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야에서 남하하는 조조군을 피해 도망치다가 당양에서 박살난 뒤 유비군에 남은 것이란 고작 강하라는 작은 고을 하나와 1만의 병력이 고작이었다. 그 몇 배의 세력을 가진 손권조차 유표군을 흡수하고 스스로 백만이라 칭하던 조조군을 상대로 항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비는 그럼에도 항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조조에 대항할 방법을 찾았고 결국 노숙을 만나 손권과 동맹을 맺기에 이르렀다.
유비의 선조인 유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구헌날 항우만 만나면 깨지고, 그때마다 많은 병사와 신하, 심지어 가족마저 항우에게 인질로 잡혀야 했었다. 과연 항우를 상대로 자신이 이길 수 있을까? 저 강대한 항우를 상대로 자신이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버텨야 한다. 그것은 당위다. 아마 항우가 아닌 유방이었다면 해하에서 크게 졌다고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마침내 언젠가 이길 수 있을 것임을,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함을 믿고 최악의 순간에조차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악을 하고 있었다. 저 유명한 항우에 쫓기며 수레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자식들을 내던진 일화는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리더이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 오로지 나여야 한다. 나여야만 할 수 있고 바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도 된다면 굳이 리더라 부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때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시킬 수 있으면 당장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고, 유종은 기꺼이 조조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며 따르는 신하라기보다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유비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자신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유방은 그래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유비 한 사람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두의 뜻이 꺾이는 것이다. 유방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모든 이들의 꿈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라면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항상 최선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고 그를 믿고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면 리더가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남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한말 고종에게도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종은 자신을 위한 가장 안전한 길만을 선택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위험부담이 있고 어려울 것 같은 길은 굳이 가려 하지 않았다. 두렵기 때문이다. 자칫 실패할 경우의 결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시기 크게 한 걸음을 내딛기보다 오히려 뒤로 물러서기를 선택했었다. 안타까운 것이다. 물론 대책없는 낙관과 긍정은 무모함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러나 아무 대책이 없더라도 결국 아무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무모한 길을 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안좋은 것은 실패가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닌 성공만을 목표로 끝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지인 것이다.
고작 12척만의 전선으로 울돌목을 막으려 출진해야 했던 이순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과연 그라고 두렵지 않았을까? 칠천량에서 크게 승리하고 기세를 올려 진격해 오는 수 십 배의 적과 맞서 싸우며 아주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길 수 있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조선의 수군에는 자신이 있고 자신의 휘하에는 12척의 전선이 있다. 그것은 자신감이라보다 신념이다. 이길 수 있어서라기보다 이겨야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겨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길 수밖에 없다. 설사 지더라도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어차피 이대로 물러나더라도 지는 것은 마찬가지고 그때는 그나마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그 절망적인 싸움에도 자신을 가지고 군사들을 독려하며 나설 수 있었다.
회담이 결렬된 것이야 자기들 사정이다.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의 합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당장 합의가 성사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아주 작은 빌미라도 남았으면 그것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아직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 가능성을 지펴 살려야 한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이, 대한민국 정부가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다른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협상당사자인 김정은과 트럼프가 바라지 않아도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당위인 것이다. 고작 한 번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우리들 자신의 사명인 것이다. 고작 한 번 실패했다고 실망하고 좌절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우리들 자신의 목표인 때문이다.
다시 힘을 얻었다. 내가 너무 쉽게 실망했다. 너무 쉽게 포기하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리더가 되지 못한다. 너무 겁이 많고 염려가 많다. 머리라도 좋으면 참모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니 그저 싸우다 죽는 병사132나 376 정도나 맡을 밖에.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고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어내겠다. 리더이기에 반드시 필요한 태도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가지고 현재를 낙관하며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대통령 문재인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할 테지만. 그러면서도 신중할 때는 신중할 줄도 안다는 점은 리더로서 분명 큰 강점일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도 여론의 반응이 안좋으니 그토록 비판하던 SOC투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실망하고 절망하기엔 이르다. 미국과 북한의 태도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나마 밤새 행복회로를 마음껏 불태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제는 문재인만 믿어야 한다. 다시금 두 정상을 협상의 테이블에 앉히고 한 번 결렬된 만큼 더 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차라리 전쟁을 선택해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비핵화와 평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치다. 나 자신의 생존과도 바로 이어지는 절박한 목표다. 지금 대통령이 문재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불과 하루만에 다시 시작해야 함을 말해 줄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바를 반드시 이룰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 마디일 것이다.
유비의 선조인 유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구헌날 항우만 만나면 깨지고, 그때마다 많은 병사와 신하, 심지어 가족마저 항우에게 인질로 잡혀야 했었다. 과연 항우를 상대로 자신이 이길 수 있을까? 저 강대한 항우를 상대로 자신이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버텨야 한다. 그것은 당위다. 아마 항우가 아닌 유방이었다면 해하에서 크게 졌다고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마침내 언젠가 이길 수 있을 것임을,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함을 믿고 최악의 순간에조차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악을 하고 있었다. 저 유명한 항우에 쫓기며 수레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자식들을 내던진 일화는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리더이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 오로지 나여야 한다. 나여야만 할 수 있고 바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도 된다면 굳이 리더라 부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때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시킬 수 있으면 당장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고, 유종은 기꺼이 조조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며 따르는 신하라기보다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유비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자신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유방은 그래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유비 한 사람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두의 뜻이 꺾이는 것이다. 유방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모든 이들의 꿈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라면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항상 최선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고 그를 믿고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면 리더가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남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한말 고종에게도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종은 자신을 위한 가장 안전한 길만을 선택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위험부담이 있고 어려울 것 같은 길은 굳이 가려 하지 않았다. 두렵기 때문이다. 자칫 실패할 경우의 결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시기 크게 한 걸음을 내딛기보다 오히려 뒤로 물러서기를 선택했었다. 안타까운 것이다. 물론 대책없는 낙관과 긍정은 무모함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러나 아무 대책이 없더라도 결국 아무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무모한 길을 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안좋은 것은 실패가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닌 성공만을 목표로 끝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지인 것이다.
고작 12척만의 전선으로 울돌목을 막으려 출진해야 했던 이순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과연 그라고 두렵지 않았을까? 칠천량에서 크게 승리하고 기세를 올려 진격해 오는 수 십 배의 적과 맞서 싸우며 아주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길 수 있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조선의 수군에는 자신이 있고 자신의 휘하에는 12척의 전선이 있다. 그것은 자신감이라보다 신념이다. 이길 수 있어서라기보다 이겨야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겨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길 수밖에 없다. 설사 지더라도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어차피 이대로 물러나더라도 지는 것은 마찬가지고 그때는 그나마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그 절망적인 싸움에도 자신을 가지고 군사들을 독려하며 나설 수 있었다.
회담이 결렬된 것이야 자기들 사정이다.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의 합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당장 합의가 성사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아주 작은 빌미라도 남았으면 그것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아직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 가능성을 지펴 살려야 한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이, 대한민국 정부가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다른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협상당사자인 김정은과 트럼프가 바라지 않아도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당위인 것이다. 고작 한 번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우리들 자신의 사명인 것이다. 고작 한 번 실패했다고 실망하고 좌절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우리들 자신의 목표인 때문이다.
다시 힘을 얻었다. 내가 너무 쉽게 실망했다. 너무 쉽게 포기하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리더가 되지 못한다. 너무 겁이 많고 염려가 많다. 머리라도 좋으면 참모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니 그저 싸우다 죽는 병사132나 376 정도나 맡을 밖에.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고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어내겠다. 리더이기에 반드시 필요한 태도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가지고 현재를 낙관하며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대통령 문재인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할 테지만. 그러면서도 신중할 때는 신중할 줄도 안다는 점은 리더로서 분명 큰 강점일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도 여론의 반응이 안좋으니 그토록 비판하던 SOC투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실망하고 절망하기엔 이르다. 미국과 북한의 태도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나마 밤새 행복회로를 마음껏 불태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제는 문재인만 믿어야 한다. 다시금 두 정상을 협상의 테이블에 앉히고 한 번 결렬된 만큼 더 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차라리 전쟁을 선택해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비핵화와 평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치다. 나 자신의 생존과도 바로 이어지는 절박한 목표다. 지금 대통령이 문재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불과 하루만에 다시 시작해야 함을 말해 줄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바를 반드시 이룰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 마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