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보니 소비를 통해 강제로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 시도가 과거에도 있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IMF 이후 경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자 내수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카드대란이라는 것이다. 너도나도 카드를 발급받아 소득이 부족한데도 빚을 내어 소비를 했었다. 아마 거의 모든 개인이 핸드폰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 것이 그 무렵일 것이다. 물론 부작용은 심각했다.

 

당시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실제 내 주위에도 그 무렵 신용카드로 인해 곤란을 겪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내가 불과 얼마전까지 신용카드라는 것을 만들지 않았던 이유도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그때의 정책이 실패한 정책인가. 김대중을 그래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미래의 빚까지 끌어다 쓰면서 바닥을 뚫을 기세이던 내수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새로운 핸드폰 기종이 나올 때마다 바로 바꾸던 수많은 소비자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삼성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무렵 크게 오판한 탓에 지금도 고생중이지만 엘지 역시 피처폰 시대를 주름잡던 강자 가운데 하나였었다.

 

아마 상상이 되지 않을 테지만 그 비슷한 무렵 무려 미국의 제이 레노는 한국인들은 핸드폰으로 만화를 본다며 자신의 토크쇼에서 디스하기도 했었다. 한국을 찾았던 해외 바이어 가운데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컬러링 음악소리에 문화충격까지 받기도 했었다. 모두가 IMF로 모든 경제요소가 바닥을 뚫던 상황에서 카드빚으로나마 소비를 다시 일으킨 덕분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물론 덕분에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은 소득이 없는 대신 소비에 대한 욕구가 컸던 당시 젊은 층이었다. 아마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일 게다. 소득을 늘리는 대신 늘어난 소득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만들겠다. 이른바 생산성과 관련한 정책이다.

 

과연 다시 당시로 돌아가서 장차 카드대란으로 많은 개인과 기업이 곤란을 겪을지 모르니 신용카드와 관련한 규제들을 못풀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업자도 넘쳐나고, 그래서 경기가 바닥을 뚫고 들어가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경제가 다시 회복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저 기업만 살아나면 된다고 기업들에만 계속해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사실 국민연금을 강제하기 시작한 것도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국민연금은 만일의 상황에 정부가 정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실탄과 같았다. 그래서 기업만 살아나면 경제는 다시 사는 것일까?

 

물론 부작용도 컸지만 그 사이 많은 기업들이 빚을 내서라도 소비하던 국민들로 인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끊임없이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그 사이 기술도 발전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도 회복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기업의 경쟁력은 더 높아졌다. IMF 이전까지 그저 가격경쟁력 하나만 믿던 것에서 IMF 이후 품질을 앞세워 오히려 고가시장에서도 세계유수의 메이커들과도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도 유명했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고품질의 고가제품을 더 선호한다. 내수가 기업의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지인들과 흔히 농담처럼 하던 이야기가 있다. 소비가 애국이다. 애국하러 소비하러 가자. 그리고는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술을 마시고 비싼 안주를 시키고 모여서 밥과 고기를 사먹었다. 아예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1997년 그날로부터 불과 5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다시 한국의 경제가 살아난 이유였었다. 소비가 살아났기에 경제도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여정부 내내 카드대란으로 인한 후유증을 치유하느라 거의 치르고 말았었다. 참여정부에서 다시 보수정부로 정권이 넘어가고 만 이유였다. 그것을 당시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말하고 있었다.

 

사실 정상적으로는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고서야 겨우 회복될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 재정상태도 최악이었고, 무엇보다 내수가 가라앉아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 내놔봐야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이겠는가. 사람들이 사서 써주어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업은 성장한다. 경제의 선순환구조다. 다만 카드빚도 더이상 낼 수 없게 된 지금 과연 무엇으로 그렇게 경제를 이끌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정부들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소비하라며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이상 카드빚으로 소비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으니 이번에는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아서 소비하라며 아예 등을 떠밀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무엇보다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그래서 신용카드규제완화는 카드대란이라는 이름으로 불과 5년도 안되어 끝나고 말았다. 지금 보수언론들이 악착같이 아파트 가격하락을 막으려 용쓰고 있지만 부동산담보대출도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그러면 아파트를 팔아서 갚아야 하는데 과연 그 아파트를 사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 아파트 가격은 상위 10%의 소득자들조차 평생을 벌어도 감히 살 수 있다 장담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 있다. 이마저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주머니를 채워 줄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다. 그냥 그동안 해 온 것들이다. 처음에는 신용카드로, 그다음에는 부동산담보대출로, 이번에는 차라리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아예 노동자의 소득을 올려주겠다. 마음놓고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소득을 올려줄테니 그것으로 내수를 살리라. 소비를 해서 경기를 끌어올리라. 사실 어제 생각났다. 경제정책에 대해 쓰다가 잊고 있던 카드대란이 다시 떠오르고 말았다. 그때도 말했었다. 정말 좆같은 정책인데 덕분에 내수가 살고 경제가 다시 살아났다. 소비가 없으면 경제도 없다.

 

경제학원론을 들먹이며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첫째 원인과 동기가 무엇인가. 바로 필요다. 수요다. 소비가 있기에 생산이 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다. 아무리 생산이 많아도 소비가 없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 있고 그것을 싸게 팔고자 나서도 정작 사 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비가 필요하고 그 소비를 위해서는 충분한 소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동안 자본주의 세계는 약탈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늘어난 생산을 해결해 왔었다. 그래서 중국이 주목받았던 것이고 다시 인도가 세계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지만 늘어난 생산을 이익으로 바꾸어 기업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더구나 고용이 크게 필요 없는 미래경제환경에서 무엇으로 새로운 시장을 찾고 늘려갈 것인가.

 

경제학을 알려면 경제학사를 알아야 하고, 경제학사를 알려면 세계사를 알아야 한다. 세계역사의 흐름이다. 경제학은 결국 세계의 역사를 이끌기보다 그를 뒤쫓으며 그때마다 그에 맞는 답을 찾아 왔었다. 무엇이 옳은 정책인가. 사실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해 온 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이명박근혜 당시 경제지표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언론들은 그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이끌던 이전의 정책들이 어떤 결과에 이르고 말았는가.

 

정말이지 떠올리고 싶지 않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김영삼에게 시계자랑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무현까지 욕하며 미워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래서 겨우 경제는 살아났었다. 더이상 빚으로 경제를 살리는 것은 안된다. 그냥 카드대란으로만 기억한다. 언론이 쓰레기인 또 하나 이유다. 진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