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전에도 썼던 것 같다. 사람이 어째서 욕을 하는가에 대해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절대 욕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욕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리는 달동네에서 살았던 경험에 기초한 말이다. 어떤 때 사람은 욕을 하는가. 말이 생각보다 말보다 앞설 때. 당장 뭐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머리도 마음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른 압축된 한 마디를 내뱉고 마는 것이다.

 

"야 이 개자식아!"

 

이를테면 기레기라는 표현도 그렇다. 어째서 취재를 안하느냐? 하다못해 당사자와 인터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인터뷰했으면 그대로 내보내야지 제목만 그런 식으로 다는게 말이 되느냐? 무엇보다 지금 네가 쓴 이 기사가 사실 맞아? 진실이 맞아? 그런데 그렇게 길게 쓰려니까 그렇지 않아도 일상이 고단한데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압축한다.

 

"이 기레기새끼가!"

 

당장 나만 해도 기레기니 기더기니 기자것들이니 기자놈들이니 욕을 섞지 않고 쓰려 했으면 글의 길이가 적어도 두 배는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답답해서 내 성질에 벌써 숨이 넘어갔을지 모른다. 여기서 뭔가 기자와 언론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는데 그것 다 쓰다가는 내가 죽을 지경인 것이다. 그러니까 기레기새끼. 그러니까 기더기년들. 그러니까 언론것들. 씨발 개좆같은 새끼들 죄다 파묻고 밟아버렸으면 좋겠다. 얼마나 편한가? 

 

그렇기 때문이다. 대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일상이 분주해서 차마 그 길고 복잡한 내용들을 다 가슴으로 머리로 정리하지 못하고 내뱉으며 겨우 살아가는 이들이란 것이다. 혹시라도 노가다 같은 몸쓰는 일 할 일 있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이다. 진짜 말들 험하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인데 듣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상처받고는 한다. 울컥해서 싸움도 자주 한다. 싸우고 술먹고 또 싸우고 술쳐먹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같이 일하지 못한다. 그러면 거꾸로 굳이 그렇게 급하게 욕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대신할 필요가 없는 여유있는 이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교양있는 사람들은 교양있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것 역시 근대의 산물이었다. 혈통에 의한 신분의 세습이 의미를 잃고 자기 실력으로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쟁취하던 시절 어느새 지배계급으로 올라선 자신들을 피지배계급과 구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책값이 싸지도 않던 시절 돈이 없으면 배우는 것도 어려웠다. 그저 글을 읽고 쓸 줄만 알아도 대단하게 여겨지던 때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제 응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보통의 시간과 노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같에 10시간 넘게 몸을 쓰며 일하는 사람들이 헬스를 할까? 필라테스를 받을까? 일주일 내내 하루만 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이니 무용이니 미술이니 하는 것은 그저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앞에서 피아노 연주가 어떻네, 누구의 화풍이 어떻네, 솔직히 짜증난다. 아 저 부르주아새끼. 하지만 그런 만큼 자기 생각도 다 정리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럴싸한 말들로 그런 모든 것을 풀어낼 책임도 지워지게 된다. 유시민 이사장이 여전히 지식인 사회는 물론 대중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식인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에 두루 능통하게 양자를 잇는 최고의 역할을 도맡고 있다.

 

아무튼 교양이란 교양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신분, 혹은 계급을 전제로 한 개념이란 것이다. 하루종일 관절이 부서져라 일하고 술 몇 잔에 그 고통을 속이며 잠자리에 누워야 하는 이들에게는 전에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경험했든 교양이란 것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명한 대학교수라도 아파트 경비를 하느라 하루종일 주민들과 싸우고 돌아온 뒤라면 그 감정을 풀어내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 자기가 대학교수고, 혹은 전직 대학교수였고, 누군가 자신이 하는 말을 중요하게 받아써주고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괜히 방문자수 천 명 단위 넘어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 멘탈에는 딱 방문자수 400명 까지가 아무 생각없이 글 쓰기 좋은 수준이다. 그 이상 넘어가면 신경쓰여서 글을 쓸 때 무척 조심해야 한다. 여기 보면 가끔 그렇게 읽는 사람 의식하고 조심해서 쓴 글들을 드물게나마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언론의 주목을 값싸게 비난과 조롱으로 팔아넘기는 놈들이 있으니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그 잘난 서울대 출신들이란 것이다. 누군가는 석사고 누군가는 박사다. 어디 기자라는 여자도 하나 끼어든 모양이다. 돈도 많지 않은가? 시간도 많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차고 넘치는 조건에 있는 이들이다. 더구나 머리까지 좋으니 보통 사람들에 비해 그 속도도 상당히 빠를 것이다. 머리좋은 놈들 암산하는 것 보면 저것들 사람들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말을 하고 글을 쓰더라도 그에 어울리게 써야겠지. 시정잡배처럼 비아냥과 조롱 말고 제대로 된 논리와 서술로, 아니 비유를 사용하더라도 절로 무릎이 쳐지는 직관적이면서 날카로운 매우 적확한 비유로써 상황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시정잡배의 욕은 짧기라도 하지 욕설이 길어지면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이다. 욕이 길면 더이상 욕이 아니다. 욕은 때로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모욕과 도발은 응징의 대상일 분이다. 그래서 지금 자칭 진보 버러지새끼들은 욕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진중권이든 서민이든 얼마나 컴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는지를. 그래도 권경애와 김경율은 저들과 격이 다른 인물들이다.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프레시안은 예전부터 아오안이라 이름까지 기억은 못하겠다. 그나마 가끔 한 마디 할 때마다 어느 정도 그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낄 때 안 낄 때를 최소한 가리려는 노력은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조차도 조금만 사정을 알면 역시 낄 때 안 낄 때 가리지 않는 천박함과 경박함을 바로 느끼게 될 테지만.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들어주었으면 싶었을까. 그런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대놓고 무시하고 있으니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욕하면 칭찬해주고, 욕하면 받아써주고, 욕하면 그래서 인정받게 된다.

 

아마 글을 보면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같은 욕을 쓰는데도 진중권이나 서민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욕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너무 지저분하다. 그래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욕을 하기 위한 욕이다. 욕하기 위해 일부러 쥐어짜낸 욕설들인 것이다. 비난하기 위해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해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비아냥거린다. 욕은 시정잡배처럼 하면서 여전히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니 이성과 지성으로 쥐어짜낸 증오와 혐오라는 고약한 부조화의 산물이 만들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아예 그냥 다 내려놓고 욕하던가.

 

과연 이런 것들을 지식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인가. 그러니까 저따위로 욕하는 것이라고. 욕도 아니고 뭣도 아닌 그냥 의도된 배설물들이다. 자기 똥을 자기 손으로 똥처럼 꾸며 놓은 기괴한 괴물들인 것이다. 그러고서도 대학교수입네 논객입네 자기를 추켜주고 인용해주는데는 굉장히 민감하다. 예형이 그래도 이름을 남긴 이유는 그 비난과 조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뒤가 없었다. 예형에게 미안한 일이다. 수준이 참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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