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많은 이들이 최고라 여기던 지휘관은 다름아닌 한고조 유방의 공신 한신이었다. 그야말로 상승불패의 명장으로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고조 유방이 항우와 상대하는 사이 천하를 평정하여 마침내 한왕조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한신조차 팽성에서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항우군에 패주하고 있었고, 해하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싸움을 벌여 초전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공회와 진하가 좌우측면을 공격하여 초군을 혼란케 만든 다음에야 공격하여 겨우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30만이 넘는 대군의 포위를 뚫고 항우가 탈출하면서 빛이 바래고 만다. 항우가 해하변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더 어려운 싸움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원래 사기를 보더라도 항우 생전에 유리한 조건에서 싸움을 벌여 승리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거록전부터 시작해서 대부분 병력이 열세인 상태에서 전투를 치렀고,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 항우 개인의 능력에 힘입어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해하전투 직전에 치러진 고릉전투에서도 10개월 이상 보급이 끊긴 상태에서 대치하면서 병사들이 굶주리고 지친데다, 더구나 퇴각하던 도중 뒤를 추격당해 벌어진 전투였음에도 3만의 초군은 이번에도 10만의 한군을 상대로 거의 절반을 괴멸시키는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해하전투에서 한이 동원한 군사의 규모는 무려 30만 이상, 계포의 구원군이 있었다고 하지만 초군의 규모는 10만이 채 못되는 정도였다. 불리한 조건은 처음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우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한다면 한신의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역사상 최고 명장의 자리는 승자인 한신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항우가 인간을 넘어선 힘의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역발산기개세라는 말 그대로 그냥 힘만 센 바보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라면 그 힘만 센 바보 하나에 수도 없이 패하고 쫓겨야 했던 유방이었다. 유방 역시 그렇게 범용한 인물은 아니었다. 최소한 한신의 평가만 보더라도 10만 정도는 문제없이 지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한신이 합류하기 전에는 유방 자신이 직접 군을 지휘하여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한고조 유방 역시 덕만 있고 능력은 없는 군주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저 힘이 전부인 항우에게 매번 패하면서도 뛰어난 덕망으로 천하의 인재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마침내 승리를 거둔 이상적인 군주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한신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게 싸움을 잘했는데 어떻게 항우는 유방에게 패하고 죽어서도 갈갈이 찢겨 전리품이 되는 신세로 전락했는가. 항우가 유방을 상대하는 동안 천하를 누비며 제후들을 항복시키고 한군의 영역을 넓힌 것이 바로 한신의 역할이었다. 항우는 싸우고 승리하면 끝이지만 한군은 싸워서 이기면 그곳을 자신의 영토로 삼았다. 오히려 싸우고 나면 그만큼 지치고 힘이 빠지는 초군에 비해 싸우면 싸울수록 한군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릉전투나 해하전투에서도 그래서 한군은 더 우세한 병력으로 초군을 압박하여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30만의 병력으로 10만의 초군을 압도할 수 있었던 그것이 한군의 힘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방이 있었다. 역시 한 나라를 세우려면 싸움도 정치의 영역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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