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르소설을 좋아한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방에서 무협소설을 빌려 읽고 있었고, 지금도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스마트폰으로 거의 매일 무협과 판타지, SF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웹소설들을 섭렵하고 있다. 그런데 아다시피 이들 장르들은 젊은 세대가 주소비층들이다. 그를 통해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바가 생겨나는 이유다.

 

내가 장르소설을 빌려 첫권을 보다 말고 접는 경우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문체가 거지같은 경우.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쓴다는 느낌을 제대로 주는 경우다. 비슷한 종류의 소설만 보다가 글을 쓰다 보니 문법도 맞지 않고 맞춤법도 제멋대로인데다 어휘마저 잘못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다 문장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읽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건 도저히 못 읽는다. 그리고 더불어서 개인의 울분과 열등감을 배설하는 창구로 쓰려 하는 경우일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사변적이고 단편적인데다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때 내가 내리는 평가는, 아 뭐 이런 찌질이새끼가 다 있나? 진짜 병신같고 찌질하다.

 

이를테면 내가 가난하다. 내가 없고 못산다. 그래서 분노한다. 저 새끼는 잘 사는데. 저 새끼는 다 누리고 사는데. 저 새끼보다는 내가 더 잘났는데. 그러느라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잔뜩 비틀려서는 다른 사람을 왜곡해 판단하기까지 하고. 때때로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도 어려서 정부 보조 받아가며 가끔씩은 밥도 굶고 하는 삶을 살았었는데 정작 그런 열등감 같은 건 느낀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에만 신경쓰고 살기에는 당장 내 앞에 놓인 매순간들이 더 중요하고 가치있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 많고, 적당히 타협만 하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도 더 많았다. 그리고 지금 내 형편에 맞은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 족한 것 아닌가. 다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편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그래서 더 짜증나는 것이다. 이른바 힘숨찐이라는 것이 있다. 힘을 숨긴 찐따의 준말이다. 남들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숨기고 찐따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역사야 유구하다. 당장 슈퍼맨부터 조로까지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영웅이란 기본적으로 힘숨찐을 깔고 다니므로. 그런데 이들의 경우는 정체를 숨겨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지만 최근 장르소설의 힘숨찐은 그것과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과 나누기 싫다. 내가 가진 힘인데 다른 사람을 위해 그로 인한 책임을 나누기 싫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거부하고 정체를 숨긴 채 혼자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기껏해야 자신이 위할 수 있는 대상은 가족이거나 사랑하는 사람. 부익부빈익빈 유전무죄무전유죄의 현실에 분노하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보다 더한 이기심으로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만을 위해 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돈을 번 상민들이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들이 양반이 되는 것만을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째서 20대 남성들이 2찍이 되었는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자신의 불우한 현실에 분노하는 것까지는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은데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나만 불우하고 나만 부당하고 나만 불합리하다. 그것은 외부의 환경으로 인한 것으로, 그 환경을 이루고 있는 모두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주한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나보다 더 누리는 것 같으면 너무 가난해서 정책적인 배려를 받는 경우도, 장애로 인해 국가적인 보조를 받는 경우도, 다른 차별적인 이유로 인해 기회에 있어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경우마저도 전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더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관리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성세대들에게도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그래서 그들이 현실을 구조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가? 그냥 내가 저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누리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한 마디로 내가 귀족이 되면 되는데 평민들의 삶따위 알 게 무어냐는 것이다. 내가 양반이 될 수 있으면 당연히 양반이 누리는 특권들도 내 것이 될 텐데 굳이 그것을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들이 조국의 가붕게론에 반발한 이유였다. 나는 용이 되어야지 가재나 붕어, 게처럼 개천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저들 세대와 우리 세대의 사고와 논리 가운데 가장 크게 차이나는 부분일 것이다. 어차피 가재, 붕어, 게로 살아야 하는 이들이 있음을 아는 우리 세대가 가붕게론을 지지했던 반면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2030들은 그것을 조국을 넘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까지 저주하고 증오하는 이유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한 편으로 그것이 2030 남성들이 6070세대들과 연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워낙 없이 살던 시절이라 그 시절 세대들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에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집도 몇 채나 가지고 번듯한 상가건물까지 있는 건물주가 굳이 가진 것 없는 노인들의 것까지 폐지와 빈병과 깡통을 모아 푼돈이라도 벌려 하는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오죽하면 폐지줍는 노인이 자기가 주운 폐지를 모아놓는 창고까지 따로 가지고, 혹시라도 이사하는데 필요한 종이박스라도 구할 수 있을까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팔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의 궁핍은 도덕의 궁핍을 낳고 도덕의 궁핍은 인간의 양심과 존엄까지 저렴하게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 노인들은 이기적이다.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대학입시에서도 배려하려 했던 조치들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했던 것도 바로 이들 세대들이다. 심지어 자기 또래들이 죽어나갔는데도 이태원 피해자들에 대해 가장 가차없이 비판적으로 대하는 것도 이들 세대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이 닮지 않았을까.

 

위안부 피해자들이야 누구로부터든 돈만 받으면 된다. 일본 정부가 사과했든, 혹은 책임을 인정했든, 그래서 일본 정부로부터 받는 돈이든 아니든, 아무튼 돈만 받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피해는 회복되는 것이다. 그것을 막는 정의연이 잘못한 것이다. 하긴 그건 4050 2찍 진보들도 공유하는 논리니 그들만의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굳이 일본을 자극해가며 그런 판결을 내릴 필요가 있는가.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났고 당사자들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불어 내가 힘들게 시험쳐서 정규직이 되었는데 하잘것없는 미화원, 경비원, 시설관리원, 급식실 직원들따위가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부당하다. 나름대로 일정한 교육도 받고 힘들고 어려운 근무를 하면서 어차피 직렬이 바뀔 일도 없는 무기직으로 전환되는 것인데도 최저임금에 법으로 정해진 수당 받아서 연봉 4천만원 받는 것도 너무 많이 받는다. 이 새끼들 야간미화원 연봉 4천만원 훌쩍 넘는 거 알면 아주 기절할 지 모르겠네. 

 

아무튼 진짜 읽다 보면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그래서 또 한 편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2030 남성들이 반페미에 빠지게 되었는가? 부화뇌동한 병신들 제외하고는 유시민 작가의 판단이 옳다. 그냥 네놈이 한심해서 여자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남녀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그냥 네가 병신같아서 취직도 못하고, 알바도 못하고, 어디 가서 여자에게 말도 못 붙여 보고, 말만 붙여도 벌레취급당하는 것인데, 그게 다 여자 때문이라 핑계를 대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저따위 대가리속을 가지고 있는 새끼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여 자기 판단에 보니 여자들이 속물일 것이기 때문에 그 남자에 대한 편견 역시 매우 화려하다. 대개 남자주인공들의 복수의 대상이다. 아 진짜 보고 있는 내 눈이 썩을 것 같을 지경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아니었으면 애저녁에 장르소설따위 더이상 읽는 것 포기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내용의 소설들이 너무 많다는게 문제다. 한 사회의 대중문화는 그 사회의 기저를 담는다. 특히 정제된 양식을 포기한 B급 하위문화는 더욱 그런 경향을 가진다. 그런 소설을 쓰는 놈들이나 좋아서 읽는 놈들이나, 그런 거 좋다고 추천하는 놈들이 많으니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 가끔 틈내서 읽는 내 눈에도 뜨이는 것이겠지. 그리고 실제 여기저기서 만나고 이야기해 본 2030의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나는 옳은데 너희들이 틀렸다. 나는 잘났는데 너희들이 잘못했다. 그래서 말한다. 병신 찌질이라고. 어릴 적 표현으로는 찐따뽀대기다. 첩보소설에 제임스본드가 있다면 찌질이에는 찐따뽀대기가 있다.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2찍 2030들은 현정부와 여당에는 절대 분노하지 않는가. 오히려 현정부의 잘못들을 비판하는 것에 적대적이기까지 한가. 그들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놈들 대가리속이 딱 그 수준이다. 부모들 잘못이다. 그래도 그 부모들이 나보다는 윗세대일 것이라 자위하고 싶다. 딸딸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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