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양당제 아래에서 대선이라고 해봐야 당선유력한 후보는 많아야 셋 정도다. 대개는 둘이고, 거기에 깍두기 몇 더해서 서너명 정도가 유력후보라 불리는 정도였다. 그래도 깍두기들도 어느 정도는 득표력도 있고 대권을 노릴만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아니다.


너무 일찍 문재인의 대세가 확정되어 버렸다. 덕분에 반문을 기치로 거세게 따라잡은 안철수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탄핵의 여파로 보수진영 자체가 박살나다시피 하면서 기껏 자유한국당에서 후보라고 내세운 인물이 대중성에서 바닥을 기는 홍준표 정도였다. 그나마 보수유권자들로부터 버림받은 바른정당의 유승민은 이후 자신의 정치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문재인의 집권을 막을 대안이 보이지 않았기에 안철수에게 결집한 표가 그나마 양강구도를 만들며 선거를 재미있게 만들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심상정에게도 대선은 아직 먼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문재인과 안철수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아예 당선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음껏 저 하고싶은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또 각 후보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홍준표는 기왕에 대중성이 부족한 약점을 고려해서 굳이 중도를 잡으려 하기보다 기존의 보수층에 올인하고 있었다. 보수만 잡아도 최소한 선거비보전은 받는 15%를 넘길 수 있고 일단 지금과 같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15%만 넘겨도 대선 이후 자유한국당 내에서 주도권을 쥐는데는 문제가 없다. 유승민은 그런 홍준표와 보수내에서 경쟁하는 입장이었다. 사실 그것이 문제였다. 유승민에 대한 소극적 지지층은 보다 왼쪽의 리버럴에 포진해 있는데 정작 유승민이 선택한 전장은 보다 오른쪽인 홍준표와의 사이에 있는 보수유권자였다. 바른정당은 보수유권자들이 보기에도 단지 기회주의자이고 배신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면 대통령으로서 과연 자격이 있을까? 


심상정도 덕분에 아주 시원하게 문재인을 공격하며 마음껏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굳이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온건한 중도층의 반발을 꺼려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뒤가 없는 말에 속시원해 할 유권자들만을 노리고 그들의 지지를 받으려 한다. 그나마 말에 조심하며 중도층에 신경을 쓰는 것은 유력대선주자인 문재인과 안철수 정도인데, 그 가운데서도 이미 40%라는 안정적인 지지층을 확보한 문재인과 함께 더이상의 실책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미래를 외치는 안철수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원래 미래를 말하려면 심상정처럼 과감하게 뒤를 보지 말고 내질렀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게 중도유권자는 물론 보수와 진보 모두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바로 정치인 안철수가 가진 실체이며 한계이기도 하다. 바로 입까지 떠서 갖다주어도 못먹으면 어쩔 수 없다.


과연 그동안 보수는 보수 혼자만의 힘으로 40%가 넘는 득표를 얻고 있었는가. 기본이 35%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동안 보수정당들이 잘해왔던 것은 야당과의 사이에 있는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때로 자신들의 이념이나 신념과 전혀 상반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중도층의 표만 끌어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과거 보수정당들이었다. 공약만 놓고 본다면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보수정당이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기본적인 표만을 확보하고자 홍준표는 자기에게 불리한 중도층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었다. 아직도 홍준표에게로 가지 않은 안철수의 20%, 그 가운데서도 원래 안철수의 것이었던 10%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홍준표에게로 향할 것이라 여기지 않는 이유다. 이미 자유한국당, 즉 보수유권자 가운데 홍준표에게로 갈 수 있는 표는 모두 갔다. 나머지는 아무리 그래도 홍준표는 아니라는 유권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유승민은 가능성이 없다. 그 뒤에 있는 바른정당마저 대선이 끝나고 남아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보수유권자 가운데 심상정을 선택하는 경우마저 있다. 말이라도 똑부러지게 시원하게 한다. 역시 그다지 책임있는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문재인의 과반을 만드는데 힘을 더하는가. 더 많은 유권자가 투표해서일수도 있고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있어서일수도 있다. 홍준표는 이미 거의 한계고 안철수는 여전히 추락만이 남아 있다. 심상정과 유승민이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표도 한계가 있다. 덕분에 여전히 남는 것은 문재인의 표가 여기에서 더 늘고 줄고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19대 대통령선거는 문재인의 선거였다. 문재인이 얼마의 표를 얻어 당선될 것인가? 말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안철수는 가망이 없고 홍준표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대선이 끝나고 바로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이 얼마나 동력을 가지고 국정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과반이 중요한 이유다. 어떻게 해서든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 홍준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홍준표가 얻는 표야 말로 보수가 자신만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라 할 수 있다. 거기까지가 한계다.


재미있는 선거다. 하긴 역대 대선에서도 정작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 후보들이 최소 몇 명은 되었던 듯하다. 그래도 원하던 것을 얻은 후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후보도 있다. 남는 것은 문재인 하나. 과반이냐? 아니냐? 홍준표는 무시한다. 딱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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