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여부를 확인해보지 않아서 신빙성을 담보할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은 만주와 중국에 대한 공략에 성공할 경우 한반도로 수도를 옮기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중국까지 점령하게 되었을 경우 일본열도는 전체 영토에서 상당히 동쪽으로 치우친 구석에 위치하게 된다. 보다 효율적인 지배와 운용을 위해서라도 수도를 보다 중심에 가까운 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일본 정부가 서울로 옮겨오게 되면 당연히 다수의 일본인도 따라서 서울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한반도에 살던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한 단계 아래인 2등국민으로 차별받고 있었는데 보다 우월한 신분인 1등 국민 일본인들이 다수 서울에 정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의 일본인들이 서울을 자기 영토로 여기고 정착헤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하게 원래 조선인들의 땅이던 한반도에서 조선인들은 밀려나거나 차별받으며 저들과 함께 섞여 살게 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일본인과 마주하며 차별받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당시 조선사람들의 감정은 어떻겠겠는가 하는 것이다.

 

기껏해야 싸움질이나 하고 상인들 등이나 쳐먹던 깡패를 마치 민족의 영웅처럼 소설이며 영화며 수도 없이 만들어가며 소비하는 이유라는 것도 결국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 깡패들이 원래 한반도에 살던 조선사람들을 상대로 폭력도 휘두르고 갈취도 하는데 대신해서 그들과 맞서 싸우면서 폭력도 휘두르고 갈취도 하는 같은 조선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량한 조선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핍박하며 착취하는 행위들마저 정당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아예 땅까지 빼앗는다. 원래 조선인들의 땅을 일본인들이 차지하고서는 내쫓긴 조선인들을 다시 차별하고 착취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본인들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죽거나 상처입는 사람들까지 수도 없이 보고 겪게 된다. 그런데도 평범한 일본인들만이 아닌 일본의 정치인이나 실제 조선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친 개인들만을 구분해서 분노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기는 하겠는가? 조선의 식민지화를 지지했던 외국과 외국의 국민들에 대해 좋은 감정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독립투쟁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아직까지는 조선이 조선인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조선에 살고 있는 다수는 조선인들이었고, 매국노라 손가락질당할지언정 조선의 지배에 조선인들의 지분이 아주 없지만 않았다. 그래도 일본에 협력하면 매국노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인정받고 나름대로 대우받는 삶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이 조선인이라면 아예 서울에서 모두 내쫓고, 아니 조선인들을 일본의 부라쿠처럼 차별적인 거주구역을 나누어 살게 하면서 억압하려 한다면 그래도 조선인들은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온건하게 막연히 일본의 지배에 불만을 품으며 소극적인 저항으로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다가도, 혹은 중국에서 결사활동을 하다가도, 그럼에도 포기할 수만 있으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일상으로 돌아갈 여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진다. 돌아가봐야 내일이라고는 없는 절망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 대해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대입해 이해하려 시도하다가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마는 이유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일본과 당시 식민지 조선처럼 철저히 별개의 존재로서 분리하려 한다. 이스라엘에게는 이스라엘의 영토가 있고 팔레스타인에도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있다. 서로가 타자로서 단지 어느 한 쪽이 힘의 우위에 기대어 억압을 가하는 구조로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인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이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이었다. 원래 살던 땅에서 내쫓겨서 거주지역을 제한당한 상태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일방적인 폭력과 억압과 착취를 매일같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수많은 끔찍한 범죄들이 저질러지고 있었다. 원래 살던 땅에서 내쫓기고, 그나마도 답답한 장벽 안에 갇힌 채 내일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란 어떠한 것인가. 그러자면 조금 더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현실에서도 안창호나 여운형 같은 이들은 그렇게 신사적인 투쟁만을 고집했을 것인가.

 

그래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과 잘 협력해서 얻어낼 것은 얻어내자는 자치론자들이 나름대로 자기 지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우호적으로 협력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지위와 권력을 얻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짓거리지만 결과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보다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게 잘보인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서방세계에 잘 보인다고 더 나아질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단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뿐이다. 아니 갈수록 더 나빠지기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더 급하게 나빠지지는 않는 정도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과 잘 지내보자는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아라파트가 실패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허락 아래 세워진 자치정부란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구도 안에서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현상유지는 결국 팔레스타인을 말려죽일 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우위에 의해 알량하게 남은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야금야금 먹혀가고 있는 중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이 식민지 조선의 그것과 같을 수 없는 이유다. 아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들었다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독립운동과 비교하는 것이 꽤나 불쾌하고 부당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그런 식민지 조선의 역사에서조차 한가하게 이념적인 선택을 두고 따지는 것이 안전한 곳에서 입이나 놀리는 인간들의 현실인 것이다. 아무리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했어도 사회주의를 선택해서는 안되었다. 사회주의세력의 도움을 받으려 해서는 안되었다. 도움을 받았어도 미국이나 일본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 태평양전쟁 도중에도 미국은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조선을 위해서도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인간들이 더 많았다. 일본의 조선점령을 처음부터 지지했던 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였다. 그러니 차라리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는 것이 미국과 일본을 위해서도 나았다. 아마 지금 대한민국 국민 40%는, 전혀 존경할 가치가 없는 늙다리들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그 늙다리들이 당시에는 아직 어린 것들이라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아무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놓인 현실이 다르고 당연히 그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다르다. 그러면 행동도 달라지게 된다. 나라면 어찌할 것인가? 역지사지란 그런 것이다. 서로의 입장을 바꾸려면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이 지금 팔레스타인과 같았는가. 친일파라 불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일본의 식민지지배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그것에 비하면 양호한 축이었다. 이스라엘도 제국주의 열강들이 실제 식민지에서 저질렀던 짓거리들에 비하면 특별히 더 나쁘다 할 수준은 아니다. 그게 더 좆같은 것이다. 그게 인류의 역사이기도 했다. 현실인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