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함께 군생활을 한 사람들을 전우라 부르며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아침에 눈뜨자마자 보이는 것이 소대원 얼굴이고, 밤이 되어 잠들기 직접에도 바로 옆자리에 누운 같은 소대원의 얼굴을 눈에 담게 되는 것이다. 자다 말고 일어나 불침번을 설 때도 계속해서 소대원의 얼굴을 헤아리게 된다. 훈련이나 근무는 말할 것도 없다. 과연 살면서 부모든 형제든 친구든 애인이든 부부든 직장동료든 이렇게까지 긴 시간을 사생활조차 없이 함께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전우인 것이다. 벌거벗은 채 서로의 알몸을 보면서 함께 목욕도 하고, 온갖 힘들고 궂은 일들도 함께하며 봐서는 안되는 모습까지 항상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다. 그래서 한 번 군대에서 사이 틀어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가족끼리 의가 상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이유와 같다. 유예가 없다. 미운 채로 계속 서로 보면서 미워해야 하고, 싫은 채로 계속 함께하면서 싫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만큼 한 번 각별한 마음이 들면 전역하고 나서도 때로 생각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막사도 다르고, 훈련도 근무도 따로 돌아가는 다른 중대라면 어떨까?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중대가 다르면 중대장들조차 다른 중대의 병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할 수 없다. 다른 중대의 병사에게 무언가를 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해당 중대의 중대장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휘계통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지휘관도 아닌 소대장이나 부사관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옆에 지나가도 경례조차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확실히 내가 있던 부대에서도 다른 중대 소대장이나 부사관들에게까지 경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대장은 그래도 지휘관이니 보이면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 말인 거의 항상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 존재이기에 서로를 전우라 부른다면, 서로 얽힐 일도 거의 없는 사이이기에 그냥 아저씨란 것이다. 여러 중대가 하나의 건물을 쓰고, 그래서 근무도 함께 서는 경우라도 그 기본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한 개 대대가 중대규모도 안되는 동원사단에서조차 중대가 다르면 그냥 남인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어찌 함께 군생활을 한 전우인데 아저씨라 부를 수 있느냐고? 장교니까 그럴 수 있을 지 모른다. 다만 장교지만 지휘관은 경험하지 못한 듯하다. 실제 영 아니다 싶은 경우 아예 지휘관을 거치지 않고 여기저기 잡일만 시키다 적당히 진급시킨 뒤 예편케 하는 경우가 군대에서는 제법 있는 편이다. 중대가 달라도 대대가 같으니 전우다. 비슷한 시기 함께 군생활을 했으니 아저씨라 불러서는 안된다. 징병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미필자가 많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 미필이 많은 건 그렇다 치고 오히려 미필이 더 목소리도 크게 더 당당히 떠들고 있다. 듣도보도 못한 병장회의의 결정을 근거로 탈영을 확정짓고, 중대가 달라서 아저씨라 부르기도 한다니 그것을 트집잡는다. 하필 이번 이슈를 크게 키운 대부분이 현역 사병과는 거리가 먼 미필이거나 다른 군생활을 한 경우들이라.

 

아저씨는 아저씨다. 단 한 번도 중대 막사 바깥의 다른 군인들을 같은 주둔지에 있다고 전우라 여긴 적이 없다. 혹시라도 예비군훈련을 받으며 같은 사단, 같은 연대 출신을 만나더라도 그냥 아저씨지 전우같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전우란 군대 갔다온 이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담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지나 우연히 길에서 만나도 자연스럽게 군에서 쓰던 호칭이 튀어나오는 그런 관계다. 당연하게 그 시절로 돌아가서 사회에서의 시간을 잊은 채 떠들 수 있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들까지 전우로 여겨야 한다니. 개소리도 이정도면 수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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