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내가 노빠들을 경계하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이너가 되지 말라. 승자가 되었으면 이제는 메이저가 되라.


마이너는 작다. 수도 적고 힘도 약하다. 그래서 더 크고 넓은 곳에서 메이저들과 뒤섞이게 되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아예 짓눌려 부서지거나, 아니면 녹아서 흩어져 버리거나. 그래서 더 끈끈하게 자신들끼리 뭉쳐서 다짐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순수함을 지키겠어!"


그래서 소수자들이 더 완고하고 보수적이며 배타적이기 십상인 것이다. 이념으로서의 보수가 아닌 행동에 있어서의 보수다. 기존의 가치나 양식, 행태를 고집스럽게 지키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 원래 그래서 음악을 해도 꼭 비주류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더 융통성없고 배타성이 강하다. 아마 그때 그것을 마이너컴플렉스라 불렀을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들 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진보의 시각이 그렇다. 정확히 진보 자체에 대한 진보의 입장 자체가 그렇다 봐도 좋다. 진보는 소수다. 진보는 약하다. 그러나 진보는 옳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옳은 진보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실현이 아니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처럼 장차 진보가 꽃 피울 환경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순수한 진보를 지키고 보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름의 절박함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얼마나 순수하게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고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가. 어쩌면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시절의 의사와 열사의 꿈이다. 그 꿈은 처절할수록 좋다.


그래서 가시를 두른다. 장미덩쿨이 자라 세상과 자신들을 분리시킨다. 어차피 저들은 무엇이 옳은지 모르고 있다. 진보라는 가치가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 자신들만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들만이 이야기한다. 자신들만이 서로 듣고 이야기한다. 현실과의 타협이나 화합은 순수에 대한 오염이며 무지에 대한 투항이다.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박제화된다. 아마 노동운동에 대해 썼던 적이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 자체를 타자화하는 기제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노동운동 자체를 위한 노동운동이 되고 만다. 노동운동이 노동자와 유리된다.


페미니즘을 어떤 식으로 대중에 설명하고 설득할 것인가. 어떻게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정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것인가. 보다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 많은 현실적 노력과 시도들이 필요하다. 내가 아닌 상대의 언어로 번역해서 들려준다. 협상의 첫째 기술이다. 자신의 언어가 아닌 상대의 언어로써 상대가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성의를 다해 납득시킨다. 하지만 어차피 저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말한다고 알아들을 리 없을 테니까. 진짜 자신들의 의도에 동의할 리 없을 테니까. 차라리 체념이면 모르겠는데 그도 아닌 자폐적 만족으로 변질되고 만다. 하지만 자신들이 알고 이해하고 있으니 상관없다. 자신들만은 제대로 알고 있고 이해도 하고 있으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자신들끼리 괜찮으면 그것으로 괜찮은 것이다. 왜냐면 어차피 자신들은 이해받지 못하는 소수일 테니까.


당연히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저들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는 풍경도 달라진다. 나는 내가 선 곳에서 내가 본 풍경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다른 곳에서 본 풍경은 어떠한가 먼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보고 있었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예 무시해 버린다. 너는 틀렸다. 너는 잘못되었다. 내가 페미니스트들과 말섞기를 포기한 이유다. 저들은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틀렸다고만 말할 뿐 나의 입장에서 왜 틀렸는가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있을 수 없다. 자신들과 다른 페미니즘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그들의 믿음이 구체화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메갈이고 워마드인 것이다. 나름대로 그들의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한 것도 그들의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인 페미니즘이란 그렇게 세상의 상식과 유리된 상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제된 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이만큼이나 순수하고 옳다. 그들을 지지하던 다수 진보 지식인과 언론들도 포함이다. 이 순수한 씨앗을 자신들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최근 페미니즘 논란이 비생산적으로 흐르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외부의 비판적인 남성들 역시 아주 잘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야 말로 페미니즘이 저런 식의 극단으로 흐르게 된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이외에는 모두 부정한다. 착하고 성실하고 순응적인 순수한 페미니즘만을 주장하며 그것을 강요하려 한다. 다양한 페미니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소수인 페미니스트들은 더욱 자신들의 순수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상처가 곧 영광이고 죽음이 바로 신성이다. 딱 테러와 보복이 끝없이 이어지던 중동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쪽은 순수를 지키려 하고 한 쪽에서는 그 순수를 강제로 허물려 하고 있다. 그리고 한 쪽은 압도적 다수이며 한 쪽은 아직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연예인이 그런 말을 해서 꽤나 호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어째서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해야 하는가? 왜냐면 여성주의자들이라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의 사회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남성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게 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그나마 여성주의자들이 나서서 성범죄에 집단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고 있는 것처럼 남성들의 시각에서 많은 성범죄들이 은폐되고 말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들이 죄인이 되어 떠밀려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그나마 여성단체들이 나서서 도와주니 피해여성들도 강자인 남성들과 싸울 수 있다. 성범죄 뉴스마다 여성단체는 뭐하느냐 따져묻다가 정작 여성단체가 나서면 압력을 행사한다며 반발하는 것이 바로 남성들인 것이다. 성범죄보다 성범죄의 무고가 더 심각한 범죄다. 재판에서 성범죄를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대부분 남성들은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명백한 성범죄가 무죄로 판결나고 하는가를. 그래서 무죄판결이 났다고 피해자들은 무고한 것인가. 그런데도 여성주의자들이 그런 남성들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여성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단지 대통령 한 사람 바뀐 것 뿐이라 말하고는 했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한 번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검찰에, 법원에, 공직사회에 과거 군사독재의 유산은 여전히 적지 않았고 그것이 다시 정권이 바뀌고 표면으로 드러나고는 했었다. 물론 여성의 인권이 전보다 많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따라서 전보다 더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하며 공존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의 상층부는 다수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남성이 아직 사회의 많은 것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쯤 했으면 충분하니 여성만을 위한 여성주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점까지 고려했을 때 여성만을 위한 여성주의란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만을 위한 여성주의는 유효함을 인정한다. 다만 그 방법론의 문제다. 여성만을 위한 여성주의는 좋은데 여성주의자를 위한 여성주의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여성주의자들의 자기만족만을 위한 여성주의까지 여성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어느 기사에서 그리 질타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권감수성보다 인권감수성을 먼저 길러라. 세상의 상식과 통념도 충분히 고려하라. 바보가 될지언정 미친놈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게 문제다. 여성주의자를 위한 여성주의. 진보주의자를 위한 진보. 누구를 위한 여성주였고, 누구를 위한 진보였는가. 어째서 노동운동에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진보가 소수인 이유다. 그래서 더 소수가 되고 마는 이유인 것이고. 소수임을 차라리 자랑으로 명예로 여긴다. 영광으로 여긴다.


여전히 문빠들은 그때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만 옳다. 저들은 틀렸다.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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