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하이텔 시절 우연히 논쟁에서 같은 편이 되며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세상에 다시 없을 원수가 되었다. 계기는 개고기와 단군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때 처음 한국에도 식민지근대화론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주장을 그로부터 몇 년 뒤 이영훈을 계기로 자칭 진보들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며 다시 한 번 듣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반도인에게 축복이었다.

 

당시 그 사람이 일제강점기를 긍정한 이유는 하나였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개신교를 전도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더이상 탄압받지 않고 개신교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개신교를 통해 자유와 평등과 박애와 같은 서구의 근대이념이 한반도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나아가 하필 여성이었기에 여성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된 계기도 일제강점기 개신교가 남녀평등의 가치까지 전했기 때문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하긴 김활란이나 모윤숙, 박마리아 등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의 진보와 민주화는 개신교가 주도했다. 개신교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의 진보와 민주화는 아예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선교가 자유로워진 일제강점기야 말로 대한민국의 진보와 민주화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에 진보도 민주화도 없었을 것이다. 어째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제국주의 침략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긍정할 수 있는가 처음으로 알게 된 계기였었다. 그리고 바로 몇 년 뒤 포스트모더니즘의 탈민족주의까지 더해서 근대 이전 민족이 없었으며 따라서 민족에 의한 민족에 대한 지배도 억압도 착취도 없었다는 새로운 논리를 접하게 된다. 굳이 일본군 위안부라 했더니 쌍욕을 쳐박으며 비난하던 입으로 일본군 성노예의 책임은 일본이 아닌 그에 부역한 한국 남성들에 더 크게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를 들으면서였다.

 

일제강점기가 계속되고 있었으면 당시 세계 2위이던 일본의 국민으로서 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가끔 이름이 들려오고는 하는 자칭 진보논객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대한민국의 정통은 실체도 없는 상해 임시정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반도를 지배했던 조선총독부에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 아닌가?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건국되면서 강제로 주입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의 시작조차 사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한두 사람이 아닌 자칭 진보들이 이영훈 논란을 계기로 총궐기해서 한꺼번에 떠든 말들을 정리한 것으로 내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권 당시 문창극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할 말 했구나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겠는가.

 

민족은 없다. 민족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민족에 의한 민족에 대한 지배도 억압도 탄압도 착취도 없고 단지 권력과 계급과 개인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국가 대 국가, 민족 대 민족의 문제가 아닌 개인 대 개인, 혹은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이해해야만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피지배민족의 여성들이 약탈당한 것이 아닌 단지 주류남성에 의해 주변부여성의 성이 착취당한 사건인 것이다. 즉 일본군 성노예나 영등포588이나 구조적으로 전혀 다를 것 없는 사건이란 것이다. 피해자들을 납치하고 유인하고 착취하는데 동조한 조선인 남성들이 문제이지 일본 정부나 일본 민족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자칭 진보들의 사고구조를 이해하려면 이같은 저들의 역사인식부터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째서 저들이 저토록 정의연에 대해 적대적으로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을 재평가하기 위해 필사적인 것인가. 진보의 주류로 자리한 여성주의자들은 어째서 박근혜를 지지하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까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을 들고 있었는가. 첫째는 개신교고, 둘째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유럽의 탈민족주의에 대한 무분별한 수입일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도 없고 국가도 없고 대한민국이란 정체성도 없다. 그런 가운데 심지어 독도문제마저 쇼비니즘의 일환으로 치부하며 일본과 공유하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오게 된다. 폭넓은 지지를 받았었다. 영토도 의미없다. 주권은 필요할까?

 

정의당이며 한겨레며 자칭 진보들이 쉽게 자칭 보수들과 일체화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더구나 여성주의가 진보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사실상 같은 뿌리를 공유한 형제나 자매와 같은 관계가 되고 말았다. 여성주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라. 자칭 진보에서도 주류였던 개신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라. 지금이야 개신교라면 수구를 떠올리지만 90년대까지도 많은 진보운동을 개신교회가 주도하고 있었다. 개신교에 뿌리를 둔 진보인사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여성주의를 매개로 저들은 연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민주당내 자칭 여성주의 여성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저들에게는 민족도 국가도 이념도 정당도 없다. 원래 그런 무리들인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성주의에서 지령이 내려지면 바로 등돌려서 문재인 대통령 탄핵에 나설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 여성주의자들인 것이다. 아무리 과반을 자신한다고 어떻게 당시 미래통합당과 정의당의 심상정은 탄핵을 자신하고 있었겠는가. 총선이 끝나고 김재련을 필두로 여성주의 진영이 민주당을 상대로 총궐기한 상황을 돌이켜 보라.

 

결국 자신들의 뿌리를 찾은 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어디서 나왔는가. 한국의 자칭 진보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거스르고 거스르니 결국 나오는 뿌리가 헤어진 형제까지 다시 만나게 만든다. 박원순과 윤미향을 상대로 세상에 다시 없을 연대를 보여주던 자칭 진보와 자칭 보수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것이 여성주의이고 한국 진보의 정체란 것이다. 평소 진중권의 역사관에 비추어 그의 행보도 그래서 아주 이해가 안되지는 않는다.

 

한 번 썼던 것 같으니 결국 다시 재탕이다. 원래 한국 자칭 진보의 뿌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민족을 강조하던 백기완 같은 분들은 거의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더구나 여성주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진보는 더욱 원래의 뿌리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은 꺼려해도 보수정당 2중대라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와도 같다. 여전히 잘도 목소리도 크게 잘 내고 있는 것 같더만. 오랜 기억을 떠올린다. 역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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