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국의 청년고용률이 유독 낮게 나오는 이유는 첫째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대학진학률에 있다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일정 나이 이상의 학생들은 생산가능인구에는 잡히지만 경제활동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그래서 40%대의 고용률에도 정작 실업률이 10% 정도로만 나오는 것이다. 나머지는 굳이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는 이상 비경제활동인구로 아예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면 청년실업률 10%는 어떻게 된 것일까? 정확히 올 3월 청년실업률은 10.8%에 이른다. 한 마디로 청년실업률이란 15-29세까지의 실제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지가 있고 실력도 있는 인구 가운데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의 수를 비율로 나눈 것이다. 이게 문제다. 29세까지. 그런데 정작 30대 넘어가면 고용률은 75.6%에 실업률은 3.6%로 크게 떨어진다. 이마저도 고용지표 나빠졌다고 난리치는 수치인 것이다. 한 마디로 29세까지보다 30세 이후에 취업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하긴 20대까지는 그래도 일자리를 고를 여유가 있지만 30대 넘어가면 아무래도 마음이 급해진다. 조건만 적당하면 가리지 않고 일하려는 경우가 많아진다.

 

바로 언론에서 체감실업률이라며 떠들어대는 고용보조지표3의 정체인 것이다. 이미 고용되어 있지만 충분할 만큼 일하지 못하는 파트타임 노동자와 당장 고용조건이 맞지 않아 구직활동을 포기한 구직단념자를 각각 추가취업가능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로 실업률에 포함시켜 계산한 것이다.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주말에만 15시간씩 일하는데 주중에 40시간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면 전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 했는데 임금과 야간에 일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구직도 포기했다면 후자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전자를 나타내는 것이 고용보조지표1, 후자를 나타내는 것이 고용보조지표2, 이 둘을 모두 합해 계산한 것이 고용보조지표3이다. 참고로 2019년 3월 기준 고용보조지표1은 각각 11만 4천 명, 13.4%와 68만명 22.8%다.  위의 11만 4천명은 일자리를 구했는데 충분히 일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고, 후자의 68만명은 아예 지금 조건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인구다. 이 모두를 청년실업자 47만 3천명에 더해서 계산한 통계가 확장경제활동인구 505만 3천명 가운데 25.1%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높은 대학진학률로 인해 20대 가운데는 대학생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그를 감안해서 다시 통계를 이해해야 한다.

 

흔히들 말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배가 불러서 편한 일자리만 찾는다.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으면 해야지 눈만 높아서 너무 가리고 따진다. 말 그대로다. 나름대로 4년제 대학도 나왔고 취직해보겠다고 스펙도 남부럽지 않게 쌓았다. 그렇다면 그에 어울리는 직장에 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그냥 한두 해 다니고 말 것도 아니고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려면 안정되면서 장래성있는 직장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진다. 따지고 따지다가 도저히 마음에 맞는 일자리가 없으면 구직을 단념하고 필요한 스펙을 더 쌓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공무원시험을 치르거나. 그러다가 30살 넘어가고 마음이 급해지면 아무데나 찾아 들어가느라 갑자기 고용률도 높아지고 실업률도 따라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 마디로 청년들이 마음놓고 지원할 수 있는 직장의 수가 기대만큼 많지 않다는 데 있는 것이다.

 

당연히 대기업은 급여가 높다. 근로조건이나 환경 역시 최상이다. 워낙 대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감시와 감독이 엄격하게 이루어지기에 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는 거의 대부분 지켜지는 편이다. 따라서 대부분 청년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경쟁한다. 반명 중소기업은 어지간하면 임금도 겨우 최저임금 수준에 법으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오죽하면 최저임금 올렸더니 당장 중소기업들이 인건비 상승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는 보도까지 나오겠는가. 임금은 적은데 사람도 부족하니 일하는 시간은 많고 당연히 자본규모가 작으니 복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그런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청년구직자는 없을 것이다. 당장 내가 일하는 곳만 해도 30대 이전에 들어왔으면 늦기 전에 나가서 더 좋은 곳을 찾으라며 등떠미는 경우가 더 많다. 앞날이 구만 리인 젊은이들이 괜히 청춘을 썩힐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런 결과인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하다지만 정작 한 편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없어 곤란한 처지에 놓인 회사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광고를 계속해서 올리지만 이력서를 내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내가 갈 만한 직장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나날이 커져가는 격차에 그 근본원인이 있는 것이다. 매출과 이익에서도 격차가 커지고 있지만 노동조건에서도 그 격차는 더욱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아예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는 다른 신분이다. 하물며 같은 대기업이라도 정규직과 계약직의 신분차는 더욱 커진다. 눈앞에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또래의 정규직 회사원이 있는데 구멍가게같은 작은 중소기업에서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하며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중소기업 가느니 그냥 구직을 포기하겠다. 구직을 포기하고 다른 기회를 노려 보겠다. 아니면 공무원시험을 보겠다. 그러므로 자신은 구직단념자이면서 실망실업자로서 잠재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구직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겠는가. 그래서 언론이 쓰레기라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들마저 사회주의네 시장개입이네 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한다. 대기업에게 이익만 몰아주면 중소기업도 알아서 살아난다. 

 

바로 이것이 그토록 극심하다는 청년실업의 실체인 것이다. 그토록 언론이 문제삼는 실질실업률의 정체다.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차라리 안하고 말지 저런 조건의 회사에 들어가겠는가. 차라리 집에서 놀고 말지 저런 조건의 회사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그리고 말한다. 눈만 높다. 조건만 따진다. 그래서 혼인률도 출산률도 낮다. 막말로 지금 중소기업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걱정없이 낳아 기를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라도 일단 일을 구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30살 넘어 고용률은 높아만진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고용지원정책은 나름대로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장래가 불확실하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청년층의 지원을 여전히 답보상태다. 어떻게 해야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고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중소기업에 대한 스마트팩토리 지원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직원을 많이 구해봐야 월급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것 공장설비를 지원해서 이익률이라도 높여주자. 기왕에 고용한 직원들이라도 제대로 대우할 수 있도록 해주자. 결국은 그를 통해 중소기업도 충분히 이익을 얻고 성장도 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고용문제도 해결된다.

 

원래는 이렇게 길게 쓸 것이 아니었는데.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언론이 의도한대로 휘둘리게 된다. 체감실업률이란 무엇인가. 그 근거가 되는 고용보조지표란 어떤 것인가? 그러니까 어째서 청년고용률은 그리 낮고 실업률도 높게만 나오는가. 그런데 사실 거의 아는 내용들이다. 직접 현실에서 겪어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그것을 숫자와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악랄한 것이다. 나라 망하라고 굿이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멍청한 것인지. 언론은 쓰레기다.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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