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어른들은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선생님은 어설프게 머리 좋은 놈들이 세상에 가장 큰 해악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맹자는 말했다. 무릇 사람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고,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지킬 수 있어야 비로소 선비라 할 수 있다고. 뭔 말이냐면 사람이 마음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심지어 방문자수며 리플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내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내 직업은 블로거가 아니다. 블로그에 글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 와서 내 글 읽고 리플 달아주는 누구도 내 삶에 아주 작은 도움조차 되지 못한다. 내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도 앞으로 뭔 일을 해서 먹고 사느냐지 여기서 어떤 글을 써서 방문자 끌어모으는가가 아닌 것이다. 바로 첫번째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당연하게 땅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려면 노비를 거느려야 하고, 노비를 거느리려 하면 재물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 아예 농사 자체를 짓지 않으려면 대신 먹을 식량과 생필품을 살 돈이 어디선가는 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도 처가며 형의 가족까지 먹여 살리겠다고 장인을 따라 무예를 배워 무관의 길로 나선 것 아니던가. 그나마 이순신 장군은 무관으로서 길을 이끌어 줄 장인이라도 있었지 그마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한명회가 괜히 능참봉이나 하다가 수양대군 밑으로 들어가 정난같은 걸 일으킨 게 아니란 것이다.

 

실제 조선후기에 들어가면 대부분 선비들은 그저 양반 신분이나 유지하려고 향시 정도나 보았을 뿐 대과에는 아예 응시조차 않는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였었다. 굳이 벼슬살이 하지 않아도 농사 지으면 자기 먹을 정도는 충분히 나오고, 땅도 좀 있고 노비도 좀 있으면 권세는 없어도 유지행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농사지어 충분히 먹고 살며 인근에서 제법 기침도 할 수 있는데 굳이 벼슬 살겠다고 구차한 꼴을 볼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긴 이 무렵 되면 대부분 관직은 한양에 모여사는 이른바 벌열들이 독점하고 있기도 했다. 남산골에서 하는 일 없이 글이나 읽는 허름한 선비들이 늘어난 이유도 그나마 한양을 떠나기라도 하면 다시는 권력의 주변에조차 다가갈 기회가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역사책에 나오는 것처럼 선비가 수틀린다고 관직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고향에 따로 먹고 살 방도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직접 농사지을 땅조차 없는 형편이라면 어찌 감히 그나마 녹봉이라도 나오는 관직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질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단 맛을 봤다면 그래서 더욱 정약용처럼 자식들이 아예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한양을 벗어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 더러운 꼴 안 보고 그냥 내 땅에서 내가 벌어 먹으며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 그게 또 사대부다. 물러나면 물러난 대로 먹고 살 길이 있고, 관직에 나가면 나가는대로 권세가 따른다. 관직이 없다고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관직에 나가면 권력을 가지고 국가단위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원래 그나마도 없었거나 있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경우들일 것이다. 어떻게든 스스로 권력을 가지거나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주변에 머물며 그 찌꺼기라도 받아먹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생활도 되고 자기 욕심도 채울 수 있다. 역사상 간신이라 불리는 부류들인 것이다. 탐관오리라 불리는 놈들이 대개 여기에 속한다. 권력을 위해 글을 팔고, 지식을 팔고, 나중에는 양심까지 판다. 하긴 최근에도 연구비를 대는 스폰서의 입맛에 맞게 데이터까지 조작해가며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경우가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자연과학의 논문에서조차 그렇다.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특정 문중의 영향력에 사료가 왜곡되어 잘못된 사실이 진실처럼 통용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으니 박사학위도 땄을 텐데 환경학자로서 4대강이 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며 앞장서 주장하던 학자들을 떠올려 보라.

 

어쩌면 현대민주주의가 가지는 또 하나 모순일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이란 다른 이들과 같은 그저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가운데 선출되어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나면 다시 시민으로 돌아간다. 원래 자기 일을 하다가 선출직인 대통령이 임명하면 장관도 되고 청장도 되었다가 역시 임기를 마치면 다시 원래의 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현대가 너무 고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계속 그 일만을 맡아 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가 생겼다. 권력이 직업이 된다. 사회적 직위가 곧 자신의 생업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과연 사심없이 오롯이 국가와 시민만을 위해 공공에 봉사하는 공직자라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별 되도 않는 소리를 길게 지껄이는 이유는 어느 석사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강연도 열심히 다니시는 것 같다. 여기저기 칼럼도 꽤 연재하는 것 같다. 역시 돈이 된다. 어쩌면 어렵게 얻은 대학교수 자리도 박차고 나온 것이 온전히 자의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는지. 사실 보수는 돈이 된다. 진보는 돈이 되지 않는다. 당장 유튜브만 봐도 보수채널은 슈퍼챗만 한 번 방송할 때마다 천 만 단위로 쏘아지고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돈 바라보고 보수유튜버로 전향하신 분도 계신다. 자기 생업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생업이 없으면 K값 같은 것이나 떠들면서 후원금 장사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정의당도 그래서 걱정이네. 정의당이 애매하다는 것이 정치를 직업으로 계속 하기에는 정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이란 것이 없고, 그렇다고 어차피 당선도 못될 것 취미로만 하기에는 따로 대단한 본업을 가진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활동가 진보운동가라는 게 사실 그리 돈이 되지 않는다. 홍세화도 돈을 벌려면 강연회에도 가고 책이나 글도 팔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뭔가 그럴싸한 것이 필요하다. 작년의 정의당과 올해의 정의당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작년의 정의당은 뭔가 여유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 정의당 비례대표들은 국회의원 그만두면 어디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결론은 자기 하고 싶은 말 마음껏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려면 그만한 물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먹고 살 무언가가 있어야 한결같은 마음을 지킬 수 있다. 먹고 사는 게 불안하면 마음도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리 추워했던 것일까. 그래서 역시 글은 취미로나 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아마 이전 다른 블로그도 봤으면 알겠지만, 아니 특정 매체에 기고할 때조차 양식은 지켜주되 내용은 항상 내 마음대로였었다. 거기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산 적이 없다. 심지어 어차피 최저임금 일자리 아무데나 가도 그 정도는 받는다는 마음에 전직장에 대해서도 그다지 애정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생쥐스트도 혁명의 끝자락에 모든 프랑스 시민을 위해 땅을 나누어주려 했던 것일 테고.

 

먹고 사는 게 불안해지면 그리 글도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혹은 다른 욕심이 마음 한 구석에 깃들기 시작하면 생각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변절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미혹의 순간에 자신의 한결같은 마음이 흔들리면 새롭게 찾은 믿음을 흔히 변절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오로지 의지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매우 드물다. 사람이 현실을 딛고 사는데 어찌 의지만을 가지고 살 수 있겠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돈 많은 보수진영에서 이들을 좀 잘 챙겨주기 바란다. 덕분에 김지하 시인도 제법 먹고 사는 것 같지 않은가. 진보진영에 계속 붙어 있었으면 그다지 좋은 꼴 보기가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조차 의석만 많았지 돈은 미래통합당보다 없다. 잘 먹고 잘 살기를. 현실보다 더 큰 명분은 없다. 아닌 척 하는 게 문제일 뿐. 너무 당연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