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봐도 최저임금인상으로 특히 자영업에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니 굳이 고용노동부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고용통계에서 자영업과 제조업 일자리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말한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웬걸? 고용률은 오히려 올랐네?

 

고용률이란 전체 생산가능 인구 가운데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인구의 비율을 계산한 것이다. 15세 이상 전체 인구 가운데 고용되었거나 혹은 자신이나 가족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모든 인구를 비율로 나눈 것이 바로 고용률이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고용률은 최저임금인상에도 낮아지기는 커녕 유지하거나 얼마간 나아지고 있다. 청년고용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 마디로 통계를 대충 본 것이다. 분명 제조업과 자영업의 고용은 줄어들었다. 언론이 문제삼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보건이나 복지 등 공공분야에서 고용은 더 늘고 있었다. 그 결과 고용률은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거나 조금 오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고용은 그대로인데 최저임금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년 가계소득 증가율이 유의미하게 높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줄어든 일자리만 보고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보지 않는다. 당장 사라진 일자리만 보고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보지 않는다. 그렇게 기존에 있던 일자리가 사라졌으니 사람들의 삶이 더 나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률이 그대로라면 그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에서 그들은 오른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다. 소득이 줄었을까? 아니면 늘었을까?

 

그러고보면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최저임금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까 최저임금인상이 가지는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막연한 인상만으로 비판한다. 아마 솔직한 속내는 어디 그런 허접한 것들이 그리 많은 돈을 받는 자체에 대한 불편함과 불쾌감일 것이다. 최저임금받는 노동자들을 비하하며 그들이 그만한 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부터 끊임없이 문제삼는다. 자기들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 오른 최저임금으로도 결혼하고 가족까지 부양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예 무시한다. 무시한다기보다 모른다. 그저 한 달 생활비에도 못미치는 돈이라도 일해서 그나마 벌 수 있으면 감지덕지하라. 19세기 부르주아들의 근엄한 온정주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차명진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하여튼 보고서에는 없는 추측까지 더해서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비판한다. 단기일자리가 늘어서 일자리의 질이 나빠졌다. 하지만 보고서에도 저임금노동자의 비율이 실제 줄어들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고용률이 그대로인데 저임금노동자의 수가 줄었다는 것은 그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고용률이다. 전체 일자리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단지 일자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오른 임금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헛똑똑이들이 많아서. 단어 하나에 집착하느라 전체를 읽지 못한다. 그래서 조중동 같은 언론이 먹고 산다. 구체적인 사실보다 인상에 지배당한다.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무엇이 나빠졌는가? 취업자수가 늘었는데 저임금노동자는 줄어든 명백한 사실만 외면한다. 한심한 것이다. 자한당의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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