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기회가 나의 기회였다면. 저 놈이 누리는 기회가 나의 기회일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온 것이 회귀물일 터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게임회귀물, 혹은 시스템 회귀물들.

 

한 번 살았던 과거이기에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남들이 누려야 했을 것들을 누린다. 기회를 빼앗고 성취를 빼앗는다. 그럼으로써 남들 위에 서게 된다.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인다. 누구에게는 기회를 나눠주고 누구에게서는 모든 기회를 빼앗는다. 나는 그래도 된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가 결국은 사람은 난대로 산다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면 결국 비슷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타고난 때문이다. 이미 아는 상황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비슷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판단을 내려서 망한 인생이라면 결국 언젠가는 비슷한 판단으로 망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특히 회귀물의 주인공들과 같은 병신모지리찌질이들이라면.

 

아마 그래서 더 이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병신이니까. 내가 모지리니까. 내가 찌질이니까. 그러니까 나도 회귀하면 저렇게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기회를 찾아 잘 나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한심한 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더 뛰어나질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회를 탐내는 것이다. 여성의 기회를 욕심내고, 장애인의 기회를 욕심내고, 국가유공자의 기회를 욕심내고, 부모세대의 기회를 욕심낸다.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아 내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기회를 빼앗는데 열중한다. 그러면 그것들이 내 기회가 될 줄 알고. 그를 위해 연대한 대상이 사실상 기득권의 끝판인 60대라는 게 우습다면 우스울 뿐. 그래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아주 오래전 읽은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억울해 하더란다. 다시 살아나게 되면 이렇게는 안 살 거라고. 그래서 염라대왕이 다시 살려주었더니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똑같은 삶을 살다가 다시 죽게 되었다. 

 

타고난 지능이 다르고, 성격이나 성향이 다르고, 느끼는 감정도 서로 다른 것이다. 하물며 평생을 병신찌질이로 살던 놈이 한 순간에 달라질 수 있을까? 그냥 네가 그토록 한심한 주제인 것은 원래 너란 인간이 한심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이 20대 남성들이 주장하는 공정의 실체다. 새삼 기회가 주어진다고 별다른 것이 없으므로 타고난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기회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주제에 자신은 그 빼앗은 기회를 누리려 한다. 자기는 단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모든 것이 시들해지며 장르소설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알게 되었다. 2대남은 어째서 병신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기회를 빼앗으면 그 기회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누리는 기회는 원래 내가 누렸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4050 기성세대의 현실은 자신의 기회가 되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2대남 늬들을은 왜 그 모양 그꼬라지인가.

 

그래서 깽판까지 치는 놈들을 보면서는 우습지조차 않게 된다. 이따위 소설이 인기를 얻고 심지어 추천까지 받는다. 주 소비층을 보면 그래서 더 어이없을 뿐이다. 역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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