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청년실업률이라는 말도 우스운 것이 29세까지는 청년이고 30세 부터는 청년이 아니다. 문제는 29세까지의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가는데 30대에 이르면 4%로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고작 1년 사이로 11%가 4%가 된다. 청년실업률이 사회문제가 된 것이 하루이틀이 아닌데 고작 1년 사이로 이만한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긴 말이 청년실업률이지 그 기준이 되는 연령대가 15세에서 29세까지로 10대와 20대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고용률만 놓고 보면 19세까지가 8%, 20세에서 24세까지가 42.9%, 24세에서 29세 까지가 69.1%로 하나의 단위로 묶기에는 그 편차가 무척 크다. 그러고보면 24-29세의 고용률이 69.1%로 30대의 고용률 75.8%와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각 연령대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면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는 내용일 것이다. 한 마디로 19세까지는 고등학생, 24세까지는 대학생이거나 혹은 군인,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나서는 것은 20대 중후반부터다. 그래서 20대 후반이 되면 고용률이 30대에 근접하다가 30대부터 고용률이 크게 오르게 된다. 30대와 40대는 고용률이 떨어졌다는 지금 수준에서도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다. 그런데도 유독 29세까지의 실업률만 크게 문제가 된다.

어차피 10대까지는 대개 학교에 다니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10대까지의 대부분 고용지표는 학교다니면서 병행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다. 대학진학률이 유독 높은데다 징병제까지 있는 한국사회에서 20대 초반이면 상당수가 대학생이거나 군인이기 쉬울 것이다. 역시 대개 학업과 병행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본격적으로 이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20대 중후반, 즉 고용률이 69%로 크게 뛰어 오르는 구간일 것이다. 그나마도 재수를 하거나 군대에라도 갔다 오면 구직에 나서는 나이는 더욱 늦어지게 된다. 심하면 30대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구직에 나서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재수도 하고 군대도 갔다 와서 졸업이 늦었는데 똑같이 29세까지만을 기준으로 구직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과연 공정한가. 현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신입사원을 구하려면 20대에서 30대까지 뒤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본격적으로 구직에 나서는 연령대인 24-29세 사이에서 고용률 69.1%, 실업률 10.4%이던 것이 30대가 되면 각각 75.8%, 4.0%로 상당한 비례성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딱 고용률 6.7% 오르는 동안 실업률도 6.4% 떨어지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청년실업률이 왜 그리 높은가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어째서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있는가를 문제삼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이는 언론에서 체감실업률이라고 떠들어대는 고용보조지표3과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고용률과 실업률 사이에 존재하는 20%에 이르는 비경제활동인구와도 관계가 있다. 한 마디로 구직에 나서기는 했는데 정작 자신들이 바라는 조건의 일자리가 생각처럼 많지 않다. 아무리 일자리가 급해도 최소 몇 년은 몸담고 일해야 하는데 아무 곳이나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중해지고 그만큼 시간이 걸리게 된다. 아예 구직활동을 중단하고 공무원 등 다른 길을 찾으려는 이들도 생겨나게 된다.

실제 구직난을 이야기하지만 구인난도 만만치 않게 심각하다. 정작 일자리가 있어도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도 그런 경우다. 그나마 최저임금도 오르고 하면서 급여가 많이 좋아지며 지원자는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아 필요로 하는 인력을 모두 갖추지 못하는 때가 많다. 취직해서 대출금도 갚고 돈모아 결혼도 하고 남들만큼 살려 하면 조건이 빠듯한 것이다. 그냥 일자리 있다고 아무데나 갈 수는 없다. 더욱 아직 여유가 있다 여겨지는 나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30대를 넘어가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게 실업률이 줄어드는 것이다. 대부분 직장을 찾았거나, 아니면 아예 일자리 찾기를 포기했거나. 결국 핵심은 현실에서 얼마나 청년층이 가고 싶을 만한 일자리가 충분히 있는가. 그러면 청년들이 바로 가고 싶은 일자리란 어떤 일자리인가.

그래서 결국 돌아온 결론이 그동안 줄기차게 이야기해 온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것이고, 돈을 번 만큼 자신의 삶도 나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생존과 안전 다음은 인정이고 존중이고 자아다. 이미 한국사회는 그런 단계에 접어들어 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닌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면서 더 풍족한 삶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해봐야 돈도 안되고 자신의 삶도 즐길 수 없다면 무슨 의미이겠는가. 그래서 최저임금 오르고 월급도 따라 오르자 지원자도 늘어났고 그런데도 다른 데 더 조건 좋은 곳이 있으면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급여와 노동조건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급여도 더 높이고 노동시간도 더 줄이고 각종 복지도 더 늘리고. 그런데도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여를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고 복지도 줄여야 한다. 과연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임금을 낮추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일자리들이 청년들이 가고자 하는 일자리인가. 그래서 좋은 일자리 찾아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30대가 접어들고 나서야 급하게 아무 일자리라도 찾아 나서게 된다. 청년고용과 관련한 여러 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는 진실인 것이다.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갈만한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는 있지만 자기가 갈만한 일자리는 없다. 그래서 차라리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 구직단념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업률의 함정이기도 하다. 아예 일할 생각이 없으면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다. 일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으면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고용통계에서도 정작 40대의 고용률과 함께 실업률도 함께 떨어지는 모순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굳이 나가 일하느니 그냥 집에서 놀겠다. 이유는 대개 더이상 일자리를 구하는 걸 포기했거나, 아니면 굳이 더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게끔 경제적인 상황이 바뀌었거나, 아니면 다음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잠시 쉬기로 했거나. 공무원 시험에 대거 수험생들이 응시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졌다는 말이 그냥 변명으로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비경제활동인구로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다. 실업률이 높아졌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신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같은 기사에서 40대 실업률이 낮아진 것을 두고 비슷한 맥락의 설명을 붙인 것이 있었다. 알면서 그리 쓰는 것이다. 실업률이란 얼마나 애매한 지표인지.

어째서 청년실업률인가. 무엇이 청년실업률을 높이는가. 그래서 대안은 무엇인가. 사실 모든 사회문제들과 맞물려 있다. 결혼률과 출산률과도 밀접하게 맞물린다. 어쨌든 결혼을 하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려 해도 일정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 바로 청년들의 미래다. 그러나 당장 오늘을 먹고 살기도 버거운 일자리로 내일까지 그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임금을 낮추라, 노동시간을 늘리라. 심지어 청년들 자신도 그리 주장한다. 중소기업에서 올린 구인광고를 보고서는 함께 조롱하며 분노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최저임금은 낮추고 노동시간은 늘리는 등 노동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물론 자신들은 그런 최저임금과 최저근로시간이 적용되는 일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아직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혹시 자신들이 바라는 돈 더 많이 받고 더 적은 시간만 일하며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장래가 보장된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을까. 언론이 의도하는 바일 것이다.

과연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가. 아니면 일자리가 있는데도 일을 안하는 것인가. 좋은 일자리란 어떤 일자리인가. 저변 제조업 일자리와 관련해서도 말한 바 있었다. 그저 3년 전 최저임금에 주 68시간 일해서 수당으로 나머지를 채워야 하는 제조업 일자리만 많이 만들면 청년실업은 해결되는 것인가. 그런데 청년실업은 그전부터도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었다. 사실을 말한다고 반드시 진실은 아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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