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치적 의도 없는 순수한 역사글이다. 혹시라도 실제의 어떤 사실과 연관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단지 오해에 불과함을 먼저 인지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정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아무 관심도 없다.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는다. 오래 살아야 한다.


원래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중국왕조에서 환관이 발호하여 크게 문제를 일으켰던 것은 다름아닌 당시의 황제들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다. 결국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환관들이 어지간히 부정을 저지르고 전횡을 일삼는 것을 설사 알았어도 굳이 벌주기보다 방치해야 하는 더 절박한 이유가 당시의 황제들에게는 있었던 것이었다. 오로지 환관들만이 황제들에게 가장 믿고 기댈 수 있는 측근들이었다.


당장 삼국지의 배경이 되고 있는 후한말만 하더라도 저주라도 받은 것인지 연이어 황제들이 어린나이에 즉위하며 모후인 태후를 끼고 외척들이 득세하게 된 것이 저 유명한 십상시가 등장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영제만이 아니라 이전의 여러 황제들과 거의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어려서는 어쩔 수 없이 태후에 이끌려 외척의 발호를 지켜보다가 어느 정도 장성하고 나면 환관을 앞세워 이들을 숙청하고 친정에 나선다. 다시 황제가 죽고 어린 황제가 새로 즉위하면 태후를 낀 외척들이 일어났다가, 어느새 황제가 장성하면 황제를 배후에 둔 환관의 공격으로 이들이 물러났다가. 


조위의 황제 조방이 권신 사마소를 죽이겠다며 저택으로 쳐들어갔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했을 때 그를 따르던 병사들도 거의가 환관들이었다. 무신들이 난을 일으키고 조정을 장악한 채 왕권을 위협했을 때도 고려의 왕들은 내시와 환관을 동원하여 기세등등한 그들을 암살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황제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하는 이들이 바로 이들 환관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심지어 태어난 아이의 양육마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야 권위가 사는 것으로 여기는 한심한 인습으로 인해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자란 많은 황실의 아이들이 유모와 환관을 유일한 가족처럼 여기며 깊은 유대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이들 어려서 자신을 보살피던 환관들이 이후 이 가운데 황제로 즉위하는 이가 나오면 황제의 측근이 되어 환관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었다. 환관 왕진으로 인해 토목보에서 치욕을 당하고 황위마저 빼앗겼음에도 여전히 그를 위한 사당을 짓고 추모까지 한 정덕제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들은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한 것이었다 보는 것이 옳다.


부모에게서도 받지 못한 정을 주고받은 사실상 유일한 가족이다. 유일하게 믿고 기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측근이다. 현실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 황제의 자리를 차지해도 물려줄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점과 신체적인 특징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비천한 신분이라는 특성이 황제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기대어야만 한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이들이라면 자신을 배신할 리 없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실제 그렇게 황제의 전위가 되어 황제의 편에서 외척과 싸우고, 권신들을 몰아내고, 그 대가로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약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결과 피해보는 것이 일반 백성이거나 고위관료들이라 해서 황제가 굳이 그런 사실까지 고려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앉은 황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로 자신을 도울 강력한 아군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자신의 신하들이다.


굳이 황제가 직접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어차피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가 있으면 상소 등으로 황제에게 알리려 들 테니 일부러 거부하지 않는 이상 아예 모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아는 것 자체를 거부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했거나. 마치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을 밀어내고 친정인 여흥민씨로 하여금 조정을 장악하게 한 것이 고종과 전혀 무관한 명성황흐 자신만의 의지였다 여기는 것과 같다. 고종의 허락 없이는 이미 몰락하여 한미해진 명성황후의 친정이 일약 국정을 주도하는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을 리 없다. 욕은 명성황후가 먹고 실리는 고종이 챙긴다. 고종을 대신해서 조정에서 고종을 옹위하는 대신 여흥 민씨도 약간의 대가를 누린다.


권력이란 사유물이기 때문이다. 백성에 대한 공적인 책임보다 황제 개인의 입장과 이익이 더 우선한다. 황제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백성의 이익과 안위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우선한다. 백성의 재산을 빼앗고, 백성을 함부로 죽이고, 그로 인해 많은 폐단이 일어나더라도 황제의 자리를 지키는데 도움만 된다면 얼마든지 용서된다. 아니 오히려 권장된다. 황제는 그저 군림할 뿐이다. 아니 존재할 뿐이다. 황제는 황제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측근들이 나누어갖는다. 황제에게만 잘하면 충신이고 황제에게 소홀하면 역적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환관조차 황제에 최선을 다하면 충신이 되고 권력자가 된다.


어린 시절 가까이 친하게 지냈다. 보호자였다. 보호받는 입장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그래서 그 익숙함에 의지한다. 자기는 그저 황제이기만 하면 된다. 백성들이야 죽어나가든 말든. 물론 한참 오래전 전근대 왕조들이 가지는 분제다. 지금은 절대 그런 일따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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