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튜브 같은 건 못하겠다 여기는 이유다. 실시간 토론도 그래서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있다. 생각이 너무 많다. 내가 떠들면서 나 자신이 그에 대한 반론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다. 가끔 그렇게 자연스럽게 떠올린 반론들이 원래의 의도를 잡아먹을 정도가 되었을 때 중간에 쓰던 것을 접거나 다 쓴 글을 바로 지우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냥 보기에는 국회의장 박병석이 미래통합당과의 합의 아래 본회의를 열어보겠다고 몇 번이나 꼬장을 부리며 개회를 미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과연 보이는 것만이 전부였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을 어제 본회의 마지막 시한을 앞두고 한 번 풀어 놨었는데 덕분에 오늘 제대로 들어맞은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다. 일단 결정하고 나니 일사천리다. 미래통합당과의 합의에만 집착하는 듯 보일 때는 그리 답답하고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니만 일단 결정되고 나니까 모든 것이 신속하다. 야당출신 부의장의 동의 없이는 선출할 수 없는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7개 상임위의 위원장이 그렇게 29일 미래통합당에 대한 마지막 통보 이후 바로 본회의가 열리고 통과되고 말았다. 마치 원래 그러기로 예정되었던 것처럼.

 

물론 모른다. 보이는 그대로 박병석이 미래통합당과의 합의를 고집하며 꼬장을 부리다가 여론과 청와대, 무엇보다 원소속정당인 민주당의 압박을 못견뎌 고집을 접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미래통합당이 하다하다 너무 심하게 나오니 자기도 모르게 빈정이 상해서 민주당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 것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어제 쓴 글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자칫 너무 빨리 너무 성급하게 18개 상임위를 모두 받았다가는 오만하게 비칠 수 있으니 최대한 미래통합당에 양보하며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미래통합당이 그래도 버티면 그때 상임위 선출까지 밀어붙이자. 결과적으로 20대 국회 당시 미래통합당이 법사위를 틀어쥐고 법안도 통과시키지 않으면서 원외투쟁으로 국회를 마비시키던 상황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끔 만들었다. 이 놈들은 원래 이런 놈들이로구나. 어떻게든 국회를 열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민주당에 비해 국회를 여는 것조차 조건을 달며 미래통합당은 한가롭고 여유롭기만 하다.

 

미래통합당이 의도한대로는 안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민주당 180석과 그들의 오만함을 강조하며 이후 국회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요하려 했었는데 시간을 너무 끌고 말았다. 일단 민주당이 먼저 많은 양보를 했었고, 이후 협상과정에서도 많은 양보를 제안했음에도 대부분 국민들에게 전혀 크게 와닿지 않을 법사위만 고집하느라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오만한 모습만 오히려 보이고 말았었다. 국회를 여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그 조건이란 것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포함된 지극히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것들이었다. 민주당은 최선을 다했고 미래통합당은 그런 여당으로서의 민주당의 책임감마저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아무튼 어쩌면 지금 열어서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몇 주 전 너무 일찍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고 상임위원장까지 선출했다면 언론과 야합한 미래통합당의 수에 넘어갔을 수 있다. 그조차도 누를 힘이 지금 민주당에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라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되 오만하게 비쳐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영 못한 것은 아닌 듯한데. 그럼에도 그동안 열불터지게 한 것 생각하면 그런 정도 여론의 압력은 있어야 했다 스스로 납득시키고 만다.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는가. 욕한 것 사과한다. 일단은 잘했다.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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