연한 성인들의 제도가 아닌 욕망에 휘둘리며 사는 필부필부들의 제도인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민주당이 주류정당으로 거듭난 대가라 할 수 있다.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내 생각이다.

그러고보면 전에는 한겨레가 민주당을 까더라도 조선일보의 논리를 그대로 쫓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기만의 논리가 있었다. 자기들만의 주장과 근거가 있었다. 그래서 진보언론이라 불러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기들이 직접 취재까지 하고서도 조선일보의 주장을 사실로 전제하고 그를 쫓는 기사부터 쓰려 한다. 조선일보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비판하기보다 그를 따라가기 급급하다. 심지어 그를 위해 자기들 선배며 상사까지 들이받는 걸 서슴지 않는다. 왜?

 

보았던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어떤 권력과 특혜를 누리는가를. 어떤 대접과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보수정부에서 정권과 유착해서 제대로 해먹는 조선일보를 보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다. 실제 한겨레 기자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니까? 차라리 이명박근혜 시절이 언론에게는 더 나았었다. 권력에만 잘 보이면 정부광고도 팍팍 퍼주고 보조금도 푹푹 밀어준다. 출입처 기자들에 대한 대우도 다르다. 그에 비하면 민주당은 뭔가? KBS가 반정부로 노선을 바꾼 이유도 정권이 바뀌면 한 자리 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배신감 때문이라는 내부폭로가 있었다. 

 

자기들도 조선일보 기자들처럼.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기자들처럼 뭔가 제대로 받으며 행세하고 싶다. 그래서 들이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정작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며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들이 홀대받고 검찰과 정치권과 유착해서 가짜뉴스나 만드는 기자들이 대우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유착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더 인정받고 대우받는다. 기자놈들이 언론개혁법에 단체로 발악하는 이유인 것이다. 가짜뉴스야 말로 기자의 힘이며 무기다. 가짜뉴스가 곧 기자인 자신들에게 권력이 되고 지위가 되어 줄 것이다. 진실은 무가치하다.

 

그래도 지식인다운 곤조가 사라졌다. 한겨레에서 느껴지든 그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럽던 기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개새끼들이지만 확신범이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저 남의 눈치나 보며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똘마니에 지나지 않는다. 한겨레의 논조는 조선일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굳이 한겨레를 읽지 않아도 조중동을 보면 한겨레 기사의 내용이 무얼지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중동이 이런 기사를 썼어도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달리 바라는 바는 무엇인 것일까. 문제는 과연 그런 똘마니들에게도 조중동 정도의 대우가 돌아갈 것인가.

 

기자놈들에게 언론의 자유란 가짜뉴스의 자유다. 언론의 가치란 가짜뉴스의 대가로 돌아오는 돈과 자리들이다. 쾌락이다. 자기들 주머니에 돌아오는 현물들이야 말로 언론이 언론인 이유인 것이다. 성접대까지 받았다는데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한겨레와 경향일보가 국민의힘을 위해 철저히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오보까지 내가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당은 양심상 못하지만 국민의힘이라면 가능하다. 지금 한겨레의 현주소인 셈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리 바뀌어 왔을 테지만. 그게 그들의 언론이란 것이다.

내가 서울대 이야기를 자꾸 하는 이유가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들은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서울대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언론이 안철수를 밀었던 이유였다. 자칭 진보들이 안철수를 지지한 이유였었다. 그리고 안철수가 떨어지고 경희대 출신인 문재인이 당선되자 그런 그들의 열망은 더 강해졌다. 서울대 대통령! 서울대 대통령!

 

지금 대선후보랍시고 나온 놈들 학벌과 언론과 주류사회의 반응을 보면 분명해진다. 여성계의 선택 또한 그런 맥락 위에 있다. 어째서 윤석열이나 최재형 같은 나부랭이들까지, 심지어 하태경이나 윤희숙 같은 잡챙이들까지 나서서 대통령 되겠다 설치는가. 경희대 출신 대통령이 나온 걸 봤거든. 하는 걸 봤다. 오세훈이 방역정책을 세우던 원리와 비슷하다. 쟤들도 하는데 내가 뭘? 경희대도 하는데 내가 저만큼 못하겠는가?

 

그래서 아무 준비도 없이 대뜸 출마부터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최소한의 고민조차 없이 서울대와 사법고시, 그리고 국회의원 배지를 앞세워 출마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같은 세계에 속한 언론과 지식인 사회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아무 비판없이 지지부터 보내고 있다. 그래도 서울대인데. 아무렴 서울대가 경희대만 못하겠는가. 상고출신만 못하겠는가. 그들도 하는데 서울대 출신이면 분명 다를 것이다.

 

전부터 윤석열과 자칭 진보의 유착을 비판하며 몇 번이고 반복해 말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더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달라진 것이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민주당 안에서도 이낙연이 낮은 지지율에도 오히려 주인공처럼 경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 말로! 그래서 윤석열이든 최재형이든 하태경이든 이낙연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차라리 이낙연이 대선후보가 되지 않으면 윤석열을 지지하고 말겠다. 그런 놈들이 조국을 입에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째서 민주당 안에서마저 이재명에게 증오도 아닌 혐오와 경멸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 놈들이 저리 많은가. 

 

서울대의 발악이다. 어째서 그토록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울대 출신들 사이에서까지 크게 일어나고 있었는가. 얼마전 서울대에서 일어난 청소노동자의 죽음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들은 그들이 가진 본질적 정체를 드러내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니까. 서울대라서. 서울대이므로. 서울대는 서울대로써 존재해야 한다.

 

아무튼 덕분에 자칭 진보의 솔직한 속내를 확인할 수 있어 아주 나쁘지만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칭 진보들에게 세계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서울대와 이화여대, 그리고 그 나머지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노회찬도 서울대가 아니었었지? 서울대 이하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 된다. 류호정이나 장혜영처럼. 웃기는 것들이다.

글쓸 때도 마찬가지다. 쓰고 있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 응용과 변주가 자유롭다. 발췌와 인용과 변형을 통해 얼마든지 자기만의 새로운 텍스트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분야라면 그저 기존에 있는 텍스트를 가져다 복사해서 붙이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시피 하다. 당연하다. 뭐라도 알아야 더하고 빼고 고치고 바꾸고 하는 거지 전혀 모르는데 괜히 글자 하나 마음대로 고쳤다가 망신만 당하고 마는 것이다.

 

뭔 말이냐면 윤석열과 최재형이 과연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120시간 노동에, 후쿠시마 방사능누출 부정에, 부정식품 허용과 임상이전에도 시험중인 의약품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듣고서 읊어댄 것일까.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 주변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같은 편이라 여기는 바로 그들이다. 평소 아예 관심도 없던 분야인데 누군가에게 듣고서 그게 전부인 양 떠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지? 어째서 자칭진보들은 그런 윤석열과 최재형에 대해 한 마디 비판조차 못하는 것일까? 민주당을 향해서는 그리 디테일하고 신랄한 것들이.

 

확실히 윤석열과 최재형이 귀한 인재라는 이유일 것이다. 자칭 진보의 진짜 속내를 읽는다. 어차피 주 36시간 못하면 주 120시간 일한다고 뭔 일 있겠는가. 더구나 자칭 진보들이 그런 일 할 일은 없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조차 정작 현장이 아닌 노조전임자들인 것이다. 최저임금 11000월이 안되면 최저임금을 낮추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가 더 고통받아야 자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 자칭 진보가 민주당을 증오하는 진짜 이유다. 민주당이 있는 한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기 쉽다.

 

아무튼 바로 윤석열과 최재형이 내뱉는 말들이야 말로 자칭 보수와 자칭 진보의 그동안 감춰 왔던 솔직한 속내인 것이다. 중도적인 척 여러 커뮤니티에서 활약하던 이름들도 그를 계기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상식을 넘어선 그들의 진심이 더이상 그들로 하여금 가면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진중권과 정의당도 한 몫 끼고 있고. 한겨레나 경향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나 멋진가. 저 자칭들의 연대가.

 

초짜들인 탓이다. 정치감각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지렁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요령을 알았다. 홍준표 역시 어떤 말이 대중의 귀에 착착 감길지 감각적으로 알고 실제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자칫 속아넘어가기 쉬운데 윤석열과 최재형, 그리고 이준석 덕분에 더이상 그러기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자칭진보란...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이유다. 역겨울 따름이다.

시험을 잘보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아니 최소한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입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화원도, 보안원도, 시설관리원도, 조리사도 모두 시험을 봐서 뽑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란 실기테스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시험이다. 서울대에서 미화원들에게 강제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험을 가장 잘 본 서울대 출신에 심지어 사법외무행정 3대고시 합격자라면 가장 우월한 인간들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관심이 없어서 모를 뿐이다. 그다지 노력할 가치가 없어서 못하는 것 뿐이다. 자기들이 하려 하면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실제 그동안 만났던 서울대 출신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공통된 특징들이다. 항상 서울대 출신임을 드러내며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과시하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우월한가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로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 나왔는데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는가.

 

윤석열과 최재형이 아무 준비도 없이 대뜸 대선에 출마하겠다 결심부터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보수는 몰라도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과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 출신에 사법고시까지 합격했으니 당장은 몰라도 잘만 주위에서 가르치고 도와주면 최소한 서울대도 못나온 다른 정치인보다야 몇 배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이념도 지향도 성향도 정책도 다름에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대 나왔으면 언젠가 올바른 정답을 스스로 찾아내게 될 것이다. 자기들의 정답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식한 정도를 넘어섰다. 무식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평소 가치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저 물류센터에서 몸쓰는 일이나 하는 나조차 경제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기만의 규준을 가지고 있는데 저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지지한다. 그런데도 한 몸 바쳐 지지한다.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이라면 문재인을 확실히 죽여 줄 테니까. 너무 뻔해서 말할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 날이 너무 덥다.

누군가 나에게 그리 묻더라. 정의당이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는데 그 근거가 뭐냐고? 정의당이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공식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적이 과연 언제 있었느냐고? 그래서 대답해 주었다. 지금까지 당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위해 논평을 낸 곳이 어디였는가.

선거운동이란 기본적으로 내로남불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된다. 내가 하는 건 검증이고 네가 하는 건 네거티브다. 내가 하는 건 너의 자격을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고 네가 하는 건 단지 인신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는 검증이라 그러고 누구는 네거티브라 말한다. 그러면 윤석열의 아내와 장모의 사기행각과 윤석열 자신이 그에 관여한 정황을 파헤치기 위한 과거 검증을 두고 네거티브라 주장하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재미있는 것은 정의당 대변인 이름으로 윤석열 처가에 대한 검증을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이고 네거티브라 공식적으로 주장한 것이 윤석열이 그 유명한 120시간 발언을 한 직후란 것이다. 하긴 120시간 발언 뿐이 아니었다. 늦게 알려졌지만 부정식품을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 등 주옥같은 발언이 인터뷰를 통해 터져나온 뒤의 일이었다. 하긴 진중권은 대놓고 윤석열 실드를 치고 있더만. 재미있지 않은가? 민주당은 되도 않은 관용구 하나 가지고도 그 생난리를 치는데 윤석열에 대해서는 어떤 의혹이나 발언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비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윤석열이 잘못이라 하니 탈원전도 잘못이고 김학의 수사도 잘못이다. 김학의가 출국하도록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무슨 뜻인가? 윤석열이 어떤 이념과 지향과 성향과 정책과 노선을 가지고 있든 정의당은 상관없이 윤석열을 지지하겠다. 이유야 당연히 하나다. 윤석열이라면 문재인을 죽일 수 있다.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오욕속에 죽도록 만들 수 있다. 정의당이 노무현 이름을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를테면 자기 손으로 죽인 누군가의 이름을 계속 되뇌며 상대를 경고한다면 무슨 의미이겠는가. 무의식인 것이다. 너도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을 때, 아니 죽이고 난 뒤에도 정의당이 그들에 한 팔을 거든 것을 나는 잊지 않는다. 

물론 오세훈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정의당이 대놓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미친 짓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 한겨레나 경향일보는 몰라도 정의당까지 대놓고 지지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오세훈 때도 정의당은 노골적으로 오세훈을 지지하면서 정작 겉으로는 여성주의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 여성후보 자신이 당선되기 위한 선거운동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단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오세훈의 잘못에는 침묵하며 민주당을 공격하는데만 모든 힘을 집중했을 뿐이었다. 한겨레 역시 그래서 의도적으로 오보를 내고 오세훈의 의혹을 똥통에 빠뜨린 것 아니던가.

120시간 노동도, 최저임금제 철폐도, 부정식품 허용과 환자에 대한 임의임상시험 허용 등의 주장들도 더이상 정의당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주장이란 것이다. 완전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불완전한 지금의 제도따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불완전의 원인이 된 민주당을 파멸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을 이 사회로부터 배제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살 수 있다. 2007년 내가 어느 진보주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노무현 때문에 진보가 망하고 있다.

당장 논평들을 보라는 것이다. 민주당을 향한 모든 네거티브는 검증이고 사실이며, 민주당이 시도하는 모든 검증은 네거티브고 악의적 공격이다. 다만 한겨레의 경우는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가능성을 재느라 때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준석을 배우라 민주당에 조언하던 한겨레였으니. 벌레새끼들이란 것이다.

이래서 내가 민주당 지지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정권이 바뀌고 국민의힘이 의회까지 장악하면 어떻게 될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겨우 무기직 되었는데 해고가 쉬워질 테고, 차라리 일하는 시간을 줄여 일상의 여유를 챙겨볼까 하는 계산도 무모한 것이 되어 버리기 쉽다. 그게 국민의힘이다. 아니 정확히 이 사회 엘리트란 것들의 사고다.

 

아마 최재형이나 윤석열이나 어려서 부모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렇게 된다."

 

도시미화원이나, 혹은 공장노동자, 공사장 잡부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지 계속해서 들으며 그를 동기삼아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도 진학하고 사법고시도 합격했을 것이다. 즉 저들은 그만한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저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이다. 저렇게 되지 마라.

 

명문대 출신 자칭 진보들이 더이상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진보의 가치에 천착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아니 심지어 처음부터 노조집행부라는 꽃길을 걸었던 자칭 노동자총연맹들도 이제는 이해못하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냥 노동자는 이렇다. 노동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 전형성 위에서 노동자 정책을 주장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노동자의 현실을 직접 몸으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도 단축하고, 법정공휴일도 챙겨주고, 산업재해에 대한 대처도 하고, 필요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다. 자기들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중대재해법도 정의당과 민주노총은 반대했었다. 참고로 중대재해법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국민의힘은 그 결과 노동존중의 정당까지 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것이 이 사회 엘리트란 것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더 적은 돈을 받더라도 더 많은 시간 일해서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도무지 사람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저질 식품이라도 값싸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다. 우습게도 상당수 2030 청년세대가 그런 주장에 크게 동조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였어도 경쟁만 공정하다면 패배자나 낙오자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의롭다. 괜히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비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이라고 민주당에서 대놓고 이따위 소리 지껄이는 인간은 없었다. 하다못해 이상직조차도 대놓고 노동자의 삶과 지위 권리에 대해 주장하지는 못했었다. 같은 엘리트고 같은 기득권이지만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과도 민주당이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때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아무리 그런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게 노동자인 내게 가능한 일인가.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정당은 이제 하나 뿐이다. 민주당. 혹은 열린민주당. 정의당은 아니다. 정의당은 기득권 여성들을 위한 정당이다. 자칭 진보란 기득권 여성들을 위한 이념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가르쳐준다. 윤석열과 최재형을 지지하는 정의당이 주류들이 그 사실을 명확히 해 준다. 윤석열이 120시간 노동을 주장했음에도 정의당은 나서서 김건희를 변호하고 있었다. 영부인이 되려는 사람이지만 여성이니 검증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끝으로 지방으로 가면 생활비가 적게 들 테니 임금을 적게 받아도 괜찮을 것이란 주장 역시 그냥 관념에 의한 스테레오에 지나지 않는다. 거주비는 적게 드는데 문화생활을 좀 하려 해도 인프라가 열악해서 몇 배의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도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어렵게 품을 팔아야 겨우 구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오히려 지방이 더 비싸기도 하다. 노동자는 이런 존재다. 지방은 이런 곳이다. 한 번 제대로 살아보기를 했는가.

 

어째서 2030은 국민의힘을 더 지지하는가. 특히 그토록 공정을 강조하는 2030들이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그 대다수는 대학생들일 것이다. 명문대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라. 그래서 민주당이 더이상 2030 남성들의 여론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그리고 정의당의 청년당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엘리트의 현주소다.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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