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상대가 나보다 더 지위도 높고 힘도 세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그 말하는 내용과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것 다 차치하더라도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나의 입지나 나의 이익에 큰 영향이 미칠 수 있는데 허투루 대충 듣고 넘기려는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다. 당장 나 자신은 아니더라도 주위나 어쩌면 더 큰 사회적인 이슈로 발전할 수도 있다. 어떻게 먼저 그 내용과 의도를 이해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상대더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걸러서 잘 설명해달라. 가능할까?


프로불편러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말조차 의미없는 것이 인터넷에 이미 널리 일상화된 모습 가운데 하나다. 단어 하나를 꼬투리잡는다. 행동 하나를 트집답는다. 적절치 못했다. 해명하더라도 어찌되었거나 자신들이 듣거나 보기에 부적절했으니 주의했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다가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웃겨보겠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듣는 사람을 고려해서 어휘 하나의 의미까지 일일이 생각해가며 말을 해야 한다. 몸짓 하나에까지 기호학적 해석까지 고려해서 심중히 해야만 한다. 아니면 아예 말하지 마라. 말하는 순간 난도질해버릴 것이다.


뭐냐면 권력이다. 대중이라는 권력이다. 이해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네가 이해시키는 것이다.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는 네 책임이다.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다. 정치인이 국민을 대상으로 연설을 할 때다. 기업의 관리자나 군의 지휘관들이 하급자들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릴 때다. 이런 때는 다른 해석의 여지를 두어서는 안된다. 명확히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상대에게 오해없이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어휘를 골라서 써야만 한다. 왜냐면 그래야 혼란과 오류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자신의 위치와 책임에 걸맞는 직무와 목적을 위한 수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잘 적확하게 전달하는가가 곧 자신의 실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대화는 다르다. 일상의 대화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리 사전에 준비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하면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가 사전에 철저히 계획하고 계산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화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연인과 연인 사이에. 친구와 친구 사이에. 그때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다듬어 달라 요구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그냥 그런 것을 전제로 알아서 이해하는 것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것이 소통이다. 상대가 듣는 나를 배려해서 말을 다듬는 것과 마찬가지로 덜다듬어진 상대의 말을 충실히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누군가 그런 노력 자체를 아예 거부한 채 일방적으로 말하는 쪽의 책임만을 요구한다. 무슨 의미겠는가. 대등하게 소통하자는 것이겠는가.


실제 대부분의 프로불편러들은 대상을 같은 인간으로서 인격으로서 여기지 않는다. 말 그대로 대상이고 자신은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이다. 어떤 소통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자기가 불성실하게 터무니없는 오해를 했어도 그 모든 책임은 그런 말과 행동을 항 당사자에게 있다. 대등한 공간에 있지 않다. 수평적인 공간에 있지 않다. 너는 나를 이해시켜야 하고 나는 너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되니까. 대부분 그런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에 있고 자신은 그들이 눈치봐야 하는 대중에 속하고 있으니까. 알량한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이솝우화에 늑대와 새끼양의 이야기가 있다. 늑대가 새끼양을 잡아먹으려 어떤 이유를 대도 모두 새끼양의 반박으로 무산되자 그냥 다짜고짜 힘으로 잡아먹고 만다. 논리가 필요없다. 이유가 필요없다. 목적만이 존재한다. 나는 저들보다 위에 있다. 나는 저들보다 더 높고 더 강한 존재다. 그래야만 한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상대는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여야 한다. 그를 통해 자신의 비틀어진 열등감을 해소하려 한다. 이유따위는 필요없다. 네티즌으로서, 대중이라는 집단의 힘을 빌어 자신의 정의를 확인시켜준다.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고야 만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그놈의 네티즌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을 버려 버렸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모인 군중심리가 하찮은 개인들에게 쓸데없는 헛바람만 집어넣어 버렸다. 그런데도 다수의 힘이 더 강한 소수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 쾌감에 도취된다. 오히려 의도한 오해와 편견드로 상대를 몰아세우며 쾌감을 느낀다. 충분히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그런 식으로 몰아가려는 경우마저 있다. 그런 놈들이 또 여론을 주도한다. 생각없는 것들은 그런 헛소리에 쉽사리 넘어가며 동조해 버리고 만다. 쓸데없는 성실함이랄까. 거의 예외란 없다시피 하다.


어차피 내가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상대가 그것까지 고려하지는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상대의 의도에 접근해야 한다. 어떤 의도로 어떤 목적과 이유와 과정을 통해 그런 말과 행동들을 보였는가. 인간을 인간으로서 이해한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서 언제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긴 그런 것이 가능하면 한 편으로 인간이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 의도하여 오해하고 그마저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런 강한 자신이야 말로 진짜 자신이어야 한다. 비루한 정신이다.


별 사소한 글이다. 그런데도 울컥울컥 치미는 것이 있다. 내 일이 아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일에 분노할 수 있다는 것도 인간에게 이성이란 것이 있다는 또하나 증거인 것이다. 아니라 하면 아닌 줄 안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안다. 그리고 그런데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으면 그 다음에 다시 물어 알아본다. 인터넷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이 괴물이 된다. 아무도 없는 익명의 공간에서 빈약한 자아는 괴물이라는 껍질을 뒤집어쓴다. 알량한 권력마저 인간을 이렇게 타락시킨다. 인간인 까닭이다. 한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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