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온 자체가 생산직 노동자의 지나치게 높은 연봉 때문이었다. 아마 요즘은 그 기준이 1억을 훌쩍 넘기는 모양이다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수십년 일하고 이런저런 상여금에 여러 수당들까지 더해서 나오는 금액이 그 정도였다. 그야말로 쉬는 날도 없이 가능한 최대의 시간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을 두고 귀족이라 불렀던 것이었다. 그러면 비슷한 연차의 사무직 연봉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노동자니까. 생산직 노동자니까. 한 마디로 공돌이들이니까. 공대에 다니는 공돌이가 아니라 공장에서 기름밥먹으며 일하는 공돌이들이다. 그런데 그런 공돌이들이 연봉만 수천만월을 받는다. 처음 귀족노조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이유였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연봉이 5천만원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경악하여 그들을 귀족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돈을 받을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많은 돈을 받아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요구는 부당하고 과도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항상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유로 든다. 당신들보다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가 있는데 그렇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런데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이나 처우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면 역시나 비난과 조롱이 쏟아진다. 그러길래 학교 다닐 때 좀더 노력하지 않았는가. 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탓 아닌가. 어차피 아무라도 할 수 있는 일 그 이상을 요구하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그런 일 하면서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닌가.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주제가 있고 자격이 있다. 저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대우와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오히려 지금 누리는 것조차 은혜로 여기고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 최저임금인상과 관련한 논란에서도 그같은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차피 그런 정도의 일이나 하는 노동자에게 그만한 많은 임금을 지급할 이유가 있는가. 못배우고 기술도 없는 노동자에게는 그만한 조건의 일자리라도 주어지면 고마운 것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사용자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놓고 사용자들은 노동자를 해고하여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여론은 해고된 노동자의 편이 아닌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용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관련해서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생활비조차 안되는 현실을 이야기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어차피 배운 것도 기술도 없는데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었지 무엇한다고 그 이상을 바라는가. 통신요금도, 가끔 누리는 문화생활이나 작은 사치조차 주제에 넘는 것은 아닌가. 세일하는 것을 찾아다니며 가장 값싼 것만 먹고 입으며 숨만 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때로 너무 쉽게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애써 강조하며 그들에게 그 이상의 대우를 해 줄 필요가 없음을 역설하기도 한다. 원래 조선시대에도 노예들은 항상 게으르고 의욕이 없었다. 남북전쟁 전 미국에서도 쓸모없는 노예들로 인해 노예주들의 시름은 깊었었다. 철저히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째서 노동자들이 돈값을 하지 못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저숙련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자체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들인 것이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인해 나아진 노동자의 삶보다 그나마 일자리조차 잃은 사람들에 더 집중하는 것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의 삶도 더 나아지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그나마 일자리조차 잃었으니 임금인상으로 좋아진 노동자들이 잘못되었다. 철저히 사용자의 편에서, 그리고 건물주의 편에서, 심지어 인건비로 인해 대기업의 순익이 줄어든 것을 걱정한다. 대기업이 인건비 아껴서 순익을 남기면 그 돈은 모두 누구에게 가겠는가.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 또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득세에 대해서도 재산세에 대해서도 상속세에 대해서마저 걱정이 많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서 안되는 만큼 그런 세금들로 인해 또다시 노동자가 일자리 잃을 걱정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게 또 최근 일만은 아니라는 게 재미있는 점일 것이다. 10년도 더 전부터, 심지어 개혁을 주장하던 지금 집권정당의 지지자들로부터도 끊임없이 나오던 이야기였다. 한국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라고나 할까.

 

얼마전 어느 기사에선가 나왔을 것이다. 학생들이 노동자가 되지 않겠다 말했다 한다. 노동자가 아닌 회사원이 되겠다고. 번듯한 사무직인 자신들에게는 워라밸이 중요하지만 생산직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버는 것이 옳다. 52시간근로제도 생산직에게는 예외가 되어야 한다. 하긴 당장 기자새끼들부터 자기들은 노조 만들고 별 짓 하면서 노동자라면 벌레취급하기 일쑤다. 워낙 인터넷에는 벌이도 좋은 잘난 인간들이 많다 보니. 대기업 걱정하면 자기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인간이 된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그만큼이나 많다.

 

하여튼 재미있는 것이다. 그보다는 역겹다. 실직한 노동자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 결국 하는 이야기란 저숙련노동자에게는 그런 정도가 적당하다. 그런 정도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저숙련노동자에게 너무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노동자에게는 적절한 임금수준이라는 것이 있다. 사용자의 이익을 걱정하고, 건물주의 임대료를 걱정하고, 대기업의 순이익을 걱정하고, 그래서 더욱 노동자가 일자리 잃는 것을 걱정한다. 나와 반대편에 선 놈들이다. 상관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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