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온도관리를 못해서 상당한 분량의 백신을 폐기해야 했고, 나름대로 의료시스템이 갖춰진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초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애초 목표에 턱업이 미치지 못하는 수량만을 접종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도 전인구의 35%가 아닌 확보한 백신 가운데 그 만큼만을 겨우 접종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라. 영하 70도의 온도에서 백신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그런 특수한 백신을 관리하며 안전하게 접종하는 것 역시 상당한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다. 아무 준비없이 남들한다고 덜컥 일찌감치 접종을 시작했다면 아무 혼란이 없었을까? 그런 가운데 부작용의 사례까지 조금씩 보고되고 있다.

 

이러라고 백신의 도입과 접종을 최대한 늦추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효율적으로 집단면역에 이를 때까지 국민들에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을 보고, 백신의 운반과 관리, 그리고 접종 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준비들이 필요한가를 확인한 다음 만반의 대비를 하고 접종을 시작한다. 그래도 된다. 어느새 일일 확진자의 수도 1000명 이하로 줄었고, 병상의 여유도 상당한 수준으로 확보된 상태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면서 최적의 백신 프로토콜을 만들고 오류를 최소화하여 접종을 마친다. 다만 생각보다 3차 확산이 급속히 일어나는 바람에 더 버틸 수 있었던 것을 서둘러야 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3차 확산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상황을 살펴가며 더 효과적인 백신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해외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과연 그렇게까지 서둘러가며 무리하게 백신을 도입하고 접종할 필요가 있었는가. 괜히 백신 서둘러 들여오겠다고 돈질에 이골이 난 나라들과 경쟁하는 자체도 상당히 버거운 것이다. 그렇게 경쟁해서 한 번에 들여올 수 있는 양 또한 한계가 있다. 그렇게 들여와서 아직 준비도 다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접종하면 사건사고가 없을 것인가. 그때는 또 언론은 무어라 떠들어댈까? 야당은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을까? 이러나저러나 욕먹는 것은 마찬가지라면 보다 신중하게 국민의 안전과 효율성까지 우선으로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 옳다. 시행착오는 서둘러야 하는 사정이 있는 저들더러 대신 겪으라 하면 된다. 대한민국이라 다행이다. 그것만 생각하자.

몇 달 전 쯤 이재명 지사가 SNS등을 통해 언론플레이를 펼치며 치고나가는 상황에 대해 이낙연 대표에게 그리 조언한 바 있었다. 물론 이런 약소블로그의 글따위 조중동만 읽으시는 이낙연 대표가 신경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낙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입장에서 참지 못하고 한 마디 적었었는데 그 내용인 즉 그랬다. 대군을 이끄는 지휘관에게는 그에 맞는 태도와 전략이라는 게 있다.

 

저 유명한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는 김유신의 5만 대군을 맞아 10번 싸워 10번을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한 번의 싸움에서 패하며 결국 계백 자신도 5천의 결사대와 함께 비장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었다. 어째서 10번이나 싸워서 이겼으면서 끝내 전멸한 쪽은 계백의 백제군이었던 것일까? 삼국지에서도 제갈량이 5차례나 북벌을 하며 상당한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결국 이룬 것 없이 진중에서 죽고 말았었다. 상승불패의 진경지 역시 압도적인 국력의 북위를 상대로 47차례나 승리하고 낙양까지 함락시켰지만 결국 상당한 병력을 잃고 머리까지 민 채 도망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강자를 상대로 약자가 거둘 수 있는 승리란 한계가 있지만, 반대로 강자가 약자를 상대로 한 번이라도 승리를 거둘 경우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강유가 조수전투에서 수만의 위군을 참살했지만 결국 단곡에서 한 번 패하자 더이상 위를 상대로 공세를 벌일 여력이 사라진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 역시 유럽연합군을 상대로 몇 번이나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러시아에서 한 번 패하고 난 뒤에는 소소한 승리에도 몰락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었다. 이재명이 아무리 혼자서 날뛰어봤자 고작 홍남기나 살짝 건드릴 뿐이지만 이낙연이 민주당 전체를 움직여 나서면 문재인 대통령도 그 의중을 아예 무시하기 힘들다. 이낙연이 최고위원들을 소집한다 했을 때 긴장했던 이유였다.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이상한 결론이 나면 문재인 대통령이 더 곤란해질 수 있다. 그러면 강자의 전략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10번을 져도 한 번만 이기면 적을 아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아니 피해의 정도만 치명적이지 않으면 그 이상 패배를 당하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회복해서 상대를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 따라서 차라리 대군을 이끌고 있으면 무리하게 요행수를 바라기보다 정석을 밟아 피해를 최소화하며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운용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기기묘묘한 책락으로 적을 농락하는 지장보다 확실하게 군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원칙을 지켜 운용할 수 있는 관리형 지휘관이 더 유용할 수 있는 것이다. 몽고메리나 아이젠하워의 지휘스타일이 딱 그랬었다. 롬멜의 지휘관의로서의 역량 역시 탁월했지만 영국이 가진 전략적 우위를 확실하게 알고 이용할 수 있었던 몽고메리를 당할 수 없었다. 다소간의 피해가 있어도 결국에는 영국군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대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재명이 백날 떠들어봐야 의회에서 개혁법안 하나 통과시키느니만 못한 것이다. 이재명이 아무리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을 주장해봐야 선별지원금으로 영업이 중단된 자영업자들에게 개인당 3천만원씩 지급하겠다 당정협의를 통해 결정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보편적 지원금 가구당 100만원보다야 영업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금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만한 힘이 180석 여당에게는 있고, 당대표인 이낙연에게는 그 힘을 움직일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다. 그러면 무엇부터 해야겠는가.

 

그래서 이낙연의 지능문제를 들먹이는 것이다. 180석 여당을 이끌고 있다면 그에 걸맞는 사고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 전략과 성과를 추구해야 한다. 사면론을 진정 자신의 아젠다로 삼으려 했다면 먼저 당내 의원들을, 최소한 최고위원들이라도 설득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를 바탕으로 대통령을 설득해서 동의를 받아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끄럽기만 한 논쟁적인 선언은 오히려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던 안정감마저 불안함으로 바꾸는 최악의 수였던 것이다. 확실히 180석 의석의 여당이란 이낙연에게는 너무 과분한 짐이었던 것일까.

 

아마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조급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내야 할 성과들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그리 의미가 있는가.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가치가 있을 것인가. 재난지원금따위 주지 않아도 국민들은 알아서 먹고 산다. 그러면 뭘 해야 할까? 그래서 이재명이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낙연의 사면론은 그런 점에서 이재명을 돋보이기 위한 먹잇감밖에 되지 않았다. 참모들부터 갈아치우기 바란다. 저따위 조언을 하는 놈들이라면 있어봐야 해악만 될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음달까지 검찰개혁 입법을 완료할 것이란 워딩 좋았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발언도 상당히 전향적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지금까지 잃은 점수를 만회하려면 이재명과 정세균이 주장하는 보편적 지급보다 한 발 더 나간 보다 혁신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말한 재난지원금 액수의 현실화다. 폐업한 헬스장 사장을 비롯한 영업중단으로 피해를 본 모든 자영업자에게 최대 수천만원까지 지급하겠다. 그렇게 홍남기 부총리를 압박해서 동의를 이끌어내겠다. 그런 싸움이라면 당대표가 대통령을 힘으로 눌러 꺾었다고 뭐라 할 지지자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정도가 되어야 차기 대권을 약속받은 사람으로서 지지자들의 확신도 얻을 수 있다.

 

180석의 민주당 의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살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논쟁이나 비판 정도는 그냥 무시해도 된다. 정의당이 뭐라 하든 국민의힘이 뭐라 하든 즈려밟고 갈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여론이 반대해도 결과로써 보여주면 된다는 확신 또한 필요하다. 그것이 리더십이다. 명장이란 잘 싸우는 지휘관이 아니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지휘관이다.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이재명이 싫기는 진짜 싫은 모양이다. 이미 떠나버린 이낙연을 붙들고 이따위 글이나 쓰고 있으니. 이낙연과 이재명을 제외하고 당장 눈에 띄는 후보가 없다. 정세균은 오래전부터 눈여겨 봐 오던 인물이기는 한데 역시 안정감이라는 면에서 이낙연의 하위호환이다. 그나마도 최근의 이낙연보다는 나아 보인다는게 함정이긴 하다. 박주민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으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아주 저버리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내 마음 같지 않다.

복지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해 왔었다. 하나는 국가가 베푸는 시혜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주로 보수적인 입장에서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베푸는 혜택으로 여겨졌었고, 반대편에서 주로 진보적인 입장에서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써 국가가 국민에 대해 가지는 의무로 여겨졌었다. 따라서 복지로 인한 재정지출에 대해서도 말 그대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출이라 여기는 인식과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재정이라는 인식이 서로 대립하며 공존해 왔었다. 코로나로 인한 위기상황에 대한 재정지원정책에 대한 논란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재난상황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은 시혜인가? 아니면 권리인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다. 대부분 기업이나 자영업자, 농어민들이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실시간으로 입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로 인한 피해의 보전은 국가의 의무인가? 아니면 국가의 시혜인가? 그래서 시험으로 관료를 뽑는 제도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으면 승리자다. 성공한 것이다. 당연히 시헙에 불합격했거나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면 패배한 것이고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개돼지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자기들은 시험에 합격해서 고위공무원이 되었으니 승자고 성공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국민을 보게 된다. 저 무지렁이들을 위해 귀한 국가의 재정을 축내야 할 것인가. 내 주머니의 돈이 되고 무지렁이 국민을 위한 낭비로 인식한다. 차라리 그 돈을 아껴서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은 선별적지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기재부에 주문해 온 내용 가운데 하나다. 한 번은 직접 거론하며 묻기까지 했었다. 국가부채비율 40%는 어떻게 산출된 것인가?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려 해도 기재부가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기재부가 돈줄을 쥐고 움직이지 않으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기재부가 움직이는 범위 안에서 재정을 쓰려 하면 전국민에게 만족할 만큼 지원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재부가 필요한 만큼 재정을 쓸 수 있으면 전국민에게 충분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필요한 곳에 아껴가며 쓰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 개인에게 40만원 씩 지급하는 것과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300만원 씩 지급하는 것 가운데 어느쪽이 더 시급한가. 

 

김상조 수석이 최배근 교수더로 뭘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질책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체지급을 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기재부의 자발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정부란 그렇게 돌아가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이재명이 홍남기와 기재부를 공격하고, 지지자들이 그런 이재명에 호응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선별적 지급이라 할지라도 그 규모가 현실적이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아예 코로나19로 문을 닫아야 했던 자영업자들에게 손실금액 상당부분을 보전할 정도로 지급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시름을 덜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다. 선별적 지급이라기에도 지원액수가 너무 터무니없이 적고, 일괄지급에 비해서 효과도 크지 않은 상태다. 도대체 무얼 위한 선별적 지급인 것이다.

 

대통령의 명령에도 꿈쩍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기재부와 그 수장인 홍남기에 대해 지지자들이 반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도 그래 왔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당시부터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재정확대정책에 대해서 기재부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저지해 왔었다. 김동연이 어떻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좌초시켰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홍남기와 기재부를 이대로 가만 두고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홍남기의 기재부와 보조를 맞추려는 이낙연의 개혁의지를 과연 낙관하며 지켜봐도 괜찮을 것인가. 거기서 입장이 갈리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의 선별지급을 둘러싼 갈등이 사면론 이후 더욱 크게 불거지는 것은.

 

과연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국민의 경제적 손실을 지원하는 것이 특혜인가? 권리인가? 국민은 자신의 최소한의 경제적 수준을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 민주당 안에서도 입장이 서로 갈릴 것이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서로 구분해 이야기한 것이다. 민주당 안에는 상당히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주류정당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낙연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이재명의 주장은 어떤 장점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차라리 사면론보다 생산적인 갈등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가의 재정정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인가. 다만 문제라면 이재명의 경우는 국가의 재정을 마치 자기 주머니 돈처럼 여기는 듯한 인상도 아주 없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그렇다고 기재부가 항상 따라야 한다면 공무원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아무튼 이낙연으로서 스스로 빠져든 수렁이랄 수 있는 사면론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지금의 논쟁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홍남기와 진짜 서로 소통하고 있다면 더 과감하게 선별지급을 하되 그 액수와 범위를 넓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도 한 번 해 봄 직하다. 더 많은 대상에게 더 파격적인 금액을 책정하여 지급한다. 진짜 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큼을 재정에서 지급한다. 이재명과 차별화되면서 자신의 선명성과 강점을 드러낸다. 마침 대통령도 선별적지급을 주장하고 있기에 그 후광을 입을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이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인다. 내가 이낙연이고 참모라면 적극 추진할 것이다. 원래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워낙 이낙연이란 인물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보니.

 

과연 국민을 위해 베푸는 국가의 시혜인가, 아니면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가. 국가의 재정이 따로 있고 국민에게 베푸는 지원이 따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위해 국가의 재정이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더라도 결국 더 어려운 국민을 위해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너무나 당연한 당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경제활동의 보장은 국가의 책임인가? 아니면 시혜인가? 더 적극적인 이낙연과 민주당의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의 고민도 지금 매우 깊을 것이다. 홍남기와 기재부는 일단 때려잡고. 국가의 재정이 늬들 주머닛돈이 아니다. 

내가 말했지 않은가. 미투는 박근혜를 지지했던 여성주의자들이 다시 한 번 주도권 잡아보자고 꾸민 기획이었다. 성폭행 피해자더러 직접 나서라고? 바로 여성주의자 이수정이 국민의힘 전소속 국회의원의 성폭행 의혹에 대해 직접 내뱉은 말이다. 성폭행 피해자더러 직접 나서서 미투를 하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여성주의를 천명한 정의당이나 한겨레 등 진보언론에서조차 박원순 시장의 경우와 비교해 놀라울 정도로 반응이 없다. 성추행도 아니다. 성폭행이다. 당사자가 아직 살아서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잘도 활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그토록 여성주의를 지향하던 KBS, JTBC 등 방송들조차 당시와 같은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중이다. 여성단체들도 말할 것 없다. 그렇다면 저들의 여성주의란, 여성에 대한 기득권 남성들의 성범죄를 고발해 온 미투의 의미란 무엇인가. 그냥 보이는 그대로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이다.

 

2012년 다수 여성주의자들은 단지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를 지지했었다. 박근혜 정권 내내, 심지어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난 뒤에도 박근혜를 지지했던 여성주의자들이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정작 다음 정권을 차지한 것은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에 우호적인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이용해서 공작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었다. 굳이 여성주의의 이슈를 키워 젊은 남성들을 분리하고, 다시 여성주의자들이 앞장서서 성이슈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한다. KBS가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시점이 박원순 시장의 사망과 일치하고, 당시 앵커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가 여성이라는 이슈와 명분을 가지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함으로써 다시금 주류정당인 국민의힘과 연대하여 기득권을 지킨다.

 

그래서 국민의힘과 관련한 성범죄들은 이슈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검사들이 특정 기자를 마음에 들어 기사거리를 퍼주었다는 정도로 그 생난리이던 여기자들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같은 여기자를 직접 성희롱했음에도 아예 반응조차 없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기득권 남성의 성범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당 소속이어서지 국민의힘 소속이어서는 이슈조차 되지 못한다. 성폭행을 당했어도 피해자 당사자의 문제이지 자기들이 무슨 상관이란 것인가. 국민의힘 소속이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집단성폭행을 방송으로 생중계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들의 입장인 것이다. 그러니까 여성주의 때문에 박원순 조문조차 못간다던 류호정이 조선일보 창간기념회에는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일보야 말로 저들이 아는 여성존중의 언론이 아니던가.

 

저들의 목적은 하나다. 박근혜의 사면과 박근혜 정권 당시 구축되었던 수구기득권과 여성주의와의 연대의 복원이다. 그를 위해 정의연까지 희생물로 내던졌다. 정의연 논란 당시 정의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자칭 진보들의 태도들을 돌이켜 보라. 정의연이 아니더라도 시민단체의 내부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놈들이 수구언론의 프레임에 맞춰 정의연을 공격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었다. 박근혜의 위안부협정이야 말로 진정 피해자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 자칭 진보가 동의한 저들의 프레임이었다. 

 

아무튼 2020년은 개혁에 반대하는 저들의 카르텔이 하나씩 드러난 한 해였을 것이다. 총선에서 참패하니 여성주의자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윤석열이 궁지에 내몰리니 사법부가 직접 참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자칭 진보는 항상 그 한가운데 있었다. 저 새끼들 떠드는 소리에 귀도 기울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벌레는 벌레일 뿐이다.

중대재해법과 관련해서 정의당은 국민의힘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정의당이 국민의힘을 '노동존중의 정당'이라 부르게 된 것도 바로 중대재해법에 대한 입장이 같아서였었다. 민주당의 법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지지입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아마 박주민의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었어도 정의당은 무슨 트집을 잡아서는 비판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이 부족하고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다. 물론 국민의힘의 법안에 대해서는 그런 입장 자체가 없었다.

 

언제나 그랬었다. 내가 자칭진보의 비판은 그냥 무시해도 좋다고 말한 이유다. 최저임금인상, 어떤 이유를 들어서는 항상 비판하고 반대만 하고 있었다. 근로시간단축에 대해서도 아무튼 이유를 찾아서 비판하며 반대하는 입장만 취하고 있었다.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고 그러므로 정부와 여당의 정책과 법안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여론에 밀려서 정부와 여당이 조금이라도 후퇴하면 후퇴했다고 또 지랄지랄 욕을 해댄다. 그렇게 대통령 지지율 떨어지고 민주당 힘빠지라고 허구헌날 욕하다가 그래서 정부와 여당에서 각계의 반발과 요청을 받아들여 후퇴한 법안을 내놓으면 또 타협했다고 지랄지랄 욕을 해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반발과 요구에도 법안을 밀어붙였을 때 그 필요와 정당성을 제대로 인정한 적이 있기나 했었는가. 그때는 또 독재다 독주다 욕하기 바쁘다.

 

원래 정부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정부들은 보수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모든 분야 모든 계층의 이해를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자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입장도 아예 무시할 수 없다. 그런때 정부가 일관되게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국민의 여론일 텐데, 아다시피 그 여론전에서 자칭 진보가 정부의 입장에 손을 들어 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평소 주장하던 탈원전마저도 원전폐쇄에 정부의 부정과 범죄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검찰수사를 지지하는 것이 지금 자칭 진보의 현실이란 것이다. 그래서 의미없는 것이다. 지금 통과된 법안들이 형편없이 축소되고 후퇴되어 있다? 박주민 법안으로 통과되었어도 어차피 욕하는 것은 똑같았을 것이란 점이다.

 

사회적참사특별법의 통과과 관련해서 경향일보의 만평이 어떻게 사실을 왜곡해서 전달했는가를 그래서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세월호 유족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발하는데도 그냥 입장을 고집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자신들은 정부에 반대해야 하고 민주당을 비판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노동존중 정당이고 조선일보는 여성존중 언론이다. 그게 자칭 진보의 입장이지 않은가.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순간 탈원전도 정권차원의 범죄다. 때로 동의도 하고 지지도 하고 해야 비판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허구헌날 모든 사안에 대해 반대만 하는데 새삼 비판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습관이다. 그냥 원래 자칭진보가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어차피 민주당은 주류정당이다. 자기들이야 말로 주류진보라 생각하는 자칭진보들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원래 민주당 자체가 대한민국의 주류기득권 중 일부가 모여 만든 주류정당인 것이다. 그나마 이념적으로 주류좌파와 주류우파는 물론 그저 국회의원 배지 하나 바라보고 전재산 때려넣어 정치를 해보려는 놈들까지 죄다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민주당인 것이다. 그래서 그 가운데 최대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민주당 구성원 가운데 최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의 정책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평소 발언을 보면 인도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원칙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상당하 성향이 보수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조금씩 현실로 최대한의 동의와 합의 아래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정당이고 주류정당으로서 민주당이 가지는 의미인 것이다. 개같고 좆같아도 적당히 타협하면서 이루어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정의당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녹색당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같은 정당이고 최소한의 정치적 목적과 지향을 함께하고 있기에 때로 반발하고 때로 다투면서도 결국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다. 그게 바로 현실정치라는 것이고 책임정치란 것이다. 그저 자기 고집만으로 반대만 일삼는 동호회 무리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수구와 결탁한 자칭진보가 타협을 비판하는 걸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옳겠는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현실과의 타협을 비판하려면 정의당은 먼저 국민의힘과 검찰과의 결탁을, 한겨레와 경향은 조중동과의 야합부터 끊어야 할 것이다. 진정 국민의힘이 노동존중의 진보정당이고 조중동이 여성존중의 진보언론이라 여겨서 그러는 것인가.

 

아무튼 자칭 진보가 뭐라 떠들든 들을 이유도 가치도 의미도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인 것이다. 어차피 뭘 어떻게 하든 트집잡아 욕할 놈들이니 저놈들 보기 좋으라고 애써 노력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아무리 욕해봐야 영향력이란 1도 없는 정당이다. 욕하는 이유라는 것도 조중동이 싣기 좋고 국민의힘이 이용하기 좋으라고 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자칭 진보의 현실인 것이다. 진중권과 서민과 홍세화를 보라. 류호정과 장혜영을 보라. 뭐가 다를까? 웃기는 것이다.

이낙연에게 무슨 대단한 배후가 있어서 저 지랄을 하는 것이란 일각의 음모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종인과 야합하고, 윤석열과 결탁해서 현정부의 개혁을 좌절시키고 수구의 복권을 이루고자 계획을 꾸미는 중이라는 식의 주장들에 대해 솔깃하긴 한데 현실성은 떨어진다. 그냥 멍청한 것이다. 

 

정치와 행정은 다르다. 리더와 참모의 역할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는 스스로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리더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 시행착오도 겪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망과 비난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의 무게에 버거워 지레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그에 반해 행정이란 이미 있는 길을 어떻게하면 위험없이 문제없이 효과적으로 잘 갈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게 어렵지 길이 있으면 방법을 찾는 건 이미 기술의 영역이다. 참모의 역할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지휘관이 어떤 길을 가고자 하면 그 방법을 찾아 시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지 자기가 알아서 길까지 찾는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낙연도 전남도라는 한 지자체의 장으로써 리더의 책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남도정에 대한 평가에서도 볼 수 있듯 리더로서는 썩 그다지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던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향을 정하고 총리로써 내정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을 때는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었다. 그 사실까지 부정해서는 안된다. 총리로써 이낙연은 분명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총리를 그만두고 그가 맡은 역할이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원내의석을 가진 입법부를 장악한 거대여당의 대표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조차 이런 거대여당의 대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시하거나 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지면 안되는, 그것도 그 책임이 권한만큼이나 무거운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낙연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엄중'은 그런 자신의 책임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런 때 사람들은 대개 주위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갈 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해야만 할 때,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책임을 져야만 할 때, 그런 때 사람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불안이 클수록 더욱 익숙한 대상에게서 그 도움을 바라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현재의 상황이 두려운데 낯선 새로운 사람들에 기대하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운 탓이다. 그래서 기대게 되는 것이 누구인가.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낙연이 원래 친하던 동교동계인 것이고, 이낙연에게 익숙한 언론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 과중한 책임의 무게에 망설이고 있는데 하필 눈치를 보는 대상들이 그 모양이니 그들의 바람대로 더욱 소극적이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아마 이낙연 주위에서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이 이낙연을 추월한 것이나 윤석열의 지지율이 여권 후보들을 넘어선 것에 대해 그리 조언했을 것이다. 보아라.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보수층과 중도층을 끌어들여 이낙연의 지지율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서는 지지율이 정체될 뿐이니 저들처럼 보수층과 중도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낙연 주위의 조언과 달리 이재명의 지지율이 이낙연을 추월하게 된 것은 이재명의 홍남기와 기재부에 대한 공격을 대통령이 아닌 행정부 내의 적폐라 할 수 있는 기재부 관료들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라 이해한 지지자들의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정작 개혁법안들에 대해 소극적이기만 한 이낙연과 달리 적극적으로 홍남기와 기재부등을 공격하며 더 강한 적폐청산과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핵심지지층을 움직이게 만들며 이재명의 지지율이 이낙연을 넘어서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차별화를 시도하여 중도층과 보수층의 마음을 얻은 때문이라 이해하며 오판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낙연 자신도 중도층과 보수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래서 고른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위해 결정했다는 전직대통령들의 사면이었다.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이 갇혀 있는 동부구치소에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며 언론을 통해 조금씩 동정여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문제다. 언론. 박근혜를 동정하는 태극기세력이 과대표되고 있는 상황에 이명박이 갇혀 있는 동부구치소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으니 이쯤에서 이명박근혜 사면을 말하는 것도 국민통합이라는 차기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아젠다를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여기서 스텝이 꼬인 것이 발언이 보도된 순간 당원과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센 것을 봤으면 대충 원론적인 입장을 말한 것이라고 한 벌 물러섰으면 좋았을 것을 이낙연 자신이 워낙 태생이 엘리트였다는 것이다. 괜한 자존심에 큰 자충수를 두고 만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신념이다. 반드시 관철시키고 말겠다. 도로 무를 수도 없다. 그래서 끝내는 대통령까지 팔고 만다.

 

말하자면 괜한 오판에 한 번 크게 질렀다가 지지자들이 반발하니 앗뜨거라 당황한 마음에 더 세게 질렀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주지지층인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이반이 커지고 정작 중도층과 보수층의 이입은 미미하다. 여기서 더 나가면 그나마 아직 기대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지지층은 더 이반할 것이고 그들 대부분은 이재명에게로 이동하며 그 지지율만 높여 줄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러니까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다수 당원과 지지자들이 그동안 이낙연을 지지하고 또 떠나 온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해법 역시 제대로 나올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재명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오히려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이 그리로 쏠렸던 것은 그 대상이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이 오판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홍남기로 대표되는 기재부 관료들이었다는 것이다. 행정부에도 적폐가 있다. 기재부 관료들이야 말로 오랜 적폐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 홍남기를 공격한다. 기재부의 관료주의를 공격하며 그들에 대한 개혁의지를 드러낸다. 그마저도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적폐청산의 일환이며 개혁의지의 표현이라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면 더욱 선명하고 강력한 개혁의지를 드러냈어야 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너무 개혁적이라 보수층과 중도층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길을 막고 물어보자. 이낙연이 개혁적인 인물이라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이낙연이 보수적이며 안정적이라 그래도 마음놓을 수 있었던 지지층마저 사면론이라는 돌출성 발언과 그를 고집하며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슨 뜬금없는 전직대통령 사면론인가. 정작 코로나로 인해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는 지금 그 해법을 내놓기보다 전직대통령 사면이라는 정치적 이슈에 매몰된 모습에서 과연 국정을 이끌 자격이 있는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하던대로 엄중히 지켜보면서 해야 할 일들만 해도 중간은 갔을 텐데 괜힌 정치적 한 수에 오히려 그 신뢰마저 금이 간다. 과연 지금대로 이낙연이 계속 자신의 고집을 밀어 붙인다면 이낙연의 계산대로 지지층이 다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이낙연 지지로 돌아서게 될 것인가? 당내경선도 통과하기 어려워 보이는 현시점에서?

 

정당의 대선후보란 당원들의 대표자인 것이다. 최대다수의 당원들의 최대공유점인 것이다.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런 정치적 지향과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런 정책들을 추구하고 있다. 그를 대표하여 민주당 후보는 선거에 나가서 다른 정당의 후보와 경쟁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지지층 대부분이 반대하는 사면론을 신념이라며 새해벽두부터 밀어붙이려는 인물이 과연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얼마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재명만 신난 것이 아니다. 정세균도 신났다. 거의 이번 대선을 포기하고 있던 정세균이 갑자기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박주민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지 않으면 이번 대선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추미애는 이번에 내상이 너무 심해서 어려울 것 같고, 그밖에도 이낙연의 빈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지 않을까. 그만큼 이재명에 대한 당원들의 비토가 크기도 하고.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낙연도 자신의 주위를 한 번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런 조언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놈이 바로 내부의 적이다. 정대철과 한화갑은 거의 확정이다. 굳이 인터뷰를 자청해서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며 이낙연을 감싼 이유가 있다.

 

아무튼 그냥 처음 맡아 보는 막중한 책임에 혼자서 어버버하다가 괜히 오버한 끝에 나온 악수에, 그럼에도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해 고집하며 생긴 자해소동에 가까운 것이다. 자기 딴에는 이재명과 윤석열을 칠 한 수라 생각하고 내지른 것인데 그 칼끝이 자기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죽더라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인 것이다. 그래서 뒈진다면 그게 자기 그릇이구나 할 밖에.

 

사실 이게 더 큰 문제다. 무슨 대단한 정치적 노림수라도 있었다면 능력은 인정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것도 아닌 단지 상황을 오판하고 괜한 고집을 세운 결과가 지금 상황이란 것이다. 일찍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사람은 자리에 앉혀 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 총리로서는 최선인지 몰라도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이다. 이낙연의 수준이다.

원래 탈원전은 진보의 주요 아젠다 가운데 하나였다. 정의당이나 녹색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한겨레 경향 역시 일관되게 기사를 써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라. 경주 월성원전부지에서 원전에서 누출된 것으로 여겨지는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포항MBC에서 나왔음에도 과연 자칭진보 가운데 반응하는 버러지새끼가 한 새끼라도 있는지. 

 

원래 자칭 진보언론들이 더 강하게 노후원전의 폐쇄를 주장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자칭 진보란 새끼들은 월성원전 폐쇄에 무슨 대단한 정권차원의 범죄가 숨어있는 양 개소리부터 늘어놓고 있는 중이다. 원래 폐쇄되어서는 안되는 원전이 폐쇄된 것은 대통령의 공약과 관계가 있고, 그 과정에서 분명 정권차원의 심각한 비리와 부정이 숨어있을 것이다. 정의당에서 윤석열 징계에 대한 법원의 정지처분에 무어라 논평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윤석열이 수사하던 원전폐쇄에 대해 정권차원의 범죄라도 되는 양 예단하는 논평을 했었다.

 

저놈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증오가 이 정도라는 것이다. 박노자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어디로 갔느냐 글을 썼던데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했던 것은 자칭 진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언론보도 뒤져보라. 정의당이나 자칭 진보언론들이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한 번이라도 찬성하거나 지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지. 단지 방향만 달리해서 흠을 찾아 욕하기 바빴었다. 최저임금 올려서 중소상공인 어렵다고 보수언론들이 쏟아내니 은근슬쩍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취재한 기사를 1면에 싣던 것이 한겨레 경향이었다. 그냥 문재인 정부가 하면 다 반대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만 망칠 수 있다면 기꺼이 진보의 가치마저 내던질 수 있다.

 

그러면 자칭 진보만인가. 문재인 정부에 원한을 가진 것이 진보 뿐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글이다. 어째서 한경오는 문재인을 혐오하는가. 여기서 진보의 카테고리는 과거 김대중을 따르던 이른바 동교동계에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이낙연의 주위에 진짜 동교동계가 포진한 것이 사실이라면 공수처가 위험할 수 있다. 이낙연의 참모가 제안한 것 가운데 하나만 이루어지지 않았다지?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아닌 공수처의 첫수사가 월성원전 폐쇄라면 그보다 더 극적일 수 없을 것이다. 이낙연 주위에 진짜 동교동계가 있다면.

 

더욱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칭 진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국민의힘에는 노동존중의 가치를, 조선일보에는 여성존중의 가치를 기꺼이 헌납하고 있었다. 여성계 역시 문재인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서 국민의힘의 성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민주당만을 집중해서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낙연. 이낙연의 그 개같은 사면발언으로 인해 대통령의 신년사마저 사면에 묻히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지지자들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일단 이낙연 그 버러지새끼부터 끌어내리고. 최대한 좋게 이해하려 애썼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하면 자제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상식인데 아예 싸우자고 더 덤비는 중이다. 대통령까지 팔아넘긴다. 최악의 우려가 현실이 된다. 역시 자칭 진보나 동교동 쪽은 상종도 말아야 하는 것인가.

 

예언이 되고 말았다. 어째서 조중동은 문재인을 혐오하는가. 어째서 자칭 진보와 자칭 민주진영은 문재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친노친문은 어째서 지금도 불가촉천민으로 부정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말했었다. 그래도 저들은 자신을 주류로 여기고 있다고. 진보든 보수든, 독재든 민주든 자기들만 자격이 있다. 똥들인 것이다.

언놈이 기사에 댓글을 달았던데, 지금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유동성이 늘어나는데 부동산을 규제하니 돈이 주식시장에 몰려서 주가가 올라간 것이다. 맞다. 그래서 내가 참여정부 당시부터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주장한 것이었다.

 

"시장에 돈이 넘쳐나는데 정작 부동산에 다 몰리니 기업들이 투자받기 어렵다."

 

당시 내가 게임회사에 다닐 때라. 투자 좀 받으려는데 그게 영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왜 이리 기업들은 돈이 마르는 것일까. 같은 투자라도 기업에 투자하면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부동산에만 돈이 몰리면 결국 미래의 기회를 당겨쓰고 마는 것은 아닌가.

 

부동산보다 주식이 국가경제 차원에서 더 나은 이유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주가가 높으면 기업들은 주식의 발행을 통해 더 쉽게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보유한 주식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 자산도 늘어나게 되므로 기업활동의 동인도 더 생기게 된다. 기업이 잘 되서 평가가치가 높아지면 보유한 주식을 통해 자산도 그만큼 기하급수로 늘게 된다. 부동산부자보다야 주식부자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아무튼 반대편에서도 이렇게 현정부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중이다. 주식보다 부동산이 더 중요하다는 뇌에 우동사리 들어간 소리를 제하면. 부동산 규제하니 주식시장에 돈이 몰려 주가가 오른다. 그런데 해외의 평가는 한국 주식시장의 평가가 정상화되는 과정이란 것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주가가 너무 저평가되었다. 옳은 말이다.

 

코스닥 거품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열심히 해서 상장만 하면 자기도 떼돈을 벌 수 있다. 함께 시작한 직원들 역시 지분을 나눠갖고 고생한 댓가를 받을 수 있다. 그게 바로 기업가정신인 것이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물려받는 그런 게 아닌 진짜 도전과 성취를 바라는 동력이고 동기다.

 

그렇게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코스피 3천이 현실이 될 줄이야. 대통령 잘 뽑은 줄 알아야 한다. 기자새끼들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랄이지만. 주가 올라서 난리인 새끼들은 보다보다 처음이다. 버러지새끼들.

지금 이낙연이 돌아다니면서 이명박근혜 사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나는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다. 물꼬를 터 준 것이다. 지지층을 위해서라도 특히 박근혜 사면을 주장하고 싶어도 차마 일반 국민들의 감정이 아직 좋지 못하기에 진심으로 대선을 노리는 놈들은 감히 대놓고 입밖에 꺼내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집권여당의 대표가 먼저 사면을 주장하고 나섰으니 이제는 자기들도 따라 이야기하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그렇게 야권의 후보들이 박근혜 사면을 주장하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할 경우 그것을 여당은 어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이낙연이 온몸을 던져 박근혜 사면은 자기 것이라 선언하고 다니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누가 전대통령들의 사면을 주장하든 원조는 자신이고 진짜도 자신이다. 자기 이외에는 그저 대세에 편승한 따라하기밖에 없다. 물론 그 대가는 그동안 이낙연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여기고 지지해 온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주지지층의 이탈일 것이다. 설마 모르겠는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주지지층이 이명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하고 사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 것인지. 몰랐어도 겪어 봤으니 알 것이다. 이대로 밀고 갔다가는 대선이고 뭐고 당대표자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이것 말고는 없다 봐야 할 것이다. 대선도 당대표도 스스로 내던질 정도의 어떤 동기와 목적이 없이는 이런 미친 짓을 정상적인 지능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 쉽게 저지를 수 없다.

 

한 편으로 이낙연의 이명박근혜 사면에 대한 몽니로 인해 더 곤란해진 사람이 있다. 그 이명박근혜를 누가 수사해서 감옥에 보냈더라? 지금도 이명박근혜 감옥에 보낸 것으로 심지어 자칭 진보언론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이 있다. 이명박근혜처럼 문재인도 감옥에 보내기를 바라며, 아니 그의 친구인 노무현처럼 만들어주기를 바라며 자칭 진보들이 오롯이 그를 대통령감으로 여기며 달려들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근혜처럼 문재인도. 보수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우리가 당했으니 너희도 한 번 당해봐야 한다. 더 지독하게 당해봐야 한다. 그들의 목적도 같다. 문재인도 이명박근혜를 넘어 노무현처럼 만들어주자. 그런데 복수 말고 다른 가능성이 생겼다. 문재인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 박근혜의 조기사면인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박근혜 잡아 넣은 놈이 바로 윤석열이었다.

 

아마 그래서 더 악랄하게 배신자의 모습을 연기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놈들이 이딴 소리를 입에 달고 살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개소리들인 것이다. 특히 박근혜를 동정하는 노인들의 경우 세상경험도 많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저렇게 남의 생각을 안다면서 그를 팔아 자기를 정당화하는 놈들은 대개 사기꾼이거나 배신자들이다. 그러니까 더 믿을 수 있다. 지금 이낙연은 이명박근혜에 대한 사면을 넘어 문재인에 대한 배신까지 준비하고 있다. 윤석열이 아니더라도 문재인을 죽일 수 있을 지 모른다. 박근혜를 잡아넣은 윤석열은 박근혜를 풀어주지 못하지만 이낙연이라면 문재인도 죽이고 박근혜도 풀어줄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낙연이 진짜 대선을 위해 이명박근혜의 조기사면을 들고 나왔다면 이재명이 아닌 윤석열을 보고 이 이슈를 던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명박근혜 사면은 이재명과 지지층을 다투고 있는 현정부와 민주당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주지지층에서는 심각한 이반을 불러오며 결과적으로 이재명 좋은 일만 시켜주고 말 것이다. 이낙연도 바보가 아닌데 그런 정도 계산도 못할까? 그래서 지능의 문제라 하지 않았는가. 지능에 문제가 없다면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개연성도 아주 없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윤석열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를 빼앗아 오면 국민의힘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윤석열마저 사라지고 그 지지층이 이낙연 자신에게로 옮겨 오면 국민의힘에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욱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확실하게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만 과연 그런 리스크를 이낙연 자신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도 선의선의 하기에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 봤다. 그런데 원래 논리라는 게 뭔가 절묘하고 잘 끼워 맞춘 것 같을수록 구라가 거의라는 것이다. 잘 쌓은 탑은 놀랍거나 신기하지 않다. 그냥 당연하다. 이리저리 꼬고 비틀고 상상력을 더해야만 겨우 가능한 논리란 그냥 딱 거기까지가 전부인 것이다. 당연한 게 당연한 거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 진리다. 그래서 진짜 단순하게 드러난 현상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낙연의 진심은 무엇인가? 이제 곧 여론조사 해보면 나오겠지. 여전히 민주당 지지층은 이낙연을 차기 대선후보로 여기고 있는가. 판단은 다르지 않다. 상상만 다르다.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가 정동영에게 어째서 대통령인데 그렇게까지 하느냐 묻는다면 의외로 쿨하게 대답할지 모른다.

 

"내가 그 사람에게 그러지 못할 건 또 뭔데?"

 

물론 나이도 노무현이 많고, 정계입문도 한참 더 빠르다. 그러나 노무현이 백수로 지내는 동안 정동영은 벌써 재선의 국회의원이었고, 김대중에 의해 영입된 이래 소장파의 기수로서 민주당 안에 자기세력까지 상당히 구축한 상태였었다. 사실상 노무현이 민주당 당내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김근태와 정동영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당선은 어려웠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예 문재인 싫다고 태업해버린 놈들 때문에 간발의 차로 낙선해야 했던 2012년을 떠올려 보라. 김경수가 드루킹 병신인 거 몰라서 만나고 밥먹고 문자한 게 아니란 것이다.

 

결국 열린우리당도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하는데 정동영이 자기가 정치개혁 해보겠다고 뛰쳐나와 만든 것이었다. 당시 김근태가 가세하면서 겨우 당을 만들 정도의 진용이 갖춰졌었기에 김근태가 나중에 대통령더러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경선에서도 지지해주고, 대선에서도 지원해주고, 열린우리당 만드는데 한 몫 해 주었고, 그런데 차라리 노무현이 자기에게 빚이 있으면 있었지 자기가 노무현에게 꿇릴 것은 대통령과 장관이라는 위치 말고는 없었던 것이었다. 정동영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당 만들고, 자기 실력으로 자기 사람들로 공천해서 자기 세력 만들었고, 그래서 자기 당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노무현이 대통령 당선된 거 말고 한 게 뭔데? 당시 유시민이 뭣 좀 해보려 발악하다가 당했던 굴욕과 수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내 경선을 거쳐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기까지 이낙연이 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얼마 이전에 있기는 한가 묻고 싶다. 지금 당대표로 있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떨까? 이낙연이 창당해서 당대표인 것일까? 지금의 당명과 지금의 구조와 지금의 당헌당규들을 이낙연이 다 만들었는가? 공천까지도 문재인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지지층에 의해 대부분 경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빚을 졌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빚을 졌지 당내 국회의원들이 이낙연에게 빚을 진 것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낙연 자신조차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으로 별 어려움없이 수월하게 국회의원도 되고 당대표에까지 당선된 바 있었다. 그동안 유력대선주자로 손꼽힌 이유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불러 올려 국무총리를 맡긴 덕분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진 것인가.

 

그러니까 어이없다는 것이다. 난 또 당내 국회의원들이라도 - 아니 최소한 최고위원이라도 완전히 장악해서 무슨 말을 하든 자신의 생각이 곧 당의 생각이 될 수 있도록 사전준비까지 다 마쳐 놨는지 알았다. 그래서 걱정했었다.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엉뚱한 결론이 나오면 어떻게 하는가. 정동영처럼 더불어민주당에 확고한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선은 몰라도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서 은혜를 입힌 것도 아니고, 아직 대통령의 지지율보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더 낮은 상태에서 이재명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까지 있는 당대표가 정작 당원과 지지자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것을 소속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당대표도 공천이라도 앞두고 있어야 무서운 것이고, 줄을 서도 대통령이 될 것 같으니 줄을 서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오는 것이 대통령의 의중도 그렇다더라. 대통령 팔아 면피하는 상황이다.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이만 많은 주위의 늙다리들 조심하라 한 것이다.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른다. 자기들이 몸담고 있던 때의 민주당이 아니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아니고 민주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은 당시의 당원과 지지자들과 또 다르다. 무엇보다 이낙연은 정동영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이낙연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점찍은 이유이기도 했다. 이낙연은 오로지 대통령의 후광으로 차기 대선까지 노려보게 되었으니 감히 대통령을 거스르는 짓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파멸이라는 것을 아니까. 이재명은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상관없이 자기만의 지지기반을 다지며 지금까지 왔지만 이낙연은 아니었다. 대통령 없으면 신기루처럼 꺼져버릴 지 모르는 존재가 자신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자기정치란 가능한가. 그것도 민주당 안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정동영이 당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도 차라리 정동영 눈치를 보면 봤지 대통령의 눈치따위 보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사람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마 유시민 한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그때의 정동영과 지금의 이낙연을 비교해 본다. 그런데도 정동영은 참여정부에서 장관까지 하고 누릴 것 다 누린 주제에 자기와 상관없다는 양 외면하고 오히려 앞장서서 공격하는 모습에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던 것이다. 이명박이 개새끼인 걸 알면서도 차마 의리없는 배신자새끼를 지지할 수는 없다고 외면한 지지층으로 인해 역대 가장 굴욕적인 표차이로 지고 말았다. 몰락의 시작이었다. 정동영 정도의 깜도 안되는 이낙연이 대통령과 지지자들까지 등지고 시도하려는 자기정치가 과연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바로 보이고 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즉 이낙연이 의도한대로 레임덕이 시작되면 이낙연 자신이 먼저 끝장나고 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상관없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과도 상관없이 자기정치를 하려는 순간 이미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기도 할 것이다. 정작 지금까지 이룬 것 가운데 자기 실력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기 것인 줄 알았는데 정작 자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인데. 그런데도 발버둥쳐봐야 결국 손해는 자기가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만 인정하면 된다. 지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거대여당의 당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은 문재인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정도가 아닌 그로 인한 마이너스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뭘로 문재인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인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고작 이명박근혜의 사면건의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과 적폐청산이 아니면 자기정치가 되겠지. 당대표가 그 정도 망신을 당했으면 정신을 차릴 때가 됐다. 지능의 문제다. 더 실망시키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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