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도 대부분 고급차는 유럽에서 만들어진다. 20세기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최고의 장인들이 정교하게 만든 유럽의 고급차는 미국에서도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단순한 구조의 T카는 이후 자동차산업은 물론 인류의 삶까지 바꾸고 있었다. 대량생산에 필요한 것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만이 만들 수 있는 고성능이 아닌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생산성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차들은 성능이 뛰어났다. 티거와 판터는 동시대 연합군의 어느 전차보다도 우수한 성능을 보이며 대부분 전장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만큼 비쌌다. 손도 많이 갔다. 그보다 성능도 떨어지고 여러가지로 허술한 부분이 많았던 T34와 셔먼이 수 만 대 이상 생산되는 동안 그나마 가장 많이 생산된 판터마저 고작 수 천 대 생산되고 말았을 정도였다. 들어가는 부품도 많고, 구조가 너무 정교하다 보니 생산도 번거롭고 수리하는데도 품이 많이 들었다. 무기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더구나 2차세계대전 같은 소모적인 전장에서는 더욱.

 

문득 일본의 장인정신과 한국인 특유의 먹고사니즘을 비교해 보게 되는 이유다. 일본인들은 뭐 하나를 만들어도 완성도를 높이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한국사람들은 말끝마다 달고 사는 것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도움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하던 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한 편으로 개방적이고 한 편으로 무책임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간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겠다. 그보다는 당장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는 것이 더 취직에 도움이 될까.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될까. 아마도 그런 마음가짐이 지금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한국인 특유의 낙천주의라 생각한다. 달리 신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는 게 뭐 별 거 있겠는가. 원래 다 거기서 거기고 대단히 특별한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래서 시샘도 강하다. 나도 저럴 수 있는다. 나 역시 저래도 되는 것인데. 그래서 상승에 대한 동기도 큰 만큼 좌절도 실망도 크다. 한국 사회가 역동적이라 말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한다. 해야만 한다면 한다. 거기에 다른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냥 앞에 길이 보이면 그 길을 따라 주욱 간다. 돌아보는 법도 중간에 멈춰서는 법도 없다.

 

너무 생각이 많다. 이래도 될까? 저래도 좋은 것일까? 그래서 한국 기업처럼 망할 각오로 덥벼드는 모험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기존에 이미 있는 기술을 더욱 고도화시키려 할 뿐 아무튼 될 것 같으니 한 번 덤벼보자고 달려드는 무모한 짓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그래서 망하는 경우도 많다. 괜히 되도 않게 규모를 키우겠다고 인수합병에 나섰다가 빚더미에 올라 망하는 기업들도 있고, 다른 경쟁기업 눌러 보겠다고 단가를 후려쳤다가 그게 부담이 되어 주저앉는 기업도 있다. 그래도 생각한다. 혹시 되지 않을까? 혹시라도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긴 아무리 그래도 미국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망해나가는 기업 만큼 더 많은 기업이 생겨나며 미국의 경제를 떠받친다.

 

어쩌면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미국처럼 자연스럽게 한계에 이른 기업들이 도태될 수 있는 환경인지 모르겠다. 기업도 한계에 이르러 경쟁력을 잃으면 자연스럽게 망하는 것이고, 그런 망해나간 기업의 잔해 위에서 새로운 기업들이 생겨난다. 그만한 충분한 기질과 자질을 한국인들은 가지고 있다. 그랬으니까 저 먼 유라시아 대륙을 지나 이곳 대륙의 끝 한반도까지 선조들은 내려왔을 것이었다. 어떻게든 되겠거니. 아무렇게든 되면 되는 것이겠거니. 그래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도 거부감이 없다. 결국에 다른 나라의 문화나 기술을 받아들여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는 일본에 비해 그냥 한국인들은 거기에 자신을 맞춰 버린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자신들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김밥과 같은 것일 게다. 원래 깁밥이란 일본의 노리마끼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심지어 70년대 초반까지 김밥을 만들 때는 일본의 노리마끼처럼 초밥을 만들어 김으로 싸는 방식이 더 보편적이었었다. 하지만 입맛에 맞춰 햄도 넣고, 시금치도 넣고, 그러면서 그에 맞게 밥도 참기름을 넣어 향을 내면서 노리마끼와는 전혀 음식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당연히 산적에도 햄이며 맛살이 들어갔을 리 없지만 당장 파는 것 가운데 구하기 쉽고 맛도 괜찮으니 그냥 당연하게 넣는다.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 김치찌개에도 돼지고기 대신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 치즈 등을 넣으면 부대찌개가 되는 것이다. 하긴 소시지에 계란옷을 입혀 부치는 것은 분명 한국의 전에서 유래한 한국만의 조리방식일 것이다. 어디서 유래한 음식이 아닌 그 자체가 아닌 한국만의 고유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로 한국이란 나라의 미래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바쁘게 변하고 초단위로 달라지는 미래사회에 있어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의 나라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들이 아니겠는가. 일본과도 중국과도 다른 한국인들만의 독특한 기질이다. 그런 기질이 폐허 위에서 지금의 일본과도 경제적으로 맞설 수 있는 강국으로 일으켜세우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오로지 한국만이 군사독재와 맞서서 피로써 민주주의를 쟁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마저 그래서 대부분 국민들은 우습게 여긴다. 과연 세계 어느 나라가 이토록 오만할 정도로 자신의 정부를 낮추어 볼 수 있는가.

 

침체를 넘어 퇴보를 거듭하는 일본의 사회와 경제를 보면서 더욱 들게 되는 생각이다. 더욱 미래사회에서 한국이 일본도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이전까지 일본의 장점으로 여겼던 것들이 단점이 되고 우리의 단점으로 여겼던 것들이 장점으로 뒤바뀐다. 그냥 망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일본이 경제제재를 가한다 하자 바로 극복할 수 있다 덤벼서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일본인들은 돌파력이라 표현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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