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MO의 해양규제로 인한 LNG선의 수주로 그동안 고사지경에 놓였던 한국 조선업이 기지개를 켜려는 듯하다. 잘하면 LNG선의 수주로 한국 조선업에 숨통이 트이고 활로가 열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정작 조선소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났다.

언젠가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실업도 문제지만 노동포기도 문제다. 아무리 일을 해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여기면 사람은 때로 노동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차라리 그런 일 하느니 놀겠다. 사실 지금의 실업문제 가운데도 이같은 노동포기에서 비롯된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할 곳이 없어 아우성인 가운데 정작 일할 곳이 있어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바로 그만두고 나와 버린다. 그러면 그 정당한 노동의 대가란 얼마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당연히 사회마다 다를 것이다. 시대마다도 다를 것이다. 한 마디로 적당한 사치도 하면서 살 수 있을 만큼의 급여일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일을 할 때 그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필수적이다. 당연히 여전히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한국 보수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동자에게 무슨 사치가 필요한가. 노동자가 무슨 사치를 누리려 하는가. 과거 차명진이 국회의원 시절했던 말 그대로 그저 먹고 입고 몸을 누일 곳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당장 그따위 기사를 쓰는 기자놈들 자신도 그렇게 일하라면 바로 사표부터 쓰고 나올 것이다.

원래 조선업이면 급여가 세기로 이름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었다. 그리고 위험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마저 힘들고 위험한 건 여전한데 외주로 돌리면서 급여도 전만 못하게 되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일은 생각지 못하던 시절에는 그저 배만드는 일에 매달렸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때는 다시 돌아갈 이유가 사라진다. 원래 조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새로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다. 일본과 판박이다. 수주는 잔뜩 받아놨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 곤란한 지경이다. 지금의 조선업 상황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영세한 중소기업은 지금도 많은 경우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다. 심지어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재정에서 신규직원의 급여까지 보전하고 각종 금융혜택까지 보장해주는데도 그 돈 받고 중소기업 갈 생각을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일도 힘들고 장래성도 없고 무엇보다 급여가 적다. 물론 기술도 없고 따라서 매출 역시 없는 기업이라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망해야 할 기업이 어떻게 꾸역꾸역 버티는 중이니 새로 직원을 뽑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기술도 있고 거래처도 있어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기업이면 문제는 심각하다. 지금 조선업의 문제도 그동안 하청을 받던 업체 대부분이 도산하거나 식물상태에 빠진 부분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하청기업들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야 말로 조선업을 살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중소기업에서 구인광고를 내면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그를 조롱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대우 받고 누가 일하려 하겠는가. 그런 급여와 조건으로 누가 가서 일하려 하겠는가. 그래서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의 임금을 더 늘리거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안된다. 노동자를 위해서도 더이상 임금을 높이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는 안된다.

스스로 노동자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착취구조에 익숙해진 때문일 것이다. 나는 최저임금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내가 최저임금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상황과 처지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번듯한 대기업에서 폼나게 일할 테니까. 그런 직장에서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것은 자기 할 나름이고, 나는 내가 노력한 만큼 실력을 인정받으며 더 나은 곳에서 더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어차피 착취당하는 입장인 그들 노동자들의 권리만 해치는 것이다. 그들의 선의는 최저임금 이하라도 받으면서 하루종일이라도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그런 노동자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사장에게 이익이 있어야 월급도 올려준다. 사장에게 이익이 생기려면 당장 노동자의 최저임금부터 낮추어야 한다. 최저임금을 낮춰야 이익이 생기는데 이익이 생기면 월급을 올려준다. 역시나 노동자를 자신과 같은 주체로서 여기기보다 단순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일한 대가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닌 고용주의 시혜를 받는 입장인 것이다. 물론 자신과는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 곳에서는 일할 수 없는 자신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차라리 그런 곳에서 일하느니 자신은 그냥 일하기를 포기한다. 이마저도 양극화다. 노동과 그 이전에 인간에 대한 양극화다.

과연 최저임금이 오르고 월급도 그럴싸하게 오른 이후 사람 구하기가 더 쉬워졌다. 그만두는 사람이야 여전히 많은데 일하겠다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졌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정원을 채워 일한 적이 없었을 정도인데 요즘은 빈 자리를 보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노동의 조건이다. 일자리만큼인나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냥 일자리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양극화도 출산률 문제도 모두 해결되는 것인가. 그래서 언론을 무당이라 부르는 것이다. 부적 하나만 쓰면 온갖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당장 오른 최저임금으로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의 경제는 이대로 좋은 것인가.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이고, 어디선가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다. 그 부조화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과연 그에 대한 고민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경제의, 아니 한국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물음이다. 최저임금이며 근로시간은 단지 그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작조차 못하게 한다. 한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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