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차마 옮겨 적는 것조차 너무나 끔찍한 잔학행위가 하마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과연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인간이기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복잡한 머리와 답답한 가슴을 안고 기사를 읽는데 문득 흥미로운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당사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일 터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밀어버린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가 되는가? 전혀 얼굴도 본 적 없는 아이들의 죽음 때문에 무려 수 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초토화하고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끔찍한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이 그렇게까지 인식을 비약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마땅히 그 이상 되돌려주는 것이 옳다. 나아가 이런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짓들을 저지른 자들이라면 그 이상의 댓가를 치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식을 조금 더 확장해 보자. 그렇게 죽은 아이들이 내 형제고, 내 친구고, 내 이웃이고, 내 자식이다. 그런 죽음들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순간 지켜봐 왔었다. 그렇다면 그 당사자에 대한 감정이 어떻겠는가?

 

팔레스타인과 식민지 조선을 비교하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내몰리고 내쫓긴 세월이 벌써 80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나마 대한제국 황실의 무능으로 인해 큰 무력충돌없이 침탈되었던 조선과 달리 팔레스타인은 전쟁까지 직접 치렀었다. 그래도 이제는 자기 영토고 자기 백성이라고 어찌되었거나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동화시키려 했던 구 일본제국과 전혀 다르게 이스라엘은 또한 철저히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리하여 박해하고 차별했었다. 크게 문제만 없으면 살던 곳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살아도 크게 상관치 않았던 것이 식민지 조선이었다면 이스라엘은 아예 팔레스타인인들의 먹고 살 길마저 막아 버렸다. 그 감정이 과연 식민지 조선인들과 같겠는가?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굳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그래야 할 정도로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이 심화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인 전체가 아닌 일본인이 조선과 조선인에 저지른 행위에 아직은 주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대로 식민지지배가 50년, 60년, 그 이상 이어졌어도 여전히 그럴 수 있었을까? 더구나 당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자금도 무기도 항상 태부족이었다. AK-47을 현대의 죽창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RPG-7을 알라의 요술봉이라 칭송하며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당장 자신들을 위협하는 일본군과 헌병, 경찰들을 상대로 쏠 한 발의 총알조차 아쉬운 상황이었다. 폭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체코 용병들이 러시아를 탈출하며 흘러들어온 무기가 아니었으면 김좌진조차 청산리에서 화승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기껏 무관학교를 설립하고서도 훈련할 총기가 없어서 목총으로 입으로 소리내어 가며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처지였다. 그런데 그 귀한 무기를 민간인을 상대로 쓰자고? 돌았냐는 소리가 바로 나온다. 한 마디로 하마스가 저리 민간인을 상대로도 지랄할 수 있는 이유는 무기와 인력이 그만큼 넘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배때지가 부른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하마스처럼 돈과 무기, 그리고 군사훈련까지 지원해주는 우방이 있었다면 어쩌면 역사란 모르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단순비교는 절대 무리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1차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거의 항상 아무 이유라도 있으면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구역을 공격했고,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살던 곳에서 내쫓았다. 그나마 처음 팔레스타인들이 내몰려 살았던 지역조차 날이 갈수록 좁아지며 환경은 열악해지고 그나마 먹고 살 최소한의 방도조차 없이 생존의 위협마저 느껴야 했다. 이렇다 할 산업이랄 것도 없이, 최소한의 인프라조차 없는 채로 하루하루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을 걱정하며 죽어가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을 지켜봐야 했었다. 그런 세월이 80년이면 과연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감정이 어떠하겠는가? 그렇다고 여타 다른 문명국가들처럼 그로 인한 감정을 문명인의 방식으로 세련되게 표출할 수 있게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꾸란이나 읽고 외울 뿐 그나마 존재하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교육체계마저 무너진 지 오래다. 당장 이스라엘이 심심하면 백린탄을 터뜨리는 곳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학교와 병원이었다. 그래서 야만인 것이다.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분노가 증오라는 감정으로 일그러지도록 문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폭력 속에 방치되었으니.

 

아마 그래서 지금 하마스의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혹해하고 있을 것이다. 저러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저와 같은 행동은 너무나 어리석고 무모한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하마스는 저럼 뒤가 없는 사람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는가? 또한 어째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저같은 인간을 포기한 듯한 과격한 행위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가? 간단하다. 말했듯 팔레스타인의 대부분 성인들은 그동안의 가혹한 감금생활로 인해 제대로 된 문명화의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계속되는 야만의 폭력 속에서 더욱 증오라는 감정에 매몰되어 버렸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제 자신의 원수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때 그들의 머릿속에 미래라는, 혹은 장래라고 하는, 또는 전략이나 계획과 같은 거창하고 복잡한 생각이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말 그대로다. 폭주인 것이다. 저들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분풀이, 말 그대로 복수다.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 왔던 증오를 마음껏 풀어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자신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행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 지 전혀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저런 너무나 끔찍한,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던 이들마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행위들이다.

 

지금 팔레스타인 문제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동안 쌓여 온 증오가 너무 크다. 너무나 뿌리깊다. 더구나 그것은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일 터다. 팔레스타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 역시 그동안 적지 않게 당해 온 것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어진 일방적인 승리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우월감마저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자신은 오로지 피해자라 여기는 팔레스타인의 좌절과 열등감이 자신들은 보다 우월한 존재라 여기는 이스라엘의 선민의식과 만난다. 여기에 역사가 더해진다. 이것을 누군가 가운데서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동안 그런 역할을 한 주체가 없었다. 미국도 소련도 중국도 그저 그런 상황을 이용하려 할 뿐 근본적인 해결에는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가 이런 막나가는 상황인 것이다. 오늘 복수만 할 수 있으면 당장 내일 죽더라도 아무 여한이 없다.

 

전혀 상관없는,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들의 죽음에 수 백만의 고통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다. 그런 참혹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죽었으니 팔레스타인 사람 전체가 죽고 고통받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 당사자도 아닌 제 삼자다. 당사자가 되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너무나 순수한 감정이 내 감정마저 흔들었다.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슬픈 것인가. 악마라는 단어에 어째서 슬픔이란 뜻이 숨어 있을까?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약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슬프다.

 

더불어 그러면 어째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인들 뿐만이 아닌 다른 외국인들마저 무차별로 공격하는가. 과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채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80년을 이어갔다고 생각해 보라. 하긴 일본의 조선합병을 승인해주고 식민지지배를 내내 지지해주었던 미국의 뜻을 따라 다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잊으려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는 할 터다. 그래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저들이 막나가는 이유를 동의는 못하더라도 왜 그러는가 알 수는 있게 된다. 저들의 행위와 별개로 보다 근본적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다시 평화롭게 자유로운 삶을 누리며 문명의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고타마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출가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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