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계급투쟁론 같은 건 애저녁에 내다버린 모양이다. 무산자들이 연대하여 유산자들과의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원리를 아예 부정하고 있는 중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라는 것이 과연 그냥 얻어진 것이었는가. 투쟁 없이 그저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만으로 사민주의의 합의라는 것이 가능했던 것인가.

 

민주주의 아래에서 서로 다른 이해와 신념, 주장을 가지는 주체들끼리 갈등하며 충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자고 민주주의를 하려는 것이다. 단지 신분이 낮고 힘이 없고 소수라고 아예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토론과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한 번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보자. 진중권 자신도 그러는 것처럼 토론이란 것이 항상 정중하게 논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 감정이 섞이고 때로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극렬하게 충돌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마저 아우르자는 것이다. 피만 흐르지 않는다면. 아예 대화 자체를 막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타인의 주장 자체를 부정하고 차단하려는 시도들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주체이며 토론의 당사자인 민주주의 시민 개인이 아닌 외적인 힘으로 그 자체를 억압하고 강제하려는 시도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 사용되는 수단이 바로 권력인 것이고, 그런 권력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적인 권위주의이고 전체주의가 되는 것이다. 진중권 이 새끼는 확실히 누군가 말처럼 무식하거나 사악하다. 전체주의라는 말을 교묘하게 돌려 이용한다. 전체주의라는 것이 반드시 대중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중을 등에 업은 권위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라 보는 것이 더 옳다. 그러면 어째서 일본의 군국주의마저 전체주의라 불리는 것인가. 스페인의 전체주의는 소수의 군인과 기득권들이 스페인 인민을 탄압하고 세워진 것이었다. 히틀러가 과연 국민친화적인 독재자였는가.

 

이명박근혜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차이를 무엇이라 보는 것인가. 전두환과 김영삼의 차이는 또한 무엇이었을까? 아마 진중권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진중권 자신의 입장에서 대중이 자신을 공격하는 자체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일 테니까. 감히 자신을 공격하던 무지렁이 대중들이 진보언론들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진중권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실체인 셈이다. 물론 자칭 진보들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며 인용하는 민주주의의 정체이기도 하다. 적당히 자신들과 같은 엘리트들이 대화하고 타협하고 합의해서 평화롭게 온건하게 이끌어가는 민주주의다. 대중은 단지 그런 자신들의 판단과 결정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을 진짜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이를테면 과두정치인 것이다. 소수의 선택받은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어지는 정치다. 지금 박병석이 하고 있는 그것이다. 안보는 보수가 맡고, 복지는 진보가 맡고, 경제는 보수가 맡고, 교육은 진보가 맡고, 서로 싸우지 말고, 최대한 양보하고 합의해서, 대통령이고 국민이고 다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잘 해 보자. 그런데 어디 감히 국민 나부랭이들이. 그러니까 한겨레 기자도 말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다고. 이명박근혜 시절이 더 편했다고. 이명박근혜 시절에는 그래도 언론을 언론대접 해주었고, 그래도 기득권 엘리트의 하나로 인정해 주었었다. 진중권도 지금처럼 개무시당하지는 않았었다. 마치 민주주의 초기 천박하고 비천한 자들에 의해 오염된 정치를 한탄하는 엘리트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실 이렇게 진지하게 대꾸할 건 아니기는 하다. 진중권 그 새끼가 뭐라고. 사실 진중권이나 나나 글을 쓰는 동기나 스타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경우 그냥 배설이다. 처음부터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내 만족을 위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라고.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보는 사람도 더 많은 유튜브 등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 그리고 조금 더 정제된 글을 쓰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런데 언론이 인용해 주니 뭐라도 되는 것처럼. 언론들이 추켜주니 자기가 진짜 뭐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진중권이 지금 편들고 옹호하는 집단은 어떤 무리들인가.

 

언론의 정체도 드러나는 것이다. 진중권을 인용하는 언론의 실체이기도 하다. 언론만 진중권을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확실히 보수와 진보가 하나라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 진중권을 중심으로 보수와 자칭 진보언론이 하나가 되어 떠들어댄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주장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인가.

 

원래 투표란 전쟁의 대신이었다. 정치란 자체가 투쟁이다. 투쟁을 부정할 때 남는 것은 야합 뿐이다. 야합은 기득권의 몫이지 대중의 몫이 아니다. 대중은 야합이 아닌 투쟁만을 할 수 있다. 그러고도 진보를 자처하는 것인지. 기득권과의 야합만을 바라는 진보를 진보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자칭 진보인 이유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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