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에 흔히 나오는 대사가 하나 있다.
"미안하다는 말로 끝날 거면 경찰따위 필요없어!"
맞는 말이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로 끝날 것이면 굳이 경찰까지 동원해서 시간과 돈과 노력까지 허비해가며 수사씩이나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당사자끼리 만나서, 아니면 누군가의 중재로 대충 서로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과하고 사과받고 끝내자 말하면 된다. 그러면 어째서 사과로 끝나지 않고 경찰까지 나서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다시 저 말을 뒤집어 보려 한다.
"경찰이 나서야 하는 일이면 사과따위 필요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돈을 도둑맞았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더니 범인이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는 말한다.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용서해주세요."
물론 그러고 용서받을 수 있는 도둑질도 현실에는 분명 존재한다. 그럴 경우 위의 대사로 대체할 수 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로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라면 굳이 경찰에 신고할 일도, 경찰이 나서서 수사할 일도 아닌 것이다. 경찰이 나선다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력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것은 과연 어느 정도의 사안인가. 기레기들이 더 잘 알 것 아니던가. 체험학습을 인턴이라 했다고 허위사실이라고 판결한 것이 바로 정경심 교수를 재판한 재판부였다. 학생이 인턴을 했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정확했고, 인턴활동 동안 얼마나 성실했는가 여부까지 낱낱이 파헤쳐서는 사소한 오류까지도 빌미삼아 기소하여 처벌하려 했었다. 합격한 지원 뿐만 아니라 불합격한 내역까지도 그래서 업무방해라며 무려 진역 4년을 선고한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없는 사실을 허위로 기재해서 지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하나는 절대 사과로 못 끝내고 그래서 공권력을 동원해서 개인을 수사하고 구금하고 재판해서 처벌까지 했는데 하나는 그냥 말 몇 마디, 그것도 잘못에 대한 인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과로 끝나고 말았다. 그걸 용인하는 중이다.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정의인가? 그들의 사고와 판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는 버러지다. 사람새끼가 아니다. 자칭 진보 역시 똥버러지다. 자칭 진보 가운데 저 어처구니 없는 사과에 한 마디라도 하는 새끼 있는가 찾아보라. 가장 앞장서서 사과해주셨습니다 감읍하며 외친 것이 바로 똥걸레였다. 한겨레라 부르면 똥을 모욕하는 것 같아 이제는 더이상 그렇게 못 부르겠다.
예로부터 같은 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는 하나였다. 신분의 구분이 있는 경우였다. 고귀한 이와 비천한 이에게 법은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정의도 진실도 가치도 도덕도 윤리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것이 이 사회의 카르텔이란 것이겠지.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물렀다. 좋은 사람은 원래 난세에는 일찍 죽는 법이다. 한숨만 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