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이라고 하면 그저 막연히 뭔가 크게 좋아지고 덕분에 내 삶도 나아지겠구나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을 테지만 그러나 실상을 보면 또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당장 노동의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더 정확히 노동이 사라질 수 있다.


하긴 원래 기술발전이란 것이 그랬었다. 하나의 기술이 발달하면 그만큼 그와 관련한 노동의 재편이 일어났다. 대부분 그런 재편들은 노동수요의 감소, 즉 실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농업기술의 발달로 개인이 더 많은 면적을 경작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도시노동자의 증가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잃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저임금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기계가 더 빨리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면서 도시에서도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러다이트 운동이란 것이다.


더이상 나이많은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괜히 인건비도 비싸고 다루기도 불편한 건장한 남성보다 그저 기계만 가르쳐준대로 조작할 수 있으면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자본가들에게는 더 유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여성과 아이들의 임금은 남성보다 훨씬 낮았고 이는 곧 노동계급의 소득과 생활수준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하긴 이제 4차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그런 여성과 아이들마저 공장에서는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생산을 기계가 대신하고 단지 소수의 전문인력들이 그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로 필요할 뿐이다. 그러면 나머지 노동자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 학교 다닐 때 다들 배웠을 것이다. 1차산업, 2차산업, 그리고 3차산업이라고. 처음에는 농사짓고, 가축 기르고, 물고기 잡고, 광물을 캐다가, 조금 더 지나서는 그것들을 가공해서 더 가치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나중에는 그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다 낫게 만드는 일에 직접 종사한다. 마지막이 서비스업이다. 첫째 더이상 많은 노동력과 노동시간이 필요없게 되니 노동자의 수도 줄이고 노동시간도 줄이는 대신 임금을 높여서 그를 통해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나머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그 높아진 임금을 받으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저 사람만 값싸게 많이 동원하는 제조업에서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바뀌며 나머지 인력들은 다양한 서비스업으로 흘러들어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충분히 쓸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서비스업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당장 선진국들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 자체가 더이상 전처럼 임금노동자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인식 때문인 것이다. 더이상 임금노동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지 못하게 되면 이전과 같은 복지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불어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텐데 더 적은 임금으로도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 필요도 있다. 즉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더 적은 임금만 받고 더 적은 시간만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사람들이 일자리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재원은 역시 노동자의 수를 줄인 대신 더 많은 이익을 거두게 된 기업들이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에도 시장은, 수요는 유지될 수 있다.


어쩐지 감이 잡히지 않는가. 소득주도성장론의 전제도 바로 기술의 발전으로 더이상 생산부분에서는 일자리를 전처럼 늘리기 힘들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보다는 소비를 늘려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이미 소비를 늘려보겠다고 땅도 파보고, 아파트도 지어 보고, 대출규제도 풀어보았다. 그러나 생각처럼 소비는 늘지 않았다. 당장 소득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비판은 참으로 쉽다. 왜냐면 과거의 논리를 가지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전의 논리들로 새로운 정책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정부의 반론은 어렵다. 왜냐면 아직 증명되지 않은 단지 가능성이고 실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편하다고 쉽게 이해가 된다고 과거의 방식들을 답습하기에는 벌써 지난 정부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들은 지난 정부의 경제에 대해 절대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지난 정부에서 경제가 어땠었는가 절대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비교대상은 없다. 중국도 미국도 우리의 비교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와 비교대상이 될만한 나라들 가운데 우리보다 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되는가. 그래서 과거의 논리를 소환해 오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아무일도 없었던 시절의 경제모델들이다. 이미 실패한 모델들이고 앞으로도 더 크게 실패할 모델들이다.


끔찍하다. 공장은 자동화되고 그래서 실업자는 늘어나는데 임금수준은 그대로다. 공장을 늘려도 더이상 노동자의 수는 늘지 않는데 임금수준만 여전히 그대로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물가도 따라서 오를 텐데 노동자의 임금소득만 그대로다. 자영업이 왜 어려운가. 당장 소비를 하려 해도 소비할 돈이 없다. 대부분 소비하고 싶어도 소비할 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무슨 자영업이 살아나겠는가.


자영업 어렵다는 이야기는 지난 정부에서도 나왔었다. 최저임금 오르기 전에도 자영업의 폐업률은 높았었다. 역시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과거 정부로 돌아가자. 그래서 뭘? 더구나 4차산업혁명시대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면서.


기자가 아닌 무당이라 부르는 이유다. 정치인들이야 원래 그쪽 방면에는 무식한 놈들이 대부분이니. 대중들이야 익숙한 논리가 옳은 논리로 여겨질 터다.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더이상 투자를 늘린다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공장을 더 많이 지어도 일자리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시대가 그렇게 바뀌고 있다. 줄어든 일자리마저 쪼개야 하는 미래가 이제 곧 나가온다. 얼마 멀지도 않았다. 저들만 지난 시간 속을 산다.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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