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말했지만 90년대 군번인 내가 알기로도 그래야만 하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으면 부대장에게 복귀 전에 연락해서 휴가연장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이 경우는 부대장의 재량이라서 반드시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 부대장의 재량 아래 판단해서 허락해주는 것에 가까웠다. 명확한 기준 없이 해주면 좋은 것이고, 안해줘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절차 역시 그리 엄격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그냥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더라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실제 미복귀인 경우도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복귀할 것을 약속받으면 휴가든 외박이든 처리해서 연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논란이 진행되며 더이상 그런 주먹구구가 아닌 명확하게 부대장의 의무에, 정확히 사병의 권리에 내용을 포함시킨 것을 알게 되었다. 사병은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정해진 연가 안에서 휴가를 요청해서 쓸 수 있고 부대장은 단지 예외적인 상황에서 그것을 제한할 권한만을 갖는다.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경우에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연가 안에서 복귀를 미루고 휴가를 연장하는 것은 부대장의 재량이 아닌 사병의 권리로서 얼마든지 승인할 수 있고, 사후에 정식 절차를 밟아 공식화하고 보고하는 것도 가능하다. 좋아진 것 아닌가. 심지어 가족행사 때문에 휴가를 미루는 것도 이제는 얼마든지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작 연가 안에서 휴가연장 한 번 했다고 이 난리가 난 이유란 것이 사실 예전 군대도 아닌 그냥 사병을 도구처럼 여기던 과거의 관성이 작용한 때문이라 봐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이번 논란을 주도한 장성 출신이라는 인사가 장병이 휴가연장해달라면 해 줄 것이냐 따져물은 자체가 그 본질을 보여준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실제 그런 사례를 경험했다는 주장이 나와도 아예 귀기울이려고도 않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건 다 거짓말이다. 다 예외적인 상황들인 것이다. 그마저도 다 예외적인 규정이탈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국방부가 밝히지 않았는가. 다 군의 규정 안에 있다고. 그냥 문제없다고만 말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규정에 의해 문제가 안되는가를 밝힌 것이다.

 

실제 2017년 이후 비슷하게 전화로 휴가연장을 사용한 카투사 병사가 30명이 넘는다던가. 적은 수가 아니다. 매년 10명 넘게 비슷한 혜택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니. 그러면 어째서 모든 카투사가 이런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가. 선택의 문제다. 21일 있는 연가를 붙여서 한 번에 쓸 것인가, 아니면 몇 번에 걸쳐서 나눠서 쓸 것인가, 나아가 한 번 쓴 휴가를 연장해서 계속 붙여 쓸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모아뒀다 그만큼 또 쓰게 될 것인가. 연가에서 연장한다고 없는 휴가가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닌 있는 휴가를 끌어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10일 휴가 갔다가 3일 연장하면 남은 휴가일수는 8일이 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짧지 않은 군복무기간동안 휴가를 한 번에 몰아쓰고 나면 나머지 기간동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단순한 고민이다. 역시 어떤 군대라도 군대보다는 사회가 좋다. 휴가는 시시때때로 군대가 지겨워진 만큼 나가 주어야 한다.

 

휴가연장하라고 해도 내가 싫다고 안할 병사가 어쩌면 대부분일 수 있는 것이다. 내 계획대로 정량하여 필요한 만큼 쪼개서 나가겠다. 아니면 나중에 모아뒀다 한 번에 쓰겠다. 모든 병사가 휴가연장을, 그것도 전화로 요청해서 쓸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럴 수 있는 규정이 구체화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당연한 권리로써 요청할 수 있고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관련한 절차 역시 모두 명문화되었다. 복귀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는데 무리하게 복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군대 좋아졌다. 옳은 방향으로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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