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타난다. 부정하거나, 혹은 수용하거나. 내가 안희정에게 성폭행당했다며 고발한 김지은씨의 주장을 신뢰하며 지지했던 이유였다. 의외로 많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행당했을 때 그것을 성폭행이 아닌 사랑이라 여기며 가해자에게 집착하는 경향이란 생각보다 성폭행 피해자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불륜으로 여길만한 상황들 역시 자신의 상사로서 적극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히기 어려웠던 당시 김지은씨의 상황과도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다.

 

그래서다. 몇 년에 걸친 반복된 성추행으로 심지어 부서를 옮기고 싶다 요청하기까지 했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오랜기간 고통받아왔고 그럼에도 주위의 외면으로 인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당사자는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자신의 본능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끌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거부하던가, 아니면 능동적으로 수용하던가. 그 사이 어디엔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신체접촉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던가, 아니면 그것을 사랑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수용하던가. 문제는 후자의 경우라면 성추행을 이유로 부서를 옮겨달라는 요청같은 건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김지은씨도 그래서 미투를 폭로하기까지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몸에 손을 대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 것인가.

 

피해자다움이 아니다. 피해자로서 보일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모습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몇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는데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하고, 한 편으로 부서이동을 요청하면서 한 편으로는 자기가 먼저 적극적으로 가해자일 박원순 시장의 몸에 손을 대고 있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직접 손을 겹쳐잡고, 몸까지 밀착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동안의 성추행이 박원순 시장의 신뢰와 애정의 표현으로 여겨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장했다면 이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괜히 사실을 확정하겠다고 말을 덧붙인 덕분에 모순이 드러나고 말았다. 오히려 박원순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성추행인 것을 알았다고 주장했으면 더 설득력있게 설명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쓸데없이 오래전부터 이리저리 주워들은 일들이 적지 않은 탓에 나름대로 이쪽 분야에도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 그래서 안희정이 1심에서 무죄가 되었을 때도 눈쌀을 찌푸리며 판사를 욕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박원순 시장의 경우에는 자신이 피해자라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의심부터 가지게 되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이 아닌 논리적 일관성이다. 합리성이고 개연성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더욱 한겨레와 정의당이 김재련과 유착하는 정황을 의심하는 것이고.

 

당장 추미애 장관 논란을 통해서도 김재련의 성향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심지어 자신이 대리하는 의뢰인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성폭행 사실까지 언론을 통해 온세상에 퍼뜨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김재련의 주장만을 금과옥조처럼 받아 주장하고 있었다. 과연 한겨레와 정의당에 다른 목적과 의도가 없었다는 것인가. 아무튼 동영상을 통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더 확실한 증거와 증언들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성추행을 당한 피해사실과 저같은 행동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페미는 병신이다. 차라리 병장회의를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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