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사람들이 이토록 필사적으로 자기 집을 가지러 애쓰는 이유는 집없는 설움이란 것이 정서적으로 유전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남의 집에 세들어 살려니 집주인의 횡포가 서럽고, 둘째는 일단 집만 사놓으면 값이 오르니 일찌감치 집 한 채 사 놓지 못해 남들처럼 이익을 보지 못해 그것이 또 서럽고, 무엇보다 그래도 나이 먹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집이라도 한 채 있어야 면이 설 텐데 그마저 없으니 인생이 서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서 자식들 다 자라기 전에 집 한 채는 장만하자.

 

그런데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첫째 집주인들이 횡포 못부리게 하고, 집을 사놔도 값이 오르지 않으면서, 더구나 자식에게 굳이 집을 물려줄 필요가 없어지만 집을 살 이유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역시 내 이야기다.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고 그래서 늙으면 그냥 혼자 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예정이기에 일단 집을 물려줄 필요가 없고, 집값 오르는 것에 신경쓸 이유도 없고, 그나마 단 하나 집주인의 횡포가 문제인데 집주인이 느닷없이 나가라 해서 집을 옮긴 경우는 지금까지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직장 때문에 이사를 해도 했지 집주인 문제로 이사한 경우가 없으니 그냥 그때그때 편한 곳에 월세 얻어 사는 것에 오히려 크게 불만이 없다.

 

세를 살면 가장 안좋은 점이 바로 이사를 자주 다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적 주소만 한 열 번은 넘게 바뀌었던 것 같다. 내가 첫 기억이 구로동 철로변 살 무렵이었는데, 그 이후로 이사한 횟수가 가만 보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10번, 이후로도 한 10번은 되는 모양이다. 대개는 그나마 가장 오래 살았던 것이 부모님 집에 함께 살 때와 그 전에 마음 좋은 집주인 만나서 한 집에서 6년을 살았을 때였던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녀야 했었다. 매번 살던 동네가 달라지고, 그러면서 친구와도 멀어지고, 새로운 동네에서 또래들은 낯설기만 하고, 그런 일을 그렇게 자주 겪고 나면 자연스럽게 어딘가 정착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역시 자기 집을 가지고 싶은 첫째 이유일 것이다. 어디 한 곳 마음에 맞는 동네를 찾아 자기 집 가진 친구처럼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다면 굳이 내 집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집값이 올라서 집을 넓혀 가는 것도 참 허무한 것이다.

 

6년 동안 한 동네 살면서 그리 이웃들끼리 친해지고 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후 이사도 가까운 곳으로 간 탓에 한 3, 4년은 여전히 서로 왕래하며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사는 곳도 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 한 번 얼굴을 보기에도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되었다. 거의 10년 넘게 만에 동생 결혼식 때 한 번 얼굴을 보고 지금껏 소식도 모르는 이도 있다. 10년, 20년, 30년, 그래서 이웃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독립하는 모습까지 모두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가. 이웃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그만큼 이웃으로 지낼 기회가 사라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집 가진 것처럼 한 곳에서 원하는 만큼 오래 살 수 있도록 한다면 과연 어떨까?

 

장기적으로 주택임대를 자기 소유의 주택에 대한 임대인의 재산권 이외에 실거주하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임차인의 생활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여기는 이유다. 4년도 사실 적다. 하긴 그래도 그동안은 2년 동안 별 걱정없이 그동안 내던 월세 내며 살 수 있었고, 다시 2년 계약을 연장할 때도 따로 계약서를 쓰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이 나아진 것이었는데 이제 앞으로 4년은 기본으로 보장된다. 4년이 8년이 되고 16년이 되고 평생이 된다면, 즉 일정한 월세만 계속해서 낼 수 있다면 굳이 이사갈 일도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리면 그때는 굳이 집을 사거나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죽어서 집 한 채 못 물려주는 미안함도 그냥 자식들도 그렇게 살면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는 것이다. 주택임대를 임대인의 재산권만이 아닌 임차인의 주거권과 생활권으로 이해한다면 절대 문제가 될 정책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나 마음대로 전세든 월세든 올릴 수 있는데? 전세는 기본적으로 집값보다 일정 이상 싸야 수요가 생긴다. 전세와 집값의 차이가 거의 없으면 차라리 돈을 얼마간 더 빌려 집을 사면 샀지 굳이 그렇게 비싸게 주고 전세를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집값이 이후 오를 것이란 보장이 있다면. 월세 역시 그래서 내가 서울에서 밀려나 경기도민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월세가 싸다. 그런데 경기도라고 다 나처럼 경기도에서 일자리를 찾느냐면 거의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경기도라도 서울과의 접근성에 따라 월세도 크게 차이가 난다. 어차피 비싼 동네는 더 비싸게,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싸게, 그것이 시장주의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마 전세금 모으는 것보다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은 더 쌀 것이다. 결국 자기 것도 아니고 나중에 자식에게나 물려주게 될 전세금에 한 달에 쏟아 붓는 돈이 그렇게 많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받거나.

 

즉 지금 정부의 주택정책이란 집을 살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집을 사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정책이란 것이다. 조국 전장관이 말한 미꾸라지 붕어들이 살기 좋은 개천을 만드는 정책이다. 굳이 자기 집을 가지려고 일상까지 포기해가며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고 그냥 안정적으로 임대하며 살면서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즐기라.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정부가 정한 임대료만으로 주거비를 해결하며 더 많은 부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된다. 내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집이 필요한가? 그런데 있다. 대출금이 월세보다 더 많다. 빌어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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