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 사람을 지키려다 나머지를 모두 적으로 돌리고, 한 사람을 버림으로써 나머지를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광해군과 정조가 다른 점이었다. 광해군은 끝까지 이이첨을 버리지 못했지만 정조는 홍국영마저 단호히 내치고 있었다. 이이첨을 비롯한 대북 말고는 믿을 신하가 없었던 광해군에 비해 정조는 홍국영을 죽이더라도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자신의 신하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그렇게 만들고 있기도 했었다.

 

훨씬 더 강대한 세력으로 몇 번이나 싸움에서 이기기까지 했음에도 항우가 유방을 이기지 못한 이유 역시 자신이 일어난 본거지와 자신을 에워싼 공신들을 차마 버리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영포도 팽월도 한신도 진평도 모두 내치고 쓰지 않았다면 그 자리를 누가 대신하고 있었을까? 종리매나 계포 같은 뛰어난 측근들도 정작 항우 아래에서 중요한 관직은 맡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몇 번이나 항우를 배신했던 항백이라는 일족의 인사가 그들의 윗줄에 앉고는 했었다. 그에 반해 유방의 경우는 딱히 근거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공신에 구애받지도 않았었다. 항복해 온 항우의 부하들조차 모두 받아들여 새로운 왕조의 관리로 삼았었다. 항우는 팽성의 측근들만의 군주였지만 유방은 중원이란 천하 전체의 황제였었다. 그래서 패왕이고 그래서 황제인 것이다.

 

심복이란 그런 점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들에게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창업군주들이 패업을 이루고 나면 가장 먼저 이들 심복들부터 정리하려 하고 있었고, 실제 그런 군주들의 왕조가 훨씬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이어지고는 했었다. 큰 일을 하려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측근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천하를 진정으로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곁을 비워두지 않으면 안된다. 측근들이 자신의 주위를 채우고 있다면 더이상 천하는 자신을 향해 귀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나누어 줄 것이 있어야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찾아와서 공을 세우고 충성을 바치려 할 것이란 뜻이다. 하긴 그래봐야 검찰총장이던가.

 

유시민의 평가가 옳다. 다만 방향이 조금 다르다. 한 조직의 수장이 되려면 단지 자신의 측근들에만 기대려 해서는 안된다. 검찰이 단일한 조직도 아니지 않은가. 특수부가 있다면 공안부도 있고, 형사부도 있고, 공판부도 있다. 특수부가 대부분 승진과 요직을 독점하고 있지만 공안부도 만만치 않고, 숫적으로는 형사부와 공판부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특수부만으로 주위를 채워 그들에게만 의지해서 검찰이란 조직을 이끌어나가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그들 특수부출신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기 위해서 이미 윤석열은 작년 7월 수많은 다른 부서 검사들이 스스로 사표를 쓰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로소 추미애 장관이 임명되고 검찰총장을 인사에서 배제하고 나서야 소외되었던 다른 부서 검사들이 겨우 승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머지 검사들이 아무리 검찰개혁을 저지한다는 명분을 앞세운다고 온전히 검찰총장을 따르려 하겠는가 말이다.

 

자신의 측근들을 위해 다른 측근들을 앞세워서 이미 상당한 지위에 이른 다른 검사들을 공개적으로 망신주기까지 한다. 언론과 손잡고 아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지경으로까지 몰아붙이려 한다. 그렇다고 자신은 깨끗한가. 장모와 아내와 관련한 혐의들을 애써 검찰조직의 힘을 빌어 덮으려 했고, 이번에는 가족도 아닌 최측근의 혐의를 덮기 위해 다시 한 번 검찰총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려 했다. 검찰은 자신의 사조직으로 여기는 것이다. 검찰이란 조직을 위한 검찰총장이 아닌 검찰총장인 자신을 위한 검찰이란 조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선 검사들이 온전히 그런 검찰총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충성을 바치려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제 곧 인사철이다. 대부분 인사가 바로 7월에 이루어진다. 그 7월의 인사에서 무려 60명이 넘는 검사들이 윤석열의 측근들을 위해 스스로 옷을 벗고 검찰을 떠나야만 했었다. 직장생활이란 승진과 월급이 전부다. 때가 되면 직급도 오르고, 자기가 한 일 만큼 월급도 올라야 한다. 검사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검사생활 오래 했으면 부장검사 차장검사 거쳐서 검사장까지는 달아 봐야 하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인사권자에게 제대로 인정받는다면 다음 검찰조직의 수장은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윤석열이 중요할까? 그런 결정을 내릴 인사권자가 중요할까? 이제와서 윤석열에게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할 이유가 검찰조직의 누구에게 남아 있을까?

 

오죽하면 경향마저 윤석열을 까는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역시 전에 없이 검언유착과 관련해서 윤석열 검찰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고 있는 중이다. 내부 빨대가 입장을 바꿨다는 뜻이다. 아니 정확히 장래성 있어 보이는 다른 빨대로 갈아탔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윤석열은 끝났다. 윤석열 주위도 끝났다. 그러니 앞으로도 검찰과 계속해서 협력관계를 이어가려면 새로운 미래권력을 찾아야만 한다. 조중동은 의리라도 있다. 한겨레, 경향은 그조차도 없다. 하지만 덕분에 사실을 읽게 된다. 윤석열은 끝났다. 이미 완전히 끝났다.

 

검찰조직은 더이상 윤석열을 지켜주지 않는다. 윤석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윤석열을 희생양삼아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는 이들도 벌써 적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달라진 보도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전과 같지 않다. 검찰조직이 전혀 전과 같지 않다. 그런 윤석열에게 정무감각이라. 정말 기대가 된다. 보수정당의 대선후보로 윤석열이 출마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 지. 오히려 바라는 바다. 굳이 대선후보급으로 키워 줄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마다할 정도로 위협적인 대상도 아니다.

 

사실 박근혜가 저질렀던 실수이기도 하다. 정작 대통령이 되고 그동안 새누리당에서 충실히 자신을 위해 움직였던 인사들마저 모두 내치고 자신이 직접 고른 최측근들로만 주위를 채우고 있었다. 당까지 그런 인사들로만 채우려 하고 있었다. 박근혜가 탄핵의 위기로 내몰렸을 때 바로 그렇게 내쳐지고 소외되었던 이들이 탄핵에 함께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다. 아마 아직까지 윤석열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만. 

 

한동훈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검찰조직 전체를 움직인다. 전례없는 조치들로 검찰의 원칙과 질서마저 뒤흔들고 있다. 한동훈과 검찰조직 전체와 맞바꾸려는 듯한 모양새다. 검찰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이건 차라리 배신이다. 검찰총장이 검찰 전체가 아닌 한 사람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전부터도 측근 몇 명을 위한 검찰총장이기만 했었다. 결국 검찰조직이 등돌리면 한동훈마저 살리지 못하게 된다. 그게 윤석열이다. 조국을 욕하게 되는 이유다. 이딴 게 검찰총장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